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 벌레 한 마리도 손으로 잡아내는 아주머니


엄마. 엄마가 안 계신 올해는 아주 이상해요. 이상해져 버렸어요. 따지고 보면 그리 길지도 않은 시간 이십여 일 남짓이었어요. 이십여 일 동안 마을은 난리가 났었지요. 그렇다고 난리가 끝났다는 얘기는 아니에요. 난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다만 사람들이 그것도 면역이라고 면역이 돼서 차분해졌다고나 할까, 뭐 그런 정도예요.

우리 마을 뿐만은 아니에요. 앞마을도 그렇고 옆마을도 그렇고,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그랬어요. 이십여 일이 마치 이십 년 같았지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웃음을 잃었어요. 웃는다 해도 웃음 뒤에는 항상 한숨이 따랐지요.

“아따 참말로 큰일났네, 뭔 일이까아?”

아래 옆집 할머니는 나만 보면 물으셨지요.

“은제 비 온다고 안 헙디여?”

엄마도 알지요? 지나는 길에 가끔 들러서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할머니 말이에요. 이 할머니는 올해 고추농사를 세 마지기로 늘렸어요. 작년에 모두들 고추농사를 망쳤는데 거의 유일하게 이 할머니는 성공을, 그것도 대성공을 했거든요. 세 마지기짜리 밭뙈기 중에 절반만 고추를 심었는데 하나도 안 죽고 다 살아서 첫서리가 내리기 직전까지도 고추가 주렁주렁 익어가고 있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네 고추밭은 초기에 왕창 죽어 버렸지요. 그래서 고추값이 금값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고추가 하나도 안 죽어서 육남 삼녀 아홉 자식에게 골고루 나눠주고도 육백 만원을 손에 쥐었다고 자랑이 대단했었지요. 세상에, 삼백평 밭에서 그렇게도 많은 수확을 올리다니, 칭송과 부러움이 대단했지요. 이 칭송을 응원으로 할머니는 금년에 고추농사를 대폭 늘린 거예요.


# 아따 참말로 비가 으째 안온댜~


무릎 관절염 때문에 잘 걷지도 못하시고, 허리가 아파서 허리도 못 펴고 아예 이마를 땅에 붙일 듯이 하고 다니면서도 고추농사를 작년 대비 두 배나 늘려버린 할머니의 그 결단은 뭐랄까, 단순한 욕망의 발동이라기보다는 경험에서 나온 확고한 철학이 있으시단 말이거든요. 그 철학이 참 새겨들을 만해서 절로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인제 나이도 곧 아흔이고, 남은 것은 죽을 날 뿐인디, 그리서 농사도 인제 그만하자, 했단 말이오. 아 그란디 농사를 줄이고 봉께 내가 죽은 사람 같더란 말이오. 방구석에서 혼자 뭔 짓을 할 것이오.”

할머니의 그 말씀을 듣고 있노라니 내 속에서 아아, 아아, 소리가 절로 마구 터지더라고요. 방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해도 여럿이 봐야 재미가 있지, 혼자 보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말씀 앞에서 감탄사가 터지지 않는다면 마른 장작개비라고나 해야겠지요, 뭐. 사실 나는 할머니를 볼 때마다 일을 좀 줄이라고 사정을 하다시피 해왔거든요. 속 모르는 관념이었던 것이지요. 젊어서부터 일에 파묻혀 살아온, 사는 것이 곧 일이고 일이 곧 문화생활이 되어 있는 할머니에게 그런 말은 상당한 무례였던 것이지요.

어쨌든 할머니는 금년에 고추농사를 세 마지기로 늘렸어요. 할머니는 이 고추밭에다가 당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고 계시지요. 그 정성이 하늘에까지 닿았다고나 할까, 어찌나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는지 지나는 길에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성스러움조차 느껴지곤 하지요. 다른 사람네 고추밭은 포기마다 크기와 세력이 들쭉날쭉해서 안정감이 없는데 할머니의 고추는 모두가 평등하게 쫙 고르게 자라고 있는 거예요. 그 비결이라면 아무래도 사랑이라 해야겠지요. 아침에 눈을 뜨면 지팡이를 찾아들고 딱, 딱 소리를 내며 고추밭을 찾아가는 일편단심 말이에요.

아, 그런데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고추 모종을 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으니 사람으로 치자면 이제 막 유치원생, 물이 한참 필요한 시기에 물이 없는 거예요. 비가 안 와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의 애간장이 마구 타 들어가는 거예요.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할머니의 애간장 타는 소리가 정말로 내 귀에 들리는 것만 같기도 해요.

