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가장 에로틱한 삶의 현장 갯벌에서-다섯번째


# 정상적인 종패뿌리기


바람이 매우 심하게 불었다. 바다가 흔들렸다. 흔들리는 바다는 들어온 채 나갈 줄을 몰랐다. 술은 내가 마셨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는 내용의 시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나는 날이었다.

바닷물 속에서 바닷물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물은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나가기는커녕 들어오고 있었다. 사람이 살아오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이제 물이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나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수십 년을 갯가에서 갯물을 먹고 살았어도 바다의 속마음을 모르겠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종패를 뿌리기로 한 날이었다. 종패는 간밤에 이미 도착해서 트렉터에 옮겨진 채로 한나절 내내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종패를 뿌린 뒤에는 또 바지락을 이십 킬로그램씩 칠십 자루나 캐야 한단다. 그래서 작업 인원을 원래의 일곱 명에서 열 명으로 늘렸다. 그 중에 내가 끼었다.

종패는 이십 킬로그램짜리 오백 포대였다. 트렉터 세 대가 동원되었다. 한 대는 농장주의 것이고, 다른 두 대는 훗날 종패를 뿌릴 사람의 것이니 품앗이인 셈이었다.  그랬다. 바야흐로 종패를 뿌리는 계절이었다. 이 계절의 갯벌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두루 정신없이 바빠진다. 다 자란 바지락 캐기 작업은 작업대로 하면서 새끼 바지락을 새로 심어야 한다.

그런데 물이 안 빠진다. 달과 지구 사이에 무슨 트러블이 있었던 것인가? 조금을 지나고, 물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는 무쉬(無水)도 지나고, 한 물도 지나서 두 물이건만 물이 거의 움직이지를 않는다. 안 그래도 갯가의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이날은 물 빠짐이 더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더딘 정도가 아니었다. 느림보 거북이도 이런 거북이가 없었다.


# 작업은 시작도 못하고 잔식부터


처음에 기세 좋게 갯벌로 들어섰던 트렉터는 물을 만나서 일단 멈추었다. 멈춘 채로 갈매기와 희롱하면서, 이런저런 잡담을 하면서 삼십여 분을 기다렸다. 물이 조금 빠진 것 같았다. 트렉터는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채 일 킬로미터도 못 가서 다시 멈추었다. 멈춘 채로 또 삼십여 분을 기다렸다. 갑갑증이 도진 아줌마는 물속으로 들어가서 굴을 따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시들해졌다.

트렉터는 또 한 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디게, 아주 더디게 빠지는 물의 속도에 맞춰서 전진하기를 십여 분이나 했을까. 트렉터는 다시 멈추었다. 여기서 저기서 트렉터가 한 대 두 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니다. 모여들었다기보다는 저마다 가야 할 길을 가던 중에 물을 만나서 멈추었다. 기왕 멈출 바에는 오랜만에 아는 사람 얼굴도 좀 볼 겸해서 한곳에 멈춘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멈추기 시작한 트렉터가 한 대, 두 대, 다섯 대, 열 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 장이라도 선 것 같았다. 잠이 모자란 사람은 트렉터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졸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물속으로 나와서 가슴장화 속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서성거렸다.

“아이고, 술참거리나 먹제.”

농장주가 선언했다. 아아, 그렇다 참, 오늘 같은 날은 그것도 일이었다. 작업이 시작되면 간식이고 뭐고 챙길 시간이 없을 것이었다. 트렉터 세 대에 나눠 타고 있었던 사람들이 이를테면 메인트렉터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업은 시작도 안 했는데 간식부터 먹어야 하는 상황이 다소 면구스럽기는 했지만 어쩔 것인가. 자리가 좁아서 일부는 물속에 선 채로, 일부는 트렉터에 앉은 채로 닭다리를 집어 들었다.

그랬다. 닭이 있었다. 종패를 뿌리는 날의 간식은 특식이었다. 돼지 족발에, 양념 통닭에, 맥주와 콜라 그리고 막걸리가 곁들여졌다. 그런대로 웃고 떠들고, 뭐라고뭐라고 저마다 한두 마디씩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먹고 있기는 했지만, 가슴을 꽉 채우고 있는 불안을 털어내기는 역시 어려웠다. 아무래도 오늘 일은 틀렸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바지락 칠십 자루를 캔다는 것은 이제 어림도 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종패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은 처분해야 했다. 종패 십 톤은 아이들의 장난거리가 아니었다. 그 가격만도 어지간한 사람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것이 잘 되면 일 년쯤 뒤에 대여섯 배의 소득이 되기도 하지만, 못 되면 아주 그냥 망했다는 소리밖에 할 말이 없었다. 예전에는 못 된다 해도 최소한 본전치기는 되었다지만, 최근에는 아주 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태풍의 빈도수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그 위력이 인간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었다.


