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씨, 머위대 나물에 머위대 국에 머위대 무침에 머위대 볶음에, 자알 되겠다∼!!”
“아이씨, 머위대 나물에 머위대 국에 머위대 무침에 머위대 볶음에, 자알 되겠다∼!!”
  • 승인 2012.05.1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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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 연잎을 쪽쪽 뜯어먹는 붕어들


엄마. 서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은 전부터 나를 알고 있었다더군요. 내 이름으로 나온 책을 읽었었다나요. 관심이 가서 고창 사람 아무에게 물어보니 그가 마침 나를 알고 있었다고, 그래서 사전에 예고도 없이 올 수 있었다고, 그런 말을 그들이 하더군요.

세 사람이었어요.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내의 친구라더군요. 뿌려놓은 상추와 아욱이 너무 빽빽하게 나와서 대충 좀 솎아주자 하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개가 짖더라고요. 돌아보니 자동차 한 대가 우편함 앞에 서 있고, 남자 한 명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방죽 속의 붕어를 구경하고 있더군요.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려니 여기고 내 할 일을 계속하고 있었지요. 마루 녀석은 계속 짖어대고 있더군요. 짖지 말라고 소리를 지를까 하다가 그만두었지요. 그런데 녀석의 짖는 소리가 더욱 잦아지더군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려보았지요. 남자 옆에 여자 한 명이 추가되었더군요. 남녀가 나란히 서서 방죽 속의 붕어들을 구경하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나는 그들을 잠깐씩 구경하기 시작했지요.

“어머 이게 뭔 소리야?”
“뽀뽀하는 소리 같은데?”
“누가? 어디서-어?”

놀라워하는 소리가 내 귓속을 선명하게 채우더군요. 나는 여전히 모르는 체 혼자서 그냥 중얼거리기나 했지요. 뽀뽀하는 소리 좋아하시네, 그건 붕어들이 연잎을 뜯어먹는 소리라네 이 양반들아. 남몰래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런 시간이 썩 재미있기도 하더군요. 물론 가끔 돌아보기는 했지요.

빽빽하게 올라온 상추 새싹을 솎아내다가 문득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또 돌아보기를 몇 번이나 했던가, 어느 순간 남녀 한 쌍 옆으로 여자가 한 명 또 추가되었더군요. 뭐냐 이거? 의구심이 불쑥 일어났지만, 금세 이해가 되었지요. 차를 타고 지나다가 방죽을 발견한 남자가 호기심에 내렸고, 잠시 뒤에 한 여자가 내렸고, 차 안에서 기다리던 또 한 여자가 지루해서 내렸다는, 뭐 그런 정도는 금방 추리할 수 있는 거잖아요.

아무튼 그들은 한참이나 방죽 앞에 서서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을 붕어에게 던져주고 있더군요. 마루 녀석은 이제 자지러드는 소리로 짖어대고 있었지요. 이쯤 되면 내 마음에서 짜증 같은 것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그날은 웬일로 아무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런데 불청객들은 당최 돌아갈 생각을 안 하고 있더군요. 남자의 발걸음이 마당 쪽으로 슬슬 다가오고 있었고, 여자 한 명도 쭈뼛쭈뼛 하는 자세로 남자의 뒤를 따르고 있었지요.


# 머위 꽃


그것도 뭐 금방 이해할 수 있었어요. 마당에 꽃이 많으니까요. 아주 화려한 튤립이 일단 눈길을 끌었을 것이고, 그밖에도 꽃잔디며 복사꽃이며 배추꽃 등등 꽃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마당으로 들어선 사람이 그들만은 아니었으니까요. 해마다 이맘때면 으레 있는 풍경이었으니까요.

“어? 저거 흰민들레 아냐?”
남자가 신기하다는 듯 제법 큰 소리를 내고 있더군요. 뒤를 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역시 제법 크게 나왔지요.
“어디? 어머, 정말이네. 흰민들레네. 어머 저기도 있다. 어머, 어머, 저기도, 저기도, 어머, 어머, 어머, 이게 웬일이니, 여긴 아주 흰들레 밭이네-에?”

