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 2년전 엄마와 딸의 한때


엄마. 며칠 전이었어요. 엄마의 ‘딸년’ 정이한테서 전화가 왔었는데요. 말은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하고 그놈의 울음소리 때문에 그냥 끊고 말았어요. 야 오늘은 그만하고 담에 다시 하자,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었는데 끊고 나니 다시 전화를 하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두려워서 할 수가 없었어요. 사람의 우는 소리라는 게 말이에요. 다른 사람도 아닌 누이동생의 울음소리라는 게 이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란 말이거든요.

비가 오는 날이었어요. 유리창을 타고 흐르듯이 내리는 빗줄기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어디론가 떠나고 싶더라고요. 내 몸이 점점 타성에 젖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놀랍다는 기분으로 거울에 드러난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기도 했지요. 그것이 가령 잡념이라고 한다면, 그런 잡생각을 털어버리기 위해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지요.

그리 깊은 생각도 없이 고른 영화가 일본에서 제작된 것이었어요. 한국어로 번역한 제목이 <나쁜 사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나쁜 사람’은 실제로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뭐랄까, 아주 좋은 사람이었는데 사회상황에 몰리다가 어찌어찌 나쁜 사람이 되고 마는 그런 약간은 반어적인 의미의 ‘나쁜 사람’이지요. 실제로 아주 나쁜 사람도 한 명 있기는 해요. 조연이지요. 그러니까 두 남자가 있는데 한 명은 착함과 나쁨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이고, 조연으로 등장하는 다른 한 남자는 뿌리부터 철저하게 나쁜 사람인 거예요.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자가 있어요. 그녀를 기쁘게 해주는 남자는 착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 남자는 너무너무 가난해요. 그녀는 가난한 남자를 버리고 부잣집 아들을 쫓아가지요. 부잣집 아들은 심심풀이로 그녀를 차에 태우고 가다가 깊은 산속에서 느닷없이 내리라고 해요. 어리둥절해서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이 못된 남자는 발로 뻥 차버리지요. 부자에게 버림받은 그녀를, 그녀에게 버림받은 남자가 와서 우여곡절 끝에 죽이게 되는데 여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에 해당되지요.

부자는 처음부터 나쁘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다가 나쁘게 된다는 그런 어떤 전형이라고나 할까. 뭐 그런 공식에 아주 충실한 영화인데요. 이런 식의 영화는 보는 사람을 지치게 하지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한꺼번에 다 볼 수가 없어요. 보다가 벌떡 일어나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지 않으면 내가 금방 죽을 것 같아진단 말이에요. 그래서 벌떡 일어났던 거예요.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왔다갔다 허둥거리는 동안 영화는 시나브로 잊혀져 갔지요. 그렇게 한가해진 정신으로 서서 내리는 창밖의 빗줄기나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 2년 전 딱 이맘 때의 엄마


“옵빠-아.”

전화를 받자마자 그렇게 물에 빠진 무슨 인형이거나 운동화짝 같은 아주 흠뻑 젖어버린 목소리가 귓속을 무겁게 채우더라고요. 뭐냐 이거, 이번에는 또 무슨 남자가 다가와서 귀찮게 하는 것이냐. 나는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 있었어요.

글쎄,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우습네. 방구석에서 뒤로 물러서면 어디로 간다고 그렇게 물러서고 있었을까. 심리학에서는 그것을 트라우마라고 한다지요 아마? 아니 뭐 그렇게 어려운 용어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그냥 속담 하나를 예로 들면 되겠네. 이를테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같은 것 말이에요.

사실로 난 그래요. 엄마. 엄마의 ‘딸년’ 정이의 울음 섞인 목소리만 들리면 내 가슴이 저절로 그냥 콩닥콩닥 뛰곤 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라고 충고를 해야 하는가, 하는 그런 문제들이 나로서는 너무 어려워서 말이에요. 너무 무거워서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습지요. 그래요. 우스워요. 왜냐하면, 엄마의 ‘딸년’ 정이는 오빠라고 불러서 뭔가 물어보기는 하지만 한 번도 내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거든요.

“오빠, 나 어떻게 해?”

그렇게 말이에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묻기는 잘해요. 뭔가 충고를 좀 해달라고, 어떤 길을 걸어야 할지 조언을 좀 달라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부탁을 하기는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를 않는단 말이에요. 이게 뭐냐고요. 그래서 우스운 거예요.


