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 빛을 찾아서 휘어진 참나리

엄마, 컨테이너라는 것이 말이에요. 이것이 참 대단한 물건이에요. 그동안 오며가며 구경은 많이 했지만 내 스스로 몸을 집어넣고 살아보기는 처음이란 말이거든요. 태양이 고개를 내밀면 뜨거운 양철지붕처럼 열을 받기 시작해서 끝내는 한증막이 된다는 것을, 숨을 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땀이 주룩주룩 쏟아지게 된다는 것을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인데요.

마찬가지로 태양이 서쪽으로 마치 바닷물에라도 풍덩 빠지듯이 사라지고 나면 그때부터 열이 내리기 시작해서 저녁 열두 시쯤이면 두터운 이불을 덮어야만 할 정도의 찬 기운이 팍팍 내려오는 것 또한 몰랐던 거예요. 그리하여 나는 요새 툭하면 혼잣말로 중얼거리곤 하지요. 밤에는 추워서 두터운 이불을 덮어야 하고, 낮에는 뜨거워서 홀랑홀랑 다 벗어버리고도 가죽마저 벗고 싶어지는 이곳은 어디인가, 하고 말이에요.

그렇게 뭔가가 자꾸 헷갈리고 어리둥절한 까닭이었을까? 내가 요 며칠 사이에 아주 방탕해져 버렸어요. 술독에 빠졌다고 해도 뭐 틀리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술 마실 일이 자꾸 생기는데 말이에요. 이 산골짜기로 들어왔을 때 처음 생각은 그랬지요. 사람도 살지 않는 산속에서 술 마실 일이 뭐 있을까, 술배가 좀 고플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상황이 영 거꾸로 돼버린 거예요.

처음 한 열흘 동안은 내가 생각해도 참 조신했었지요. 계곡을 찾는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있다 해도 내가 먼저 피해버리곤 했었지요. 그렇다고 뜨거운 양철지붕처럼 펄펄 끓는 컨테이너 안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고, 의자 하나를 들고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흐르는 계곡으로 들어가서 책을 보는 거예요. 흐르는 물속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책을 본다는 것, 이것은 나로서도 사실 처음인 일인데 말이에요. 야아 그것 참,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그야말로 죽여주는 선경이란 말이거든요.

한 번 상상해보세요. 물이 흐르는 양쪽으로 나무들이 자라서 우거졌는데 그 위로 칡넝쿨이며 으름넝쿨이 켜켜이 뻗어서는 그냥 터널을 이루고 있는 거예요. 그 사이로 으름 열매가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이 군데군데 삐죽삐죽 얼굴을 내밀고 있고, 다람쥐들이 그것을 먹겠다고 사사삭 사사삭 소리를 내며 부지런을 떠는 거예요. 게다가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 피라미처럼 생겼지만 피라미는 아닌, 이쪽에서는 중택이라고도 하고 중고기라도 부르는 작은 물고기들이 내 발가락 사이에 뭐가 있다는 것인지 톡톡 쪼아대는데 그 쩌릿쩌릿하게 낯선 느낌이 어찌나 신선한지 아이고 참말로, 이것이야말로 말로는 표현이 다 안 되는 불립문자의 세계로구나 싶더라니까요.

하여튼 그랬는데 말이에요. 신선놀음이라 해도 좋은 뭐 그런 느낌에 빠져 날짜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날이 더워지면서 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거예요. 그 바람에 나는 어제보다 조금 위로, 또 위로, 그렇게 계속 쫓겨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어느 하루 판소리 하는 사람들과 순식간에 어울려 버린 거예요. 판소리라면 나도 뭐 일가견까지는 아니라도 기초상식 정도는 재산처럼 가지고 있단 말이거든요.


