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보 긴 둑에 꿇고 앉아 하늘에… 이 야윈 가슴팍에 비수를 꽂을까?
만석보 긴 둑에 꿇고 앉아 하늘에… 이 야윈 가슴팍에 비수를 꽂을까?
  • 승인 2012.01.2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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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만석보



아아, 전창혁이 곤장 맞아
죽던 날 밤엔
만석보 긴 둑에 무릎 꿇고 앉아
하늘에 빌었다. 고부 장내리 사람들.
차라리 마을마다
통문이나 돌릴까?
이 야윈 가슴팍에 비수를
꽂을까?
아비들은 주먹으로 허공을 가르고,
아아, 전창혁이 곤장 맞아
죽던 날 밤엔 피눈물만 있었다. 그 산비탈.

밤은 밤으로만 남아 있었고
칼은 칼로만 남아 있었다.
겉늙은 전라도 굽이굽이에
굶주림은 굶주림으로만
남아 있었고
증오는 증오로만 남아 있었다.
먼지 낀 마루 위에 아이들은 앓고
신음소리 가득히 그릇에 넘쳤나니
오라, 장돌뱅이.
어둠 타고 오라.
나무껍질 풀뿌리로 살아남아서
장성 갈재 훌쩍 넘어
서둘러 오라.
맞아죽은 아비 무덤 두 손으로 치며
전봉준은 소리 죽여 가슴으로 울고
분노는 분노로만 남아 있었고
솔바람소리는 솔바람소리로만
남아 있었다.

구태여 손짓하며 말하지 않아도
누구누구 그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알았다.
그 손님들을.
찬바람 서릿길 깊은 밤이면
썩은새 감나무집 작은 봉창에
상투머리 그림자들
몇몇이던가를.
구태여 손짓하며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은 알았다, 아이들까지도.
김도삼이, 정익서, 그리고 앉은뱅이,
두루마기 펄럭이며
왔다가 가고.
그 밤이면 개들이 짖지 않았다.
개들도 죽은 듯이
짖지 않았다.

장날이 되어야 얼굴이나 볼까?
평생을 서러움에 찌든 사람들.
찰밥 한 줌 못 짓는
무지렁이 대보름,
진눈깨비 내리는 대목장터에
큰바람이 불었다. 쇠전머리에.
났네, 났어. 난리가 났어.
에이 참, 잘 되었지.
때가 차고 부스럼딱지 개버짐 피었으니,
가자 가자 용천배기,
손뼉치며 가자.

김제 태인 알렸느냐?
최경선이를 불렀느냐?
지푸라기 날리는 저녁장터에
으스름 보름달 서럽게 밝고
낫 갈아 아비들은 참대를 찍었다.

드디어 때가 찼으니
증오를 증오로 갚기 위하여
온몸에 불타는 피, 아우성치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안개 낀 새벽.
해묵은 피고름 비로소 터지고
증오를 오히려 증오로 갚기 위하여
아비들은 몰려갔다.
살얼음 거친 들판
꽝꽝 울리며,
나무껍질 풀뿌리로 살아남아서
그 겨울 노령남북 모여든 아비,
아비들은 몰려갔다. 곰배팔이도.
눈비바람 칼날같이 몰아칠지라도
그 누가 무단히 죽어간다더냐?
동트는 고부읍내 천둥번개로
두둥둥 북치고 꽹과리 치고
온몸에 불타는 피. 아우성치며
아비들은 몰려갔다.
꽹과리치고.

보아라. 말발굽소리 크게 울리며
흰말 타고 달려오는
전봉준을 보아라.
남은 처자 불쌍하여 눈 못 감고 죽은
만 사람의 붉은 피
두 손에 움켜쥐고
어이어이 말잔등 찬바람 뚫고
한걸음에 여기왔다.
이노옴. 조병갑아. 


 다음호에 계속

[편집자]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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