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안식처에서 '사색'을 즐기다
죽은 자들의 안식처에서 '사색'을 즐기다
  • 승인 2012.02.07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생 역사 현장 탐방 11 - 망우리 공원
 

`사랑하면 알게되고 알게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만해 한용운, 조봉암, 방정환, 지석영 선생 등이 묻힌 망우리 공원을 돌아봤습니다.





# 망우리 공원 `사색의 길`.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 앞에선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박인환, `목마와 숙녀` 중)


죽음 속에서 삶의 방법을 찾고 싶다면 망우리공원을 찾아가는 건 어떨까.

서울시설공단은 깊어가는 가을을 느낄 만한 3대 산책길로 어린이대공원의 `은행나무길`, 청계천의 `수크령길`, 그리고 바로 이 곳 `사색의 길`을 추천한 바 있다.

망우리공원은 지하철 7호선 상봉역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버스를 5분 쯤 타고 망우리고개입구 에서 내리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아리 공동묘지가 가득 차고 이태원 공동묘지가 택지개발로 사라지게 되면서 1933년 망우산 일대 83만 2800㎡의 공간에 공동묘지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40년이 지난 1973년 3월엔 2만8500여기의 분묘가 빽빽이 들어서 더 이상 묘지 쓰는 것이 금지됐다.

정부가 이장과 납골을 장려하면서 조금씩 계속 줄어들었지만 2005년 9월말 통계에 따르면 1만7000여기의 분묘가 분포돼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 중엔 유명 인사부터 이름 없는 민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있다.





# 묘비에 `아버지 어머니 고이 잠드신 곳`이라고 적혀 있다.





# 오랫동안 찾는 사람이 없었던 것일까. 잡초에 가려진 묘비



`망우-용마-아차산` 코스

거물급 인사로는 일제 시대 3·1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만해 한용운을 비롯 오세창 서동일 등 독립운동가들이 안장돼 있다.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 독립운동을 한 뒤 나중에 진보당을 만들었다가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조봉암 선생이 묻힌 것도 이 곳이다.

우리나라 어린이 교육의 선구자인 소파 방정환, 의사이자 국문학자로 국내 최초 종두를 실시한 지석영, 암울한 시기 뛰어난 예술적 재능에도 불구하고 불운한 삶을 살았던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도 서울과 구리시의 경계에 잠들어 있다. 돌아보기 전 조금의 노력만 기울인다면 독립운동사와 현대 예술사 등 다양한 교육의 장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 위로부터 조봉암 한용운 방정환 선생 묘소



도산 안창호, 고하 송진우, 명창 임방울, 애국지사 조종완 박찬익 백대진 등의 묘소도 모두 이 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도산공원과 국립공원 등으로 이장했다.

망우리공원은 묘소 사이로 5.2km의 산책로를 만들었는데 길 곳곳에 유명인사들의 연보비가 자리하고 있다. 1992년 문명훤(대전 국립묘지 이장) 방정환 오세창 한용운 장덕수 조봉암 지석영 선생의 연보기록비를, 1998년엔 문일평, 서병호(대전 국립묘지 이장), 서광조, 서동일, 오재영, 유상규, 박인환, 오긍선 선생의 연보기록비를 세워 높았던 뜻을 기리고 있다.
 












# 위로부터 시인 박인환, 작가 최학송, 지석영 선생 연보비



망우리 공원은 인근 주민들이 걷기와 조깅을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평일에도 1000명 안팎의 사람들이 몰린다고 한다. 용마산-아차산과 연결돼 있어 주말 등산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보통 4∼6시간 정도 걸린다.

