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엄마에게 쓰는 편지



# 청매화

엄마. 금년에는 아무래도 무슨 혁명 같은 것이 있으려나 봐요. 봄이 한꺼번에 마당 가득 와버렸구나 싶더니 금방 또 어디로 가버렸어요. 봄은 봄인데도 봄 같지가 않고 영 가을인 것만 같아요. 바람 소리가 말이에요. 듣고 또 들어도 봄바람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밤에도 낮에도 잠이 안 와요.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이런 봄이 다 있나,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하루에도 골백번씩 나오지요. 시누대 대숲에서 시누댓잎들이 몸을 뒤채는 소리가 말이에요. 바람이 지나가면 일제히 저요, 저요, 하는 듯이 몸을 뒤채며 서로 부딪힐 때 울리는 그 소슬한 소리가 말이에요. 수선화가 피었다가 벌써 지고 매화꽃이 흐드러진 이 계절에는 도무지 낯설기만 한 그 소리가 말이에요. 사실 곰곰이 따져보면 그래요. 그 소리가 나한테 뭐라고 명령을 내린 것도 아니고 부탁을 한 것도 아니에요. 다만 가을 기운이 가득하다는 뭐 그런 정도일 뿐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잠이 안 와요.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열두 시를 넘어 한 시가 됐는데도 잠이 안 와서 영화나 보자고 컴퓨터를 켰지요. 그런데 그림이 통 눈에 안 들어와서 도로 끄고 자리에 누웠어요. 여전히 잠은 안 오더라고요. 천장에 붙여놓은 야광별만 아른아른하고, 그래서 다시 일어나 책을 펼쳐 들었지요. 영화도 볼 수 없는 정신에 책인들 들어올까, 그럴 수만 있다면 참 대견하다 해야겠지요. 그런데 역시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누웠지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가 다시 내렸다가, 엎어졌다가 뒤채다가 별별 오만 ‘지랄’을 다 했지요. 그러다가 문득 그것을 생각했어요.

지난해 가을에 버려진 무 밭에서 커다란 무를 서른 개도 넘게 캐다가 마당에 묻었거든요. 그것을 묻을 때는 겨우내 무만 먹고 살아도 되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글쎄 겨울이 다 지나도록 겨우 세 게밖에 못 먹은 거 있죠. 수선화에 꽃대가 올라오는 계절이 되고 보니 불현듯 야아 이것 참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그래 선운사 인근에서 식당을 하시는 선배의 아내분께 여쭤봤어요. “혹시 무 안 필요하세요?” 했더니 그 양반 왈 “요새 무는 죄다 바람 들었다”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무는 땅에 묻은 거라 바람 안 들었어요” 했더니 “그러면 그건 좋지” 해서 커다란 쌀자루에 무 스물댓 개를 담아서 가져다 드리고 다섯 개를 남겼거든요.

남은 다섯 개로 뭘 할까, 하다가 얼른 생각나는 게 없어서 도로 땅에 묻었지요. 묻은 그것을 엊그제 아무 생각 없이 다시 캐서 아예 물에 씻어놓기까지 했는데 그게 벌써 한참 전인 거예요. 여기서 더 이상 방치하면 그야말로 바람이 드는 거잖아요. 잠이 안 와서 헤매는 한밤중에 그 생각이 퍼뜩 난 거예요. 그러자, 잠도 안 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밤에 무채나 썰자, 해서 무채를 썰기 시작했지요.

‘충청도 핫바지 촌놈 가수’의 노래 <찔레꽃>을 반복 재생시켜놓고 무채를 썰기 시작했지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굵고 여리게 떨리는 그 목소리가 나를 차츰 엄숙하게 하더군요. 계속 썰었지요. 계속 그렇게 엄숙하고, 계속 그렇게 슬퍼져 갔지요. 사방이 모두 잠든, 귀뚜라미나 가끔 기척을 내는 한밤중에 무채를 써는 칼도마 소리가 참 애련도 하더군요. 내 자신이 내는 소리인데도 마치 멀리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 같더라고요.


