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죽어가는 자연과 사람, 조금이라도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산골 들어와"
"모두 죽어가는 자연과 사람, 조금이라도 살려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산골 들어와"
  • 승인 2012.04.03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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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진단 연속인터뷰> 노동운동의 대모 조화순 목사-1




“노동자 현실 더 팍팍하고, 자본은 더욱 비열해져”

“비정규직 분리하고, 정규직 기득권 유지하려 들면 희망 없어”

“박정희 시대까지 정권 나팔수였던 방송, 현 정권 들어 회귀”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보안법 사범 증가, 노동 탄압, 생태환경 파괴 등의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공안정국’에서 파생된 숱한 문제들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클리서울>은 2007년부터 국가보안법, 남북관계, 노동 인권, 생태 환경, 교육 등의 문제와 관련 각계 인사들과 연속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씨, 재야인사 김낙중 선생,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김상봉 전남대 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송환’의 김동원 감독, 김세균 서울대 교수,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정세현 이종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우종 덕성여대 명예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선생, 박원순 변호사, 장석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정지영 감독, 이상돈 중앙대 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고은 시인,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박창근 관동대 교수, 배우 최종원 문성근 권해효 씨, 김용택 시인, 지율스님, 박인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강정구 동국대 교수,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박재동 화백, 문정인 연세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손혁재 한국NGO학회 회장,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박경석 장애인철폐연대 대표, 가수 안치환 씨, 김두관 경남도지사, 안종주 박사, 김정헌 공주대 명예교수, 이근행 전 MBC노조 위원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문재인 변호사,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호철 작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 강남훈 교수노조 위원장,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정연주 전 KBS 사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 신율 명지대 교수, 강병화 고려대 교수, 정혜신 정신과전문의,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방송인 김미화 씨 등 230여 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이번호에는 노동운동의 대모 조화순(79) 목사와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1970~80년대를 통과해온 사람은 조화순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군사정권이 `악질 중의 악질`로 지칭하던, `빨갱이 목사`로 대놓고 폄하하던 이가 바로 조화순 목사다. 널리 알려진 대로 그는 1970년대 ‘똥물 투척’으로 유명한 동일방직 사건의 배후 조종자이자, 인천 도시산업선교회 간사로 산업선교의 신영역을 개척한 감리교 여성 목사다.

이런 공식 직함을 잘 모르더라도 군사정권을 거친 사람들은 ‘시위 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 거침없는 언변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던 백발의 여자 목사’ 또는 ‘시위대의 최전선에서 전경과 맞서 쌍욕을 퍼붓던 여자 목사’로 기억한다.

조 목사는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태어나 인천여자고등학교(사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용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농촌계몽을 위한 정신혁명의 중요성을 깨닫고 23세에 감리교 신학대학에 입학해 6년 만에 졸업한 후 서해안 덕적섬에서 첫 시무를 했다.

이후 그는 늘 노동현장에 있었다. 이 때문에 긴급조치위반으로 1974, 1978년 2차례 서대문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1980년 노동자 선동 등의 이유로 연행되었다. 유신반대, 노동악법 철폐, 국가보안법 철폐, 양심수 석방, 가족법 개정 등에 참여했다. 그런 반골 목사가 15년 전 강원도 봉평 태기산에 들어가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나이 들면서 구체적으로, 땅 한 평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죽어가지 않나.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산골에 들어왔다. 말보다 몸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어서 시골사람 될 자격도 있다고 본다. 농촌에서는 늘 몸을 써야 하는데, 그게 습관이 돼 있어서 그런지 이 시골생활이 마냥 편하고 좋다.”

시골로 갔지만, 현실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언론사총파업 사태를 지지하고자 시민사회 원로들이 가진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조 목사는 “보수언론도 필요하다. 다만 진보언론이나 개혁언론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기 목소리뿐 아니라 다른 목소리도 인정해야 한다”며 “문제는 일부 언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좌익이다,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원주의·다양성을 파괴하는 목소리다. 민주주의의 적”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조화순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강원도 봉평 산골에 머물고 있다. 무슨 이유로 가게 되었나.

