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가죽 같은 숭어 껍데기 그 오돌토돌하게 부드러운, 그래서 황홀한…
악어가죽 같은 숭어 껍데기 그 오돌토돌하게 부드러운, 그래서 황홀한…
  • 승인 2013.02.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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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가장 에로틱한 삶의 현장 갯벌에서-열두번째: 갯마을의 겨울풍경


# 3월을 기다리는 실장어 잡이 조각배들



겨울이면 사람들의 옷차림이 두툼해지고 행동에도 변화가 오듯이, 바다도 겨울이면 순발력이 떨어져서 시간의 흐름조차 잊게 한다. 이를 가리켜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한 번 나가면 들어올 줄을 모르고, 일단 들어왔다 하면 또 나갈 줄을 모르는 것이 겨울바다여, 잉?”

들고 나는 물의 흐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썰물이 완료된 뒤의 바다는 참으로 멀리까지 나가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안 들어온다. 밀물이 완료된 뒤의 겨울바다는 참으로 풍성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안 나간다. 저기에 갯벌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냥 망망대해 바다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일단 나갔다 하면 또 영원히 안 들어올 것처럼 멀리까지 가버린다.

그래서 겨울 갯벌은 물이 일단 나갔다 하면 최장 여섯 일곱 시간까지도 작업이 가능해진다. 여름에는 길어야 서너 시간 정도지만, 겨울이면 두세 시간 정도 삶의 길이가 확장되는 셈이다. 하지만 갯벌로 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굴을 따오는 경운기가 간간 있을 뿐이고, 어망에 걸린 숭어를 잡아오는 횟집 아저씨가 거의 매일 출근을 하는 정도이고, 하전마을 사람들 전체의 직업이라 할 수 있는 바지락을 채취하러 나가는 트렉터는 이백여 대 중에 서너 대가 겨우 움직일 뿐이다. 나간다 해도 바지락을 잔뜩 잡아서 싣고 오는 경우는 전혀 없다. 바지락 가격이 자꾸 오르다 보니 아쉬워서 한 번 나가보는 정도일 뿐이다.


# 고개 한 번 들어주지 않는 굴까는 아주머니


그랬다. 겨울이 깊어지면서 바지락 가격이 널뛰기를 시작했다. 생산자 가격 기준으로 작년 가을 이십 킬로그램 한 자루에 사만삼천 원까지 폭락했던 것이 겨울로 들어서면서 오만 원으로 뛰더니 다시 오만오천 원, 육만 원, 이제 곧 칠만 원선을 내다본다고 한다.

그러나 갯벌에 바지락은 거의 없다. 지난 해 봄, 여름, 가을 세 계절 동안 잡다가 놓친 것을 주워오는 수준이고 보니 그 양은 형편없이 적다. 해마다 이 모양이다. 가격이 좋을 때는 물건이 없고, 물건이 많을 때는 가격이 폭락한다. 그렇다고 가격이 좋을 때를 대비해서 바지락을 비축해둘 수도 없다. 만약에 호시절을 고대하며 바지락 채취를 중단하고 세월을 기다린다면 그 사람의 바지락 농장은 십중팔구 초겨울의 돌풍에 쑥대밭이 되고 말 것이다.

어쨌든 겨울이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의 세계처럼 갯마을은 고요하기만 하다. 그 많던 트렉터와 경운기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하고 물어야만 할 정도로 고요하기만 하다. 맛나고 값싸기로 유명한 숭어회를 뜨러 오는 외지차량이 가끔 한 대씩 스쳐갈 뿐이고, 골목마다 한두 대씩 이불처럼 눈을 덮고 멈춰 있는 트렉터와 경운기는 영원히 그렇게 작동중지 상태로 있을 것만 같기도 하다.


