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라국, 명성황후와 전봉준의 만남
염라국, 명성황후와 전봉준의 만남
  • 승인 2012.03.2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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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광환 선생님의 동학농민혁명 이야기



“그리고 민씨 정권 이후 명성황후에 의한 궁중비용의 남용과 당시 군료관리의 책임자인 선혜청당상(宣惠廳堂上)·병조판서 민겸호(閔謙鎬) 등 민씨 척신들의 부정부패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임오군란과 민씨 척족들의 부정부패와 무사안일 등으로 인해 야기된 갑신정변 등은 이 땅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지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평가할 때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냐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거나 심지어는 상반되는 평가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보면 안중근 의사는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오 히로부미를 처단한 우국지사입니다. 그러나 이토오 히로부미가 우리에게는 침략의 원흉일지 모르나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이며 안중근은 그러한 인물을 암살한 테러범에 불과한 것이지요. 물론 관점에 차이를 무조건 인정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여기에서 인류 보편적인 진리인 정의와 불의 등의 올바른 평가의 기준이 적용되어 평가되어야 하겠지요.

그래서 명성황후를 민중적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어떠한 평가가 나올까요? 신문의 형식으로 우리 역사를 담아 낸 책으로 『역사신문』(사계절 刊)이 있습니다. 보통 역사는 과거의 사건으로 죽어 있는 옛날 일에 그친다고 생각하는 상식을 깼다고 하는 점에서, 참신한 발상으로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로 역사에 접근하는 좋은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지요.

그런데 이 책에는 실제의 신문에 만화가 실리듯 명성왕후에 대한 두 개의 내용을 생각하게 하는 재미있는 만화가 있습니다. 만화의 내용을 보면 일본인에게 죽은 명성왕후가 염라국을 찾아가고 판결을 받기 전에 억울한 죽음을 당했음을 염라국 관리에게 말합니다. 그러자 염라국 관리는 어떤 방을 가리키며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임시로 모여 있는 곳이니 그 곳에 가서 기다리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명성왕후가 그 방에 들어서자 세 명의 남자가 반갑게 맞이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대는데 바로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입니다. 이에 깜짝 놀란 명성왕후는 얼굴을 감추며 돌아섭니다. 위 만화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동학농민혁명은 명성황후와 민씨 일파의 부정 부패가 원인이 되었으며 전봉준 등은 민씨 정권 타도를 외쳤던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흔히 동학농민혁명의 불을 당겼다고 보는 고부 군수 조병갑이나, 고부 안핵사로 파견되어 조병갑 못지 않은 탐욕과 보복행각으로 새로운 불을 지핀 장흥부사 이용태는 모두 명성황후의 매직(賣職)에 의해 임명된 인물들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명성황후와 민씨 정권은 당시 어느 세력의 지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개화 반대를 외치며 임오군란에 참가한 군중은 명성황후를 표적으로 삼았고, 갑신정변을 일으킨 개화파나 동학농민군 모두 명성황후와 민씨 일파 타도를 외쳤습니다. 결국 어떤 세력의 지지도 받지 못한 명성황후는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때 민영준이 청나라 원세개(袁世凱)에게 원병을 청하면서 보낸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 나라 전라도 관할에 있는 태인, 고부 등 고을에 사는 백성들은 습성이 사납고 성질이 교활해서 평소에 다스리기 어렵다고 일컬었습니다. 근래에 동학 교비(敎匪)들이 무리 만여 명을 모아 십여 고을을 공략하고……임오군란, 갑신정변 두 차례 내란에도 모두 중조(中朝) 병사의 힘을 입어 평정하였습니다……”

자신의 정권 유지에 급급한 나머지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여 백성을 살육하고자 했던 명성황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결국, 명성황후의 정치는 자신의 명예와 부와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욕망을 포장한 왕권 강화와 왕실의 보존에 대한 집착이었을 뿐 조선의 당면 과제인 자주적 근대화를 지향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바람과는 정 반대의 길을 걸은 것이지요.

앞서 말한 드라마 ‘명성황후’의 인기는 명성황후 OST 뮤직비디오로 이어져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뮤직비디오는 EBS 교육방송에서 ‘우수문항시리즈-사회탐구영역’ 중 국사파트의 교재로 채택되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지요.

이 뮤직비디오는 10분30초 정도의 분량으로 약 7억5000만원을 들인 엑스트라를 포함해 제작에 동원된 인원만도 1000명에 이르며 주연배우인 이미연의 소름끼치는 연기와 이진우 허준호 정준호 등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에다, 명성황후와 그녀의 호위무사인 홍계훈의 애절한 사랑이야기, 그리고 홍콩 무협영화에서 봄직한 화려한 와이어 액션과 비장하면서도 감동적인 명성황후 최후 장면 등 화려하면서 세련된 영상 등을 만들어 내 마치 한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본 듯하여 더욱 인기를 끌었지요. 

다음호에 계속

[편집자] 이 글은 갑오농민혁명계승사업회 이사장이신 조광환 선생님(전북 학산여중)이 들려주는 청소년을 위한 동학혁명이야기입니다. 복잡한 현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기고 그 의미를 상기시킬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리란 생각에서 연재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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