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밀실처리 논란으로 체결이 연기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야당의 협정 폐기 요구속에 중국의 강력한 반발까지 직면해 상당한 난항이 예상된다. 동북아 `패권`을 의식하고 있는 중국이 이 문제에 공식적이고 직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나섬으로써 정부의 입장이 상당한 곤란에 처하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사면초가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비밀리에 협정을 추진한 책임을 놓고 청와대와 외교부가 주고받던 책임 공방은 김성환 외교부 장관이 "다른 데로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다"고 진화에 나서 논란 확산은 일단 잠재웠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한다`는 인책론이 제기되면서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이번 정보보호 협정 밀실처리 과정의 경위에 대해 조사에 착수했다.





이번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 책임 떠넘기기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4일 사의를 표명한데 이어 외교부와 국방부도 현재 자체 조사에 나서 이들 부서의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이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청와대와 정부는 일단 국익을 위해 국회 협의와 동의 절차를 거쳐 협정체결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협정 연기와 여론 동향에 대한 보고를 받고 오해가 없도록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등 24개 나라와 협정을 체결했고 앞으로 중국과도 체결이 필요하다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여야가 연말 대선을 앞두고 갈수록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다 동북아 정세의 주도권을 쥐려는 중국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이 사실상 어려운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정치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총리 해임과 협정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21세기 들어와 한일군사비밀정보협정 맺는 것은 정말 역사 역행하는 일"이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여당인 새누리당도 이 협정에 대해 처음에는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으나 최근 여론 흐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실상 반대입장으로 돌아섰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절차와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언급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정부를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이 중국의 반발이다. 류웨이민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3일 오후(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대화와 협상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로 대립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한반도의 정세가 복잡, 민감하므로 관련국들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한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반관영 국제문제 전문지인 환구시보도 사설에서 "한일 정보보호협정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한국정부를 비판했다. 신문은 "협정은 한미, 미일 동맹이 한미일 3각 동맹으로 나가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한국은 앞으로 동북아에서 대국들 사이의 ‘최전선 바둑돌’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협정을 통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에 대처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수용치 않는 태도다. 한국정부가 미국 일본과 3각 협력체제를 구축해 사실상 자신들을 견제하려는 목적에서 이 협정을 활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의 동북아 패권정책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겠다는 것이 중국의 자세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한일간 정보보호협정이 체결되고 한미간에 군사동맹 체제가 강화될 경우 중국의 상당한 반발을 가져오고 한반도와 동북아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당국은 이와 관련, 중국측과 물밑 접촉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정부 당국자는 "국회에서 이해를 해주고 국민이 지지하면 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민과 야권의 반발이 심하면 현 정부에서의 재추진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를 비롯 각계 시민사회단체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 추진을 강력히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4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었다. 강정구 교수(평통사 상임대표)는 “5.24 조치로 인한 남북관계 파탄과 한.일 군사협정 체결을 통한 한.미.일 삼각동맹강화로 인해 동북아의 신 냉전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신냉전이 발생하면 남과 북의 평화통일은 물 건너간다. 신냉전을 막는 것이 우리들의 핵심과제”라고 강조했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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