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


# 달팽이 같기는 하지만...


엄마, 나로서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녀석이었지요. 생면부지의 그 녀석은 나를 참 당혹스럽게 하더군요. 눈 두 개가 더듬이처럼 길게 툭 튀어나왔는데 그것만 보면 달팽이에요. 그런데 달팽이라 하기에는 뭔가가 영 아니다 싶은 거예요. 껍데기를 보면 바다에 사는 우렁쉥이를 닮았어요. 크기도 꼭 우렁쉥이만 해요.

하지만 깊은 산속에 바다의 생물이 있을 까닭이 없고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족보인가, 어리둥절해지는 거예요. 내가 가령 그렇게 생긴 녀석을 딱 한 마리만 보고 말았다면 오히려 쉽게 해석을 하고 그만 잊어버릴 수도 있었겠지요. 바다 생물이 어찌어찌 기구한 과정을 거쳐 깊은 산속에까지 들어왔었나 보다,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한 마리가 아닌 거예요. 너 이놈 머릿골 좀 아파봐라, 하는 듯이 아침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컨테이너 창문에도 붙어 있고, 계곡으로 목욕을 하러 들어가면 거기 어디 나뭇가지에도 붙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보고, 또 보고 하다 보니 나로서도 더 이상은 거부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 너는 내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림책에서도 본 적이 없는 아주 희귀한 달팽이로구나.

그렇게 일단 정리를 하기로 했지요.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도망을 치고 싶었다고 봐야겠지요. 어쨌든 산속에는 그 녀석 말고도 호기심을 끌어당기는 녀석이 쌔고쌨으니 말이에요. 그래요. 깊은 산속에는 처음 보는 생명도 많고 처음 접하는 현상도 많더군요. 간단하게 그냥 지나갈 때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열흘 이상 한 곳에 터를 잡고 살다 보니 별난 것들이 참 많이도 눈에 띄더라고요. 개미도 그 중에 하나였지요.


# 달팽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이름모를 그대~


그래요. 그날 개미가 집을 짓는 장면을 발견했지요. 그냥 개미가 집을 짓는 장면이라기보다는 개미가 집을 짓는 원리라고 해야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그것은 눈물 나게도 엄숙한 장면이었어요. 왜냐하면 커다란 지렁이 한 마리가 희생되면서 탄생한 개미집이었으니까요.

그날 오전 일찍 소나기가 한 줄기 맹렬하게 쏟아졌거든요. 그 소나기를 보면서 나는 내심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거든요. 비가 많이 내리면 커다란 바위가 물에 둥둥 떠서 흘러간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에 들었거든요. 생각해봐요. 골짜기에 혼자 상주하고 있는데 바위가 떠내려갈 정도의 비가 쏟아진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상상만으로도 오싹 무서워지는 거잖아요.

다행이랄까 뭐랄까, 그렇게까지 큰 비는 아니었지요. 한 삼십분 정도 맹렬하게 쏟아지다가 그치고, 비가 그치자마자 태양이 얼굴을 내밀면서 금방 물기를 닦아내 버리더군요. 물론 계곡의 물은 많이 불어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계곡이 아닌 곳은 땅이 워낙 자갈이 많은 까닭에 금방 물기가 가셔지고 이내 지열을 뿜어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것 참 이상하더군요. 비가 쏟아질 때 땅 속의 지렁이가 아마 놀라서 튀어 나왔었나 봐요. 아주 큰 녀석이었어요. 얼추 나무젓가락 정도의 길이였지요. 두께는 어린아이 손가락 정도나 되려나. 하여튼 지렁이 치고는 대단히 큰 녀석이었어요. 그렇게도 큰 녀석이 나들이를 나왔다가는 길을 못 찾고 헤매는 거예요. 땅속에서 땅밖으로 나왔는데 다시 땅속으로 들어갈 시간을 놓치고 그만 태양과 정면으로 부딪혀버린 거예요.



글쎄 그 순간의 내 심리를 뭐라고 해석해야 하나. 엄마와 함께 살 때 그런 지렁이를 만났다면 나는 아마 흙으로 녀석을 덮어주었을 거예요. 힘들겠다, 어서 너희 집으로 들어가거라,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그날의 나는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서 녀석의 헤매는 장면을 묵묵히 구경이나 하고 있었던 거예요. 일단 구경을 시작하고 보니 썩 재미가 있더라고요. 재밌다 생각하고 들여다보니 더욱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그때 어디서 작은 개미들이 나타난 거예요.

개미, 작은 개미 중에서도 아주 작은 녀석들이었지요. 건성으로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녀석들이었어요. 처음에는 글쎄 두세 마리 정도나 되었던가, 하여튼 거의 눈에 띄지도 않는 숫자였어요. 길을 잃고 헤매던 지렁이가 갑자기 그때까지의 패턴을 잃고 요란스럽게 몸부림을 치는 장면을 보고서야 왜 저러나, 해서 눈을 크게 뜨고 면밀하게 들여다보면서야 겨우 개미를 발견했던 것이란 말이거든요.

