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열사 25주기 추도식

지난 1987년 1월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으로 숨지며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고 박종철 열사의 25주기 추도식이 14일 오후 경찰청 인권센터(구 남영동 대공분실) 앞마당에서 열렸다.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와 서울대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가 주최한 이날 추도식은 박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씨와 형 박종부씨 등 유가족과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명진 스님, 박용진 민주통합당 경선 후보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한 분위기하에서 진행됐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추도식에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올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화를 `완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박종철기념사업회 회장인 안승길 신부는 인사말에서 "25년이면 사실상 한 세대가 경과한 시간이지만 우리는 오늘 `종철이를 살려내라, 민주주의를 살려내라`는 구호를 들고 추모하는 이 자리에 절박한 심정으로 모였다"며 "6월 민주항쟁의 성과에 기반해 힘겹지만 꾸준히 진척되던 민주화가 MB정권 등장이후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고 말했다.



안 신부는 특히 "경찰과 검찰의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처리과정을 보면 마치 25년 전 박종철군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처리과정을 보는 듯하다"며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당시 정권 발표와 디도스 수사 발표를 동일시한 뒤, "그래도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마치 25년 전 6월 민주항쟁의 전야와 같이 국민들의 분노가 쌓이고 있다"며 MB 심판을 호소했다.

지난해 제7회 박종철 인권상을 수상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전화 연결을 통해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아니고, 박종철 열사로 상징되는 6월항쟁에 뿌리를 둔 수많은 마음들이 모여서 민주화가 이뤄지고 희망버스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우리가 기대하는 2012년을 희망으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우리들의 단결된 힘”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대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유수진 회장은 "모든 이가 선배의 이름을 기리지만 선배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여전히 머나먼 이상으로 밀쳐져 있다"며 "그때처럼 지금도 갈 곳 잃은 철거민들을 무더기로 만들어내는 재개발 사업이 계속되고, 노동자들은 먹고살 길조차 빠듯하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맞고 끌려가고 감옥에 갇힌다. 우리는 딱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그렇지만 저희는 선배가 결코 찬성하지 않았을 제한선을 긋는 저들의 정치에 복종하지 않고 선배가 꿈꾸었던 그 세상을 한 발자욱씩 만들어가는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다짐했다.









폭로 주역들 단상 올라


추도사 중간엔 식순에 없었던 시간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1987년 당시 박 열사의 고문치사를 세상에 알린 이부영 전 의장과 당시 영등포구치소 보안계장이었던 안유씨, 교도관이었던 한재동씨가 무대에 오른 것. 안씨는 박 열사의 고문치사 진상을 이 전 의장에게 알린 장본인이고, 한씨는 이 전 의장의 폭로 문건을 외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8년전 정년퇴임한 안씨는 "당시 고문치사를 주도했던 두 경찰과 공안당국의 면회를 참관하면서 그들의 범죄사실을 듣고 분노했다"며 "당시 그들을 면회온 관계자들은 1억원이 든 통장을 갖고 회유하면서도 발설할 경우 가족들도 위험해질 것이라는 협박을 서슴치 않았다"고 회고했다.

한씨는 "교도관 생활을 하면서 가장 뜻깊었던 일이 바로 그때 일을 외부에 알린 것이고 다시 돌아가도 그리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인권센터를 만드는 데 산파 역할을 했던 박종환 전 경찰종합학교장은 "명박산성을 짓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이들을 수사하고, 촛불집회를 진압하고, 매뉴얼에도 없고 통례도 따르지 않는 용산 진압과 양천서 물고문 사건을 보면서 과연 지난 2005년 경찰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사과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었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역행보살 하나가 민주화 10년을 역행하는 현실에서 민주와 인권은 여전히 변함없는 우리 사회의 아젠다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유가족 "또 다른 억울한 죽음 `고 문영수씨 사건`에도 관심 가져달라"


가족 대표로 무대에 오른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는 동생에 대한 추도사 대신 군사정권 시절 경찰의 폭행으로 인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던 `고 문영수씨` 사건을 알리며 연대를 호소했다.

고 문영수씨 사건이란 광주민주화항쟁 2년 후인 1982년 단순폭행사건으로 광주서부경찰서에 연행됐다가 경찰의 폭행으로 사망한 사건. 당시 경찰은 폭행치사를 은폐하기 위해 고인을 행려사망자로 위장해 시신을 전남대 의과대학 학생 해부 실습용으로 인계했다. 그로부터 29년 만인 지난 2009년 `진살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냈고 지난해에는 사법부도 경찰의 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던 경찰청과 전남대, 광주북구청은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개선대책 마련`이라는 유족의 요구을 외면, 문씨는 29년째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

박씨는 "지난 1982년 더운 여름날에 서울에서 부당해고된 한 운수노동자가 일자리를 찾기위해 광주에 내려갔다 경찰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저들은 아직도 어떤 구체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고 사과 역시 진정성이 없었다. 이 억울한 죽음을 해결하는 데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전통 무용가 김미선씨의 진혼굿, 민중가수 우리나라와 박준의 추모 공연 등이 있은 뒤 오후 3시 50분께 참석자들이 고인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노래 `그날이 오면`을 합창하는 것으로 추모식은 끝났다.

한편 박종철기념사업회는 박 열사의 출신고인 부산 혜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하던 `박종철기념사업회장학금`과 그의 선후배들이 운영하던 `박종철인권장학금`을 확대해 올해부터 박종철 장학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조국 교수는 "박종철 장학사업은 민주화 유가족 자녀와 어려운 조건에서 활동하는 학생운동가들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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