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득인가 실인가

우리나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300㎞에서 800㎞로 늘리고, 탄두 중량은 현행대로 500㎏을 유지하기로 하는 ‘한·미 미사일 지침’이 11년 만에 개정됐다.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확대되면서 우리나라 남부 지역에서도 북한 전역에 대한 타격 능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북한의 위협을 불식시키는데 큰 진전이 있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탄도미사일 사거리와 중량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쳐 ‘하나마나 뿐’인 지적이 제기되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동참하는 대가나 조건으로 지침을 개정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에서는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두고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를 거스르는 행위라고 평가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방어용 활용 기대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늘어난 건 ‘진전된 성과’라는 게 정치권의 반응이다. 청와대 천영우 외교안부수석비서관은 “한?미 미사일지침을 개정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북한의 무력도발을 억제하는 데 있다”며 “만약 북한이 무력공격이나 도발할 경우에는 북한의 핵미사일 전력을 조기에 무력화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효과적이고 다양한 수단을 확보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민주통합당 윤관석 대변인은 “개정된 한·미 미사일 지침은 북한 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안보증진과 과학기술 발전의 제약을 완화하였다는 측면에서 미사일 주권의 회복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한 대선후보들도 모두 “환영한다”는 논평을 했지만 문재인 후보는 방어적 목적으로 안철수 후보는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방어용으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주요 미사일 발사기지와 발사대가 500㎞ 이내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개정으로 미국의 도움 없이 북한의 미사일전력을 무력화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도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린 것은 바람직한 것"이라며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나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주변국들에 비해 미사일 사거리나 중량이 턱없이 모자란다. 탄도미사일 사거리 800km는 미흡한 것이며 최소 1000km 이상은 돼야 하고 중량도 500kg이 아니라 1000kg 이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당초 사거리는 제주도에서 북한 전역을 사정권에 넣을 수 있는 1000㎞, 탄두중량은 1t을 미국 측에 요구했지만,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한 미국 측의 반대로 ‘사거리 800㎞, 탄두중량 500㎏’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홍현익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가상적국이 북한 밖에 없는가. 북한 아니면 아무도 위협이 안 되는 것인가”라며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1000km를 넘어야 한다. 상징적 의미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마나한 개정”이라고 지적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원광대 총장)은 “탄도미사일 사거릴 늘린 건 거리를 300km에서 800km로 늘린 것에 불과할 뿐 큰 의미가 없다”며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함으로써 이 지침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고 따라서 앞으로 당분간 개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린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800km로 묶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MD 동참 대가?

야당 의원을 비롯 일부 전문가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말에 서둘러 한·미 미사일 지침을 개정한 것이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동참하는 대가나 조건은 아닌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확인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럴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 천영우 외교안보수석은 지난 7일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편입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부인하지도 그렇다고 명시적으로 시인하지도 않았지만 MD체제 동참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했다.

천 수석은 당시 “우리는 북한 핵미사일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능력이 모자란다. 미국의 MD 망에서 수집하는 북한의 모든 미사일, 군사 활동에 대한 정보는 실시간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을 스스로 확보할 때까지는 미국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고 답변했다.

천 수석의 답변은 미국의 군사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협조를 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 협조가 MD체제 동참하는 것으로 읽히고 있다. 미국이 미사일 사거리를 늘려주는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했다면 그것이 MD체제 동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주통합당 윤관석 대변인은 “이번 개정이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처럼 MD참여나 한일정보보호협정 재추진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변인은 “최근 MD참여에 관한 캐슬린 힉스 미 국방부 정책담당 수석부차관이나 우리 외교소식통의 언급처럼 사거리 연장의 대가로 MD참여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MD참여는 과거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천문학적인 소요예산과 주변국 상황, 기술적 군사적 이유로 유보해 왔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사전문가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은 “정상 간 외교의 성과라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협상 전략은 MD에 참여함으로써 부수적으로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는 것이었던 만큼 그 부분 설명도 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김 편집장은 “미사일 사거리 문제가 다른 안보 현안과 함께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다뤄질 사안인데도 이 문제만 따로 떼어, 그것도 일요일(7일) 오후에 발표했다”며 “기존 현안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기 위해 반대급부로 미국의 MD에 동참하기로 했다면 득보다는 실이 클 것”이라며 “MD 참여라는 최악의 결과만은 비켜갔으면 한다”고 우려했다.

당장 이달 하순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SCM에서는 미사일방어 체제가 논의될 예정이다. 미국은 한국과 미사일방어 체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지난달 10일 프랭크 로즈 국무부 부차관보는 독일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호주와 탄도미사일방어와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국방부는 미사일방어 체제 참여 의혹을 적극 부인하고 있다. 국방부 한 관계자는 “미사일방어에 참여할 계획은 없다”며 “한반도 작전환경에 맞는 ‘하층방어 체계’(KA 미사일방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미간 MD를 두고서는 그간 국내 보수적인 군사전문가들조차도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쳐왔다. 천문학적인 예산을 미국 군산복합체 호주머니에 넣어주면서도 그 효과는 극히 미비한 이른바 ‘돈 먹는 하마’라는 지적이 줄곧 제기돼 왔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하면서 동북아 군비경쟁과 신냉전이라는 족쇄를 한국의 발목에 채우게 될 것이라는 우려다.

사정권 들어온 중국 ‘민감’

탄도미사일 사거리가 800㎞로 늘어나면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과 일본의 도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국 동남부와 일본 서부 지역이 사정권에 들어온다. 여기에다 중국이 한?중 관계의 마지노선으로 여기고 있는 MD체제 동참의 대가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미사일기술통제체제, MTCR을 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MTCR은 무인비행체 확산을 통제하기 위한 34개국 비공식 협의체를 말한다. 신화통신은 이어 “한국은 MTCR 회원국으로서, MTCR의 적용 대상이 아닌 최대 사정거리 1500㎞의 눈속임용 순항미사일을 구축하기로 선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중국 정부가 공식적인 논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보도는 중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을 민감하게 보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중국이 볼멘소리를 하는 건 MD체제 편입을 염두에 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일본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확대로 북한 전 지역이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기 때문에 북한의 반발이 반드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양 교수는 “일본 입장에선 북한이 향후 미사일 발사 실험으로 현실적인 위협요인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특히 일본의 오사카와 기이반도를 포함하는 서 일본 전역과 남부 규슈 전역이 사정거리 내에 포함된다는 점을 잠재적인 불안 요소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가 “외교 채널을 통해서 중국과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에 대해 하나의 예의 차원에서 사전에 알려줬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이 향후 동북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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