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박한 식견’ 따졌던 노무현 대통령 된 뒤 장관에, 현정권선 꿈도 못 꿀 일”
“‘천박한 식견’ 따졌던 노무현 대통령 된 뒤 장관에, 현정권선 꿈도 못 꿀 일”
  • 승인 2012.02.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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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진단 연속인터뷰>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1


어렵고 힘든 시절 이야기 꾹꾹 눌러 쓴 ‘꿈꾸는 광대’ 출간
“현 정권, 추구하는 문화비전 실종되고 ‘정치 논란’만 일으켜”
문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 야만적으로 해결하려 해
정권 바뀌었으니 나가라고? 결국 법정에서 지지 않았나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보안법 사범 증가, 노동 탄압, 생태환경 파괴 등의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공안정국’에서 파생된 숱한 문제들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클리서울>은 2007년부터 국가보안법, 남북관계, 노동 인권, 생태 환경, 교육 등의 문제와 관련 각계 인사들과 연속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씨, 재야인사 김낙중 선생,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김상봉 전남대 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송환’의 김동원 감독, 김세균 서울대 교수,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정세현 이종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우종 덕성여대 명예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선생, 박원순 변호사, 장석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정지영 감독, 이상돈 중앙대 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고은 시인,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박창근 관동대 교수, 배우 최종원 문성근 권해효 씨, 김용택 시인, 지율스님, 박인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강정구 교수,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박재동 화백, 문정인 연세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손혁재 한국NGO학회 회장,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박경석 장애인철폐연대 대표, 가수 안치환 씨, 김두관 경남도지사, 안종주 박사, 김정헌 공주대 명예교수, 이근행 전 MBC노조 위원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문재인 변호사,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호철 작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유홍준 교수, 강남훈 교수노조위원장,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정연주 전 KBS 사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 ‘하얀 정글’ 송윤희 감독, 신율 명지대 교수, 강병화 고려대 교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등 220여 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이번호에는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과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다.

영화 ‘서편제’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국립중앙극장 극장장, 문광부 장관 등의 화려한 이력으로 널리 알려진 김명곤 전 장관이 최근 자서전 ‘꿈꾸는 광대’(유리창)를 출간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책을 통해 화려했던 시절의 얘기보다, 어렵고 힘든 시절을 얘기하고 싶었다. 힘겨웠지만 소중한 시간들이 있었기에 훗날 ‘서편제’ 주인공도 가능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꿈꾸는 광대’는 그 흔한 정치인들의 ‘대필 자서전’과 달리 김 전 장관이 직접 쓴 일기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인상을 준다. 소설가 지망생에 기자 출신이었던 김 전 장관의 맵시 있는 글 솜씨 때문인지, 출판사 쪽에서도 ‘손보기’가 수월했다는 후문이다. 김 전 장관과는 현 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한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불필요한 논란이 많았다. 문화예술적 논란보다는 개인의 캐릭터나 정치적 논란으로 문광부가 휩쓸려 버렸다. 정작 현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실종돼 버렸다. 정말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막중한데, 그 핵심과제를 실종시켰다. 정치에 부속된 문화예술의 이미지로 굳어져서 안타깝다.”

김 전 장관의 비판은 우리사회 이념의 경직성과도 궤를 함께 한다. 그는 “내 편이 아니면 죽여야 한다는 강박증이 여전히 판을 치고 있다. 관용, 용서, 화합에 대한 기운이랄까. 이것이 우리사회가 나아가야할 테마라고 말하고 싶다. 이 테마를 구체화 시켜야한다”고 고언했다. 다음은 김명곤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이다.  


 
- 책 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 오래전부터 인터넷 블로그에 개인적인 얘기를 써왔다. 여기저기 썼던 이야기를 출판사 쪽에서 읽고 그것을 모아 책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썼던 글들을 수정해 책으로 내게 됐다. 심도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의 인연들을 주로 다뤘다.

