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봄이면 생각나는 도적에의 꿈


# 부안 모항의 풍경


지난겨울은 혹독했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혹독한 추위도 물러가고 봄이 왔으니 좋다고 할까? 꽃구경 가자고 날짜 정하고 장소 정하고 김밥 재료도 준비하고 그럴까? 집에서나 밖에서나 눈에 띄는 것은 오직 콘크리트뿐인 대도시 시민들이야 물론 그럴 수도 있겠다.

농촌의 겨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나기는커녕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추위가 어찌 몸으로 직접 와 닿는 추위만 있겠는가. 생각만으로도 가슴을 덜덜 떨게 하는,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추위도 사람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우리 고장 고창의 최대 작물인 복분자가 죄다 얼어 죽어 버렸다. 봄이 왔다고, 농사 준비를 한다고 전지가위를 들고 밭고랑을 헤매보지만 살아남은 것은 몇 안 된다.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이것을 어떻게 한단 말이냐. 아예 다 뽑아내고 콩이나 심을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콩은 미국에서 대량으로 들여오는 까닭에 종자값도 못 건지기 십상이다.

또 있다. 국내 최대 바지락 생산지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심원면 하전 마을 앞 갯벌에 뿌려놓은 바지락 종패도 지난겨울의 추위 속에서 거의 안녕하지 못했다. 칠십 퍼센트 이상이 껍질만 앙상하게 남긴 채로 속살은 사라져 버렸다. 어디에 하소연할 길도 막연하고, 나오느니 한숨뿐이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금년 농사 망했다는 소리만 들린다. 본격적인 농사철은 아직 시작도 안 됐는데 망했다는 얘기부터 들어야 하는 이 난감한 상황을 도대체 어찌 해석해야 하는가. 이런 와중에 들려오는 중앙정부의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과 그 살아온 내력은 그저 가소롭기만 하다.


# 부안에서 바라본 고창의 하전


# 채석강에 정박한 쪽배들



어쩌면 그렇게도 열이 하나같고 하나가 열 같을 수도 있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남들보다는 내가 더 잘 먹고 잘사는 게 최고라는 생각으로 살아온 것 같은, 도덕이나 윤리 따위는 개에게나 주는 게 옳다는 철학으로 중무장을 한 것 같기도 한, 뻔뻔함이야말로 이 시대에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요 능력이라고 주장하는 것만 같은 장관 후보자들이 한두 명도 아니고 도대체 몇이나 되는지 나는 이제 기억도 못하겠다.

어쩔 것인가. 이놈의 세상, 이놈의 세상, 하면서 피를 토하고 죽을까? 천만에 만만에 내가 왜 죽어? 그렇다고 귀만 꽉 막고 그냥 살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또 한 번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여행이라고 해봤자 시간으로 따져서 한나절 코스에 불과한 것이기는 하지만,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간 확장을 극대화시키는 여행을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가끔 즐겨오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가끔이었다. 늘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 아주 답답할 때, 피를 토하며 쓰러질 것 같아질 때, 내 스스로의 힘으로 내 자신을 살리고 활기차게 하는 비법으로서의 여행이었다. 장소는 부안의 변산반도 채석강. 고창에서 바다와 갯벌을 가로지르기로 하자면 금방 닿을 수도 있겠지만, 날개가 없는 탓으로 곰소만을 우회해서 빙 돌아가야 하는 까닭에 한 시간도 넘게 걸린다.

어떤 사람은 시루떡을 켜켜이 쌓아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수천, 수만, 아니 수십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는 채석강. 그 앞에서 나는 시루떡도 책도 아닌 도적을 보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도적이 되어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도적도 평범한 도적이 아니라 수천 명의 부하를 거느린 두목으로서의 도적이었다.


# 시루떡일까 책일까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이 계기가 되어 도적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을 상상하기 시작했는가도 물론 모른다. 하여튼 언제부터인가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들고 나는 바닷물에 여기저기 뚫린 커다란 구멍들, 얼핏 보면 동굴 같지만 아직 동굴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 그 구멍들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도적들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도둑은 아니었다. 도적이었다. 도둑과 도적은 구별해야 마땅하다. 도둑은 좀도둑이라는 말도 있듯이 그야말로 도둑일 뿐이어서 경찰관 한 명의 힘으로도 잡아낼 수 있지만, 도적은 게릴라라는 말도 있듯이 중앙정부가 온 역량을 다 쏟아도 쉽게 잡아내지 못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수년에 걸쳐서 어찌어찌 소탕을 했다 해도 중앙정부 자신의 체면과 권위와 권력은 이미 추락해 있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내가 처음부터 도적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채석강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생각한 것은 중국의 소설 <수호지>에 나오는 해적 정도였다. 물 위를 유유히 떠다니며 재물을 강탈하고 물가의 동굴로 숨어버리는 도둑을 나는 채석강 바위의 여기저기에 뚫린 구멍을 처음 보았을 때 연상하고 있었다. 이런 유치한 상상이 어른스럽게 대폭 확장된 것은 우리의 저 걸출한 도적의 창조자 허균 선생을 알게 되면서였다.