아주 놀랍다는 여자의 소리에 다른 여자가 또 아주 놀랍다는 소리로 호들갑을 떨고 있었지요. 흰들레라, 흰들레, 나는 속으로 그렇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되뇌이며 푸실푸실 웃었지요. 흰민들레를 흰들레라 부르니 그게 제법 그럴싸하게 여겨지더라고요. 그래서 다음에는 나도 흰들레라고 해야겠다, 뭐 그런 생각도 아마 해보고 있었겠지요.

아무튼 그 무렵의 어느 순간에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불쑥 일어서고 말았어요. 일어서자마자 남자의 시선과 정면으로 부딪혔지요. 남자가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앞으로 한 걸음 다가오며 안녕하세요, 했고, 나는 아, 예, 예, 어쩌고 그렇게 우물거리며 쭈뼛쭈뼛하는 걸음으로 나아갔지요. 그렇게 그들과 나는 만났어요.

광주에서 왔다더군요. 선운사를 다녀오는 길이라더군요. 나는 내심 의아해서 수상한 눈으로 그들을 보았지요. 선운사를 다녀가는 사람들이 왜 내 집을 지나가지? 방향이 완전 다른데? 의문은 잠시 뒤에 조금씩 풀려갔지요. 의문이 풀린 뒤에는 신기하더군요. 책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으니까요.

엄마의 이야기로 도배된 책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수도서라든가 뭐라든가 하여튼 그런 무엇에 선정된 덕분에 초판을 다 팔게 되었다고, 출판사 관계자로부터 그런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 책을 직접 사서 보았다는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은 나로서는 완전 처음이었지요. 그러니까 첫경험이랄까, 어쨌든 감개가 엄청 많이 무량하고, 고맙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그렇게 아주 복잡한 심사가 되어 손님맞이를 했지요.


# 명자꽃


# 엄나무 새순


찾아온 손님들을 글쎄, 뭐로 대접을 해야 하나요. 우선 물을 끓였지요. 그리고 잘 말린 치자 열매를 넣었어요. 말갛던 물이 대번에 치자색으로 변해가는 모양을 보며 손님들이 감탄을 하더군요. 하긴 그건 언제 봐도 감탄스럽기는 해요. 치자색, 그 얼마나 부드럽고 연하게 슬픔이 묻어나면서도 아름다운 색인가 말이에요. 그렇게 우리는 치자차를 마시면서 중언부언 이야기꽃을 피워냈지요.

손님들 가운데 남자가 어느 순간 문득 정색을 하고 말하더군요. 선뜻 마당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입구에서 우물거린 이유를 말이에요. 해리면 송산 마을에서 마당에 방죽이 있고 원두막이 있는 집을 찾으면 된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오기는 했지만 이렇게도 금방 집을 찾을 줄은 몰랐다나요. 너무도 쉽게 집을 찾고 난 뒤에서야 빈손으로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거예요. 도로 나가서 음료수라도 사 들고 와야 하나 어쩌나 선뜻 결정을 못 내리고 망설이던 중에 그만 주인에게 들키고 말았다나요.

그 이야기를 하고 난 뒤에 그들은 웃었고, 나도 웃었지요. 한참을 웃었어요. 웃고 있는 동안 없었던 정이 갑자기 생겼다고나 할까. 내 입에서 문득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가 나오고 있었어요. “혹시 쪽파 좋아하시는가요?” 남자를 보면서 한 말은 아니었어요. 남자의 아내를 보면서 사뭇 정겨운 어투로 말하고 있었지요.

