“두터운 외투와 목도리, 쉴 새 없이 나오는 입김…밖에 얼굴 내놓고 자는 것 같아”
“두터운 외투와 목도리, 쉴 새 없이 나오는 입김…밖에 얼굴 내놓고 자는 것 같아”
  • 승인 2012.01.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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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 탐방> ‘연탄가정’의 힘겨운 겨울나기-3: 성동구 옥수동

무게 3.6㎏, 4600㎉의 열량을 뿜어내는 막강 화력의 연탄.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연탄 소비가 크게 늘고 있다. 기름?가스보일러는 꿈도 못 꾸는 극빈층들에게 연탄 2장은 하루 24시간 동안의 듬직한 동반자다. 특히 비탈진 산동네에 거주하는 영세민들에게 연탄은 ‘검은 보석’과도 같다.
저소득층의 소득에서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다. 바깥바람이 차가워질수록 이들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산비탈을 이고 사는 달동네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은 한 걸음 더 일찍 찾아왔다. <위클리서울>은 ‘연속기획’으로 연탄으로 추위와 싸워야 하는 달동네 주민들의 겨울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호엔 그 세 번째로 성동구 옥수동 산동네를 찾았다.



그나마 전기장판 있어 다행

옥수동 일대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고층 아파트가 이곳저곳 들어서고 있는 가운데, 몇몇 구옥들은 깎여나간 산비탈의 가장자리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
 
“연탄불을 피우는 아궁이가 막혔는지 난방이 안 돼. 수리할 돈이 없어서 그냥 살지. 방바닥은 차가워.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 수밖에….”





매서운 바람, 코끝까지 시린 날씨는 햇빛의 온기마저 삼킨 듯하다. 집 앞엔 가늠할 수 없는 검정 폐비닐과 찌그러진 양동이, 고철 등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안모(59) 씨는 두툼한 옷과 목도리를 착용한 채 찬바람과 맞서고 있다.

“가까운 병원에 가려고…”라며 말문을 연 안 씨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기침을 했다.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안 씨는 “연탄을 제대로 피우지 못해 방바닥이 차갑다. 연탄 화로가 낡아 온기가 들쭉날쭉 한다”며 “그나마 전기장판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미라고 자식들이 조금씩이나마 돈을 부쳐줘서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초수급대상자인 전모(82) 씨는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에 난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허름한 건물로 된 3평 남짓한 전 씨의 보금자리가 나타난다. 헌 이불과 노란 테이프를 이용해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창문 틈새를 막은 모습은 그간 얼마나 혹독한 추위에 고생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게 했다. 전 씨는 “올 겨울에 필요한 연탄 400장을 다행히 마련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 씨는 “어제 봉사단체에서 나와 김장김치를 나눠줬다”며 “저는 온다는 연락을 못 받아서 김치를 전달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해다 준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집 밖으로 나가 지붕 위로 집집마다 연결된 플라스틱 파이프를 가리키던 전 씨는 “이 동네는 땅 밑으로 수도가 들어갈 수가 없어서 공중으로 수도를 연결했다”며 “이런 거 본 적 있느냐. 책에도 안 나온다”고 혀를 찼다. 이어 그는 “아직까진 수돗물이 잘 나오지만 날씨가 더 추워져 얼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고모(65) 씨는 “오늘 연탄을 준다고 했는데 하나도 안 줬다”며 “비가 와 못 온다나 뭐라나. 만날 추워서 벌벌 떤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교회에서 연탄을 나눠줄 사람의 이름을 적어간다. 안 적힌 사람만 못 받는다”며 “이 동네 사람들의 사정을 알고 공평하게 나눠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어 “이 마을에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마을에 도움이 되는 재개발을 해주기를 원한다”고 토로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김모(53) 씨는 “매달 30만원 남짓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에서 방세 20만원과 맨날 오르는 식료품비에 전기세 등을 내고 나면 남는 돈이 없다”며 “연탄을 구입할 돈도 없어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고 있다”고 푸념했다.

그는 “올해는 물가상승에 건설경기 불황이 겹쳐 쪽방촌의 겨울은 춥다 못해 시리다”며 “물가는 오르는데 복지단체의 지원과 기초생활수급비는 예년 그대로라 올해 체감 온도는 더 낮다”고 토로했다.




