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처럼 드리워진 구름, 그 사이를 파도타기 선수처럼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달
물감처럼 드리워진 구름, 그 사이를 파도타기 선수처럼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달
  • 승인 2012.12.1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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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가장 에로틱한 삶의 현장 갯벌에서-일곱번째

# 누가  그린 그림일까


갯마을 여기저기에 장작이 쌓여 있어서 저 장작의 용도가 뭘까, 내심 궁금했는데 이제야 그것을 알겠다. 바야흐로 겨울이다. 손이 시리다. 아 정말로 손이 시리다. 발끝도 시리다. 깨질 것 같다. 아니 깨지는 것 같다. 바지락이나 혹은 조개껍질이 발에 밟혀 깨질 때마다 소름이 온 몸으로 좍좍 흐른다. 내 발가락이 그렇게 깨지는 듯한 느낌이다.

장갑을 끼고, 그 위에 또 장갑을 끼고, 별 짓에 별 짓을 다 해봐도 그때뿐이다. 아니 그 순간뿐이다. 축축한 흙 한 번 만지고 나면 도로아미타불, 아이고 손 시려, 소리가 절로 입 안을 꽉 채운다.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해서 바지락을 잡는다는 것을, 바지락을 사 먹는 사람들은 알까? 알고나 있을까? 이런 쓸데없는 의문도 한 줄기 홱 지나간다. 미쳤다. 쿡, 하고 실소가 터진다.

알면 어떻고 모르면 뭐 하려고? 그러는 너는 지금 네가 입고 있는 비옷이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있냐? 어린 미싱사들의 손가락을 몇 번이나 바늘이 뚫고 지나갔는지 알고 있어? 아니 그보다도 네가 좋아하는 커피가 어느 나라 어느 오지의 얼마나 어린 소년 소녀들의 피땀과 신음소리로 이루어졌는지 알고나 있냐? 아이고 미안하다. 두 손 두 발 다 들어주마. 내가 내게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을 내가 만들었던가? 그랬었나 보다.


# 아이고 매워서 미치겄네


어쨌든 손이 시렸다. 발도 시렸다. 손이건 발이건 통째로 시리다면 그 괴로움이 조금은 덜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손가락 끝이, 발가락 끝이 시리고 보니 이게 뭐랄까, 그 고통이 배가 된다는 느낌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했던가. 그렇다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모두 뭉뚱그려서 주먹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설령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어차피 끄트머리는 있는 법. 그러니 어쩔 것인가. 우리 자신의 안일한 상황인식을 탓할 수밖에.

그랬다. 우리는 조금 게을렀다. 한 발 늦었다고 해도 말은 된다. 갑자기 추위가 몰아닥쳤다. 새벽 다섯 시. 마을 여기저기에, 트렉터와 경운기가 대기하고 있는 곳마다 깡통불이 타고 있었다. 불 깡통은 경운기에 실리고, 트렉터에도 실렸다. 사람들은 그렇게 불 깡통을 품에 안고 갯벌로 나갔다. 우리만 예외였다. 뭘 저렇게까지 호들갑을 떠나? 뭘 모르는 나는 내심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더랬다. 하긴 뭘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우리의 고용주도 데면데면, 그저 남들의 불 깡통을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갯벌에 나가보니 폴짝폴짝 뛰어야 할 정도로 손이 시리고 발도 시렸다. 시린 손을 입에 대고 호호 불어보기도 하고, 시동이 걸려 있는 트렉터 배기통에 바싹 들이대 보기도 하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그때 그 순간뿐이었다. 아니 뭐 사실은 그때 그 순간조차도 아니었다. 입에 대고 호호 불어본들 찬바람이 몰아치는 갯벌에서 그 온기가 온전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 추워서 코가 빨개진 우리의 농장주


야 이거 이러다가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얼음 드는 거 아냐? 어름이 들면 잘라내야 할 텐데 야 이거 큰일 났다, 등등 뭐 그런 흰소리를 쏟아내며 웃어대는 것으로써 추위를 견뎌내고 있었다.