그녀는 내 말을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쪽파요?” 반문을 하더군요. 당연한 일이었지요. 어쨌든 나는 열심히 설명을 했어요. 작년 가을에 쪽파를 심었는데 너무 늦게 심은 탓에 가을에는 하나도 못 먹었다고, 봄이 되니까 쪽파가 마구 자라나는데 너무 많다고, 혹시 좋아하신다면 뽑아 드리겠다고, 그런 말을 했더니 그녀가 깜짝 반가워하며 정말이요? 정말이요? 하더군요.

내친김에 뭘 어쩐다고 했던가요. 쪽파를 뽑아놓고 나니 뭔가 좀 모자란다는 느낌이 있더라고요. 뭘 좀 더 줄까 하고 둘러보니 마침 돌나물이 나도 있어요, 하는 듯이 눈에 띄는 거예요. 돌나물이 노랗게 꽃을 피워내면 그 모양이 너무 앙증맞아서 캐다가 심었을 때 엄마가 그랬었잖아요. “어매, 이걸 어디서 났을까?” 암튼 그 돌나물이 세월 속에서 엄청 불어났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쓱쓱 베어 비닐봉지에 담아 그들에게 주었는데 그래도 뭔가 모자란 느낌이 있는 거예요.

뭘 더 주지? 그렇게 또 한 번 사방을 둘러보았지요. 보들보들 연하게 마구 올라오는 엄나무 순이 눈을 채우더군요. 엄나무 옆에 두릅나물도 있었지만 두릅은 개체수가 적어서 주고 싶지 않았어요. 두릅은 드문드문 하나씩만 새순이 나오기 때문에 나 혼자 먹기도 사실은 부족했으니까요. 반면에 엄나무는 이게 뭐랄까, 일언이폐지하고 엄청나게 많은 새순이 올라온단 말이거든요.

“어머 여기 머위도 있네요?”


# 흰민들레


# 그야말로 청순한 배꽃


내가 한참 엄나무 새순을 따고 있는데 남자의 아내가 깜짝 놀랍다는 투의 비명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지요. 그제야 나도 그것을 알았어요. 아 참 그렇지, 우리 집엔 머위나물도 많지. 그래서 그녀에게 물었어요. 머위나물은 쌉쓸한데, 그 맛을 아세요? 했더니 그녀가 그러더군요. 그럼요, 왜 몰라요.

“그래요? 그럼 그것은 직접 뜯어가세요.”
“정말이요? 정말이요?”
“그럼요. 집에 있는 거 다 뜯어가도 괜찮아요.”
“와아, 야, 순애야, 너도 얼른 와. 얼른 와, 응?”

이렇게 해서 그녀들은 머위나물을 뜯어대기 시작했지요. 뭐라고 뭐라고 참새들처럼 계속 재잘대며, 웃어대며 나물을 뜯는 그녀들의 모습은 보기에 참 좋았지요.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영 그게 아니었던가 봐요. 어느 순간 “아이 그만 해에” 하는가 싶더니 잠시 뒤에 다시 “아 그만하라니까” 하고 제법 큰소리를 지르는데 그 참, 내가 다 무안해지더군요.

남편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아니 그녀들은 계속 머위나물을 뜯고 있었지요. 그새 작은 비닐봉지가 터질 듯이 빵빵하게 차 버렸더군요. 그것을 본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그보다 훨씬 큰 비닐봉지를 내다 주었지요. 그러자 남편이 정색을 하면서 나를 말리더군요. 이제 됐다고, 그만 해도 충분하다고, 손사래까지 치면서, 고개를 회회 내두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어리석은 나는 그때까지도 몰랐어요. 남자가 다만 미안해서 그러는 줄로만 안 거예요. 그래서 나는 또 그랬지요. 머위는 지금 부지런히 뜯어야 한다고, 그러면 금방 또 새로 올라온다고, 아무 걱정 마시라고 웃으면서 말했어요. 그러자 이 남자, 느닷없이 소리를 꽥 지르더라고요.

“아 이 사람아 그만 좀 해에.”

