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만질 수 없는 엄마에게 쓰는 편지-스물다섯 번째



엄마, 벌써 가을이에요. 가을도 아주 깊은, 아침에는 어깨가 오슬오슬 떨려서 외투를 걸쳐야 하는 겨울 같은 가을이에요. 게다가 오랜만에 빗소리마저 들리네요. 그러니까 지금은, 빗소리가 들리는 깊은 가을의 새벽인 거예요. 그래서일까? 한밤중이라고나 해야 할 새벽 2시 무렵에 잠을 깼는데 더 이상은 잠도 안 오고, 다른 무엇을 하고 싶지도 않고, 그냥 멍하니 앉아서 커피나 자꾸 마시고 싶은 거 있죠.

사실은 추석이 지난 이후부터 내 마음이 줄곧 심란해서 말이에요. 어지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자 차분히 앉아서 이런저런 곰살스런 일들을 꽤 많이 했어요. 고구마순도 곱게 뜯어서 삶아 말리고, 감을 따서 곶감도 깎고, 애호박도 따서 얇게 저미듯이 썰어서 말리고, 결명자도 따고, 그러는 도중에 순간순간 흐르는 마음의 눈물을 훔치기도 했지요.

넷째 녀석이 점을 봤던가 봐요. 막네 제수씨 친구가 오래 전에 무병이 들어서, 내림굿을 거쳐 무당이 되었는데 우연히 자리를 같이 하는 기회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고 하다가, 나중에 따로 혼자 찾아가서 점을 쳤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점괘가 말이에요. 어머니가 지금 많이 불편해 하신다고, 그래서 그 자식들의 삶이 부자도 못 되고 결혼도 실패하고 그런다고, 그래서 무슨무슨 굿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 봐요.

나중에 좀 더 알고 보니 내가 아주 큰 죄인이었더군요. 아니 뭐 죄인이라기보다 주인공이라고나 할까. 큰형이 가정도 없이 혼자 살고 있어서 동생들이 불편하다고, 특히 제수씨들이 너무너무 불편하다고, 그런데도 큰형은 재혼할 생각은 안 하고 태평하기 짝이 없다고, 어떻게 하면 결혼할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느냐, 뭐 그런 황당한 내용의 점괘를 무당에게 구했던 모양이에요.

그러자 무당께서 좋은 수가 있다고 했고, 동생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좋은 수라는 얘길 경청했던 모양이에요. 무당의 점괘라는 것이 대개 부적이거나 굿이기 마련인데 말이에요. 아닌 게 아니라 그랬다네요. 굿을 해야 한다고 했다네요. 그 굿판에 주인공격인 내가 참석을 해야 제대로 된 굿이 되겠지만, 참석을 거부한다면 그래도 효과는 있다고, 그렇게 꼬드겼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집안의 큰아들, 그러니까 주인공격인 내 속옷이 필요하다고, 다른 사람도 아닌 제수씨가 그것을 가지러 왔는데 말이에요. 허헛 참, 하도 기가 막혀서 비명을 질렀지요.



“뭐라고요? 내 빤쓰를 달라고?”
“아니 그냥 저기, 속옷 한 벌만 간단하게 주시면 돼요.”

“속옷이나 빤쓰나, 그게 그거지, 아니 근데 제수씨, 지금 이 상황이 제대로 된 상황이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저는 뭐…….”

사실은 뭐 그랬지요. 서로가 민망한 자리였지요. 내가 제수씨에게 굳이 그런 질문을 던질 일은 아니었지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나는 나대로 어이없다는 식의 쓴웃음이나 피식피식 웃고 있었고, 제수씨는 제수씨대로 민망하고 면구스러워서 얼굴이 홍당무가 된 채로 입술이나 벙긋벙긋하는 식의 웃음을 깨물고 있어야만 했던 것이지요.

어쨌든 나로서는 너무너무 당혹스런 사건이었어요. 큰형을 생각하는 동생들의 마음이야 고맙고 감사하고 기특하고 등등 뭐 세상의 온갖 수식어를 다 동원해도 모자랄 지경이긴 하지만, 그런데 그 마음의 표현이 하필 천만 원도 넘게 들이는 굿이어야 하는가, 하는 무참한 의문이 없을 수 없는 거란 말이거든요.

재혼 문제만 해도 그렇지요. 재혼도 결혼인데 결혼이라는 것이 내 마음을 빼앗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 굿을 한다고 없는 상대가 어디서 뚝 떨어져 오는 것인가? 새파랗게 젊은 것들의 생각이 어쩌다가 그런 지경으로까지 이상한 파격으로 굽이쳐 돌게 되었는지 답답하구나, 싶으면서도 뭐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너희들 왜 그렇게 미쳐버렸느냐, 하는 소리가 내 입에서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소리 백 번 해봐야 들어줄 녀석들이 아니라는, 내 입만 아프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기 때문이었겠지요.

그러니 뭐 어쩌겠어요. 달라는 것을 주지 않으면 나를 계속 보채며 쫓아다닐 텐데 어쩔 것인가 말이에요. 별로 잘 입지도 않는 팬티 한 장에 러닝셔츠 한 장을 제수씨 손에 들려주었지요. 그것을 받아든 제수씨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라는 표정으로 묻더군요.