불편한 몸, 연탄에 의지하지만…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다는 유모(54) 씨는 당장 내일이 걱정이다. 그는 “건설경기 불황으로 올해는 예년보다 더 힘들다. 기온이 더 내려가면 공사가 중단돼 돈을 벌수도 없다”며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데 추운날씨에 혹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라고 했다.

유 씨에게 연탄은 겨울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다. 가스보일러는 고사하고 기름보일러도 사용할 여력이 없어 연탄만이 생명줄이다. 한때 LP가스로 바꾼 일도 있지만, 한 통에 4만원에 육박하는 가스가 한 달에 5∼6개 씩 들어가는데 도저히 감당할 여력이 안 됐다. 그래도 유 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LP가스로 바꾸면서 연탄화로를 치워버린 집들은 연탄도 못 쓰고,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버텨야 한다.





그는 “도시가스 들어온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다. 가스 배관을 깔려면 수백만원이 든다는데, 그나마 가끔 후원도 들어오는 연탄이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에 이사와 계속 연탄을 때고 있다. 춥지만 않으면 괜찮다. 이런 데 사는 처지에 뭘 더 바라겠느냐”고 했다.

주모(65) 씨는 최근 고혈압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혈압이 더 올라가 최대한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오래된 연탄보일러 탓에 아무리 난방을 해도 방이 쉽게 따뜻해지지 않는다. 오래된 벽돌집, 뚫린 구멍마다에서 들이치는 차가운 외풍으로 인해 방안에서도 외투를 입고 견뎌야 한다.





주 씨는 “며칠째 빨래를 못하고 있다”며 “세탁기가 없어 겨울에도 손빨래를 해야 했지만 올해는 갑작스런 한파로 인해 마당 수도가 꽁꽁 얼어붙었다”고 하소연했다. 한파에 혹시라도 수도가 얼어버릴까 봐 이불로 동여매놨지만 허사였다.

그는 “바깥에 얼굴을 내놓고 자는 것 같다”며 두꺼운 검은색 점퍼를 입은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방바닥은 데워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고 하얀 입김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지난해 태풍에 날아간 지붕을 구청이 고쳐줬지만, 외풍은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겨울이 오면서 가끔 찾아오던 자원봉사자의 발길도 끊어졌지만 주 씨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추운 겨울 찬 물에 빨래를 해주길 바라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늙은이가 무슨 희망이 있겠느냐”며 “그나마 추운 겨울을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위로가 된다”고 했다.

박모(79) 씨는 스물여섯에 알 수 없는 병으로 다리를 절게 됐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장애인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매달 40만원 가량 탄다. 정 씨의 월세는 25만원. 방문과 창문 꽁꽁 걸어 잠궈도 코가 시리다.  방 한켠에는 이불이 두툼하게 쌓여 있다. 정 씨는 “월세를 내고 퇴행성관절염이 오는 다리와 허리에 쓸 약과 혈압안정제, 소화제 등을 사면 남는 돈이 없다”며 “특히 올해는 물가가 올라 생필품 구입이 더 어렵다”고 했다.





10년 전 이곳에 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박 씨는 최근엔 심부전증까지 겹쳐 최악의 상황. 그는 “겨울 한철에 20만원 정도의 연탄을 사서 땐다”며 “아껴 쓰려고 하루에 2개씩만 넣고 땐다. 전기장판을 종일 켜놓지만 외풍이 심해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는 방 한켠에 있는 소주병을 가리키며 “너무 추울 때는 소주를 반병씩 마시고 잔다”고 했다.

박 씨는 “이곳에서 30년을 살았는데 이렇게 추운 건 처음”이라며 “연탄보일러는 얼지 않아 다행인데, 수돗물이 터질까봐 늘 조마조마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집들은 벽에다 단열재를 제대로 넣지 않고 엉성하게 지어서 그런지 외풍이 심해 얼굴이 시리다”고 말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어진 박 씨의 집 마루는 차가운 냉기에 발이 얼 정도였다. 박 씨는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덧신을 두 개 겹쳐 신은 채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옥수동의 겨울은 좀처럼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연탄도 아까워 못 쓰겠다”며 전기난로에 의지해 한파를 견디고 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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