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만들어놓은 단골들, 프랜차이즈에 전부 빼앗겨 허탈할 따름”
“힘들게 만들어놓은 단골들, 프랜차이즈에 전부 빼앗겨 허탈할 따름”
  • 승인 2012.02.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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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프랜차이즈 대공세에 신음하는 동네분식점들

대표적인 중소 영세상인 영역으로 분류되던 동네빵집, 커피전문점 등에 대기업들이 손을 뻗치고 있어 비판 여론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라져 가는 동네분식집들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프랜차이즈 분식집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동네분식집들도 상권을 위협받고 있어 업계 종사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동네분식집은 폐업하거나 매출 일부분을 가맹본부와 나누는 프랜차이즈 점포로 전환하는 등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막다른 길에 몰리기 일쑤다. 그러나 기업형 프랜차이즈 점포로 전환하더라도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한 때 잘 됐지만 지금은…”

대기업까지 분식점, 빵집, SSM(기업형 슈퍼마켓) 등 동네상권을 침식해 나가는 등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LG그룹은 과거 아워홈과 사보텐, LF푸드 등 계열사를 통해 라면·순대 등을 판매하고 있으며 CJ역시 비빔밥 등 한식사업에 진출했다. 대명그룹은 계열사 베거백을 앞세워 떡볶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회예산처의 ‘자영업자 현황 및 정책방향’에 따르면 1~4명 규모인 국내 영세사업체는 272만개. 그중 절반 수준인 133만개가 도소매업과 숙박ㆍ음식업에 집중돼 있다. 그렇지 않아도 좁고 과당경쟁 상태에 놓여 있는 시장에 대기업과 재벌들이 분식점까지 확장에 나서면서 문을 닫는 동네분식점이 늘어나고 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5명 중 1명꼴인 21%가 사업체를 접은 이유에 대해 ‘과당 경쟁’을 꼽았다. 통계청의 ‘사업별 생명 분석’에 따르면 자영업자가 창업한 점포의 절반 이상이 3년을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 창업 점포의 1년간 생존율은 70% 수준. 그러나 2년차, 3년차에 들어서면 생존율이 55%, 45%로 급격히 떨어진다.



10년 전 1500만원을 들여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한 초등학교 맞은편에 떡볶이 전문 분식집을 창업한 유모(남. 56) 씨. 그는 최근 2년간 가게 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난 기업형 프랜차이즈 분식집 때문에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유 씨는 “대기업 자본을 바탕으로 밀려들어오는 경쟁점포들을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 씨의 점포 주변 상가 1층에 위치한 분식집도 치열한 경쟁 끝에 최근 1년 새 벌써 3번째 주인이 바뀌었다.

유 씨의 점포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또 다른 자영업자 김모(45.남) 씨도 “프랜차이즈 분식집들이 생긴 이후 동네 분식점들을 대상으로 납품하던 식재료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성북구 돈암동에서 5년 전 분식집을 오픈한 김모(여. 37) 씨는 “주변에 학교가 많아 오가는 학생들 때문에 그동안 가게를 유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프랜차이즈점들이 몇 군데 들어서면서 매출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버렸다”고 토로했다.



김 씨는 “단골들도 프랜차이즈점으로 옮겨간 지 오래”라며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이 변화에 민감하다보니, 좀 더 새로운 것을 찾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단골들을 만드느라 꽤 오랜 기간 고생했는데, 대부분 사라졌으나 허망할 따름”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성북구 동소문동에서 김밥 전문 분식집을 운영하는 최모(남. 43) 씨는 “보통 점심시간이면 테이블이 꽉 찼었다. 2시까지는 식사 손님들이 유지됐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점심시간에 열 테이블 받기도 어렵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지하철역 주변이고 사무실도 많아 자리 좋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왔는데 주변에 대기업 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그 명성도 사라져버렸다”며 “돈 없는 학생 손님 말고는 받을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최 씨는 “분식집뿐만 아니라, 체인점 형식의 작고 큰 유명식당들도 많이 생겨나면서 딱히 갈 곳 없는 노인 분들이나 밥 먹을 곳이 없어 우리 집을 찾곤 한다”며 “드셔봐야 얼마나 드시겠는가. 때론 말 많은 노인 분들 때문에 김밥 한 줄 팔면서도 별별 소리 다 듣는다”고 혀를 찼다.

종로구 혜화동에서 10년 가까이 분식집을 운영해온 문모(남. 48) 씨는 “혜화동 거리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다녀 한동안 장사가 잘 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길거리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때마다 매상이 조금씩 줄어든다. 새로 지은 건물에 고급 음식점들이 입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 씨는 “외국계 음식점, 프랜차이즈 분식집 등이 생겨날 때마다 주변 식당들 매출은 확 줄어든다”며 “그렇다고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어 환장할 노릇”이라고 했다. 문 씨는 “때론 주변에서 대학 다니던 단골 학생들이 찾곤 하는데, 그것도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젊은 사람들 발길이 끊긴지 오래다. 이젠 예전에 당구 치던 세대들이 갈 곳이 없어 가끔 들르곤 한다”고 밝혔다.