남편의 고함 소리에 그 아내는 까르르 한 번 웃더군요. 그리고는 다시 자기들끼리 뭐라고 속삭이며 계속 머위를 뜯고 있는 거예요. 남편의 얼굴은 뭐랄까, 길을 걷다가 개똥이라도 밟은 표정이랄까.

“에이 씨, 앞으로 한 달간은 밥상이 완전 풀밭 되겠네. 머위대 나물에, 머위대 국에, 머위대 무침에, 머위대 볶음에, 자알 되겠다.”


# 돌나물


그제야 나는 알았지요. 남자는 육식성에 가까운데 그 아내는 초식성에 가깝다는 것을, 그래서 아하, 그런 애로사항이 잠재돼 있었던 것이로구나,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거리는데 그 아내와 그녀의 친구는 죽는다고 웃어대며 더욱더 열심히 머위를 뜯어대는 거지 뭐겠어요. 한참을 그렇게 웃어대다가는 그 아내가 한 마디 하더라고요.

“어이, 남편, 머위대 볶음이 어딨냐. 글고 머위 무침은 머위 나물이다 머, 바보 같이 그것도 모름서.”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이 남자 정말 배부른 투정 부리고 자빠졌네. 이런 생각이 들면서 푸슬푸슬 웃음이 내 입가를 맴도는데 그것 참, 남자의 울근불근하는 표정 앞에서 웃는 것도 좀 그렇고 어쨌든 먼 데나 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남자가 어느 순간 몸에 붙은 무슨 거머리 같은 것이라도 떼어내듯이 부르르 한 번 떨더니 태풍처럼 홱 소리를 내며 돌아서 버리더라고요.

“에이 씨, 몰라. 알아서 해. 나 간다.”

처음에는 뭐, 그냥 하는 소리려니 했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씩씩거리는 걸음으로 마당을 빠져 나가는가 싶더니 자동차 문을 확 열고는 그대로 올라타 버리는 거예요.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그때까지도 뭐 그런가보다 했지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시동을 거는가 싶더니 그대로 후진, 후진, 그렇게 골목으로 나가더니 정말로 전진해서 가 버리더라고요.

“음마마마 저 남자 봐. 세상에, 그래라. 가라. 난 뭐, 여기서 그냥 살지 뭐.”


# 배추꽃


아내 쪽에서 한 마디가 나왔지요. 이어서 그녀의 친구가 한 마디 했지요.

“야아, 어떻게 해.”
“냅둬. 냅둬버려. 가든가 말든가.”
“야아, 그래도 그렇지. 정말로 가 버리면 어떻게 해?”
“아 글쎄 가든가 말든가 난 모른다니까. 갈 테면 가라지 뭐. 누가 무서워서. 여기서 그냥 살지 뭘. 뭐가 무서워서?”

그녀는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더군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머위대 뜯는 일에 열심을 파는 거예요. 그러자 그 친구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머위대나 뜯고 있더군요. 그리고 잠시 뒤에 그녀들은 다시 키득거리며, 소곤거리며 나물 뜯는 재미에 빠져들어 갔지요. 그리고 나는, 처음에는 당연히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내 웃음이 나오고 있었지요. 웃다 보니 점점 더 우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웃었지요. 웃지 않으려 해도 실실 웃음이 절로 나오는데 허헛 참 내, 아무튼 남의 부부싸움이란 게 그렇더군요. 무지 재밌더군요.

그래요. 그녀들도, 나도, 우리는 알고 있었던 거예요. 그렇게도 기름 부은 불꽃처럼 화르르 발끈해서 간다고 길을 나선 사람은 절대로 아주 가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리하여 그 남자는,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돌아오고 있었지요 뭘.

“한 시간 동안이나 어디서 어떤 여자랑 노닥거리다 오는 거야?”
아내가 헤헤거리는 소리로 묻더군요. 그런데 그 남편은, 아무 말도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하여튼 쳇, 쳇 소리만 하고 있더군요.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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