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다섯번째



# 눈이 오면 빛을 발하는 남천


엄마! 이번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인색하네요. 지난해 겨울까지만 해도 눈이 한 번 내렸다 하면 무릎까지 차오르곤 했는데 말이에요. 이번 겨울에는 어찌된 영문인지 발등을 덮기도 어려워요. 그것조차도 겨우내 다섯 번이나 내렸는가. 그 바람에 우리집 마당의 방죽이 바싹 말라버렸어요. 방죽이 마르다 보니 금년에는 산개구리도 안 나타나고, 가끔 날아와서 목욕을 하고 가던 새들도 안 오고, 이것 참, 뭐라고 말해야 옳은지 그냥 어리둥절하기만 해요.

그런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잘 안 믿어주더라고요. 금년 겨울은 참 가물다, 이렇게 말하면 말이에요. 농사를 짓는 분들은 그래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지만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들, 특히 운전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눈을 희번득거리는 거예요. 올해는 작년보다 눈이 더 많이 내렸다나요.

허헛 참 내, 기가 막혀서, 이 사람들이 대체 뭘 보고 세상을 사는 것인가, 우리집 마당의 바싹 말라붙어 버린 방죽이 살아있는 증거인데 응? 이렇게 혼자서 꿍시렁거리다가 생각을 해 보았더니 말이에요. 이번 겨울에는 섭씨 영도 이하로 내려간 날이 엄청 많았던 거예요. 그래서 내린 눈이 녹지를 못하고 그냥 쌓인 채로 있었던 거예요. 작년에는 눈이 엄청 많이 쌓였어도 다음날이면 이내 따뜻해져서 다 녹아버리곤 했지만, 이번 겨울에는 보통 사나흘씩 어떤 때는 열흘 가까이나 녹지를 못하고 그냥 쌓여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올해는 눈이 많다고, 그렇게 착각을 하게 됐던 것이더라고요.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오늘 눈이 와요. 아침부터, 아니 새벽부터 눈이 오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는데 뭔가 싸락싸락 하는 소리가 들리지 뭐겠어요. 그래요.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아 이거 싸락눈 소리다, 하고 조용히 외치면서 이불 속을 빠져나왔는데 정말로 그렇더라고요. 싸락눈이 지붕을 때리고, 대나무 잎을 스치고, 마당에 내놓은 고무통을 무슨 악기라도 되는 양 연주하고 있더라고요.

함박눈이 시라면 싸락눈은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철학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요. 함박눈이 내릴 때면 나도 모르게 뛰어나가서 두 팔을 한껏 벌리게 되거든요. 그런데 싸락눈은 아아 참, 그냥 가만히 선 채로 응시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에요. 


# 대나무에 눈이 쌓이면 볼만하다

싸락눈이 댓잎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싸락싸락 들리는 이런 날은 말이에요. 이런 소리는 태초의 어떤 소리인 것만 같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귀에 이미 들리고 있는데도 귀를 기울여야만 하는 이것은 글쎄, 뭐라고 이름을 붙여야 할까. 들으면서도 듣고 싶어 귀를 만지려 하고, 보면서도 보고 싶어 눈을 비비려 하는 아하, 이것 참, 이것을 뭐라고 말해야 할까, 응?

내가 아직 엄마의 태중에 있던 시절에 혹시 이렇게 안타까워했던 것일까. 그때의 습관이 내 몸에 붙어서 이렇게도 오랜 세월 자꾸만 듣고 싶고, 자꾸만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런 것일까. 태중에 있던 시절의 나를 내가 상상해보면 그래요. 안타깝고, 애달프고, 뭔가가 자꾸 수상해져서 손가락이 자꾸만 꼼지락거려져요.

소리가 들리네. 무슨 소리일까. 무슨 소리지?

아마 그랬을 것 같아. 그래서 안타까웠고, 그래서 얼른 나가보고 싶었겠지. 그래서 그렇게 얼른 나가보자고 몸을 움직이며 좌우사방을 두리번거릴 때, 그때 엄마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랬겠지. 어머 얘가 발길질을 하네. 아니다 참, 엄마는 ‘어머’가 아니 ‘아따’였겠다. 그렇지? ‘아따 요놈이 솔찮게도 발길질을 해쌌네-잉’ 하면서 혼자 미소를 짓곤 했겠지. 그렇지?

눈으로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눈을 잇달아 깜빡거리는, 두 손으로 눈을 비벼보기도 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보기도 하는 어떤 그림 하나가 주마등처럼 아니 물 위에 뜬 등불의 행렬처럼 흘러요.

아아, 그랬겠지요. 엄마가 나를 낳아놓고 그랬겠지요. 이제 갓 백일이 지난 아이의 빵긋거리는 얼굴을 보는 엄마의 눈에는 아이를 보면서도 잘 보이지가 않았겠지요. 그래서 그냥 눈에 넣고만 싶어지는 것이겠지요.

눈에 넣어도 눈이 안 아플 것 같은 내 새끼, 내 새끼.