야아, 그것 참 놀랍더군요. 아주 작은 개미 몇 마리가 건방지게 커다란 지렁이에게 덤빈다고 딴에는 비웃음 가득한 기분으로 들여다보기를 십 분이나 했을까, 그 짧은 시간 동안 작은 개미는 수백 아니 수천 마리로 늘어난 거예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면 뭔가 흙이 움직이는 듯한 느낌이지요. 그렇게도 작은 개미들이 전쟁 중의 피난민 행렬처럼 구불구불 길게 뻗어 있는데 말이에요. 그 행렬을 따라서 가보니 뽕나무밭이더군요. 

그날 몇 가지 사실을 알았지요. 큰 개미는 차라리 큰 지렁이에 별 관심이 없어요. 몇 번 더듬이를 들이대보다가는 그냥 가버리지요. 그러나 작은 개미는, 작은 개미 중에서도 아주 작은 좁쌀 크기 정도의 작은 개미들은 지렁이 앞에서 자기네 동족의 미래를 보는 거예요. 오늘의 양식이 아니라 미래의 양식, 새끼들의 양식, 그래서 즉각 동료들에게 알리고, 전갈을 받고 달려온 동료들과 더불어 지렁이의 여기저기 도처를 물어뜯어서 수명을 단축시키고, 그리고 주변의 흙을 끌어다가 지렁이를 덮어서 숙성을 시킴과 아울러 새끼들의 집을 삼는 거예요.


# 참매미 굼벵이


그래요. 개미는 그렇게 이사를 해버리더군요. 수천 수만, 아니 어쩌면 수십만 마리의 작은 개미들이 흙을 물어다가 지렁이를 덮는데 그 자체가 집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이사를 해버리는 거예요. 집을 짓고 이사를 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글쎄, 오전 열 시 무렵부터 산그늘이 생길 때까지였으니 한 일곱 시간 정도나 되려나? 어쨌든 내 입에서 나온 소리란 단 한 마디, “야아 그것 참” 뿐이었지요.

하긴 “야아 그것 참”은 그때 뿐만은 아니었지요. 산속에 들어간 이후 “야아 그것 참”은 거의 매일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 말이 아예 내 입에 열렸다고 해도 뭐 틀리진 않을 거예요. 수확이 끝난 뽕나무에 열린 오디 열매만 해도 그래요. 도대체가 말이에요, 엄마. 4월에 오디가 열려서 5월과 6월에 수확을 다 끝내버렸는데 열매가 또 열리는 거예요. 그런 뽕나무를 엄마도 본 적이 있을까?

엄마는 아마 그런 뽕나무를 본 적이 없을 거예요. 나무를 잘라내지 않고 계속 키우면서 뽕잎을 따다가 누에를 길렀던 엄마가 그런 기현상을 접했을 리가 없지, 안 그래요? 그래요. 요즘은 뽕나무를 심는 이유가 누에를 치자는 것은 아니고 대부분 오디 열매를 얻자는 데 있어요. 그러다 보니 오디가 잘 열리는 방향으로 뽕나무를 관리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관리라는 게 뭐냐 하면 말이에요. 오디 열매를 수확한 뒤에 가지를 죄다 잘라내 버리는 거예요. 가지를 잘라내면 새로운 가지가 나온단 말이거든요. 바로 그것, 새로 난 가지에서 열리는 오디는 크기도 굵고 개수도 훨씬 많다는군요. 그 이유에 대해서는 뽕나무밭의 상징적인 주인이랄 할 수 있는 할머니가 일도양단, 아주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더군요.
“아 지가 죽을 것 같은게, 죽기 전에 후손이라도 많이 남길려고 그러제.”


# 겁나게 맛있는 밀대버섯


“아니 긍게, 뽕나무를 불안에 떨게 해서 열매를 더 많이 열리게 하는 것이라고요? 사람이 참 싸가지없는 짐승이네요 잉?”
“아 싸가지없은게 사람이제.”

할머니의 그 한 마디에 내 말문이 꽉 막혀버리더군요. 이것저것 못 먹는 것이 거의 없이 다 먹는 내 입에서 감히 그런 말이 나왔다니, 그것 참, 순간적으로 얼굴이 확확 뜨거워지면서 고개가 푹 수그려지더라고요. 그 바람에 수확이 다 끝난 뽕나무에서 열매가 또 열리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여쭤보지도 못하고 말았지요. 그것도 후손을 남기고자 하는 뽕나무 나름의 안간힘이겠거니, 하는 쪽으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말았지요.

그런데 엄마, 그 할머니가 말이에요. 허리가 어찌나 꼿꼿하고 걸음걸이도 재빠른지 볼 때마다 내 안에서 질투가 무럭무럭 피어나는데 말이에요. 연세를 여쭤봤더니 엄마보다도 훨씬 많은 이제 곧 아흔 살이 될 예정이라지 뭐예요. 엄마는 여든도 못 채우고 돌아가셨는데 이 할머니는 아흔이라니, 아흔이 내일인데도 저리 팔팔하시다니, 할머니를 보고 있노라면 내 안에서 깊은 우울 같은 것이 올라오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은 좋기만 하더라고요.