# 물 속에서 책을 읽는  기분이라~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판소리하는 사람들이 가져온 막걸리를 마시고, 과일을 먹고, 밥 먹을 때는 또 달라붙어서 밥까지 얻어먹었는데 아이구 이게 뭔가, 보기에도 그냥 침이 넘어가는 배추김치가 있는 거예요. 그것도 무주구천동 고랭지배추로 하루 전에 담갔다고 하는, 고소한 통깨가 솔솔 뿌려진 그 배추김치를 보는 순간부터 나는 아마 인사불성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랬을 거예요.

이 산골짜기로 들어온 이후 그동안 내가 먹어온 반찬이란 것이 풋고추에 된장 그리고 들깻잎 정도였단 말이거든요. 들깻잎도 아마 이 골짜기에 자생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것조차도 없었겠지요. 그래요. 이곳에 마을이 있을 당시에 아마 들깨 농사를 많이 지었던가 봐요.

어쨌든 사방천지에 뿌려놓은 듯이 자라는 들깻잎을 뜯어다가 마늘 몇 쪽 빻아 넣고, 고춧가루를 살짝 뿌린 다음 국간장으로 최종 양념을 해서 졸이는 방식의 반찬을 만들어 먹어온 내 눈에 김치는 그야말로 두 눈이 번쩍 빛날 정도로 희귀한 반찬이었던 거예요. 김치도 그냥 멋없이 칼로 뚝뚝 썰어서 담근 것이 아니라 손으로 일일이 짝짝 찢어서 담근 것이다 보니 뭔가 잊었던 향수도 같고 정감도 같은 것이 솟아나면서 내가 그만 인사불성이 되었던가 봐요.

“김치 이거, 남는 것 도로 가져가실 건가요?”

처음에는 그랬지요. 차마 직설적으로 나한테 주고 가시라는 말은 못하고 그렇게 에둘러 표현을 했는데 그쪽에서 먼저 알아차리고 아예 그냥 통째로 그릇까지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계곡에 물놀이를 나오면서 김치를 가져왔으면 얼마나 가져왔겠어요. 하루도 못 가서 김치는 동이 났지요. 그러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전날까지만 해도 사람이 들어오면 피해서 멀리 쫓겨가곤 하던 내가 이제 거꾸로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다니게 되는데 말이에요.

그렇다고 아예 노골적으로 김치만을 쫓아서 찾아다녔던 것은 아니고요. 여기 이 계곡이 뭐랄까, 공식적으로 개방된 놀이터가 아니란 말이거든요. 서울에서 귀농한 사람이 심었다고 하는 뽕나무도 있고 복숭아나무도 있고 등등 일종의 과수원 비슷한 곳이란 말이거든요. 때문에 화장실도 없고, 쓰레기 수거 차량이 드나들지도 않는단 말이거든요.


# 계곡 위로 우거진 으름넝쿨



여기서 쓰레기 문제가 생기는데 말이에요. 반반이라고나 할까. 하루 열 팀이 들어오면 다섯 팀 정도는 나무젓가락 하나 남기지 않고 죄다 가져가요. 다른 다섯 팀은 내 눈에 안 보이면 끝이다, 하는 투로 대충 꾸려서 여기저기 후미진 곳에 숨겨놓고 떠나는 거예요. 그러면 거기에 파리가 날아들고 벌도 날아들고 온갖 녀석들이 날아들면서 악취를 풍기게 되는데 이것을 누가 처리하나요. 내가 혼자 살고 있으니 오롯이 내 차지가 되는 거예요.

“에 여러분들, 쓰레기 말입니다. 그것 참 고약한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가실 때 쓰레기는 꼬옥 챙겨 가주시라고요, 알았죠 잉?”