그렇게 한나절 동안을 그야말로 개고생을 한 뒤에서야 우리는 대오각성, 다음부터는 불 깡통을 품에 안기로 했다. 어떤 생물학자가 이런 말을 했었다지 아마. 생명은 그 어떤 가혹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살아갈 길을 찾아낸다고. 맞나? 맞기는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그런 말은 사실 하나마나한 말 아닌가? 세상사를 하나도 모르는 갓난쟁이라도 물에 빠지면 두 팔 두 다리를 허우적거린다는 것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바이니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불 깡통을 만들어서 트렉터에 싣고 갯벌로 나갔다. 따뜻했다. 그러나 매웠다. 하긴 맵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트렉터 적재함이 모두 해서 아마 두 평도 채 안 될 것이다. 여기에 바구니 등등 온갖 바지락 채취 도구가 실리고, 야간작업이라 배터리 등등 조명기구가 실리고, 거기에 사람이 앉아서 불 깡통까지 끌어안게 되었으니 이게 뭔가. 연기가 마구마구 생산되는데 그 연기가 어디로 갈 것인가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때 아닌 눈물을 철철 흘리며, 연기를 조금이라도 피해 보겠다고 고개를 푹 수그리기도 하고, 뒤로 발랑 젖혀 하늘을 보기도 하고, 그렇게 저렇게 온갖 재주를 다 부려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또 뭔가. 느닷없는 군고구마 생각이 나고 있었고, 군밤 생각도 새록새록 일어나고 있었다.


# 그토록  즐기던 수다떨기도 추워서 중단하고 미이라처럼 앉아만 있는...


아아, 그래, 그렇지 참, 사람은 고생하며 걷다가 말을 타고 편안하게 되면 종을 부리고 싶어 하는 존재라고 했었지 참.
철학은 극한의 상황에서 활짝 꽃을 피운다고 했던가. 저 극악무도한 독일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살아 나온, 죽음의 직전에서 생을 새로이 얻은 뒤에 권력의 본질을 발견한 한나 아렌트가 느닷없이 생각났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절로 실소가 터졌다. 가당찮다. 불 깡통 앞에서 군고구마를, 군밤을 생각하다가 인간의 본성 같은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고 해서 한나 아렌트를 들먹이다니. 

어쨌든 뭐 그렇다. 우리의 바지락 체취 작업은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본바탕의 작업은 벌써 전에 다 끝났다. 그런데도 우리는 작업을 나간다. 이를테면 이삭줍기를 나가는 셈이다. 물론 논밭에서의 이삭줍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논밭에서의 이삭줍기는 하루 이틀 정도에 다 끝낼 수 있지만, 갯벌에서의 이삭줍기는 사실 줍는 게 아니라 캐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시작했다 하면 보름도 넘게 걸린다. 이삭줍기가 끝난 뒤에는 종패를 뿌리고, 그러면 금년의 바지락 작업은 일단 종료를 한단다.

그런데 종패를 뿌리기로 한 날이 임박했다. 그래서 바빴다. 땅을 확보해야 하니까. 그래서 하루에 두 번 작업을 나가기로 했다. 오전 여섯 시에 시작해서 열시쯤 밀물과 함께 끝을 냈고, 다시 저녁 여섯 시에 불 깡통을 끌어안고 갯벌로 나갔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군데군데 마치 무슨 물감이나 그물처럼 드리워져 있고, 달은 그 사이를 마치 파도타기 선수처럼 나왔다가 들어갔다가 그렇게 마구 흔들리는 모양새로 떠 있었다. 구름이 달을 감추면 갯벌이 환하게 보이고, 달이 구름 뒤로 들어가면 갯벌은 희뿌연 그림자처럼, 거대한 어떤 평원의 실루엣처럼 아련하게 보였다. 가끔은 그것이 저 먼 극지의 백야처럼 보이기도 하고, 눈이 함뿍 쌓인 만주 벌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 홀로 갯벌을 지키는 불 깡통


