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세일즈맨’의 신화

문어발 확장 논란이 일기도 했던 웅진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후폭풍’이 환산되고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웅진홀딩스 경영권을 노리고 ‘의도적 법정관리’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지난 4일 스스로 웅진홀딩스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겉으론 “여론이 악화돼 사임했다”고 밝혔지만 채권단 압박이 거세졌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우리, 신한은행 등 채권단은 법정관리 직후부터 줄곧 “윤 회장이 법정관리인으로 선임되지 않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최근엔 모든 계열사를 팔겠다며 윤 회장을 압박하기도 했다. 학습지 시장에서 자리를 잡은 뒤 정수기 등에서 큰 손으로 자리잡았던 ‘웅진’의 몰락은 경제계에 또 다른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윤 회장이 사퇴했지만 아직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윤 회장이 웅진홀딩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도 회사 지분 73.92%를 보유한 1대 주주로 회장 지위에는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양측이 첨예하게 맞선 부분은 법정관리인으로 누가 선임되느냐 여부다. 관행대로라면 윤 회장의 공동 대표이사직 사퇴로 홀로 남은 신광수 웅진홀딩스 대표이사가 법정관리인을 맡을 가능성이 크다. 2006년 통합도산법에 근거해 도입된 ‘기존 관리인 유지’ 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당초 기존 경영진이 경영권을 놓칠까 봐 회생 절차를 꺼리지 않게 하겠다는 의도로 도입됐다. 하지만 오히려 기업 오너가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법정관리행을 남발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자산 빼돌리기’ 논란

채권단은 웅진 측 인사를 법정관리인에서 배제하거나 채권단 추천 인사를 공동 관리인으로 선임해달라고 법원에 건의할 계획이다. 웅진 측 인사가 단독 관리인이 되면 웅진 회생 계획안을 자기 뜻대로 작성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만큼 채권단의 불신이 큰 셈이다.

실제로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 신청 직전에 웅진씽크빅과 웅진에너지에 진 빚 530억원을 앞당겨 갚아 자산 빼돌리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채권단은 이 돈 530억원을 되찾아야 한다는 입장인데 웅진 측 인사가 단독 관리인이 되면 채권단 뜻을 관철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웅진그룹의 도덕적 해이를 두고도 시끄럽다. 법정관리 신청 직전인 9월 24~25일 윤 회장 부인 김향숙 씨가 웅진씽크빅 주식 4만4781주를 처분한 것을 두고 금융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극동건설도 법정관리 신청 직전 자사 소유의 오션스위츠 제주호텔 보유지분 전량을 웅진식품에 매각해 사전에 재산을 빼돌린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법정관리를 둘러싼 도덕적 해이 논란이 커지자 금융당국은 기업 구조조정 제도 개선안 마련에 나섰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기업이 회생보다는 경영권 유지와 채무 감면을 노려 법정관리로 도피하는 사례가 많다”며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극동건설 인수’ 부담

앞으로 웅진그룹이 정상화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단 윤 회장이 채권단 압박에 백기를 든 만큼 웅진그룹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웅진코웨이 매각대금으로 웅진홀딩스 빚을 갚고 건설, 태양광 등 부실사업 부문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다. 채권단은 웅진씽크빅, 웅진식품 등 알짜 계열사 매각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변수는 있다. 갑작스레 법정관리를 신청한 윤 회장에 대해 채권단 불신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윤 회장이 홀딩스 대표를 사임했지만 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영에 개입할 경우 채권단과의 갈등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웅진 사태’로 금융권은 무려 1조원에 가까운 대손충당금 ‘폭탄’을 맞게 됐다. 충당금은 고스란히 순이익에 연결되므로 가뜩이나 부실에 따른 이익감소에 시달리는 금융회사에 다시 한번 이익 비상이 걸리게 됐다.

금융당국과 금융계에 따르면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웅진홀딩스와 극동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당장 8500억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은행 보험 저축은행 등 금융권이 웅진그룹 계열사에 지원한 여신은 총 3조원이다. 이 중 1조6000억원 가량이 이번에 문제가 된 곳에 집행됐고 그 중 절반 정도에 대해서는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대손충당금을 쌓아야 할 여신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웅진홀딩스 극동건설 각각 3700억원, 3300억원, 극동건설이 진행하던 PF사업대출 5600억원, 사실상 청산절차를 밟고 있는 웅진폴리실리콘 3200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웅진홀딩스의 경우 주식담보대출이 대부분이어서 충당금 규모가 작지만 극동건설 관련대출은 거의 무담보대출이어서 충당금 규모가 크다.

‘한 두 곳 더 위험’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웅진홀딩스 차입금은 주식담보가 있기 때문에 20%는 추정손실, 나머지 80%는 고정이하여신으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극동건설과 관련한 차입금은 100% 추정손실로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추가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웅진그룹의 여타 계열사 여신과 이와 연계된 협력업체들의 대출부실에 따른 추가 충당금 적립액 등을 따지면 웅진 사태에 따라 쌓아야 할 총 충당금 적립액이 1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금융당국과 금융계는 파악하고 있다.

은행들은 여신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하고 단계별로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는다. 은행별로 단계별 충당금 적립비율에는 차이가 있지만 추정손실의 경우 돌려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대출이기 때문에 모든 은행들이 100만원을 빌려줬다면 100만원 전부를 충당금으로 쌓고 있다.

금융권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부실이 발생해 수익성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부실에 대비해 쌓아놓는 대손충당금 규모가 늘어나면 그만큼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LIG건설 삼환기업 웅진그룹 등 대기업들은 여신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부실이 발생하면 은행의 타격도 크다"며 "지속적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대형 악재들이 이어졌기 때문에 올해 초 세웠던 경영계획을 달성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웅진의 위기는 다른 기업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웅진 외에 2곳의 대기업이 금융감독원의 재무 상태 평가를 받아온 것으로 드러나며 기업들은 다음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 재무건전성 확보를 최우선으로 비상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우량 기업들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집안의 실탄을 점검하는 흐름이다.

롯데 ‘비상경영` 선포

산업계에 따르면 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유동성 위기에 빠진 기업들은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초강수까지 동원하며 한푼이라도 아끼고자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3년째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지난 2010년부터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 핵심 계열사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바람에 대우건설과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대한통운 등의 주요 계열사들을 모두 매각했다.

대한해운은 올해 초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며, 한진해운 역시 올해 상반기 80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는 등 해운사들도 근근이 연명하는 처지다.

현금 확보도 급선무다. CJ제일제당은 지난달 자사주 22만주를 총 696억3000만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대한통운 인수로 악화된 재무 부담을 덜기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이 1년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 차입금은 올 상반기 기준 1조6216억원으로, 대한통운 인수 직후인 지난해 말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2010년 말에 비해선 크게 늘었다.

STX그룹은 계열사 지분 매각과 계열사 간 합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동부그룹은 주요 계열사별 선제적 재무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재무구조를 갖췄다고 평가받는 기업들도 웅진 사태를 지켜보며 비상경영의 고삐를 죄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순조로운 해외 매출을 기록하면서도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시장의 각종 변수를 점검, 관리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전 계열사가 구체적인 체질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경제계에 몰아닥칠 먹구름의 신호탄이 ‘웅진’이 아닐지 업계의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분위기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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