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입담 걸쭉한 ‘익산떡’의 육자배기로 풀어내는 情
  • 승인 2012.03.06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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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숭인동 길 레스토랑 그곳엔 ‘사람’이 있다





빨간 기름난로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찢겨진 가슴, 그러나 세상은 너무도 무덤덤했다. 소식을 접하며 잠깐 "저런 죽일…"이라며 혀를 찼던 세상은, 하지만 그 뿐이었다. 가족들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 갈라지고 찢겨졌지만, 그 뿐이었다. 그런 세상이었다. 그런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다. 익산떡과 익산떡 바깥양반의 입에서, 가슴 속에서, 간혹 터져나오는 깊은 한숨 그 끝자락, 그곳에 매달린 대상도 불명확한 외마디 욕설을 제외하고 세상은 어느순간 처절히도 무덤덤해졌다. 익산떡네 길레스토랑은 다시 예전처럼 늦은 5시 반이면 어김없이 문을 열었다. 어둠의 그림자가 이곳 숭인동 길레스토랑에 잦아들었다. 길레스토랑엔 불이 밝혀졌다. 하루 일을 끝낸 길손들은 하나 둘씩 지친 삶을 달래기 위해 길레스토랑으로 잦아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익산떡은 길손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바깥양반의 모습도 다시금 보이기 시작했다. 길손들은, 설사 익산떡에게 그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길손들조차, 다시금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올리는 걸 잊어버렸다. 아니 그 일을 잊어버렸다. 이제 갓 두달여가 지났을 뿐인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익산떡도 바깥양반도 잊어버린 듯 했다. 하지만 그들 얼굴 한 쪽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만은 지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길레스토랑 기름 난로에 불이 켜졌다. 화력 좋은 기름 난로는 시퍼런 불꽃을 일으키며 활활 타올랐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종종걸음을 하며 길레스토랑을 찾은 길손들은 난로 주위로 모여들었다. 손을 부볐다. 안주를 시켰고, 소주를 마셨다. 술기운 때문인지, 기름난로의 열기 때문인지 저마다 얼굴들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게끔 되어 있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안주 전시용 냉장고엔 언제부턴가 제철을 맞은 안주들이 속속 들어와 앉았다. 빨간 피를 머금고 있는 피조개가 혀를 낼름거렸고, 때이른 과메기가 진한 갈색의 윤기 나는 자태로 길손들을 유혹했다.

화자도 길손에 다름 아니었다. 익산떡과 바깥양반에게 더 이상 어떤 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신문을 갖다놓았고, 막걸리를 시켰고, 안주를 골랐고, 기름 난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행들과 얼굴이 벌개질 때까지 노오란 색 액체를 들이켰다. 그렇다고 세상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저 그렇게 마시고 떠들고 취하면 그만인 일이었다.

그 사이 길레스토랑을 찾는 길손들의 얼굴도 많이 바뀌었다. 출판사를 하는 임부장과 최사장 일행은 언제부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공무원 교재를 만들어 팔던, 엄청난 주량을 자랑하던 40대 부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숭인동 골목골목을 청소하는 사람좋은 인상의 환경미화원 아저씨도 보기 힘들었다. 항상 혼자서 소주 두 병에 맥주 한 병을 깔끔하게 해치우고 가던 30대 후반 노총각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 노총각은 안주로 항상 삶은 문어를 시켰었는데….

그렇다고 길레스토랑이 이전보다 장사가 잘 안되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의 빈자리는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졌다. 그것도 익산떡과 친한 걸 보니 이미 자주 드나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화자 일행도 새얼굴들과 다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과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어쩌다 한번씩 오래 전부터 아는 얼굴들이 등장하면 유난을 떨며 반가워했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흘러가면 되는 것이었다.

<글: 정서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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