지금 생각하면 나도 참 웃겼어요. 어떻게 해서 그런 말이 그렇게도 술술 입에서 잘도 나와 주었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암튼 그랬다고요. 그렇게 손나팔을 만들어서 연설을 하노라면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알았다고, 염려마시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포도 한 송이를 건네주기도 하고, 복숭아 한 알을 내밀기도 하고, 삶은 옥수수가 맛있다고 권하기도 하고, 그러다가 마침내는 술판을 만나게 되는데 일단 앉았다 하면 하루가 그냥 가버리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하루 아주 진귀한 놀이를 체험하게 되었지요. 58년 개띠생들의 모임이라더군요. 말하자면 갑계 회원들이 계곡으로 들어온 거예요. 서른 명은 채 안 되고 스무 명은 훨씬 넘는 대단위 그룹이었지요.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전에 왔었던 까닭에 나를 알고 있었던 거예요. 자기가 아는 사람이 저쪽 컨테이너에서 도를 닦고 있다고, 그러니 합석을 시키자고, 그렇게 친구들의 동의를 받은 뒤에 나를 데리러 왔는데 뭐 거절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다고 이제 막 준비 중인데 바로 갈 수는 없고,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준비가 다 끝났다 싶은 시간에 내려갔지요.

그날은 일기가 매우 불순해서 쨍쨍한 햇빛 속으로 소나기가 다섯 번 이상을 지나간 아주 고약한 날이었거든요. 그런데 뭐랄까, 그것 참 신기하더군요. 사람들이 대개 돗자리 정도의 바닥에 깔 것만 챙겨오는데 이 사람들은 지붕까지 준비해 왔던 거예요.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알았던 것은 아니에요. 회원들 중에서도 그 사실을 안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으니까요.

아무튼 닭고기에 오리고기에 이런저런 각종의 고기와 야채와 과일을 각자의 식성껏 골라먹을 수 있게 널널이 차려놓고 둘러앉아서 자, ‘요이잇똥’ 먹기 시작, 하려는 판인데 갑자기 후두두둑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일시에 모든 촛불을 다 꺼버린 것처럼 사방이 캄캄해져 버리는데 말이에요. 와아 그것 참 황당하더라고요.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야야 온다, 온다.”


# 곧게 뻗은 나무는 하나도 없다



소리가 누군가의 입에서 터지고, 다른 누군가의 입에서는 포장, 포장, 소리가 나왔다 싶은 순간 갑자기 파란색 포장이 등장한 거예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지요.  순식간에 사각으로 잘 개켜진 포장이 식탁 위로 올라오는가 싶더니 한 가닥이 펴지고, 또 한 가닥이 펴지고, 스무 명 남짓한 모든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포장이 펼쳐지는데 그 면적이 적어도 다섯 평은 돼 보이더라고요.

그 넓은 포장이 그야말로 전광석화, 번갯불에 콩이라도 구워 먹는 듯이 순식간에 펼쳐지면서 위로 올라가는 거예요. 그때쯤 하늘에서는 소나기가 마치 소방호스라도 터진 듯이 맹렬하게 퍼부어지는데 말이에요.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와중에서도 저마다 포장을 잡은 두 손을 벌이라도 서듯이 머리 위로 치켜올린 채 서로를 쳐다보며 키득거리는 거예요. 그러는 사이에 다른 두 사람이 끈을 들고 다니며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포장에 묶고, 다른쪽 끈을 다시 주변에 널린 나뭇가지를 잡아서 묶은 다음 마지막으로 긴 막대 하나를 주워다가 포장의 한가운데를 잡아서 딱, 세워놓으니 완벽한 지붕 꼴이 갖춰지는데 말이에요.

다년간의 훈련으로 정신이 무장된 해병대원들이 저럴까 싶을 정도로 놀랍더라고요. 내가 놀랍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들 자신도 새삼 생각해보니 놀랍다고 하더군요. 비가 쏟아지고, 포장이 등장하는 순간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딴소리를 하고 나섰다면 지붕이 만들어지는 시간은 자연히 지체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차려놓은 음식이 원래의 맛을 잃어 버렸을 텐데 전혀 그게 아니었단 말이거든요.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모두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오토바이 수리점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광주시청 공무원이 있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보험설계사가 있고, 미용사가 있고, 등등 저마다 각자의 생업이 따로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렇게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무엇이 그렇게 눈앞의 사태를 동일한 정서로 대하게 해주었는가. 추론 가능한 답은 하나뿐인 것 같더군요. 농경민족의 후손이었다는 것, 애타게 비를 기다리면서도 때로는 비를 피해야만 하는 삶을 젖먹이 시절부터 살아 왔다는 것. 어쨌든 한바탕의 소동을 거친 뒤에 먹는 음식은 그지없이 맛나더군요.