그랬다. 순간순간, 아주 가끔씩, 이상한 느낌과 함께 이상한 환상이 찾아들곤 했다. 울퉁불퉁한 갯벌을 한밤중에 달리는 트렉터 위에서 불 깡통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진귀한 체험이라고, 아마 그렇게 말하는 게 온당할 터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겨울의 만주 벌판을 한밤중에 말 타고 달리는 독립군을 내가 언제 어디서 보았을 것이며, 해가 없는 밤에도 대낮처럼 밝다는 극지의 백야를 내가 언제 어디서 경험했을 것인가 말이다.

“아, 달도 참 밝다. 저 불빛들이 없다면 달은 아마 더욱 달처럼 보이겠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갯벌이 워낙 광활하게 막힌 곳이 없다 보니 여기저기 가로의 불빛들이 시야를 자꾸 차단하고 있었다. 우리가 출발한 하전 인근의 가로등은 물론이고, 낮에는 그렇게도 멀리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줄포와 곰소 인근의 횟집이며 각종 간판들이, 가로등이, 이덕화의 별장이 있다 해서 더욱 유명해진 모항 인근의 각종 연수원이며 모텔, 횟집 등등의 간판 불빛들이 마치 우리의 고독한 행진을 전송하는 손수건의 휘날림처럼 자꾸 눈에 밟히고 있었다.

그랬다. 그 밤에 갯벌로 나간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그 많던 트렉터와 경운기들은 일시에 다 어디로 가버렸는가, 의아할 정도로 다른 아무도 없이 오직 우리들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혹시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의문을 품을 사이도 없이 트렉터는 멈췄다.




# 얼래 사진 찍나부다,


어쩐지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만 물이 안 빠지고 있었다. 낮에는 약속된 시간에 다 빠졌던 물이, 밤에는 무엇이 어떻게 오작동을 일으켰는지, 내가 언제 그런 약속을 했더냐는 듯이 하나도 안 빠지고 있었다. 물론 하나도 안 빠졌다는 것은 과장이다. 사십 분도 넘게 트렉터가 달려야 할 정도로는 빠졌다. 다만 우리가 트렉터에서 내려 작업을 할 정도로는 안 빠지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상황은 난감했다. 우리는 트렉터 위에서 타고 있는 불 깡통을 끌어안는 형국으로 모여 앉거나 혹은 선 채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경험상, 느낌상, 갯가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다만 한밤중에 길을 나선 스스로의 노고가 안타까워서 기다림의 자세를 취해보는 것일 뿐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략 십여 분 정도의 기다림 뒤에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쓸까?”
“안 쓸 것 같은디.”

쓴다는 것은 썰물을 뜻하는 갯마을 사람들의 말이었다. 오늘은 조금이 지나고 5일째, 그러니까 4물이었다. 이론상으로는 4물에 물이 제법 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경험이 많은 사람의 경험에 따르면 안 쓸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우리는 되돌아와야 했다. 나설 때는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나서듯이 보무도 당당하게 캄캄한 밤중의 갯벌을 깨우며 달렸지만, 아무 한 일도 없이 돌아서는 길은 사뭇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 억새도 갯가에서는 괴롭다


“아, 밤에도 갈매기들은 활동을 하는구나.”

그래, 갈매기들이 어둠 속 허공을 날고 있었다. 달빛이 아니라면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처음에는 놀랐다. 밤에도 저 녀석들은 먹이를 찾아다니는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오는 트렉터의 라이트에 놀란 것일 뿐이었다. 결국 우리는 갈매기들의 편안한 휴식 시간만 방해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여섯 시. 갯마을은 여전히 어두웠고, 쌀쌀했고, 전깃줄 우는 소리가 윙윙 하는 속에서 깡통불이 타고 있었고, 속칭 오징어 모자라고 불리는, 눈과 코만 빼꼼히 나오는 모자를 쓰고 가슴장화에 비옷으로 중무장한 갯벌의 사람들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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