# 어제 따 온 굴도 이불을 덮었다.


물때가 되면 두 부부가 다정도 하게 경운기의 시동을 걸어놓고 비옷을 입은 채로 이런저런 기구들을 챙겨 갯벌로 나가곤 하던 할아버지네 마당도 고요하다. 담장 옆에 세워둔 경운기의 엔진 부위를 이불로 꽁꽁 싸매놓은 풍경이 이채롭게 눈물겹다. 그랬다. 경운기는 할아버지 당신의 몸이었다. 가슴이고 다리였다. 모두가 경운기를 버리고 트렉터로 바꾸는 상황에서도 할아버지는 당신의 몸인 경운기를 포기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정, 정이었다. 이십 년도 넘게 정든 경운기, 그런 경운기를 덜덜 떨리게 추운 밖에 두고 당신만 따뜻한 방에서 이불을 덮고 잠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사람 한 명을 발견했다. 빨간 점퍼에 빨간 장화 그리고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마당에 아주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굴을 까는 멋쟁이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에 뜨악해서 한 번 쳐다보고는 도로 얼른 고개를 숙인 채 하던 일에나 몰두해 버린다. 관심이 없다기보다는 아니 웬 남자가 허락도 없이 마당으로 불쑥 들어선담? 하는 투가 역력하다.

내가 한 발 다가서면 앉은 채로 조금 물러나거나 자세를 바꿔 버리는 그 모양이 흡사 나는 부끄러움이 많아요, 할 말 있거든 그 자리에 서서 하세요, 하고 부탁이라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죽어도 얼굴은 보여주지 않겠다는 완강한 거부의 의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하전리의 명물 숭어회


거친 바다를 상대로 생명을 거는 삶을 살아온 까닭에 일면 그악스러워졌으면서도 일단 바다를 떠나면 수줍어져 버리는 여인의 가슴에는 무슨 색깔의 무슨 열매가 들어 있는 것인가, 불현듯 궁금해진 심사인 채로 나는 한 마디 질문을 해본다. “이 굴을 왜 까시는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이 없다.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는 대답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인 것 같아서 나는 무안해진다. 무안해서 또 한 번 바보 같은 말을 꺼내고 말았다.

“이거 구워먹으면 맛있는 건데, 그렇죠?”
“네, 맛있어요.”

겨우 한 마디 들었다. 고개를 들어서 나를 볼 생각 같은 것은 아예 없다는 듯이 한 마디 가볍게 내놓고는 손을 재게 놀리는 그녀는 흡사 나를 상대로 무슨 선문답이라도 하는 것 같다.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다가는 내가 그만 아주 바보가 돼서 주저앉아 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나오기로 했다. 나오는 길에 수고하시라고 인사를 했더니 그녀가 경쾌한 목소리로 “안녕히 가세요” 하더니 고개를 들고 나를 본다. 그 순간 그녀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놀라서 도로 후딱 외면하고 하던 일이나 계속 해버린다. 


# 아주 소박하게 촌스런 간판


“허헛, 참!”

내 입에서 나도 모를 감탄사 한 마디가 터진다. 기분 좋은 탄성이다.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까닭은 물론 나도 모른다. 모르는 채로 거리로 나선다. 갯마을에는 바람이 없는 날에도 바람이 느껴진다. 그래서 거리는 쓸쓸하다. 너무도 쓸쓸하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려도 비켜주지 않고 거리에 퍼질러 누워 잠이나 자는 것으로 유명한 개 한 마리가 나도 심심하다는 투로 어슬렁거린다.

숭어회 포장전문이라고, 아주 소박하게, 아니 촌티가 절절 흐르게 구성되어 있는 간판 하나가 도로가에 서서 이정표 구실을 하는 이 주변에 이르면 비로소 온기가 느껴진다. 거대한 장작난로 연통을 통해 나오는 연기도 그렇거니와, 골목을 돌아서 흘러나오는 두런거리는 소리가 사람의 온기를 팍팍 느끼게 해준다.


# 너무 바빠서 실내 손님은 안 받는 숭어회집


껍질 한 점까지도 버리지 않고 다듬어서 연두색 겨자덩어리로 데코레이션까지 해주는, 1킬로그램 한 접시에 단돈 일만이천 원밖에 안 하는 숭어회는 갯마을 하전의 명물이다. 작년에도 일만이천 원이었고, 재작년에도 일만이천 원이었으며, 금년에도 어김없이 일만이천 원을 고수하고 있으니 명물 중에 명물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인근 주민들은 물론이고, 저 멀리 삼사십 킬로 밖에서까지 전화로 주문을 해놓고 차를 몰고 달려와서 가져간다.

