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도모유키 지음/ 서혜영 옮김/ 은행나무





199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자신의 작가 생활 50년을 기념해 2006년에 ‘오에겐자부로상’을 만들었다. 셀 수 없이 많이 출간되는 책들 가운데, 매년 단 한 권을 직접 선정해 ‘문학적 작품’으로서의 가능성과 성과를 인정하는 것. 2010년에 간행된 약 120편의 작품 중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된 호시노 도모유키의 화제의 소설 《오레오레》(은행나무 刊)가 우리나라에 출간됐다.
   이 작품은 사소한 장난을 계기로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비현실적 설정은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스토리 전개를 바탕으로 읽는 이를 설득하고, 이에 더하여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고 인간 사이에서 사라진 신뢰와 배려 등 이 시대의 안타까운 모습을 영리하게 비판한다. 《오레오레》는 점점 사라져가는 소설적 상상력과 문학성을 모두 갖춘, 현대 일본문학이 낳은 신선한 이정표이다.

 이 소설은 한마디로 ‘끝없이 내가 증식하는 이야기’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가 되어 있고, 그 ‘나’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간다. 물론 서로 ‘나’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나’를 만나 안정을 찾다가도 이유 없이 나는 ‘나들’을 서로 죽이게 된다.
   작가 호시노 도모유키는 나와 다른 남은 전부 적으로 몰아가는 인터넷 문화 등 ‘나’만을 강조하는 현대의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 대한 위화감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너무 자기중심적이어서, 자기중심적이라는 의식 자체는 물론, 심지어 자신도 사라진 상황. 자기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을 믿을 수도 없다. ‘저 사람보다는 내가 나아’라고 생각하며 나만을 지키려는 모습이 21세기 들어 현저해졌다.”
   어느새 ‘다이키’로 살아가는 히토시, 맥도날드에서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히토시, 다른 ‘나’들과 있을 때 ‘오프’가 될 수 있기에 지금의 비정상적인 현실에 만족하는 히토시. 그 히토시는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살아가는, 실은 너무나 외로운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또한 내가 다른 사람의 무대배경이 되고 마는 인간 관계의 허망함, 나는 이 사회에서 누구와도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는 무한 경쟁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비꼬고 있다.
   리얼한 현실을 기반으로 한 기발하고 발칙한 작가의 상상력 넘치는 《오레오레》 속 사회는 결국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악몽이다.

《오레오레》 속 현실 모습은 결코 밝지 않다. 기본적으로 어두운 테마를 소재로 하고 있으며, 그 이면으로 제기하는 사회 문제는 심각하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오히려 일상성을 유지하고 있다. 누구나 경험하는 친구나 가족과의 지극히 평범한 대화나 때때로 터져 나오는 유머 등을 타고 ‘자기 증식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문학성을 강조한 작품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타파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 중 하나다.
“원래 작품이 어둡게 끝나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다른 엔딩을 생각했다”는 호시노 도모유키. 현실은 암울하지만, 어딘가 돌파구가 있을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본문 마지막 페이지가 주는 은근한 여운은 짧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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