물론 할머니의 고추밭만 그런 것은 아니지요. 5월에서 6월은 농촌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잖아요. 거의 모든 작물이 이 시기에 심어진단 말이에요. 그만큼 많은 물을 필요로 하지요. 그런데 하늘이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비를 안 내려주는 거예요. 비가 온다 해도 10밀리 미만이었지요. 하늘이 시커매져서 아따 비 좀 오려나보다,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리면 마치 조롱이라도 하듯이 찔끔 몇 방울 뿌리고는 금방 찬란한 태양이 나와 버리는 일이 반복된 거예요.


# 물이 빠진 저수지 제방



# 바닥까지 내려간 저수지제방


새로 심은 것들만 물이 필요한 건 아니에요. 이제 곧 수확을 해야 하는 양파도 알을 키우려면 물이 필요해요. 그런데 알을 키우기는커녕 이파리만 죄다 쓰러져 버렸어요. 마늘도 알을 키우기에 앞서 이파리들이 죄다 꼬실라져 버렸어요. 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감자도 최소한의 물은 있어야 하는데 이게 뭐냐는 듯이 타 들어가고, 매실 농장에서는 열매가 크기도 전에 쏟아져 버린다고 아우성이에요. 혹독한 겨울 추위를 거뜬하게 이겨내고 우렁차게 함성이라도 지를 듯이 솟구쳐 오르던 완두콩은 그 통실통실한 알맹이를 채울 힘이 없다고 피실피실 진즉에 쓰러져 버렸고요. 고창의 최대 작물인 복분자와 수박은 또 어떤가요.

오늘이냐 내일이냐, 하마하마 하던 사람들은 결국 모터를 설치하기 시작했지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어 익기까지 한 달밖에 안 걸리는 복분자 밭에서 가장 먼저 스프링클러가 돌기 시작했어요. 그 다음은 수박밭, 그 다음은 고추밭, 그 다음은 옥수수밭, 이런 식으로 작물마다 지하수를 뽑아 먹이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설마, 하는 마음이 있었지요. 설마 모내기를 할 때까지 비가 안 오지는 않겠지?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결국 그런 날이 오고 말았네요. 모를 심는 논에까지 지하수를 뽑아서 물을 채우기 시작했어요. 수로가 저수지와 연결된 논을 제외한 모든 논에서 지하의 물을 뽑아 올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세상 온천지가 모터 돌아가는 소리로 가득 차 버렸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멀리서 마치 사이렌처럼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지요. 낮에는 한 발자국만 마당 밖으로 나가면 귀가 아리게 날카로운 기계음이 달려들지요. 밤에도 잠자려고 불을 끄면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 사방천지에서 세에에엥, 소리가 들리지요.

그런 날이 하루 이틀, 나흘 닷새, 한정 없이 계속되다 보니 이젠 슬슬 뭔가 겁이 나는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두려움을 삼킬 요량으로 짐짓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지요.

“아따야∼ 이러다가 땅이 푹 꺼져버리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 타버린 마늘밭


# 고구마밭의 스프링쿨러


사실 생각해보면 그래요. 지하수를 이렇게도 왕창 한꺼번에 뽑아버리면 그 빈자리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은근 불안스럽기도 해요. 만약에 물이 빠져나간 자리를 흙이 내려앉아서 채우기 시작하면 한두 군데서만 그러지는 않겠지요. 여기저기서 연쇄적으로 사건이 일어나겠지요.

태양은 참 무심도 하지요. 어찌 그렇게도 태연하게 이글이글 타고만 있는 것일까요. 지하수를 본격적으로 뽑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태양은 더욱더 강렬하게 자신을 태우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기는 해요. 인간에게 뭔가를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문득문득 들지요. 인간 너희들이 지하수를 뽑아 올린다 이거지? 그렇다면 좋다. 너희가 뽑아 올린 그것을 내가 다 빨아들여 주마, 태양이 이렇게 인간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다는, 실없는 소리 같지만 하여튼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기도 한단 말이에요.

과거에는 때맞춰 비가 내리지 않으면 일단 기우제를 드렸지요. 내가 어렸을 때 돼지머리라든가 막걸리 같은 것을 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가던 어른들의 모습이 지금도 어렴풋이 생각나요. 하늘에 빌고, 산신령께 빌고, 대지에 빌었던 것이지요. 비 좀 내려주십사고. 그렇게 빌고 조용히 기다렸지요. 기다리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 그래도 기다렸다가 벼농사는 포기하고 콩을 심었지요.

