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덧없는 환영들
<신간> 덧없는 환영들
  • 승인 2013.02.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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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정 트렌카/ 창비





해외입양인으로서의 체험을 담은 첫 작품 『피의 언어』를 통해 반스앤노블 최고의 신인작가로 선정되고, 버클리 대학을 비롯하여 다수의 대학 및 도서관에서 추천도서와 강의교재로 채택되는 등 미국 문단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은 제인 정 트렌카의 두번째 장편소설 『덧없는 환영들』이 발간되었다. 이 작품 역시 입양이 가져온 근원적 상처, 아시아계 여성으로서의 삶,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이질적인 세계들을 혼란스럽게 오가며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을 그린 작가의 자전소설이다. 작품 제목은 러시아 작곡가 쁘로꼬피예프의 동명의 피아노곡에서 따온 것으로, 피아니스트로서의 자신의 한 부분을 이뤄온 음악을 빌려 더없이 음악적인 언어들로 삶을 기록해나간다.

제인 정 트렌카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미국의 백인 가정에 입양된다. 『피의 언어』에서 이러한 이산(離散)의 체험을 유년기와 미국에서의 삶, 한국 어머니와의 재회에 초점을 두고 돌아봤다면 『덧없는 환영들』은 그러한 기억들을 다시 다루되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하고 정착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더해 풀어나간다. 백인 중심 사회에서 겪는 고립감, 스토커의 공포, 결혼의 실패 등을 겪고 한국으로 돌아와 모국어를 모르는 이방인이자 살아남아 귀환한 추방자로서 자신의 분열과 이중성을 대면하면서 정체성을 모색하는 여정이 한결 성숙하고 깊어진 성찰을 통해 그려진다.

『덧없는 환영들』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목소리는 낯설고 차갑다. 그것은 당신은 누구냐는 자기 안팎의 반복되는 질문에 여전히 명백한 대답을 찾지 못한 이방인의 목소리다. 한국어와 영어가 뒤섞이고, 시적 단문들과 기사 스크랩, 설문지, 인용이 뒤섞인 형식만큼이나 낯선 목소리다. 그 목소리는 한국인의 몸을 가진 ‘나’를 끊임없이 의식하게 만드는 미국 사회와, 미국인의 말을 가진 ‘나’를 자꾸만 밀어내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담담하고 차갑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이 여전히 세계 3대 입양아 수출국이라는 현실도, 미혼모들이 처한 편견과 어려움도, 외따로 낯선 땅으로 보내진 입양인들이 느끼는 혼돈도 잘 알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소중한 성찰을 보태준다. 작가는 가장 내밀한 이야기로 가장 보편적인 주제이자 가장 논쟁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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