# 일 년 전의 모녀


재작년 추석에 스무 살 가까이나 연하인 남자를 데려왔을 때도 그랬지요. 기억나요, 엄마? 하긴 엄마는 그때 이미 잘난 ‘딸년’이나 겨우 알아볼 뿐 아들조차도 아들로 알아보지를 못하고 오빠니 아저씨니 주인양반이니 등등 뭐 그런 정도로나 인식하고 있었지요. 그러니 ‘딸년’이 데려온 사내인들 진지한 마음으로 쳐다보기나 했을라고요.

하여튼 그날 누이가 그랬어요. 자기가 데려온 남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면서 이 남자가 자꾸 쫓아다닌다고, 데려온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붙어온 것이라고, 그러면서 누이는 그때도 그랬어요.

“오빠, 나 이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해?”

나는 그때 사실 기절을 할 정도로 놀라고 있었거든요. 추석 명절이라고, 찾아갈 시댁도 없어졌으니 친정 엄마 옆으로나 올란다고, 그런 전화를 받기는 했지만 남자와 동행한다는 말은 전혀 없었단 말이에요. 그랬는데 웬 사내 녀석이 부끄러워 죽겠다는 듯 푸실푸실 김빠지는 미소를 얼굴에 잔뜩 붙이고 누이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던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난 뭐 생각이 비교적 한가했지요. 한눈에 척 보고도 누이의 짝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으니까요. 그저 오는 길에 무슨 오갈 데 없는 친구의 동생이라도 하나 묻어 왔나 보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여자를 따라온 남자라지 뭐겠어요.



동생도 완전히 막둥이 동생 같고, 좀 더 일찍 결혼을 했더라면 그만한 나이쯤의 아들이라도 있을 법한데 말이에요. 그런데 누이는 그날 그런 남자를 데려왔던 거예요. 사과 한 상자, 배 한 상자, 그리고 또 뭐더라, 하여튼 뭔가를 잔뜩 사서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함께 가자고 졸라대는 남자를 누이도 아마 처음에는 안 된다고 했지만 끝까지 밀어내지는 못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사로 그냥 엄벙덤벙 오고 말았던 모양이더라고요.

사내 녀석은 나를 보자 대뜸 ‘형님’이라 부르고 있었지요. 저하고 나하고 나이가 스물다섯 차이나 되는데, 생전 처음 보는 녀석이 형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 옆에서 누이는 창피해 죽겠다는 투로 헛웃음을 픽픽 웃어가며 이 녀석을 남자로 볼 수 있겠느냐는 식의 질문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니 어쩝니까. 질문을 받았으니 답을 해야지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지요.

“나이 차가 뭔 상관이냐. 네가 좋으면 네 남자로 해라 뭐.”
“오빠도 참 내, 그걸 말이라고 해?”

누이는 그날 그렇게 버럭 성을 내더라고요. 허헛 참 내. 기가 막혔지요. 그 사내를 내가 데려온 것도 아니고, 엄연히 지가 데려온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내냐고요. 하긴 뭐 저도 좀 답답하긴 했겠지요. 이걸 남자로 받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 내부에서 끝없이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운명이랄까, 이런 것들이 새삼 기막히다는 생각도 들었겠지요.


# 둥글레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요. 그동안 내가 누이로부터 들었던 남자가 말이에요. 한둘이 아니에요. 얼른 생각나는 것만 해도 벌써 네다섯이 넘어요. 원래의 남편과 이혼을 한 뒤로 십여 년 정도는 남자가 징그러워서 냄새도 안 맡으려 했다나요. 남자라면 그림자도 나란히 안 서게 하려고 애를 썼다나요.

그런데 십여 년 세월을 보내고 나니 자기도 자기를 모를 정도로 달라졌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그렇게 낯이 익은 남자가 다가오면 곁을 내주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차를 마시자 하면 따라가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자 하면 또 따라가서 밥을 먹고, 노래방을 가자 하면 또 따라가서 노래를 불렀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뭐 그렇고 저렇고 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만난 남자들 가운데 혼자인 작자는 하나도 없었지요.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고 하는 사이에 정도 어지간히 들고 해서 물어보면, 이렇게 저렇게 온갖 방법으로 캐 들어가서 보면 남자에게는 이미 아내가 있다는 거예요. 물론 이혼을 해서 혼자인 남자도 있기는 했지요. 그런데 그런 남자는 또 과거의 아내였던 여자와 다시 합칠 궁리나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다른 여자는 왜 만나고 ‘지랄’인지 원, 알다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아는 누이의 남자관계는 그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것을 가령 운명이라고 한다면, 운명도 참 사납기도 하지요. 그런대로 제법 짝꿍을 삼을 만하겠다 싶은 연배의 남자는 하나같이 유부남이고, 솔로인 채로 접근하는 남자는 이십 년 가까이나 연하이고, 이게 대체 무슨 빌어도 못 먹을 운명인가 하고, 누이는 그렇게 가끔 자신을 거울에 비춰보며 한숨을 쉬곤 했겠지요.