# 종패를 가득  싣고


# 물 영 안 빠지네에~



먹을 것을 다 먹고, 그리고도 한참을 기다렸지만 물은 아직도 정강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릴 수도 없었다. 농장주는 결단을 내렸다. 트렉터는 물을 헤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높이가 일 미터도 훨씬 넘는 트렉터 바퀴가 물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주 미미하기는 하지만, 물이 나가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기다릴 시간은 없었다. 이제 곧 물이 들어올 것이었다.

남자 두 명이 트렉터 위에서 종패 자루를 물속으로 던지기 시작했다. 그 중에 내가 있었다. 이 작업은 목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칼칼하고, 단내가 훅훅 날 정도로 숨막히게 고단한 노동이었다. 일 미터 간격으로 하나씩, 전진하는 트렉터 위에서 종패자루 이백 개를 다 던져 넣은 뒤에서야 비로소 허리를 펴고 숨을 내쉴 수 있는, 이삼십대 젊은 사람들도 한 번 이 작업을 하고 나면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헥헥거리는 일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작업을 다 끝내고 트렉터에서 내린 뒤에도 하늘이 빙빙 돌고 땅이 벌떡벌떡 요동을 치는 것 같았다. 육지에서라면 어디 웅크리고 앉아서 숨이라도 좀 돌리겠지만, 바다에서는 웅크릴 장소도 없거니와,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다. 물이 들어오기 전에 종패자루를 묶은 끈을 잘라내고, 아줌마들이 내미는 그릇에 종패를 부어주어야 했다. 그러면 아줌마들은 그것을 바다에 홱홱 뿌린다.

그런데 이게 뭔가, 어느 순간 내 몸이 그만 넉장거리로 엎어지고 말았다. 바닷물은 무릎에까지 차올라 있고, 발을 디딘 곳이 뻘이다 보니 자꾸만 발이 붙잡히고 있었다. 게다가 트렉터에서 던져놓은 종패자루가 희뿌연 물속에 있다 보니 눈에 보이지가 않는다. 바로 그 눈에 보이지 않는 종패자루에 발뿌리가 걸리면서 내 몸이 보기도 좋게 납작 엎어져 버렸다. 티벳 수도승들의 오체투지가 그만이나 할까 싶을 정도로, 아주 그냥 달팍, 납작, 엎어지고 말았다.

나만 그렇게 넉장거리로 엎어졌는가 해서 몹시 자존심이 상했다. 창피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누가 볼 새라 벌떡 일어났지만, 이미 바닷물과 뻘에 잡혀있는 내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부끄러웠다. 내 신체의 어떤 결함이 원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다가, 바람이, 그러니까 자연이 나를 넘어뜨리고 있는 거였다. 그렇다고 유독 나만 골라서 심술을 부린 것은 아닐 터이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조건의 현장에 있었다. 그런데 왜 나만 넘어지는가 말이다.


# 물 속을 달린다 달려


의기소침해서 하늘도 못 보고, 바닷물이나 보면서, 사람의 얼굴도 차마 쳐다볼 용기를 못 낸 채로 허둥지둥 맡은 바 임무를 다하고자 노력을 했던가 어쨌던가. 그런데 아니었다. 나만 넘어진 게 아니었다. 키는 작아도 배와 허벅지의 두께가 엄청난 젊은 남자, 그 남자가 나보다도 훨씬 요란하게 엎어지고 있었다. 아, 다행이다. 한숨을 놓았던가. 그런데 이 남자,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또 넘어진다. 그리고 잠시 뒤에 또 넘어진다. 그렇게 해서 그는 아마 열 번도 넘게 넘어졌을 것이다.
뭐냐 이거. 이렇게 되면 나만 혼자 넘어지고 말았다는 자존심 회복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가 마구 불쌍해지고 있었고, 미안해서 그를 바라볼 수도 없었다. 그는 옆에 아내가 있었다. 처제도 있었다. 이른바 귀농을 한 사람들이었다. 수원이었다던가. 대도시에서 살다가 대도시 시민이기를 그만두고 고창으로 내려온 사람들이었다. 고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르바이트로 바지락 캐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의 처제가 멀리서 “아이 형부-우”하고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고, 좀 더 가까이에 있던 그녀의 언니, 그러니까 그 남자의 아내가 두 팔을 앞뒤로 내저으며 물속을 달려가서 남편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이 남자, 어처구니가 없게도 자신의 아내가 옆에서 떠나자마자 또 넘어졌다. 그녀는 다시 남편에게 갔고, 아내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일어선 그는 잠시 뒤에 또 넘어졌다. 몸집이 상대적으로 비대한데다가 가슴장화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겠지만, 그렇다고 그 아내가 언제까지나 그렇게 남편의 곁에서 넘어지고 있는 남편을 일으켜 세워주고나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편이 하는 일과 그 아내가 하는 일이 서로 달랐다. 남편은 묶여있는 종패자루를 면도칼로 잘라내는 임무를 맡고 있었고, 아내는 풀린 종패자루 속의 종패를 뿌리는 일이었다. 어쩔 것인가. 남의 일을 나왔으면 일을 해야 하는 것, 불행하게도 그녀와 내가 짝꿍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고자 해서 그렇게 된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허둥지둥 어떻게 하다 보니 그런 구도가 되고 말았다. 나는 물속에서 종패 자루를 건져 올려 그녀가 들고 있는 대야에 부어주고, 그녀는 내가 부어준 종패를 영점 일초 사이에 확, 뿌려대고 다시 대야를 내 앞으로 내미는 일이었다.