# 백매화


그러고 보니 그렇구나 싶더군요. 사람이 먹을 것을 만지는 손놀림이나 그 소리는 근원적이라고나 할 만한 어떤 슬픔이 아련하게 깔려 있어요. 여럿이서 할 때는 그런 슬픔이 안 느껴지지만, 혼자서 조용히 할 때의 그 손놀림과 소리에서는 ‘딴 짓 하지 마, 딴 생각도 하지 마’ 하는 식의 그런 어떤 명령어가 느껴지면서 내 몸이 지니고 있는 모든 수분들이 가득 따라놓은 술잔처럼 넘실넘실 넘치는 거예요.

넘치는 그것이 무엇이냐고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겠지요. 보나마나 추억이 시작되는 증후일 테니까요. 회상이 시작된다는 신호일 테니까요. 이 세상 모든 인문학의 시작이요 끝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추억의 음악소리, 어쩌면 태중에서 들었던 것인지도 모를, 아니 어쩌면 엄마의 엄마에 또 그 엄마에 엄마가 배고프다고 보채는 아이에게 들려준 옛 이야기가 변용되어 내 몸으로 삼투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그랬지요. 그랬어요. 밤늦게까지 무채를 썰던 엄마의 뒷모습이 호롱불에 어른거리던 시절로 나는 어느새 돌아가 있었지요.

김장철에 김장 준비를 하느라 한밤중에 무채를 썰던 엄마의 칼도마 소리를 어느 순간 문득 내가 듣고 있었던 거예요.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었을까? 아니면 좀 더 어린 천둥벌거숭이 ‘깨복장이’ 개구쟁이 시절이었을까? 뭔가를 하다 말고 엎드린 채로 잠이 들었다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면 그림처럼 칼도마에 집중하고 있는 엄마의 구부정한 모습이, 아무런 슬퍼야 할 이유도 없이 슬픈, 슬픔이 가득한 엄마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곤 했었다는 것을, 예전에는 한 번도 추억해보지 못한, 회상해보지 못한 그런 그림을 나는 그 밤에 무채를 썰던 중에 발견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상도 하지요. 먹을 것을 만드는 사람에게서는 뭐라고나 해야 하나, 하여튼 수영을 하거나 노동을 하거나 공놀이를 하는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뭔가 아릿아릿하고 사무치는 무엇이 있단 말이거든요. 그래서 가만히 다가가서 끌어안거나 쓰다듬고 싶어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또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은, 그것은 어쩐지 무례일 것 같은, 그래서 가만히 선 채로 혹은 앉은 채로 바라보며 까닭도 없고 이유도 없는 슬픔에 살짝 빠지게 된단 말이거든요.


# 홍매화


바로 그러한 슬픔을, 추억을, 회상을 더듬어가며 무를 썰고, 또 썰고, 또 썰었지요. 그런데 4월의 무는 물이 참 많더군요. 4월의 무는 물이 많다는 것을,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요번에 처음 알았어요. 모든 식물이 꽃대를 내미는 등으로 분주한 4월이고 보면 무도 자기 안의 생명을 밀어 올리고 싶겠지요. 그래서 그렇게도 많은 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겠지요. 물이 어찌나 많은지 칼날에 자꾸 달라붙고, 달라붙은 것이 다음 칼질을 할 때 날을 넘어와서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방식으로 무는 그렇게 자기 신체를 절단 내고 있는 내게 끊임없이 항의를 하는구나, 싶기도 하더라고요.

감상일까요? 그래요. 감상이겠지요. 그렇게 감상에 잡힌 채로 쉬지 않고 한 시간이나 무채를 썰었을까, 아니면 두 시간이나 썰었을까, 더 이상 썰어야 할 무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요. 살짝 겁이 나더군요. 이제 다 썰어버렸네 어쩌지? 하고 입맛을 쩍쩍 다시다가 알았지요. 손가락에 물집이 잡혔다는 것을 말이에요. 세상에, 엄마는 밤새 무채를 썰었어도 손가락에 물집 잡혔다는 얘기를 내가 한 번도 듣지를 못했는데 나는 이게 뭐냐, 그렇게 다소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거 참 되게 아프고 불편하더군요. 물집이 잡혔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아픈 줄도 몰랐고 불편하다는 것도 몰랐는데 그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엄청 아픈 거예요.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아픈 척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아픈 척을 한다 해도 누구 알아주는 사람이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이제 수습을 해야 하는데 이게 또 그렇더라고요. 무채를 다 썰고 나니 이젠 그걸로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더라고요. 어쨌든 잘게 썰어놓은 채로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데 갑자기 막막한 거예요. 이걸로 뭘 하지? 내가 이걸 왜 이렇게 많이도 썰었지?

