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진단 연속인터뷰> 안도현 시인-1


‘일기’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최고의 시로, ‘연탄 시리즈’의 작가
늘 쫓기며 사는 사람들, 속도에 휩쓸리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 필요
시, 사회적 안테나이면서 민주주의에 기여 희망
시에 정치성 어떻게 담을 것인지 고민 필요한 시기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국가보안법 사범 증가, 노동 탄압, 생태환경 파괴 등의 문제가 확산되면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공안정국’에서 파생된 숱한 문제들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클리서울>은 2007년부터 국가보안법, 남북관계, 노동 인권, 생태 환경, 교육 등의 문제와 관련 각계 인사들과 연속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그동안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 ‘야생초 편지’의 황대권 씨, 재야인사 김낙중 선생,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김상봉 전남대 교수,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송환’의 김동원 감독, 김세균 서울대 교수, 강기갑 민노당 대표,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대표, 정세현 이종석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 김우종 덕성여대 명예교수, 홍윤기 동국대 교수,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 선생, 박원순 변호사, 장석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정지영 감독, 이상돈 중앙대 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해영 한신대 교수,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성백 서울시립대 교수, 고은 시인, 이한열 열사 모친 배은심 여사, 박창근 관동대 교수, 배우 최종원 문성근 권해효 씨, 김용택 시인, 지율스님, 박인배 한국민족극운동협회 이사장, 강정구 동국대 교수,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 박재동 화백, 문정인 연세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 손혁재 한국NGO학회 회장,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박경석 장애인철폐연대 대표, 가수 안치환 씨, 김두관 경남도지사, 안종주 박사, 김정헌 공주대 명예교수, 이근행 전 MBC노조 위원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문재인 변호사, 서정민 한국외대 교수, 김태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진석 서울의대 교수,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호철 작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 강남훈 교수노조 위원장,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 정연주 전 KBS 사장,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장석웅 전교조 위원장,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 박순성 동국대 교수,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 신율 명지대 교수, 강병화 고려대 교수, 정혜신 정신과전문의, 이은봉 한국작가회의 사무처장, 김명곤 전 문광부 장관,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이시영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방송인 김미화 씨, 조화순 목사, 정동익 사월혁명회 의장 등 230여 명의 사회 각계 인사들과 인터뷰를 진행해왔다. 이번호에는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간절하게 참 철없이’ 등을 냈다. 안 시인은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 시리즈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이 새로운 시집을 냈다. 시인은 오랜만에 현실 문제를 다룬 시집을 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현 정권이 여러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니까…. 그렇다고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거나 그 내용이 현실을 예민하게 담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속도에 대한 반성이랄까. 그 속도에 휩쓸려가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랄까. 그런 식으로 쓰인 대목들이 있다. 물론 정치적인 내용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한가로움, 빈둥거림, 게으름에 대한 나름대로의 찬양도 포함돼 있다. 지금 저나 이 시대 사람들은 늘 쫓기며 산다. 한가롭게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시인은 현 정부 들어 문인들이 다시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이명박 정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장 큰 문제는 ‘이명박 정부’ 아니겠는가. 길게 평가할 것도 없다. 현 정부, 그야말로 역사를 거꾸로 돌리지 않았는가.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는 데만 치중했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권력을 통해 퍼뜨리고 사용하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좋게 말하면 민주정부 10년, 문인들이 방기했다. 이 10년이 태평성대는 아니었지만 그 시대 이전에 늘 도사렸던 현실 비판기능을 시인들 스스로 접었던 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미네르바 사건과 같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니까, 이제 문인들이 나서서 다시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왔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현 정부의 잇따른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안 시인은 “용산참사도 밀어붙이고 4대강도 밀어붙이고 쌍용차도 밀어붙이고, 이젠 해군기지도 밀어붙여서 진정한 ‘불도저 정권’으로 거듭나려는가 보다. 정책을 무조건 밀어붙이려는 권위주의적인 자세가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안도현 시인과의 일문일답이다.  