값이 싸서만은 아니다. 다른 곳에서는 일거리가 많다고 대개 버려버리는 껍질의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손에 쥐어줘도 모르는 숭어 껍데기의 맛, 그 오돌토돌하게 부드러운, 그래서 황홀한 식감, 생기기는 완전히 악어나 뱀 가죽 같아서 모르는 사람은 으--하고 외면을 하지만, 일단 맛을 알고 난 뒤에는 사흘이 안 돼서 또 가자, 또 가자, 하게 되어 있는 그 맛을 찾아서 사람들은 겨울이면 줄을 지어 찾아온다.

그날 잡은 숭어가 적거나 주문량이 많을 때는 테이블마다 예약석이라고 거짓말 경고문을 세워놓고 낯선 손님은 아예 안 받아버리는, 낯익은 이웃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받는 이 숭어회집 주인도 바지락 농사꾼이다. 농장이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복도 많게 숭어가 몰리는 지점에 있다 보니 그물을 쳐놓고 매일 한 차례씩 들어가서 건져다가 회를 뜨는데 온 가족이 참여한다. 온 가족이래 봐야 두 부부와 동생 그리고 딸이 하나 있을 뿐이지만, 어쨌든 이들은 다들 놀다시피 하는 마을에서 거의 유일하게 겨울 한철을 꼬박 일에 바치는 가족이다.



# 골목마다 집집마다 한대씩 서 있는 경운기 혹은 트렉터


작년까지만 해도 숭어회를 뜨는 집이 둘이었다. 그런데 한 집이 금년에 작업을 중단한 탓에 남은 한 집의 짐이 무거워졌다. 작년 여름 그악한 태풍에 그물이 죄다 찢겨지고 날아가 버린 탓이다. 그물을 새로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이 가볍게 몇십  만원 정도라면 어떻게든 해보겠지만, 그게 아니다 보니 에라 접자, 접어, 하고 포기했다는 얘기였다.

숭어회 가격을 대폭 올리면 그깟 그물값 정도 한 해 겨울 동안 못 건질 바도 아니건만, 그 사람의 생각은 뭐랄까,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는 도무지 생각이 닿지를 않고 그물을 새로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부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산 자체를 중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로서는 난감하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사실 숭어회는 싸도 너무 싸다. 일만이천 원짜리 한 접시를 한 사람이 처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해볼 일이고, 두 사람이서도 부담스러워 한 사람을 더 불러야만 한다. 그렇게 셋이서 숭어회 한 접시에 소주 세 병을 마시고 밖으로 나오니 해가 기운다.

해가 질 무렵의 바닷가, 그것도 사방천지에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 술기운조차 알딸하게 돌고 보니 자꾸 어디로 가고 싶어지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할 법하다. 그래, 어디로 가고 싶다. 어디로?


# 이십년도 넘었다는 할아버지의 경운기


일단 갯벌에 발을 디뎌 본다. 찬바람이 우우 몰려온다. 눈인지 얼음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하얀 덩어리들이 무더기로 몰려 있다. 그래, 갯가의 얼음은 육지의 얼음과는 완전히 다르다. 아니 그것은 얼음조차도 아니다. 갯벌에 눈이 내리면 그것은 쌓이지 않고 완전히 녹지도 않고 제3의 어떤 것이 되어버린다. 염분과 섞여진 그것은 얼핏 얼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얼음이 아니다. 눈도 아니다.

얼음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이 어른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각각 분리되어 물이 들어오면 해변으로 몰리고, 물이 나가면 다시 갯벌로 나가서 흩어진다. 갯벌 초입에는 작은 조각배들이 흩어져서 3월을 기다린다. 3월에 뭐가 있나? 고창의 저 유명한 풍천장어의 새끼들, 일명 시라시, 실뱀장어들이 돌아오는 때가 3월 즈음이다. 저 멀리 필리핀 인근에서 부화된, 바늘 하나 정도의 크기밖에 안 되는 어린 장어들이 몰려오는 때가 3월이다.

갯벌의 한 해는 그렇게 시작된다. 3월. 그리고 그 즈음부터 바지락 농사도 기지개를 켠다. 겨울이 엄청 긴 것 같고, 봄은 너무도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달력을 한 장 넘기고, 또 한 장만 넘기면, 거기가 바로 3월이요 봄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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