느닷없이 드는 의문 앞에서 한참을 허둥거렸지요. 허둥거리다 보니 답이 하나씩 생기더군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썰어놓은 무채에 그냥 소금이나 한줌 넣고 멸치나 몇 마리 넣고 해서 끓일까? 그러면 순백의 무나물이 되는 건데, 아냐, 그건 너무 간단해서 재미없어. 채지를 담그자. 채지를 어떻게 담그더라? 일단 소금을 넣고, 고춧가루 넣고, 이런저런 양념을 넣고 손으로 빨래라도 하듯이 주물럭거린다. 그래, 맞아. 거기까지는 확실해. 그런데 이런저런 양념이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서술하라고 누군가 명령을 내린다면 뭐라고 하지?


# 산수유


아, 그래, 거기서 딱 막혔지요. 마늘은 생각이 났어요. 그밖에는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하긴 생각이 났다 해도 당장 꺼내서 쓸 만한 양념은 뭐 간장과 된장 그리고 고추장 정도일 뿐이었지만 말이에요. 무 채지에 간장이나 된장 혹은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는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고, 해서 무엇을 양념으로 써야 하나, 무엇을 응? 턱에 손을 괴고 앉아서 열심히 생각을 했지요.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프다’는 장사익의 노래는 계속되고 있었지요.

한참을 앉아 있는데 한 생각이 벼락처럼 일어난 거예요. 갓이다 갓, 하고 말이에요. 씹으면 코를 톡 쏘듯이 찌르는 갓을 넣으면 이런저런 잡다한 다른 양념 안 넣어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갓이라면 엄마도 알다시피 우리 마당 도처에 깔려 있잖아요. 봄이 왔다고 마구마구 꽃대를 올리는 갓을 한줌 베어다가 잘게 썰어서 채지에 넣으면 그 맛이 아주 굉장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내 가슴이 마구 설레기 시작했지요.

마침 보름 즈음이라 밖은 ‘화와안’ 하더군요. 어떤 것이 갓이고 어떤 것이 양귀비고 등등 뭐 그런 정도는 멀리서도 식별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에요. 시누대 숲에서 들려오는 댓잎들의 몸 뒤채는 소리가 말이에요. 그 소리가 갑자기 커다랗게 볼륨을 높여서 들리는데 말이에요. 다리에 힘이 싸악 빠지면서 그대로 그냥 주저앉아져 버리더라고요. 마치 무슨 강력한 독을 지닌 뱀에게라도 물린 듯이 말이에요. 그랬지요. 그대로 마당에 주저앉은 채로 달을 보았지요.

달. 달이란 지구에서 떨어져 나간 파편들의 집합이라지요? 까마득한 옛날 엄청나게 커다란 행성이 지구를 강타했을 때, 그때 지구의 살점이라 할 만한 먼지와 돌멩이들이 대기권 밖으로까지 뛰쳐나가서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서서히 모이고 뭉쳐서 이루어진 게 달이라지요. 그래서 그렇게 지구를 못 잊고 지구 둘레를 맴맴맴 맴돌고 있다지요. 지구도 또한 자기 살이 떨어져 나가서 이루어진 달을 잊지 못하고 잊을 수도 없어서 달을 위성으로 둔 채 맴맴맴, 맴을 돌고 있다지요.