매우 검은 눈썹에,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그녀는 마치 십자군 전쟁에서 죽은 남편을 둔 페르시아 공주만큼이나 슬프디 슬픈 눈으로 넘어져 있는 남편을 보고, 순간적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를 보고, 그리고는 슬픔이 너무 커서 할 말이 이것밖에 없다는 투로 “아저씨도 이런 일 처음 하신다고 했죠-오?”하고 묻곤 했다. 조금 전에도 묻고, 아까도 묻고, 또 묻고, 또 묻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의 형식을 빌리고 있었지만 답을 바라는 질문이 아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입을 열어서 안에 있는 것을 토해내지 않으면 가슴이 그만 문드러질 것 같아서, 그래서 잠시 잠깐씩 그런 식으로 숨통을 터뜨리는 것일 뿐이었다. 아저씨도 처음이지만 한 번밖에 안 넘어졌는데 우리 남편은 왜 저렇게 자꾸 넘어지는지 모르겠다고, 그런 푸념이라도 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마음의 저 깊은 곳을 그녀는 그렇게 “아저씨도 이런 일 처음 하신다고 하셨죠-오”하는 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 하나 둘씩 모여든 트렉터들


입으로 하는 말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온 몸으로 하는 말이야말로 말 중의 말일 때가 인생에는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물속에서 자꾸만 넘어지는 남편을 둔 아내도 물론 그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일을 해도 이것은 일도 무엇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그녀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떤 불만도, 그 어떤 농담도, 그 어떤 몸짓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래, 그런 것이 있었다. 물속에서 뿌리는 종패가 온전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너무 과한 소망일 수 있었다. 조류에 쓸려 떠내려가거나, 물속에서 사람의 발에 밟혀 깨지고 있는 바지락 새끼만도 아마 수천 아니 수만 마리를 넘어서고 있을 터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의 마음을 굳이 헤아려본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보나마나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가고 있을 터이지만, 그러나 주인은 그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한 마디, 조심하세요, 그 말뿐이었다. 트렉터 바퀴에 몸이 다칠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라는, 그 한 마디만을 마치 녹음이라도 해놓은 듯이 주인은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 침묵의 언어는 바다가 그에게 가르쳐준 공부였을까? 그래, 그럴 것이었다. 수양이 덜 된 사람이라면 “아이고 나는 망했네, 망했네” 하고 울부짖겠지만, 그는 이미 그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

그러는 중에 해는 지고 어둠이 몰려왔다. 어둠과 함께 물도 들어오고 있었다. 들어오는 물에 갇히면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러나 아직 거기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남은 종패는 어쨌든 뿌려야 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뿌리는 것도 아니었다. 뿌리는 형식을 빌려서 그냥 마구 내던지고 있었다.

물이 자작자작한 갯벌에 뿌려야 할 종패를 물이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 속에, 그것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 내던지고 있으니 그것의 안녕을 누가 어떻게 보장한단 말인가. 그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주인도 알고, 일하는 사람들도 알고,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넘어지고, 또 넘어지기를 마치 밥 먹듯이 해온 남자는 보나마나 바닷물을 한 됫박은 마시고 말았겠지만, 그것을 고통스러워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하루의 일을 끝내고 있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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