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테일러 지음/ 박수현 옮김/ 문학과지성사



자신의 존재 가치는 주변으로부터 얻게 마련이다. 그 존재 자체가 존귀해 누구에게나 환영을 받는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의무적으로라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줘야 하는 담임 선생님에게조차 귀찮고 어서 빨리 처리해 버리고 싶은 존재가 된다면 어떨까? 두 악동 조와 벨린더가 바로 그런 아이들이다. 오죽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는 핑계로 선생님은 두 아이를 짝으로 묶어 공동 과제를 내 주었을까. 조용하고 평온하던 온 마을을 늙은 양 한 마리 때문에 한바탕 휘저은 대소동은, ‘마을에서 연세 드신 분들을 만나 지역의 변화와 역사를 알아오라’는 선생님의 야심차고도 (골칫덩이를 처리했다는) 기발한 계획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와 벨린더를 포함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어쩐지 평소에 보기 힘든 인물들이다.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거칠고, 사납다. 선생님이라면, 부모라면, 아이라면, 손자라면 하지 않아야 할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줄 잘도 내뱉는다. 그런 말을 듣는 상대방의 반응도 별로 심각하지 않다.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작가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리 안에 꽁꽁 감추어 둔 이기심, 반항심, 무례함 등을 여러 인물들의 입을 통해 꼬집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도 양을 살리기 위해 수고를 마다않는 조와 벨린더의 모습은 진정한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게 한다.

사납고 늙은 양 때문에 벌어진 시끌벅적한 한바탕 소동 안에는 인생에 대한 단면들이 가벼운 듯 익살스럽게 담겨 있다. 여든아홉 살의 할머니와, 늙은 애그니스와, 철부지 아이들의 관계를 통해 늙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 혹은 아름답게 마감하는 이야기, 친구에 대한 이야기, 서로에 대한 배려에 대한 이야기가 신나고 슬프고 재미있고 가슴 뭉클하게 전해진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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