# 시누대


아아 참, 이야기도 이런 이야기는 애간장이 쓰리고 녹아날 수밖에 없어요. 이건 완전히 여자와 남자의 이야기잖아요. 그런 것 같잖아요. 서로가 독립된 객체이면서도 너는 나의 것, 나는 너의 것, 하는 뭐 그런 관계, 이런 관계라는 것이 말이에요. 도저히 온전한 합일에는 이를 수 없는, 그래서도 안 되는, 그러면서도 늘 온전한 합일을 바라는 이런 지독한 관계라는 것이 말이에요. 샴쌍둥이를 생각하면 온전한 합일이라는 게 얼마나 지독한 형벌인지 금방 알게 되는데도 온전한 합일을 갈구하는 이런 관계라는 것이 말이에요. 여러 말 할 것도 없이 그냥 그렇잖아요. 그냥 슬퍼져서 미칠 것 같은 것이잖아요.

갓을 베러 나왔다가 대나무 소리에 주저앉은 채로 달을 보면서 그런 엉뚱한 생각을 했었지요. 아핫 참,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해요. 얼마나 그렇게 마당에 주저앉은 채로 공상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어느새 여기저기서 새 소리가 들리고, 동이 트고, 개들이 짖고, 그렇게 아침이 오고 있더라고요. 그새 이슬이 내려앉은 내 머리에서는 물방울이 콧등으로 톡, 톡 떨어지고 있었고요.

문득 생각해보니 내가 참 기특하더군요. 그 와중에도 갓을 베러 나왔다는 걸 잊지는 않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 뿌시시 일어나서 갓을 베었지요. 붉은 갓 두 포기, 푸른 갓 두 포기, 이제 막 꽃대가 올라오는 갓 네 포기를 그렇게 베어다가 씻어서 잘게 썰었지요. 썰다가 문득 생강을 생각해냈어요. 텃밭에 심으려고 준비해둔 생강 다섯 쪽을 가져다가 껍질을 벗기고 씻어서 또 잘게 썰었지요.

그리하여 드디어 채지를 담그게 되었는데요. 커다란 바가지로 한가득이나 되는 무채로 채지를 담그고자 하니 적당한 그릇이 없더라고요. 그 어떤 바가지도, 그 어떤 양푼도 그 많은 무채를 감당해낼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 다시 약간의 고민을 하다가 찜통을 생각해 냈지요. 작년이던가, 아니 재작년이었구나, 벌써, 옥천의 누이가 엄마 드린다고 사골을 고와서 가져왔었잖아요. 옥천에서 여기까지, 스테인리스 찜통에 사골을 고와서 가져왔던 바로 그 찜통에 무채를 죄다 쓸어넣고 고춧가루와 생강 그리고 갓을 넣은 다음 맨손으로 주물러대기 시작했지요.










음식 맛은 손맛이라고, 들은 풍월은 있어서 제수씨들이 사다놓은 고무장갑이 몇 개씩이나 있는데도 끼지 않고 그냥 맨손으로 무채 썰어놓은 것을 마구마구 사정없이 주물러대기를 얼마나 했던가요. 찍적찌적하니 물이 스며나오대요. 거기서 멈췄지요. 그리고 한 입 먹어봤지요. 와아, 그것 참 되게 맛나데요. 얼른 쌀을 씻어 밥을 안쳤지요. 밥이 다 된 뒤에는 커다란 국수그릇 사발에다가 밥을 퍼서 방금 만들어낸 채지를 듬뿍 넣고 참기름을 두르고 비벼댔지요. 그리고 먹었어요. 정신없이 허겁지겁 먹었어요. 먹고 나니 그제야 잠이 오는 거 있죠.

그게 벌써 사흘 전이에요. 사흘 전부터 오늘까지 계속 채지에 밥 비벼먹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에요. 그 사이에 비도 한 번 내렸지요. 오늘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날이구요. 이제 곧 투표를 하러 갈 거예요. 가는 길에 엄마가 생각나겠지요. 지난 지자체 선거 때의 엄마가 말이에요. 기표소에 들어가서 십 분 가까이나 나올 줄을 몰랐던, 기표 용지 도처에 동그라미를 마구마구 찍어놔서 결국 무효표를 만들었던, 그래도 투표를 했다고 즐거워하던 그때의 엄마를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엄마, 올해는 뭔가 대단한 일이 있으려나? 왜 이렇게 봄이 한꺼번에 몰려오고, 왜 이렇게 봄이 봄 같지를 않고, 왜 이렇게 바람만, 바람만, 바람만 자꾸 불어대는 거야, 응?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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