▲ 오만가지 사회운동을 하다가 지금에 와서는 생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환경에 대한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데, 또 환경운동 한다고 하면 이쪽저쪽에서 ‘빨갱이’라고 난리법석 부릴 것 아닌가. 그래서 조용히 살고 있다.

나이 들면서 구체적으로, 땅 한 평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죽어가지 않나. 욕심 부리지 말고 조금이라도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산골에 들어왔다. 말보다 몸으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어서 시골사람 될 자격도 있다고 본다. 농촌에서는 늘 몸을 써야 하는데, 그게 습관이 돼 있어서 그런지 이 시골생활이 마냥 편하고 좋다.

- 동일방직 투쟁을 지금에 와서 떠올려보면 감회가 어떤가. 66년도에 동일방직에 입사, 70년대 투쟁을 이끌었다.

▲ 해고노동자 120명과 같이 살 때도 있었다. 그때 여성노동자 대표격인 한 노동자가 ‘목사님도 다른 목사와 똑같다’라고 해서 충격을 받은 적 있다. 그 얘기는 ‘너도 박정희랑 똑같다’는 얘기였다. 저 친구가 왜 저럴까, 자기들을 도와주는 나에게 왜 이럴까, 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서러워했다. 혼자 엉엉 울고 나니, 한 가지 진리를 깨달았다.

거창한 이론을 들이밀며 겉으론 노동자처럼 행세하고 다녔는데, 30대까지 부잣집 딸로 산 세포들이 무의식적으로 노동자들로 하여금 그렇게 느끼게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후 제 삶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당시 그렇게 서럽게 했던 노동자들과 친하게 지낸다. 생일 때나 환갑, 회갑 때나 함께 보내곤 한다.

- 노동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다. 70~80년대에 비하면 어떤가.

▲ 요즘은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 거의 없다보니 제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를 말한다는 게 민망스럽다. 다만 운동하기가 더 어려워졌고,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활도 더 어려워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과거엔 노동자들이 절규하면, 정부나 기업 쪽에서도 듣는 척이라도 했다. 요즘은 1년 내내 크레인에 매달려 있어도 꿈적도 않는다. 그만큼 사는 게 더 팍팍하고, 자본은 더욱 비열해 지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 정규직·대기업 중심 노동운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 정규직의 기득권은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똑같은 노동력을 제공하면서도 비정규직은 임금, 4대 보험, 상여금, 성과급을 못 받지 않는가. 그게 정규직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분리하고, 정규직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하면 노동운동은 희망이 없다.

- 현재의 노동운동도 ‘비정규직 철폐’가 가장 중요한 이슈 같다.

▲ 진정성이 있다면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노조의 ‘비정규직 철폐’가 정부의 ‘친서민 정책’처럼 알맹이 없는 슬로건에 불과한 것 같다. 영국 노동운동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돼 붕괴했다. 대중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정규직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면 노동운동은 망한다.

- 얼마전 시민사회 원로들이 현 정부의 언론장악 문제를 두고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원로들까지 나설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는 얘기인데.

▲ 일차적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뤄놓은 시스템을 파괴해놓았다. 좀 더 길게 보면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한 듯하지만, 그냥 성숙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언론 현실이 그것을 보여준다. 신문언론의 경우 ‘일부’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수언론은 필요하다. 진보언론이나 개혁언론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기 목소리뿐 아니라 다른 목소리도 인정해야 한다. 문제는 일부 언론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걸핏하면 좌익이다, 감옥에 집어넣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원주의·다양성을 파괴하는 목소리다. 민주주의의 적이다.

- 방송언론의 경우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지만 권력이 바뀐다고 공영방송의 목소리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 공영방송은 정권의 목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목소리, 사회세력의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 한국언론은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시대까지 정권의 나팔수였다. 1987년 이후 그나마 언론을 중립지대로 돌려세우려고 하는 판인데, 지금 이명박 정권이 과거로 돌리려고 한다. 민주주의에 역행하여 후진하려는 것이다. 남은 부분이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주권자로서 국민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광장 같은 성격을 갖는다. 거기에 사법적 재단을 들이밀겠다는 것이다. <기사 이어집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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