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안보정상회의 앞두고 노숙인,노점상 대대적 단속 논란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정부가 노숙인들과 노점상들을 거리에서 ‘정리’ 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워 논란이다. 경찰은 ‘묻지마 범죄’ 예방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는 강남지역 번화가 및 주택가의 노숙인 출입을 원천 차단한다는 내용의 치안대책을 내놓았다. 아울러 강남 일대 노점상들의 철거를 강행하면서 노점상이 분신을 시도하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노점상들이 있던 자리엔 화분이 놓여졌다. 노점상들은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그 이틀이란 짧은 시간 동안 외국 정상들에게 ‘눈 가리고 아웅’하기 위해 이처럼 무참하게 서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을 짓밟을 수도 있는 건가”라며 분개하고 있다.
노숙인들 역시 “G20 당시에도 노숙인들의 기본적 인권과 통행의 자유마저 구속했다”며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서는 ‘노숙자풍 사전 차단’ 명시를 통해 노골적인 단속에 나섰다”고 울분을 토했다.




‘거주·이전의 자유’ 헌법 침해

핵안보정상회의는 26일부터 이틀간 삼성동 등 강남 일대에서 열린다. 회의장을 관할하는 강남경찰서는 ‘핵안보정상회의 관련 민생치안대책’을 마련했다. 대책안에는 “‘묻지마식’ 우발범죄 예방을 위하여 노숙자풍 사전 차단”을 명시하고 있다. 강남서는 지난달 12일 행사장 인근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대형서점에서 노숙인이 일반인을 둔기로 때린 사건과 같은 범죄의 재발방지 차원이라는 입장이다.

강남서는 행사를 일주일 앞둔 19일부터 행사장 주변을 지나는 노숙인을 비롯한 거동 수상자를 대상으로 일제히 검문·검색을 실시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숙인풍’은 현장 상황을 보고 판단하며 행사장 주변에 (노숙인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전 조치를 해 놨다”며 ‘경비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노숙인에 대한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노숙자풍’ 시민의 출입을 통제한다는 대책에는 노숙인을 잠재적 범죄자 혹은 위험한 존재로 규정, 차별하는 시각이 반영됐다는 주장이다. 헌법 14조에 규정된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항변도 만만찮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노숙인풍을 무슨 기준으로 판단해 차단할 것인가. 중세시대 때도 보장됐던 거주·이전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다”고 반발했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과 교수는 “군부대처럼 보안상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아닌 주택가, 번화가 등에서 노숙인의 통행을 차단하는 것은 문명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행사 일정에서 특별 경호의 목적이 있을 경우에만 제한하는 것이 옳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은 “강남경찰서의 논리에 따르면 노숙자풍, 다시 말해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은 우발범죄 위험이 높다는 것”이라며 “즉 가난한 사람들은 범죄행위를 할 확률이 높다고 단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집행위원장은 “이런 작태는 국제행사 때마다 반복되는 ‘빈곤 숨기기’의 전형으로, 이 나라, 이 정부는 외국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가난한 민중들을 숨겨야 하는 치부로만 여기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다.



“노숙인, 오히려 치안 사각지대 놓여”

당사자인 노숙인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G20 당시에도 노숙인들의 기본적 인권과 통행의 자유마저 구속했다”며 “이번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서는 ‘노숙자풍 사전 차단’ 명시를 통해 노골적인 단속에 나섰다”고 울분을 토했다.