- 가장 하고 싶었던 얘기는.
▲ 사람들에게는 저는 ‘서편제’ 주인공, 국립극장장, 장관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화려했던 시절은 잘 아는데 그 전의 삶은 잘 모른다. 그래서 어려운 시절의 연극 활동,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화 등을 이번 기회에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제겐 ‘서편제’ 이전의 활동들도 중요하다. 그 이전의 작품들이 있었으니 ‘서편제’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가치를 재조명했다. 제목도 ‘꿈꾸는 광대’ 아닌가. 한 사람이 꿈을 가지고, 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살아오면서 어떻게 변모해 가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한 번쯤 만끽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70~80년대를 살아왔던 저의 밑바닥, 치열한 삶을 봐줬으면 한다.

- ‘노무현 후보’와의 ‘술자리 사건’ 뒷이야기가 흥미롭다.
▲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고, 저는 국립극장장을 할 때였다. 노 후보를 지지하는 어느 연극인 중 저와 친한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이 노 후보를 같이 만나자고 하더라. 종로에 있는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권양숙 여사까지 합석해 총 4명이 만났다. 노 후보는 당시 문화예술 진영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노 후보와 순수예술 지원, 전통예술 지원 관련 얘기를 할 때였다. 여기서 서로 입장이 갈렸다. 노 후보는 연극도 경쟁력을 가지고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저는 화가 나서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그런 천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느냐. 실망스럽다” 하고 따졌다. 그리고 어색하게 헤어졌다. 노 후보는 1년 후에 대통령이 됐다. 저는 정부 산하기관의 장이지 않았나.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정치권과는 일체 가까이 안 하고 조용히 일만 했다.
2005년은 극장장 2차 임기가 끝나는 해였다. 당시 노 대통령이 국립극장 창극 ‘논개’를 보러오겠다고 하더라. 일체 경호도 없이 조용히 왔다. 극장 직원과 관객에게도 알리지 않고 같이 감상했다. 그러고 나서 “청와대 가서 일 합시다”고 하더라.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저를 발탁한 것이다. 당시 측근들도 전혀 몰랐다. 측근들은 이미 다른 후보들을 물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느닷없이 인사를 했고, 저로선 굉장히 고마웠던 선택이었다. ‘그릇이 크구나, 대인배구나’ 하고 여겼다. 현 정부에선 이런 인사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오히려 불이익이 있지 않았겠는가. 아마 현 정부였다면 저는 국립극장장직에서 바로 교체됐을 것이다.

- 결혼 과정도 예사롭지 않았던 걸로 아는데.
▲ 배화여고 독일어 교사 시절 (아내가) 고등학교 1학년인 제자였다. 10살이나 차이가 났다. 흔히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총각, 처녀 선생들 좋아하지 않는가. 그런 분위기에서 좋아했던 것 같다. 당시 저는 아내의 존재에 대해 잘 몰랐다. 저는 도중에 학교를 그만뒀고 다시 연극판에 들어갔다.
그런데 이 친구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 계속 제 연극을 보러 오더라. 제가 연극할 때 홍보담당을 하기도 했다. 잔심부름을 하면서 친해지고, 그러다가 대학 4학년 무렵에 데이트까지 하게 됐다. 아내가 수년간 저를 쫓아다닌 셈이다(웃음).

- 대학 재학 시절 지리산에 머물기도 했던 것으로 안다. 판소리를 배우기 위해서였나.
▲ 대학 3학년 때 몸이 안 좋아 휴학을 하고 전주 집에 내려가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친구를 따라 김제 국악원에 놀러가게 됐다. 거기서 여자 선생이 초등학교 소녀들을 앞에 두고 판소리 가르치는 것을 처음 봤고, 충격을 받았다. ‘저런 음악이 있었는데, 왜 몰랐을까’ 하고 말이다. 그 이전까지는 서양음악만 들었었다.
이후 혼자 레코드 들으며 판소리 관심 가졌다. 그러다가 휴양하러 지리산에 갔고, 노고단 중턱 상선암이라는 암자에 묵었다. 그곳엔 잔심부름 하는 할아버지(불목한)가 있었고, 그 할아버지에게 저녁마다 판소리를 배웠다. 
이후 대학 졸업반 때는 종로 3가에서 우연히 박초월 국악소를 발견하게 됐다. 박초월 명창과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김제, 지리산 할아버지, 박초월 명창’ 인연이 이어졌고, 박 명창 밑에서 10년 정도 제자로 지냈다.