그러나 지금은 기다리지 앉지요.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대형 모터를 사다가 전기를 연결해서 숨어 있는 물을 끄집어내는 거예요. 사흘이고 나흘이고 논바닥에 물이 벙벙해질 때까지 모터를 돌리는 거예요. 그러다가 문득 거기에 생각이 미치는 거예요. 이러다가 땅이 꺼지면 어떡하지?

인간은 이제 누구도 기우제의 효험 같은 것을 믿지는 않지만, 지하수를 너무 뽑아내면 땅이 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요. 그러나 아직 모내기를 마친 뒤에까지도 비가 안 내리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까지는 안 해요. 하긴 거기까지 생각하게 되면 괴롭고 불안해서 살아갈 수가 없겠지요.

아, 지금 마른비가 지나가는 것 같네요. 슬레이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투둑 몇 방울 들려요.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깃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니, 이건 영락없는 마른비가 되는 것이잖아요. 마른비가 잦으면 그 해는 가뭄으로 흉년이 든다고, 엄마가 옛날 어느 때인가 혼잣말을 하시며 한숨을 쉬었던 장면이 눈앞으로 지나가네요.


# 지하수마저 젤젤 가난해졌다


엄마의 세대까지만 해도 그랬었지요. 자연현상의 아주 작은 기미만으로도 그해의 날씨 전반을 유추하곤 했었지요. 요새 흔히 쓰는 말로 하자면 소통이 가능했던 거예요. 인간 자신이 자연의 일부라는, 자연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 동시에 자연을 품고 있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런 인식이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무 한 그루도 함부로 베어내지를 않고, 길이 필요하다 해서 아무 데나 파헤치고 뚫어댄 다음 이것이 길이다, 하고 큰소리치는 만용을 부리지는 않았던 것이겠지요.

그러고 보면 인간은 최근 삼사십 년 동안 자연으로부터 너무도 멀리 탈출해 버린 것 같기도 해요. 자연과의 소통이 아니라 단절을 도모해 왔다고나 할까. 비가 와서 길 위에 작은 도랑만 생기면 무조건 콘크리트로 덮어 왔단 말이거든요. 한쪽을 콘크리트로 덮어놓으니 그 위에 내린 비는 땅으로 스며들 수가 없어서 한꺼번에 우우 몰려가다가 다른 땅에 고랑을 내지요. 그러면 인간은 또 그 부위를 콘크리트로 코팅해 버리지요.

이런 식으로 계속 우는 아이 입을 틀어막듯이 콘크리트, 콘크리트, 콘크리트만 불러들이다 보면 한 이십 년 뒤에는 어찌 될까, 응? 이런 질문을 안 할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어요. 요새는 산에도 등산로를 편하고 튼튼하게 한다고 헬기로 콘크리트를 들어다가 계단을 만들고 있단 말이거든요. 땅으로 스며드는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지하수도 당근 줄어들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 바닷물을 퍼다가 정수해서 쓸 것이냐?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 작은댁 할아버지가 그랬었지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고. 탱자나무 울타리를 베어내고 시멘트 담장을 치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할아버지는 생각하셨던 것이지요. 그때부터 우리는 줄곧 시멘트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해왔어요. 지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폭력도 그런 숨 막히는 폭력이 없었던 셈이지요. 눈만 뜨면 시멘트로 떡칠을 해서 숨통을 막아놓으니 어떻게 숨을 쉴 수가 있었겠어요.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연산’을 좋다고 생각하니 이건 또 무슨 역설인지 모르겠어요. 식당에서도 자연산, 횟집에서도 자연산, 시장에서도 자연산, 온통 자연산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 되었단 말이거든요.

아아, 오늘도 달은 참 밝네요. 달이 밝다는 것은 다음 날 태양이 또 이글이글하게 타오른다는 얘기인데 말이에요. 주말에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의 확률은 몇 퍼센트나 될까요? 지난주에는 금요일에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했는데 십 밀리도 채 안 뿌리고 그만둬 버리더군요. 이번에는 비가 정말로 오기는 올까요? 언제인가처럼 또 쓸데없이 도시에만 비를 퍼부어대고 농촌에는 가랑비나 슬쩍 뿌리고 마는 것이나 아닐는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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