노숙인 오모(45. 남) 씨는 “테러범죄자들이 노숙자풍으로 입고 다닐 것이라는 판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라며 “근래 강남서점에서 발생한 폭행사건과 같이 일부 노숙인들에게서 발생한 상황들을 노숙인 집단 전체로 일반화시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런 일반화라면 하늘아래 그 누가 죄인이 아닐 수 있겠느냐”며 “그러나 경찰의 단정과는 달리 이 땅의 노숙인들은 자기 몸 하나 지키지 못할 만큼 늘 위험에 처해 있다. 소소한 경범죄에 휘말릴지언정 오히려 명의도용, 폭력피해와 같은 치안의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노숙인 장모(53. 남) 씨는 “숭례문에 불이 났을 때도 사람들은 노숙인의 소행이라고 했다. 만약 범인이 잡히지 않았으면 우리를 닦달했을 것”이라며 “왜 언론은 노숙인들에게 사과하지 않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노숙인들은 담뱃값이나 밥값을 얻으러 다니거나 일거리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 고작인데 노숙인을 무조건 범죄자로 취급하며 길거리조차 다니지 못하게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숙인 윤모(남. 49) 씨는 “이 나라 정부는 가난한 민중들을 외국손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숨겨야 하는 치부로만, 골칫거리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다”며 “노숙인이 ‘묻지마 범죄자’라는, 언제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폭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가정은 무엇에 근거하느냐”고 따졌다.




그는 또 “노숙인들은 한 평의 거처 하나 지키지 못할 만큼 극단적 빈곤에 처한 이들에 불과하다”며 “오히려 치안의 사각지대에 처한 이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경찰은 오로지 노숙인에 대한 낙인에 근거한 강남일대 노숙자풍 사전 차단 대책을 즉각 철회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국제행사를 빌미로 한 노숙인 탄압은 이미 공식이 된지 오래다. 월드컵이 있던 2002년에는 서울시에서 노숙인들을 수 십 명씩 팀을 짜 지방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으로 집단연수를 보내려다 반대에 부딪혀 철회한 바 있다.

2005년 APEC 정상회담 때는 노숙인들이 살림살이를 보관하곤 했던 공공역사의 물품보관함을 사전 통보조차 없이 폐쇄해 무더기 도난사태를 초래하기도 했다. 회담 장소였던 부산에서는 노숙인 ‘시설수용기간’을 지정하고 합동 계도반, 임시 수용시설을 만들어 본격적인 ‘빈곤 가리기’를 실시한 바 있다.

2010년 G20 개최 당시엔 종전에 없던 임시주거지원 사업을 실시해 노숙인들을 한시적으로 가리고, 동시에 주요 노숙지역을 통한 상습적인 불심검문으로 노숙인들의 기본적 인권과 통행의 자유마저 구속하기도 했다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이동현 위원장은 “경찰은 노골적인 노숙자풍 사전 차단 대책을 즉각 철회해야 할 것”이라며 “핵 발전과 핵 패권 유지를 위한 부정한 국제회의를 위해 무고한 홈리스들이 잡도리 당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음을 경찰은 신속히 깨닫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노점상과 노숙인 싹쓸이 계획”

‘서울역노숙인강제퇴거철회와 홈리스지원대책마련 대책위’와 ‘핵안보정상회의대항행동’ 등은  ‘홈리스 탄압 경찰청 규탄 기자회견’ 등을 열고 “핵안보정상회의를 빌미로 노숙인들을 또 다른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만행을 멈추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김영진 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의장은 “국제행사 때마다 미관상 보기 싫다며 노점상을 철거하고 노숙인을 퇴거하지만, 그들에겐 생존권의 문제”라며 “보여주기식 빈곤감추기를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현 정부는 ‘핵 테러 없는 세상’이라는 겉포장에 숨어, 핵발전과 핵패권 유지를 위한 회의를 위해 무고한 노숙인들을 탄압하려 든다”며 “겉으로는 범죄차단을 운운하나 실상은 자국의 빈곤을 가리고 싶은 꼼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동현 위원장은 “이미 지난 1월부터 강남구청은 핵안보정상회의를 위해 강남대로의 노점상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분을 설치했다”며 “마치 국제행사가 노점상을 철거하기 위한 호재라도 되는 양 이번 기회를 통해 강남대로 노점상들을 아예 싹쓸이 철거해 버릴 계획”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60명이 넘는 노점상들의 생존권은 ‘거리의 미관’이라는 고상한 권리에 짓밟히고, 외국 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이명박 정부의 결벽증으로 노숙인들은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때만 되면 도시 빈민들과 약자들을 거리에서 정리할 궁리만 하는 당국의 반성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체들은 경찰청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는 민원을 접수했다. 노숙인과 노점상, 시민사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규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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