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생생 역사 현장 탐방 16 - 한국은행,신세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에서 인용하며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도 문화유적의 참맛을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방화로 소실된 국보 1호 남대문의 부재는 두고두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위클리서울>은 서울 인근의 유적지를 직접 찾아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호에선 일제시대 대표적인 건축물인 한국은행과 신세계, 제일은행 본점을 찾아가봤습니다.


사적으로 지정된 한국은행 건물은 현재 화폐금융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3.1 운동 당시 이 곳 앞에선 시위대와 일제 헌병대가 맞붙어
200여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역사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먼길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500년 이상 수도로 위상을 떨친 서울은 시내 곳곳에 문화재와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그저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발품을 팔면 노력 이상의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시내 중심부 명동에 위치한 한국은행과 맞은편 신세계 건물, 그리고 제일은행 본점은 일제시대 수탈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교육 현장이기도 하다.


80년 된 신세계 백화점 건물


1935년 세워진 옛 제일은행 본점

‘유럽의 성’ 연상

남대문로에 위치한 한국은행 본점은 일제가 설립한 조선은행이 전신이다.
1909년 일제는 양국 황실과 대한제국의 정부, 그리고 개인 자본금을 거둬 조선은행 본점을 만들었다. 사적 제280호인 한국은행 건물은 100여년 가까이 이 땅의 경제를 주도해온 곳이다.
일제는 본격적인 한반도 침략 정책에 따라 1905년 정부 국고금을 취급하고 화폐를 정리하며 은행권 발행 등을 담당할 일본 제일은행의 한국 총지점인 경성지점을 설립했다. 1909년 10월 한국은행이 설립돼 제일은행 경성지점의 업무를 인계받아 중앙은행으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 이후 한국은행은 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됐고 조선총독부 직속의 금융기관으로서 바뀌게 됐다.
지금 보는 한국은행 건물은 1907년 11월 제일은행 경성지점으로 착공돼 1912년 1월 조선은행 본점으로 준공됐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625평 규모로 현재는 주위가 고층 건물로 가득하지만 오랜 기간 그 위용을 자랑해 왔었다. 설계자는 다쓰노 깅고라는 일본인이었다.
양쪽 기둥탑을 사이에 두고 중앙 입구가 있으며 철근 콘크리트 구조에 석조로 마감해 한눈에 봐도 튼튼해 보인다. 철골과 철판으로 장식된 지붕이 특징이며, 전체적으로 유럽의 성을 연상케 하는 르네상스 양식이다.


한국은행 미니모형

‘화폐로 보는 건축물’

한국은행 건물은 광복 직후 화재로 내부 일부가 소실되기도 했으며 한국전쟁 땐 폭격을 맞아 내부가 거의 파괴되기도 했다. 1956년부터 2년 가까이 복구 작업이 진행됐으며 1987년 12월 건물 후면에 한국은행 신관이 준공됐다. 신관쪽은 ‘특수 지역’으로 분류돼 지금도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1981년 사적으로 지정됐고, 1989년 원형 복원돼 현재는 화폐금융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화폐 속 역사적 인물들

평면은 ‘우물 정(井)’ 혹은 H자 형태로 장방형이다. 중앙엔 160평 규모의 객장이 있었는데 1,600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건물 지하엔 당시 조선 최대의 대형 금고를 설치했다.
건물은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으로 지어졌는데 양쪽 벽체부엔 원형의 탑이 있다. 중앙 현관 상부 지붕엔 반원 아치 지붕의 솟은 천창을 둬 중심을 강조했다.
주 벽면이 각 층마다 특징있게 만들어진 것도 인상적이다. 1층은 화강석 수평 띠로 돌출시켰으며 2층 창문은 중앙에 홍예석을 둔 아치 형태다. 창 아래는 난간석 모양으로 장식했다.
원형탑은 좌우측 끝과 측면 모서리 3곳에 설치됐는데 그 지붕엔 돔을 얹었다.
화폐금융박물관은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곤 무료로 들어갈 수 있다. 2층으로 나눠진 전시관은 돈과 화폐의 역사, 우리나라 시대별 화폐, 세계 각국의 진귀한 화폐를 비롯 모형금고와 다양한 체험학습실로 구성돼 있다. 화폐에 자신의 얼굴을 담을 수 있는 곳 등 어린이들의 교육 현장으로서도 유용하다.
마침 한국은행 창립 60주년을 맞아 9월 30일까지 기념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2층 한은핼러리에선 한국은행 소장 미술품 중 최고로 평가받은 16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지난해 11월부터 오는 10월까진 이어지는 ‘화폐로 떠나는 세계의 건축여행’ 기획전도 흥미롭다. 우리나라에선 첨성대, 불국사, 다보탑, 남대문, 근정전, 오죽헌 등이 화폐에 도안으로 사용됐다.
서양의 화폐, 특히 유로화엔 고전주의,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현대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과 다리들이 소개돼 있다. 국립 볼쇼이 극장(러시아), 빈 국립 오페라 극장(오스트리아), 링컨 기념관(미국), 중산릉(대만), 앙코르와트 사원(캄보디아), 스핑크스(이집트), 만리장성(중국), 콜로세움(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건축물들도 모두 자국의 화폐에 새겨져있다. 



전 세계 화폐로 보는 유명건축물들

일본인 근거지 ‘명동’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분수를 사이에 두고 한국은행 맞은편 모서리에 자리잡은 신세계 건물도 일제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이 건물은 1930년 일본 미쓰코시 경성점으로 문을 열었으며 한국 전쟁 당시엔 미군이 PX 건물로도 사용했다고 한다.
미쓰코시 경성지점 건물은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으로 쓰이고 있으니 80년 가까이  된 역사적 건물이다.
신세계 건물 오른쪽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71호인 옛 제일건물 본점 건물이다. 역시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저축은행으로 세워졌으며 건물 설계안은 국내에서 최초로 현상공모했다고 한다. 지하1층, 지상 5층 건물로 전형적인 네오 바로크 형식이다.
지금은 헐린 조선총독부 건물을 시작으로 공사중인 서울시청 건물, 한국은행, 신세계로 이어지는 라인은 일제 시대 우리 경제를 수탈한 장본인들이 활개를 치던 곳이었다. 그만큼 민족의 저항도 거셌고 아픔으로 그늘진 역사의 현장이었다. 일제시대 종로 쪽은 우리 민족 정신이 강한 고시었지만 충무로와 명동 일대는 일본 상류층들의 ‘오락장’이자 ‘돈주머니’였다.



한국은행 내부 사진








한국은행 건물 앞 한쪽의 작은 표지석은 이 곳이 1919년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당시 시위대가 일제 헌병경찰들과 격돌해 200여명의 부상자가 속출했다고 하니 그 때의 참상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다.
이 쯤에서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종로와 보신각, 대한문 앞에서 뜨겁게 ‘만세’를 부르던 민중들은 일제의 무력에 눌려 점차 남대문 쪽으로 밀려났을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까지 항거하다 수탈의 심장부 앞에서 뿌려진 피를 떠올리면 옷깃을 여미지 않을 수 없다.
 
김승현 기자 okkdo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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