결혼은 엄마와 비슷한 나이 열다섯에 했다더군요. 친정이 어디냐고 여쭤보니 김제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아니 김제만경 그 너른 들판에서 어쩌자고 이런 산골짜기까지 들어오셨냐고 했더니 중매쟁이한테 속아서 한 결혼이었다더군요. 중매쟁이의 말로는 장성에서도 이름난 부자라 했는데 와서 보니 개뿔이나 아무것도 없었다고,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 일 년이나 걸렸다고, 일 년 뒤에서야 사실을 알게 된 친정어머니가 중매쟁이를 열 번도 넘게 찾아가서 머리끄댕이를 질질 끌고 다녔다고, 그러면서 킬킬 웃어대는데 참 귀엽기도 하더군요.


# 한여름의 오디


“아 그래봐야 뭣 할 것이여. 첫날밤도 다 치러부렀는디.”
“첫날밤? 첫날밤이 머시간디요.”
“아따, 오살허고 자빠졌네.”
“어쨌든 뭐, 후회는 안 하시죠?‘
“할 것도 많은디 후회는 뭔 먹을 것이 있다고 할 것이여.”

하긴 후회할 일은 전혀 없을 것 같기도 하더군요.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농촌에서 할머니는 아들이 셋이나 내려와 있었으니까요. 서울바람이 불어서 죄다 서울로 갔던 아들들이 사오 년 전부터 하나씩 내려와서 황무지가 되어가는 산속의 땅을 일궈 뽕나무를 심었다네요. 그것이 어찌나 오지게 즐거운지 할머니는 거의 매일 뽕나무밭으로 출근을 하시는 거예요.

할머니의 집에서 뽕나무밭이 있는 산속까지는 십 리도 넘어요. 게다가 비탈길이에요. 그런데도 할머니는 하나도 힘들어 하지 않는 표정으로 뽕나무 밭을 둘러보는 거예요. 그렇다고 무슨 할 일이 있어서도 아니에요. 뽕나무마다에 수북하게 쌓아놓은 퇴비를 뒤적뒤적하는 게 하는 일의 전부지요. 퇴비 속에는 뭐가 있나, 굼벵이와 땅강아지와 지렁이가 있지요.

그래요. 뽕나무에 주는 거름은 완전 유기질이에요. 화학비료는 한 톨도 섞여있지 않다네요. 그러다 보니 지렁이와 땅강아지와 굼벵이가 살림을 차려놓고 살면서 흙을 일으켜 세우고, 그 덕분에 뽕나무는 숨통이 막히지 않고 씩씩하게 자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할머니는 그 지렁이와 굼벵이와 땅강아지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그렇게 날마다 찾아다니시는 거예요. 그런데 흙 속에 그런 동물들이 많다 보니 두더지가 꼬여서 그것은 또 걱정거리라더군요. 하긴 뭐, 그런 정도의 걱정거리마저 없다면 사는 재미가 반감될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말이에요, 엄마. 그렇게 해서 나는 산속에 참매미가 왜 그렇게 많은가 하는 의문을 풀 수 있었는데 말이에요. 매미, 밤낮없이 시끄럽게 짖어대는 쓰르라미 종류가 아닌, 메엠 메엠 멤 멤 메에에에에, 하고 그렇게 처음은 큰소리로 나중은 진양조로 길게 자지러드는 소리를 내다가 뚝 그치는, 그쳤다가 한참이 지난 뒤에 다시 소리를 내는 참매미 말이에요.

이 참매미는 소리가 참 아름답거든요. 하루 종일 듣고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고 시끄럽다는 느낌도 안 들거든요. 그런데 요새는 농촌에서도 참매미 소리를 듣기가 매우 어려워졌단 말이거든요. 우리 집에서도 들리는 건 밤낮으로 울어대는 쓰르라미 종류뿐이란 말이거든요. 그랬는데 세상에,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서 짐을 풀어놓은 첫날부터 참매미 소리가 들린 거예요.

어라, 이건 뭐냐? 조금은 의아해서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아득한 유소년 시절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그렇게나 오래 됐더라고요. 참매미 소리를 들어본 지가 말이에요. 그렇다면 왜 참매미 소리가 그동안 들리지 않았었는가. 어째서 매미는 죄다 시끄러운 쓰르라미 종류만 남아 있는가. 예전에는 그런 의문을 한 번도 안 가져봤었거든요. 그랬던 내가 산속에 들어와서, 할머니네가 뽕나무 거름으로 준 퇴비들 속에 굼벵이가 잔뜩 들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됐던 거예요. 아니 그것은 뭐 생각이라기보다 그냥 한순간에 확 깨달았다고 해야겠지요.

그래요. 매미도 참매미는 그 애벌레인 굼벵이가 화학물질이 섞인 흙 속에서는 못  살아가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깊은 산속이 아닌 곳에서는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참매미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된 것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참매미도 그 속성이 반딧불이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봐도 무방한 것 같더라고요.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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