깊은 호수보다도 깊고, 넓은 바다보다도 넓은 엄마의 눈을 보는 아이의 눈에 엄마는 얼마나 크게 보일까요. 그래서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자꾸 보지만 엄마는 여전히 잘 보이지가 않고, 그래서 보고, 또 보고, 그러는 것이겠지요. 보면서 웃고, 또 웃고, 그러는 것이겠지요.

며칠 전에 우연히, 정말로 아주 우연히 어느 젊은 시인을 알게 됐어요.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사랑은 만지는 것이라고.


# 밖에 설치한 아궁이


만진다, 만지는 것, 그 한 구절을 읽고 눈을 번쩍 떴어요. 다시는 감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내가 이렇게도 외로운, 외로워하는 이유가 말이에요. 이게 대체 뭘까, 뭘까, 왜 이럴까, 참 많이도 갈증을 느꼈더랬는데 그게 바로 거기에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만지는 거, 그 오묘한 느낌의 시간을 내가 더 이상은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 말이에요.

그랬잖아요. 내가 엄마를 말이에요. 삼 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하루에도 열두 번씩은 아니 서른 번쯤은, 글쎄 이게 또 그렇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몇 번씩이나 될까? 내가 하루에 엄마를 만진 횟수가 말이에요. 하긴 그런 걸 알아서 뭘 할까.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내가 엄마를 억만 번도 더 만져 왔었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고 손을 닦고 발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사흘에 한 번씩은 목욕을 하고, 그리고 말년에 석 달 정도는 밥숟가락으로 밥을 떠 먹여야 했으니 그 횟수가 대체 얼마인지, 아무튼 그게 모두 사랑이었다는 거예요, 그 젊은 시인의 말인즉슨 말이에요.

사랑.
만지는 것.

싸락싸락 내리는 싸락눈을 가만히 서서 쳐다보고 있노라니 아하 참, 이 소리밖에 안 나와요. 그렇게 아하 참, 아하 참, 소리나 연발하고 있는데 문득 한 여인이 생각나더라고요.

엄마도 알다시피 내가 한때 사람 만나는 것을 엄청 좋아했잖아요. 사람도 아는 이보다는 모르는 사람들, 나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좋아했었지요. 좋아했다는 말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랬어요. 아는 사람과 함께 어디를 갔다가도 우연히 말을 섞게 된 모르는 사람과의 이야기에 취해서 아는 사람을 화나게 한 적이 꽤나 많았어요.

아무튼 그때, 그러니까 사랑은 만지는 것이다, 라는 시구를 생각하는 순간 한 여인이 떠오른 거예요. 십 년도 넘게 남편과 각방을 쓴다고, 어쩌면 참혹한 목소리였던 것도 같은, 또 어쩌면 그깟 정도의 고독은 고독도 아니라는 투의 심상했던 것도 같은 목소리의 그 말을 들을 때는 잘 몰랐어요. 그저 애린하다, 혹은 안타깝다, 그런 정도의 감정이었지요. 그런데 만진다, 만지는 것이다 사랑은, 그 말을 듣고 확연히 알았어요. 아니 알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방에서 보는 마당


아 그래, 그녀에게는 공유할 사랑이 없었던 것이로구나. 교환할 사랑의 대상이 사라져 버렸던 것이로구나. 그러면 이제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랬어요. 싸락싸락 내리는 싸락눈을 쳐다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오래 전에 만났던 그녀의 입장이 되어 그녀의 상황을 고민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자 홀연 내 자신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떻지? 하고 말이에요. 조금은 우습기도 하데요.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고독을 노리개 삼아서 잘 노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더라고요. 즐길 만한 고독이 있는가 하면 절대로 즐길 수 없는 고독도 있다는 말이겠지요. 즐길 만한 고독이란 아무래도 내 마음이 평정심을 유지할 때 오는 무엇이겠지. 절대로 즐길 수 없는 고독이란 당연하게도 내 마음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을 때라고 말해야 할 테고 말이에요. 내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결정해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서 내가 조종되거나 움직여지고 있을 때 나는 즐길 수 없는 고독으로 괴로워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책에 이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어느 철학하는 사람이 고독을 무척이나 즐겼다지요. 그런데 그 즐거운 고독을 즐길 틈이 없으니까, 말하자면 사람들이 너무 자주 찾아오니까 나중에는 그 자신이 아예 군중들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더군요. 그러자 그토록 소망했던 고독의 시간이 아주 풍요롭게 펼쳐지기 시작했다나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니 읽었을 때 나는 금방 알 수 있었어요.

사실은 내 자신이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요. 아니 뭐, 살아 왔다는 말은 좀 과장일까. 그래요. 지속적으로 그렇게 해 왔던 것은 아니고, 그러니까 소설이라도 쓰면서 살면 괜찮겠다 하는 생각으로 소설 공부를 하던 시절에 그랬지요. 이른바 습작이라는 것을 해야 하는데 장소가 없어서, 도서관은 너무 멀고, 자취방은 옆방의 아이 울음소리와 부부싸움 소리 때문에 너무 혼란스럽고, 그래서 찾다가 발견한 장소가 인근의 학교 운동장이거나 공원이었어요.