1만 의병의 `집결지`

망우리 공원 입구로 가기 전 아래쪽엔 `망우리 저류조 공원`이 조성돼 있다. 2004년 12월 망우리공원 운동장 지하에 3만톤 규모의 `망우산 저류조`를 건설했다. 집중호우시 망우산으로부터 내려오는 빗물을 일시 저장해, 천천히 방류시켜 홍수피해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저류조 상부엔 게이트볼장과 족구장 등 다목적 운동장이 들어서 주민들의 운동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공원 한쪽엔 13도 창의군탑이 또 다른 역사의 주무대였음을 알려준다. 1907년 11월  전국 13도에서 모인 48진 1만여명의 의병이 동대문 밖 30리에 해당하는 망우리 일대에서 총대장 이인영을 축으로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것을 기념해 세웠다. 비록 중과부족으로 서울 진입엔 실패했지만 연합의병들의 당찬 기개가 서려 있는 곳이다.




# 천막에 가려진 `13도 창의군탑`



`창의군탑`을 뒤로 하고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두 갈래로 나눠진 `사색의 길` 순환로 코스가 나온다. 어느 쪽을 택하든 상관은 없지만 경사도를 봤을 때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게 비교적 수월하다. 각각 망우산 양쪽의 전경을 바라볼 수 있는 데 오른쪽길에선 중랑천변을 중심으로 한 서울 동부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엔 멀리 남산 타워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왼쪽길 풍경은 이와는 완연히 분위기다 다르다. 구리시를 끼고 도는 한강을 따라 전원적인 느낌이 강하다. 대부분 유명인사들의 묘소도 대부분 이 곳에 몰려 있다.








# 망우리 공원 양쪽 전경.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만여기가 넘는 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사색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다른 산책로보다도 정비와 조경이 잘 돼 있어 조금만 걷다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드문드문 있는 연보비엔 유명인사들의 시와 어록이 새겨져 있어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져준다. 용마산·아차산 지킴이로 수십년간 산속 쓰레기를 주워 유명한 83세 최고학 옹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쌓은 `국민강녕탑`도 눈길을 끈다. 최 옹은 "우리 국민들이 욕심을 버리고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건강해지고 온 가족이 행복해 질 것"이라며 "7년전부터 이 탑을 쌓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적었다.




# 83세 최고학옹이 7년전부터 쌓은 `국민강녕탑`


`사색의 길`을 모두 돌아보는 데엔 1시간 20분 정도가 걸리며 유명인사들의 묘를 모두 둘러봐도 2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마침내 근심을 잊었노라`

망우리 공원의 `망우`(忘憂)는 `근심을 잊는다`는 뜻이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웁을 정한 뒤 선왕들의 농지를 정하기 위해 대신들과 동구릉(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위치)을 답사했는데 무학대사가 농지보단 신후지지(身後支地, 살아있을 때 미리 잡아두는 묏자리)로 적합하다고 권유했다.

이에 동구릉 일대를 자신의 농지로 정하고 기쁜 마음으로 환궁하던 태조는 지금의 망우리 고개 위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이 보았던 터를 바라보며 `과연 명당이다. 이것으로 오랫동안 근심을 잊을 수 있게 됐노라`고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망우`라는 이름이 유래됐다.

사색을 통해 근심을 지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설계해 보자. 망우리 묘역은 낮에 찾아가기도 꺼려지는 휑휑한 공동묘지가 더 이상 아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는 절대 명제 앞에서 마음을 비우고 다시 한 번 생에 대한 의지를 다져보자. 우리는 과연 어떻게 떠나야 하는 것일까.




# `사색의 길`은 유명한 산책로로 자리잡았다.


김승현 기자<okkdoll@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주) 뉴텍미디어 그룹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 다 07108 (등록일자 : 2005년 5월 6일)
  • 인터넷 : 서울, 아 52650 (등록일·발행일 : 2019-10-14)
  • 발행인 겸 편집인 : 김영필
  • 편집국장 : 선초롱
  • 발행소 :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목로 72(신정동)
  • 전화 : 02-2232-1114
  • 팩스 : 02-2234-8114
  • 전무이사 : 황석용
  • 고문변호사 : 윤서용(법무법인 이안 대표변호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주리
  • 위클리서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05 위클리서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weeklyseoul.net
저작권안심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