문 씨는 “프랜차이즈점 음식과 일반 분식집 음식이 차이가 나는 점은 있다”며 “그래서 요즘은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 보단 새로운 맛을 개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며 “아직도 프랜차이즈점보다 인기를 끄는 동네분식집들은 있다”고 했다.

그는 성균관대 정문 앞 유명 떡볶이 집을 예로 들며 “그 집이 30년이 됐는데, 아직도 손님이 바글바글한다. 일부러 차타고 와서 사가는 손님들도 있다. 결국 손님을 끄는 것은 인테리어가 아니라 맛이다. 맛이 좋으면 프랜차이즈점에 갈 손님들, 동네분식집으로 모이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문 씨는 “떡볶이나 김밥 레시피도 다 거기서 거기다”며 “양념 조절만 잘 하고, 다른 집엔 들어가지 않는 재료 몇 가지만 개발하면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네분식집도 변화를 모색해야한다”며 “가만히 앉아 당하고 있을 순 없지 않느냐”고 거듭 강조했다.



“가맹점은 먹고 살기 위한 선택”

영세 자영업자들의 구멍가게는 폐업하거나 매출 일부분을 가맹본부와 나누는 프랜차이즈 점포로 전환하는 등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막다른 길에 몰리기 일쑤다. 그러나 기업형 프랜차이즈 점포로 전환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오모(남. 44) 씨는 1년 전까지 성북구 삼선동에서 자신의 분식집을 운영했다. 하지만 그 분식집은 지금은 대형 프랜차이즈의 점포가 됐다. 이미 2년 전 점포 주변에 분식 프랜차이즈가 먼저 생긴 점도 한몫 했다. 내부가 깨끗하고 포장도 깔끔했다. 프랜차이즈점으로 손님이 몰렸다. 악순환이 시작됐다. 매출이 줄어 재료비를 아끼다 보니 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손님은 더 줄었다. 그러던 중 현재의 프랜차이즈 본부에서 가맹점 제안이 왔다. 오 씨는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성북구 길음동에서 10평 남짓한 분식집을 운영하는 장모(여. 54) 씨는 요즘 들어 프랜차이즈점으로의 전환을 고민 중이다. 인근에 포장마차와 각종 먹을거리 점포가 생겨도 끄떡없던 가게였지만 지난해 골목 초입에 프랜차이즈점이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젊은 손님들은 신선함을 강조하는 프랜차이즈점을 주로 찾았다. 장 씨는 “프랜차이즈점으로 바꾸든지 업종을 완전 변경하든지 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계를 위해 또는 퇴직금 전부를 털어서 점포를 연 자영업자들은 ‘품질 유지’를 명목으로 5배나 비싼 식자재를 사용하라고 강요당하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점주는 “본사에서 사용하라고 정해준 식용유를 리터 당 2300원에 매입하고 있다”며 “그런데 품질 차이가 거의 없는 다른 상표 식용유는 리터 당 350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FTA 발효되면 상황 더 심각해질 것”

이처럼 중소 자영업자들의 설자리가 줄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확장에 맞서 개인 점포들이 견뎌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유럽연합(EU)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해외 브랜드의 국내 시장 확대까지 본격화하면 입지는 더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기중앙회 조사결과 유통·서비스 분야 중기 중 80% 정도가 ‘적합업종 지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동반성장위원회는 지난해 제조업 분야에 이어 올해 유통·서비스 분야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을 추진 중이다. 총선이 있는 4월 전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적합업종 신청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서비스업의 경우 제조업과는 또 다른 시장이다. 대기업이 이미 상당부분 장악했거나 프랜차이즈가 만연돼 있는 분야가 많다. 가맹점은 본부의 영업방침을 따르지만 소유·운영권은 일반 점주들이 갖고 있어 기업규모 구분도 어렵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도소매 유통업은 재벌 진출이 많고 특히 직영 매장 비율이 높은 곳들은 영세상권 침범이 크지 않은지 살펴봐야한다”고 말했다. 다른 산업보다 시장 개방이 많이 돼 있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미 FTA 논란의 핵심인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에 걸리는 부분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중앙회 유광수 동반성장실장은 “FTA가 발효돼 서비스 개방 확대가 가시화되면 (적합업종 선정에) 현실적 문제가 많다”며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의 경우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지 않을 경우 (중소기업 보호를 위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정부가 정책적으로 육성한 프랜차이즈 산업이 결국 중소상인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자영업자들이 독자적으로 점포를 운영하는 힘을 키울 수 없게 돼 결과적으로 모든 산업 분야가 대기업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강선구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자영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해진 것”이라며 “임금피크제 등 고용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베이비부머를 줄여나가야한다”고 말했다. 동네빵집에 이어 동네분식집까지 대기업 자본에 잠식당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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