“정말 안 가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얄밉기도 하지요. 무슨 그런 질문이 다 있답니까. 그것은 결국 안 가면 당신에게 큰 손해가 있을 텐도 손해를 감수하겠느냐, 뭐 그런 일종의 경고문이잖아요. 그러면서 배실배실 웃는데 그것 참, 신분이 제수씨만 아니라면 한 대 칵 쥐어박고 싶더군요. 그런데도 제수씨는 집을 나서면서 한 번 더 마지막 발언을 하더군요. 오후 네 시부터 굿을 시작한다고, 장소는 목포의 어디어디라고,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꼭 오시라고, 안 들었으면 좋았을 그 말을 듣고 나니 내 마음이 또 아주 ‘지랄’ 같아져 버리는데 말이에요.

평소에는 시계도 잘 안 보던 내가 그날은 열심히, 아주 열심히 시간을 확인하고 있는 거 있죠. 제수씨가 말한 오후 네 시부터 다음날 새벽 세 시까지 아마 열 번도 넘게 시계를 보고 있었을 거예요. 물론 거의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지요. 책을 펴도 글자가 보이지 않고, 음악을 틀어도 귓속에 들리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무당의 구음(口音)뿐이고, 영화를 보자고 비디오를 작동하면 또 무당의 춤사위만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그런 아주 지독한 시간을 무려 열두 시간 가까이나 지내고 있는데 어느 순간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오더군요.

넷째 녀석이었어요. 엄마가 큰형의 애지중지한 보살핌으로 편하게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는 뭐 그런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문자였지요. 돌아가신 엄마가 무당의 입을 빌려서 당신의 생각을 자식들한테 그렇게 전했다는 거예요. 그 문자를 보자마자 내 입에서 한 마디가 나왔지요. 내 말은 하나도 안 믿어지고, 무당의 말은 모조리 다 믿는다 이거지? 나쁜 놈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그거였어요. 내가 떠나야 할 모양이구나. 가까이 있다 보니 자꾸 눈에 보이고, 눈에 보일 때마다 숙제나 혹은 문제로 다가오면서 답답해지는 모양이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내가 이제 정말로 고향을 떠나야 하는가? 아무 말도 없이, 멀리로 떠나서 연락도 안 하고 그래야 하는가?

앉으나 서나 돈을 요구하는 도시가 싫다고, 고향으로 가서 조용히 그러나 실속 있게 살아보자, 하고 내려온 것인데 이제는 그놈의 결혼 문제가 나를 자꾸 어디론가 떠다미는구나, 아하 참, 아하 참,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날이 얼마나 계속되었지요. 내가 요새 갯벌에서 조개를 잡는 굉장히 힘든 일을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힘든 일이 하나도 힘든 줄을 모르게 그 사건은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집에만 들어오면 그저 멍해져 버리는데 말이에요.



멍한 채로 우두커니 마당에 앉아 있기를 얼마나, 며칠이나 했던가. 그때 언제부터인지 마당의 풍경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아, 안 되겠다. 고구마 순이라도 뜯어서 말려야겠다. 그렇게 그 일을 시작했지요. 고구마 순을 뜯어서 이파리를 따 내고, 삶고, 말리고, 애호박을 따다가 사각사각 썰고, 말리고, 땡감을 따다가 또 사각사각 소리도 고요하게 깎고, 말리고, 그 일을 하고, 또 하는 동안 한 달이 훌쩍 흘러버린 거예요.

지난 5월 꽃피는 봄날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사다가 심었던 고구마가 말이에요. 초여름에는 비가 안 와서 날마다 물 주느라 애간장을 다 태웠고, 늦여름에는 비가 너무 많아서 저게 저러다가 폭삭 썩어버리는 게 아닌가 해서 또 애를 태웠는데 가을이 되고 보니 엄청 무성해져서는 그냥 순을 따고, 또 따도 계속 남아 있는 거 있죠.

고구마 순만 그런 게 아니에요. 호박, 이 애호박이 말이에요. 처음 심을 때는 늙은 호박을 얻어서 겨울에 호박죽을 쒀먹자 하는 것이었단 말이거든요. 그런데 여름의 가뭄과 태풍으로 영 부실해지고 말았었거든요. 그랬던 녀석들이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아주 그냥 난리가 났어요. 애호박은 원래 겨울을 목전에 둔 가을에 많이 열리기는 하지만, 올해는 그 정도가 ‘너무하다’ 싶을 정도라고나 할까. 그제도 따고 어제도 땄는데 오늘 또 따야 할 녀석이 눈에 띄곤 해요.

감은 또 어떤가요.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 태반이 떨어져 버렸는데 그래도 남은 것이 있어서 글쎄 이게 한 백여 개쯤 되려나. 감 중에서도 아주 큰 대봉을 심은 까닭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내 마음에서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지요. 홍시를 유달리 좋아해서 그것만 보면 “아따 맛나게 생겼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내가 그것을 심고자 했었을까. 심었어도 한두 그루 정도에서 그쳤겠지요. 그런데 세 그루 심어놓고 다음 해에 또 세 그루를 심고, 그것도 모자라겠다 싶어 다음 해에 또 세 그루를 사다가 심었단 말이에요.



