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세상에 원금 3600만원에 이자가 132억여원?

경찰도 발견하지 못했던 문건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그간 피해자, 그러니까 익산떡 시동생 권씨가 겪었어야 할 모든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빌려준 돈에 대한 상환 독촉과정에서의 피의자 김씨의 행동은 치밀하고 악랄했다. 더구나 김씨가 이자를 덧붙여 요구해 왔던 금액은 시골 외딴집에 거주하는 피해자에게는 있을 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리고 이를 받아 내기 위한 김씨의 수단은 상상을 초월했다.

갑자기 터진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넋을 놓고 있던 익산떡과 바깥양반이 영정사진을 찾다가 발견한 문건은 차용증, 확인서, 통보서신과 피해자 권씨가 관련기관에 상황을 알려 도움을 요청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편지 등 총 10여장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중 차용증과 확인서 등의 내용. 김씨가 권씨에게 빌려 준 돈은 원금 3600만원이었다. 하지만 차용증과 확인서에서 드러난 권씨가 갚아야 할 돈은 어떻게 계산이 된 것인지 132억6000만원에 달했다. 이를 근거로 김씨는 그간 터무니 없는 금액을 요구하며 권씨를 압박해왔다. 권씨가 쓴 편지엔 “계속 김00씨의 일방적이고 터무니 없는 이자계산법에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김00씨와 내가 만나면 언쟁이 많았습니다 13억, 27억, 67억, 100억…” 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뿐 아니었다. 2006년 10월, 김씨가 권씨에게 보낸 서신에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씨의 채무를 그 가족들과 친구에게 임의양도시켜 채권을 행사할 목적까지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김씨의 서신은 권씨에게 형, 동생, 형과 동생의 처갓집, 조카들, 친구내외 등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 사업자등록증 사본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권씨 친지의 “공장견학을 구두약속했으니 실행해 달라”는 등 권씨의 채무를 제3자에게 받아 내려는 의도의 내용이 담겨져 있고 시간 장소를 알리는 방법과 버스, 기차 등 미리 이동수단을 정해놓고 있다.

이 서신의 뒷장에는 22번부터 번호(1-21번은 분실됨)를 매겨 “가족 간 또는 형제, 자매 등 개인정보는 인권침해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이 삽입돼 있는 등의 치밀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범인 검거 후 이런 사실 하나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이틀만에 범인을 잡았고 단순히 범인의 진술에 의존, 단순 채무관계에 의한 살인이라는 식으로 발표를 해버렸다. 범인을 잡는데 공을 세웠다며 해당 경찰관에게는 1계급 특진의 영예가 주어지기도 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 단순히 경찰의 발표에만 의존, 채무관계에 의한 살인사건이라고 앞다퉈 보도했다. 이런 엄청난 일이 그 뒤에 숨겨져 있었고 그로 인해 이제 열두살 초등학교 5학년 소년과 열네살 나이의 꽃다운 소년이 영문도 모를 칼부림에 의해 한 명은 중태에, 또다른 한 명은 세상을 떠나야 했는데 말이다. 물론 피해자 권씨도 세상을 떠났다.

익산떡을 만났다. 며칠간 익산떡 바깥양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그곳 병원에서 수차례 수술을 받은 열두살 조카 병수발을 하느라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며칠뒤 바깥양반을 볼 수 있었다. 화자 그저 "큰 일 치르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란 말을 조심스럽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중상을 입은 조카는 지금은 치료와 재활을 위해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다. 바깥양반은 그랬다. "경찰의 앞서간 수사와 섣부른 언론보도가 고인들을 두 번 죽였다."

<글: 정서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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