“아 이것이 진짜배기 맛인 거여.”
“그러엄, 이런 재미로 놀러 나오는 것이제.”


# 갑자기 비를 만난 뒤에...


# 60년대 에 만들었다는 덕석에 그림 윷놀이 말판



먹고 마시고 떠들고, 유흥장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한동안 이어졌지요. 그런 뒤에는 무엇을 하나. 이제 노래하고 춤추는 순서겠구나, 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포도 농사를 짓는다는 사람이 트럭으로 가더니 느닷없는 덕석을 어깨에 메고 나타나는 거예요. 덕석. 표준말로 하자면 멍석이라고 해야겠지만 전라도에서는 이게 글쎄, 뭐랄까, 좀 깍쟁이 같은 느낌이 있단 말이거든요. 그래서 멍석보다는 덕석이란 말이 딱 좋아요. 뭔가 우둘투둘하고 자연미도 있어서 정감이 더 느껴지는 덕석 말이에요.

어쨌든 그가 메고 나온 덕석은 6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데 추석 때면 마을 광장으로 나와서 윷놀이 판이 되어준다는군요. 쥐가 뜯어먹고 삭아서 너덜너덜해진 그것으로 이제부터 윷놀이를 한다는 거예요. 스무 명도 넘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달려들 수는 없으니까 한판에 다섯 명씩, 그러니까 말을 잡는 사람 한 명에 선수 네 명씩 돌아가면서 한다는군요. 승리한 팀은 다음에 승리한 팀과 대결해서 다음 모임의 장소와 회비 등등을 결정하는 요컨대 회장과 총무 등등 임원을 선출하는 것으로써 끝을 맺는 그런 윷놀이 게임이라더군요.

그렇게 한쪽에서 윷놀이를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둘레둘레 모여앉아 수다떨기 대회를 여는데 말이에요.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그 내용이 그렇게도 풍부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를테면 보험설계사가 직업인 사람이 나서서 지난 한 달여 동안 보험업계에서 벌어진 사례를 발표하는 거예요. 발표가 끝난 뒤에는 ‘그러한즉 이러이러한 일을 조심’해야 한다는 식의 경고성 강한 의견을 제시하는 거예요. 그런 방식으로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한 차례씩은 나서서 자신의 직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윷놀이는 당연히 계속되지요. 윷놀이를 하면서도 귀는 있으니까 수다판의 이야기를 다 듣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윷놀이판이 고즈넉한 것은 아니지요. 수다판에서도 호시탐탐 윷놀이판을 넘어다보면서 “아따 숫이다, 담에는 모 나와라‘ 어쩌고 등등 추임새는 끊임없이 넣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게 멀리서 대충 바라보면 완전히 ’개판오분전‘이지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질서가 아주 정교하게 잡혀 있는 놀이판이 되는 거예요.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뭔가 대단하다 싶어지더군요.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춤을 추지 않아도, 시끄러운 확성기를 동원하지 않아도 이렇게 즐거운 유흥을 누릴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 입에서 한 소리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야 이거 진짜 재미있구나.”

그래요. 진짜 재미있다는 것,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너무도 재미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그 재미를 찾아서 내가 자발적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리게 되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를 나는 지금 엄마에게 하고 있는 거예요. 이러다가 혹시 내가 유흥판이나 기웃거리는 건달로 정착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는 은근한 걱정과 함께 말이에요.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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