- 문광부 장관 시절 어떤 일에 역점을 두었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 역점을 뒀던 쪽으론, 전통문화와 한류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한민족 문화사업을 육성하고 예산을 확보하고 조직을 만드는 것이었다. 특히 문화정책적인 입장에서 문화 창작적 환경을 어떻게 좀 더 다양하게 하고 ‘문화 복지 문제’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일종의 문화 나눔의 문제를 고민한 것이다. 이런 것들을 강조해 ‘문화비전 정책집’도 만들었다.
아쉬운 점은 ‘바다이야기’ 등 게임 산업의 어두운 면이 터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제가 장관되기 전부터 문제가 됐던 것인데, 제가 장관 때 쌓이고 쌓인 문제들이 빵 하고 터진 것이다. 그거 처리하고 게임산업진흥법 새로 만들다가 세월을 많이 보냈다. 많은 정력을 거기에 쏟았다.
또 하나가 스크린쿼터 문제다. 이 역시 제가 결정했다기보다 전임장관 시절 축소로 결정됐던 것이다. 이후 제가 영화인들과 대화하고 설득해야 했다. 그래도 나름 영화발전기금을 만드는 등 상당한 에너지를 소비하며 고생했다.
현 정권 들어선 방향이 좀 달라졌다. 제가 만들어 놓은 것들이 일정 부분 무너졌다. 전통문화육성 정책 부서가 미약해서 제가 장관 시절 전통문화과를 새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예술진흥과 안에 한 부서로 집어넣어 그 영향력을 축소시켰다. 제가 장관 하던 시절 이전으로 회귀한 것이다. 현재는 굉장히 서구 예술 지향적이고 경쟁중심의 지원정책으로 가고 있다.

- 현 정부 들어 문광부와 관련 잡음이 많았다.
▲ 정책에 대한 입장이나 철학이 달라서 변화를 준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념 문제를 떠나 각자 입장이 조금씩 다르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런 차원이 아니라, 현 정부는 아주 단순논리로 예술계를 이념으로 분류해왔다. 기관장들을 개별적으로 모욕한다든가 축출한다든가 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다.
이 외에도 불필요한 논란이 많았다. 문화예술적 논란보다는 개인의 캐릭터나 정치적 논란으로 문광부가 휩쓸려 버렸다. 정작 현 정부가 추구하는 문화비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실종돼 버렸다. 정말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이 막중한데, 그 핵심과제를 실종시켰다. 정치에 부속된 문화예술의 이미지로 굳어져서 안타깝다.
앞으로 문화예술계 쪽에서 해야 할 일이 엄청 많다. 세계적으로도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이라고 얘기할 정도로 문화예술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국가의 행정도 마찬가지다. 창조 행정이 요구된다. 이제는 새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국가산업을 일궈내야 한다.

- 정권이 바뀌면 으레 각 부처 수장들도 바뀌기 마련인데.
▲ 물론이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에서 순리대로 가야지, 임기도 끝나지 않았는데 정권이 바뀌었으니 나가라고 하니 문제다. 한 사람을 몰아내기 위해서 아주 구차스런 방법을 쓰거나, 쓸데없는 감사를 해서 불명예스럽게 퇴직시켜버린다. 문화적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을 야만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특히 문화예술인들에겐 개인의 명예가 굉장히 중요한데 법정투쟁으로 몰고 갔다. 법정에선 결국 정부가 지지 않았나.
<위의 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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