물론 그 중에 두 그루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치면서 죽고 말았지요. 그래도 일곱 그루나 있는 거예요. 장에서 사다 심고 이 년 뒤부터 열매가 열리기 시작했으니 생각해봐요. 지금 육 년째에요. 감나무 한 그루에 백 개 이상이 열렸다가 적어도 오십 개씩은 수확을 할 수 있단 말이에요. 올해는 태풍이 아주 크게 와서 많이 떨어져 버리긴 했지요. 그래도 끝까지 버티고 남아서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혹은 익어 있는 커다란 감이 지금 백 개도 넘는 거예요.

이 많은 감을 보고 있는 내 마음이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간당간당하고 있는 거예요. 며칠째나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감나무를 쳐다보았지요. 그러다가 마침내, 드디어 결심을 했어요. 곶감을 깎자. 홍시를 그토록 좋아했던 엄마도 없는데  곶감을 깎자. 곶감을 깎아서 엄마의 사진 앞에 수북이 쌓아놓고 하나씩 빼먹자. “엄마, 곶감 맛있어?”하고 물어보며, 내가 맛나게 하나씩 빼먹자. 뭐 그런 생각으로 곶감을 깎기 시작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쭈그리고 앉아서 곶감을 깎고 있는 내 입에서 ‘아리랑’이 흘러나오지 뭐겠어요.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라리요 아리아리∼ 고∼개를 넘∼어간∼다. 열라는∼ 콩팥은 왜∼ 아니 열고∼ 아주까리 동백이 왠말인가∼.

나의 그런 행동이 가령 청승이라고 한다면, 그런 청승을 떨고 있노라니 불현듯 고개가 크게 끄덕거려지더군요. 내가 고구마 순을 따서 말리고, 애호박을 썰어서 말리고, 곶감을 깎고 하는 그 모든 행동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엄마에게서 내게로 전해졌다는 것 말이에요.

어렸을 때는, 엄마의 그런 행동이 의아스럽기만 했지요. 왜 멀쩡한 호박을 그냥 먹지 않고 썰어서 햇빛에 말리는가. 고구마 순은 또 왜 그러는가. 곶감은 감을 깎아서 말리면 더 달고 졸깃한 맛이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를 하고, 또 그게 맞는 방법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호박이나 고구마 순 같은 것을 말리는 이유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는 마음이었지요. 겨울이면 그것들을 맛나게 먹으면서도, 애초에 가졌던 의문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다음 해가 되면 또 그런 의문을 갖게 되는 거예요.

“고구마 순을 왜 삶아서 말려?”
“어린 호박은 그냥 먹으면 연하고 맛있는데 왜 썰어서 말려?”

그런 질문을 무던히도 했던 내가 지금은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하긴 엄밀하게 따지자면 순수한 자발성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기도 하지요. 어려서부터 엄마가 하는 일을 보고 듣고 느끼며 의문을 품기도 하고, 그 의문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으로 배우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테니 말이에요. 그래요. 엄마는 돌아가셨어도 엄마의 손길은 내 안에 이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엄마는 한 번도 나를 찾아주지는 않더군요. 돌아가신 지가 벌써 일 년 반도 넘었건만, 한 번도 내 꿈속을 찾아주지 않고 있어요.



김초혜 시인은 어디선가 그랬지요. 돌아가신 자신의 친정어머니에게, 엄마 없는 세상은 너무 외롭다고, 그러니 꿈에서라도 자주 좀 찾아와 달라고, 그렇게 당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뒤로 그분의 꿈에 친정어머니가 자주 방문해 주셨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엄마는 그렇단 말이거든요. 여기서 거기로 이를테면 돌아가신 이후 한 번도 내 꿈에 안 보였어요. 내 마음이 엄마에게 닿지를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곳이 너무 좋아서 아들 같은 건 벌써 잊어버린 것일까?

그나저나 말이에요, 엄마, 엄마가 정말로 그날 무당의 입을 빌려서 그런 말을 했을까? 지금 아무 불편함이 없다고, 큰아들이 애지중지해줘서 편안하다고, 그런 말을 엄마가 정말로 그날 무당의 입을 빌려서 동생들에게 했었어?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이제 뭐 결혼 같은 문제에 신경을 안 써도 되는 거잖아. 왜냐하면 동생들이 굿을 한 이유가 원인무효 돼버린 것이니까, 그렇잖아, 응?

그러고 보니 이것 참 재밌네. 무당은 결국 자기가 엉터리라는 것을 실토한 셈이 돼 버린 것이니 말이야. 돌아가신 엄마의 현재 상태가 너무 안 좋다고, 그래서 굿을 해야 한다고 했던 무당 자신의 입으로 엄마가 지금 편안다고 했으니, 아핫 참, 이게 뭐냐고요.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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