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지음/ 현대문학





한국문학의 대모 故박경리의 미출간작 『녹지대』가 47년 만에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지난 2008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방민호 교수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여, 이를 박경리 문학 전체를 조망하는 논문을 쓰고 있던 제자 김은경 KAIST 대우교수에게 발굴할 것을 제안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원고는 신문에 실린 상태인 것이 전부인 까닭에 당시의 신문을 일일이 복사해서 원고 파일로 만들어야 했다. 60년대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긴 그야말로 순도 높은 60년대 소설인 셈이다.

신문에 연재된 장편소설, 특히 사랑 이야기를 큰 줄기로 한 작품들은 통속소설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어 학계에서 관심을 받지 못해 지금껏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작품은 박경리라는 대가의 문학관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지금에라도 세상에 나온 것은 여러모로 뜻깊은 일이다.

박경리는 한 수필에서 “나는 일생 동안 못다 쓸 만큼 소재는 많이 있지만 내 능력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고 기술한 바 있다. 그만큼 그는 험한 세상을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견뎌온 작가이자 인생이 곧 문학이었던 작가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6?25 전쟁으로 남편과 아들을 잃는 불행을 겪었으며 황폐한 세상을 여자의 몸으로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야 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유방암 판정이라는 시련을 맞닥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은 오히려 인간과 세계,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로 이어졌고 예술혼으로 승화해 방대한 문학 세계를 축조해내는 바탕이 되었다. 

『녹지대』는 『시장과 전장』, 『파시』등을 연재할 당시 《부산일보》(1964년 6월 1일~ 1965년 4월 30일)에 연재한 것으로, 이 시기의 작품들은 박경리의 대표작이자 말이 필요 없는 우리 시대 역작 『토지』의 생명사상으로 이어지며 박경리의 문학관을 완성하고 있는 것을 생각할 때, 발굴의 가치는 더욱 크다. 박경리의 심원한 정신세계와 세계관을 깊이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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