# 비비추


그런데 그런 날 마침 비라도 오면 어쩌겠어요. 아니 어쩌면 비가 오는 날이면 자신도 모르게 거울을 쳐다보면 한숨을 쉬곤 했을지도 모르지요. 그날도 아마 그랬을 거예요. 혼자 소주라도 한 잔 마셨을지도 모르지요.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소주를 홀짝거리다가 오빠, 엄마, 뭐 이런 단어를 노래처럼 읊조려보다가 저도 모르게 전화를 했겠지요. 그리고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랬겠지요.

“옵빠-아.”

아, 이건 또 뭔 소리냐. 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내가 그랬어요. 나도 모르게 심호흡을 해대면서 눈을 감았어요. 내리는 빗줄기조차도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던 거예요. 그렇다고 내 마음의 그런 격심한 파동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투로 말했지요.

“야, 너 왜 우냐.”
그랬더니 정이가 그러데요.

“울기는 무슨, 안 울어.”
“지랄헌다, 우는구만 뭐. 왜 울어, 울지 마.”
“아이 씨이. 안 운다니까.”

그렇게 꽥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리고는 자기가 한 말을 그새 잊어버렸는지 이런 소리를 하는 거예요.
“엄마가-아. 엄마 사진이 내 앞에 있으니까-아.”


# 선운사에 본 어느 부부


그러면서 코를 훌쩍훌쩍, 아이처럼 연거푸 코를 들이마시고 있는 거예요, 글쎄. “에이 드러워 죽겠네, 뭐 하냐 너.”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이를 꽉 물고 참았지요. 꾹 참고 그냥 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내버려 두었어요. 말하자면 멍석을 깔아준 거예요. 울고 싶으면 울어라, 울어야 할 이유로 엄마를 팔고 싶으면 팔아라, 뭐 그런 생각이었던 거죠 뭐.

그랬더니 얘가 정말로 그렇게 하더라고요. 코를 훌쩍거리며, 울음소리를 안 내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투로 이런 말 저런 말 온갖 말들을 늘어놓더라고요.

“딸년이 시집가서 잘 살지도 못하고, 이혼이나 하고, 이 나이가 되도록 정처도 없이 떠돌기나 하고, 그런 모습이나 보여주고, 그렇게 엄마를 보내 버렸단 말이야, 내가, 옵빠-아. 옵빠는 울지 마아, 응?”

지랄한다, 내가 왜 우냐. 울더라도 나는 나 혼자서 운다. 그런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글쎄, 엄마, 이게 또 그렇더라고요. 가만 생각해보니 누이가 나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울고 싶을 때 혼자서 운다는 게 말이에요. 이게 아무래도 자랑스런 일은 아니지 싶더라고요. 울고 싶을 때 누군가를 불러서 같이 운다는 거, 적어도 자신의 울음소리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거, 이게 말이에요. 이게, 이게, 이게 말이에요.

아무튼 그렇더라고요. 뭔가가 견딜 수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만 전화를 끊자고 했어요. 끊고 나서 생각해보니 누이가 그렇게도 안쓰러울 수가 없는 거예요. 누이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랬어도 그날 그렇게 비를 핑계로 소주를 마시고, 엄마를 핑계로 울음소리를 전화선에 실어 보냈을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엄마, 엄마는 지금 누이를 보고 있을까? 에이 참, 이런 말을 하고 나니 내 눈에서 눈물이 핑 도네. 아무튼 말이에요, 엄마. 나는 이 나이까지 거의 혼자서 그럭저럭 잘살아왔단 말이거든요. 그런데 누이는 그게 아니잖아요. 나는 결혼을 했었다 해도 겨우 반 년 뿐이었지만 누이는 적어도 십 년을 살았잖아요. 그러니까 엄마, 엄마가 지금 엄마의 ‘딸년’을 보고 있다면 어디서 사내 하나 데려다가 옆에 세워주면 안 될까? 응?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