- 최근 시집을 냈다. 그동안의 시집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 오랜만에 정치성이 내재된 시집을 냈다. 아무래도 현 정권이 여러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거나 그 내용이 현실을 예민하게 담고 있지는 않다. 예를 들면 속도에 대한 반성이랄까. 그 속도에 휩쓸려가는 자기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랄까. 그런 식으로 쓰인 대목들이 있다.
물론 정치적인 내용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한가로움, 빈둥거림, 게으름에 대한 나름대로의 찬양도 포함돼 있다. 지금 저나 이 시대 사람들은 늘 쫓기며 산다. 한가롭게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 게으름에 대한 찬양, 과연 용납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 한국사회에선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버트란트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는 모든 사람이 하루 평균 4시간 노동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 잘 즐길 것인지 고민하자는 내용이 나온다. 적게 일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세상 아니겠는가. 언뜻 생각하면 이뤄질 수 없는 꿈같지만, 북유럽의 직장에선 실제 적잖게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선 파주의 한 출판사도 4시간까진 아니어도 파격적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했다. 오히려 쉬엄쉬엄 하면서 창조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여된 것이다. 당장은 이뤄질 수 없는 꿈같은 얘기다. 이런 꿈에 매진하는 것, 그게 한편으로는 시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 지난해 ‘일기’라는 시는 ‘문인들이 뽑은 2011년 최고의 시’로 뽑혔다.
▲ ‘작가’라는 출판사가 있다. 해마다 ‘올해의 시’라는 단행본이 나온다. 거기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시다. 제가 4~5년간 시 쓰는 동안 게으름을 많이 피웠다. 시 쓰는 일 말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 삼아, 현 정부 들어 거꾸로 가는 현실을 시인으로서 어떻게 시로 표현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다는 핑계 삼아 살다보니 그렇게 됐다.
단순히 옛날처럼 당위적인 주장만 글에 담는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이번에 나온 시집은 그런 의미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현실 문제를 어떤 미적 장치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느라 오랜만에 시집을 냈다. 그래서 현역 분들이 그런 고민을 읽었는지, 좋게 봐준 것 같다.

- 시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나.
▲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처음 문학에 발을 들여놓을 때, 시는 마약 같은 것이었다. 이유 없이 빠져들고, 취하고, 무진장 저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저는 20대를 80년대와 함께 보냈는데, 당시엔 시가 시대의 안테나가 될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 한국사회가 정치적 자유, 혹은 민주주의를 획득하는데 시가 기여하기를 희망했다. 그런 희망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시점에서는 시가 스스로 어떤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딱 정해진 건 아니지만, 소통부재의 시대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통로를 만드는 일, 자본의 기세와 현대문명의 속도 앞에 외면 받고 있는 것들을 시인은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 안도현 시인 하면 ‘연탄’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연탄과 관련한 시가 꽤 있는데.
▲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 앞에 슬그머니‘연탄시인’이라는 말이 붙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나무시인’이나 ‘풀잎시인’이 아니고 하고많은 소재 중에 왜 하필이면 연탄이란 말인가. 아마도 연탄을 소재로 몇 편의 시를 쓴 탓일 게다. 그러나 애초 저는 연탄을 소재로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희생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다. 연탄을 내세워 가을에 대해 쓰고 싶었다. 아니, 가을을 쓰려고 연탄을 끌어들였다는 말이 맞겠다. 옛날에는 여름의 뜨거운 기운이 꺾일 때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연탄이었다. 연탄을 실은 트럭과 리어카가 거리와 골목을 누비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가을이었다.
어릴 적에 내 자취방 부엌에는 늘 연탄이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내가 처음 배운 것은 자취방의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제때 갈아주는 일이었다. 연탄의 붉고 푸른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구들장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나는 자주 보았다. 그 불꽃으로 밥과 국과 라면을 끓였고, 양말과 운동화를 말렸고, 양은찜통에다 밤새 물을 데워 아침에 머리를 감았다. 불을 꺼뜨리지 않으려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연탄을 갈았고, 연탄구멍을 정확하게 맞추려고 잠이 가득 찬 눈을 비볐고, 그리고 연탄가스를 맡지 않으려고 몇 초 동안은 숨을 참아야 했다.
언덕 위에 있던 그 자취방을 나와 학교로 가려면 가파른 길을 내려가야 했다. 겨울이면 눈 녹은 물이 비탈길을 빙판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침에는 누군가 어김없이 비탈길에 연탄재를 잘게 부수어 뿌려놓곤 했다. 그 고마운 분이 누구인지는 지금도 모르지만 이 세상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일찍 일어나는 분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러니까 연탄은 제게 두 가지의 의미를 한꺼번에 선물했다. 하나는 가을이라는 계절을 인식하는 소재로, 또 하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성찰하는 상징으로 나에게 온 것이다.

- 개인적으로는 어떤 시인들에게 주목하고 있나.
▲ 젊은 시인들의 시를 많이 읽는다. 송경동부터 해서 이른바 ‘미래파’로 불리는 시인들까지 좋아한다. 진은영, 이장욱 등은 한국시에 있어 새로운 문법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시인들의 시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예전과 같은 경향의 참여시나 ‘정치 성명서’로서의 시가 아니면서 시에 어떻게 정치성을 담을 것인지 고민한다는 점이다. 이들과는 좀 다른 김선우, 문태준 등은 현실 문제를 강하게 어필하지 않아도 좋은 시를 쓴다. 
(기사 이어집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