거기서 한 발 더 들어간 게 음악다방이었고요. 음악다방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무수히 많은 고함 소리와 이야기 소리 그리고 음악 소리와 종업원들의  발자국 소리가 뒤섞여서 특정한 소리를 가려내기가 어렵단 말이거든요. 그래서 아예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것 같은 효과를 볼 수 있어요. 그렇게도 영리하게 기술적으로 소음과 고독을 구분해서 활용해 왔던 그런 시절도 내게 있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엄마, 내가 지금 어떻게 되어버린 것일까, 응? 갑자기 자꾸 배드민턴이 치고 싶지 뭐야.


# 혼돈정


배드민턴, 허헛 참, 이게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네. 사실은 말이에요. 엄마 그렇게 느닷없이 가셔버리고 난 뒤에 내가 서울을 자그만치 두 번이나 다녀왔어요. 얼마 만에 가보는 서울이었는지, 하도 까마득해서 알 수도 없지만 하여튼 그랬다고요. 그 왜 엄마 드리라고 가끔 감귤을 보내오던 분 있잖아요. 네 번이던가 다섯 번이던가, 하여튼 감귤 중에서도 특이한, 시지도 않고 달기만 한 감귤을 보내곤 하던 그분이 엄마 가신 뒤로 술이나 한잔 하자고 해서 말이에요. 자기는 요식업을 하기 때문에 시골까지 올 수가 없다고, 나더러 한 번 오라 해서 여름에 한 번 가고, 그리고 또 초가을에도 갔었단 말이에요.

여름에는 밤새 술 마시고 다음 날 바로 고속버스 타고 내려왔지만 초가을에는 뭐랄까,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게다가 마침 일요일이기도 했고요. 일요일에는 그분의 음식점이 문을 닫아요. 그래서 서울 구경을 시켜준다고, 히힛, 구경이라니까 웃음이 살짝 나오는데 하여튼 구경시켜 준다고, 어딜 가고 싶냐고 하는데 대뜸 황학동 생각이 나더라고요.

동대문 옆에 황학동, 서울 인근에 살 때는 무시로 들락거리며 온갖 골동품들 구경하는 맛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그 황학동을 가본 지도 헤아려 보니 최소한 팔구 년은 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곳을 가 보기로 했던 거예요. 가서 보니 참 많이도 변했더군요. 예전의 황학동은 아니었어요. 예전의 황학동 고물시장에는 고물장사 특유의 순박함 같은 게 있었지만 눈빛이 많이 날카로워졌더라고요.

아무튼 그곳에서 서너 시간 돌아다녔는데 말이에요. 그토록 많은 물건이 쏟아져 나와 있는데도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마음을 턱 놓고 들여다보고 싶은 것도 없고요.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제 그만 돌아갑시다, 하고 슬슬 돌아갈 준비를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에 쏙 들어오는 게 있는 거예요.







“와따 배드민턴이다, 저거 얼마요?” 하고 대뜸 물었더니 주인아저씨 왈 “석 장” 하는 거예요. 석 장이면 삼 만원? 뭐가 그렇게 비싸, 하고 중얼거리니까 이 아저씨가 나를 촌놈으로 알고 “나원 참, 삼천, 삼 천”하고 소리를 꽥 지르는데 그것 참, 그 말이 이거 당신 거야, 가져 가, 하는 소리로 들리더란 말이에요.

그렇게 해서 그놈의 배드민턴 라켓을 들고 집으로 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더불어  칠 사람이 있어야죠. 광주에서 십년지기가 왔을 때, 그때 딱 한 번 십여 분쯤 쳐보고는 그 뒤로 계속 바람벽에 걸어두고 구경이나 하고 있단 말이거든요.

아 물론 우리 마을에도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글쎄, 그분들은 모두가 바빠요. 소 키우느라 바쁘고, 팔리지 않아 방치해둔 무와 배추 걱정하느라 바쁘고, 요새는 선거철이라 선거운동 나가느라 바쁘고, 어쩌다가 한 번 집에서 쉬는 날에는 또 청소하랴 술추렴하랴 해서 바쁘고, 도무지 배드민턴 같은 것에는 관심을 둘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며칠 전에는 참다, 참다못해 선운사를 갔지 않았겠어요. 선운사는 요새 비수기라서 사람들이 별로 하는 일이 없겠다 해서 말이에요.

세상에, 배드민턴 한 번 치겠다고 오십 리도 넘는 선운사까지 쫓아가야 하다니. 집에 돌아와서 생각하니 문득 이게 뭔가 싶어지더라고요. 이게 뭔가, 이게 뭔가, 그런 소리를 아마 백 번은 중얼거리고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그 끝자락에서 홀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할까? 날마다 한 시간씩 배드민턴 치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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