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은행나무





교활한 원숭이가 착한 게를 속여서 게의 재산을 갈취한 후에 게를 죽여버린다. 이에 증오심에 가득 찬 게의 새끼들이 계략을 꾸며 원숭이를 죽여 복수한다. 

요시다 슈이치가 3년 만에 내놓은 신작 장편 소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행나무 刊)의 제목은 바로 이 일본의 전래 동화에서 따온 것이다. 힘 없는 약자들이 힘을 합쳐 강한 자를 쓰러뜨린다는 동화의 뼈대는 《원숭이와 게의 전쟁》의 커다란 줄기를 이루고 있다. 

나이, 직업, 처한 상황, 미래의 꿈 등이 천차만별인 여덟 명의 주인공들의 공통점이라면 단 하나, 현재 사회에서 소위 ‘약자’라고 불리는 위치에 있거나 한때 그랬다는 것. 하나의 사건을 통해 이들은 기묘하게 엮이게 되고 운명처럼 모이게 된다. 그리고 서로 도와 거대한 사회 권력, 기득권층에 맞선다.

지금까지 다양한 작품을 통해 ‘현대’를 반영하고, 그 시대의 약자를 그려왔던 슈이치의 능력은 이번 작품을 통해 절정을 이룬다. 작가 스스로 집필하면서 “캐릭터의 존재 자체를 느낄 수 있었다”라고 했을 만큼 세심하게 표현된 캐릭터들은 이야기에 현실성을 부여하고,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이 작품이 전하고 싶은 ‘희망’이라는 메시지에 더 가깝게 다가서게 한다.
 
주간지에서 꼬박 1년 간의 연재. 48번의 마감을 통해 완성된 소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은 정리된 플롯도 없이 ‘무모하게’ 시작되었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작가 특유의 섬세한 디테일을 뿜어내는 작품이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 속 주인공 여덟 명은 딱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살면서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게 없는 사람들이다. 인생이 제 맘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들. 작가는 그들에게 행복한 인생을 주고 싶었다. 

작품 속에서, 미래가 보이지 않을 것 같던 바텐더는 정치 신인이 되어 정치 베테랑과 대결을 하고,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기 인생에 없을 것만 같았던 소중한 것, 희망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달려간다. 그 안에서 각자 인생의 의미를 찾아나간다.

“지금까지 과거의 이야기만을 썼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내일을 말하고 싶어졌다”는 작가가 그린 내일은 밝고 청명하다. 어린 시절 누구나 들었을 법한 동화처럼. 그러나 그동안 시대와 맞닿은 작품들을 거치며 더욱 예리해진 현실적 감각이 더해져 그 밝은 내일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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