남편 복은 하나도 없었던 비운의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오라비이기도 한 허균 선생이 당시만 해도 척박한 땅 부안에 발을 디딘 것은 순전히 중앙정부에 기생하는 도둑들 때문이었다. 명칭이야 대감이니 양반이니 해서 거창하지만 그 면면을 보자면 시중의 좀도둑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정부 관료들을 허균 선생은 참 무던히도 증오했던 것으로 기록은 전하고 있거니와, 저 발칙하게 아름답고 장엄한 소설 <홍길동전>의 최초 구상이 부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하 이것이다, 이것이야, 하고 혼자 손뼉을 치고 있었다.


# 상상하라 저 틈이 무엇인가를...



홍길동이 누구인가. 거지발싸개만도 못한 관료와 졸부들을 야밤에 습격해서 죽이지는 않고 간담만 서늘하게 한 다음 재물을 들고 유유히 사라지는, 어떤 날은 팔도에서 여덟 명의 홍길동이 동시에 나타나기도 하는, 갈취한 재물은 절대 자신의 치부를 위해 쌓아두거나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굶주린 민중들에게 골고루 분배해주는 홍길동.

오늘날의 시점으로 읽어도 매우 대단히 혁신적이고 신선한 이 소설이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감사했다. 한 편의 소설이 사람에게 용기를 준다는 것, 희망을 준다는 것, 지긋지긋한 현실이 싫어 자살을 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지긋지긋하게 하는 현실을 타파할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연구를 해보게 한다는 것. 이것이 아마 좋은 소설이 지닌 매력이요 힘일 터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 가끔 채석강을 찾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순식간에 도적이 되었다. 소설 <홍길동전>에서의 도적 홍길동은 이른바 신출귀몰의 귀신 이미지를 갖고 있었지만 채석강 앞에서 도적이 되는 나는 한 방울의 물이었다. 아니 물방울이었다. 순식간에 한 방울의 물이 된 나는 바닷물이 들고 나는 동굴 같은 구멍으로 스며들었다. 구멍으로 숨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구멍으로 스며든 나는 바위틈을 이리저리 타고 돌며 산으로 들어간다.

산에는 나무들이 있고, 나무들은 뿌리를 흙속으로 깊이 내리고 물을 흡수한다. 한 방울의 물방울인 나는 그렇게 커다란 나무들 속으로 들어간다. 뿌리에서 밑둥을 지나고 위로, 위로 자꾸만 위로 올라간다. 그리하여 마침내 꼭대기로 올라가서 좌우사방을 살핀다. 어디에서 어떤 졸부가 선량한 민중을 등쳐먹는지, 어디에서 어떤 썩어빠진 관리가 업자와 짜고 국고를 탕진하는지, 등등 그런 것들을 살핀 다음 가장 먼저 손봐야 할 대상을 선정하고, 선정이 끝나면 곳곳에서 대기 중인 부하들에게 음파를 이용해서 지시를 내린다. 저기 저놈을 쳐라.


# 채석강 바로 앞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빨간 옷차림의 상춘객들


나의 부하들은 홍길동만큼이나 신출귀몰해서 못하는 일이 없다. 요란을 떨지도 않는다. 조용하게, 하는 듯이 안 하는 듯이 그러나 신속하게 해치워 버린다. 그런 믿음직한 부하들에게 내가 맨 처음 내린 지시는 각종 조합장들을 처단하는 일이었다. 선거 한 번 할 때마다 수억씩을 써대는 졸부들, 모나미볼펜 한 자루에 오만원짜리 지폐 여섯 장이 들어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내고 몸소 실천을 했던, 그렇게 돈으로 당선이 되면 그 자리에서 다시 돈을 쓸어 모으는 일에나 열심을 바치는 조합장들이 수도 없이 날아갔다.

그 다음으로 내가 처단 대상으로 삼은 인물군은 지자체의 장과 의원들이었다. 내 고장을 푸르게 산뜻하게 아름답게 꾸민다는 구호 아래 온갖 조경사업을 벌여놓고 자신의 친척이나 친구가 대표로 있는 조경업체 돈벌이나 시켜주는 단체장들, 그리고 그것을 빌미로 단체장을 협박해서 자기 부인의 사업을 알뜰살뜰 키워나가는 지방의회 의원들이 수도 없이 날아갔다.

여기까지는 대상이 지방이고 비교적 순진한 면이 있는 까닭에 별 무리 없이 잡아낼 수 있었다. 중앙은 달랐다. 중앙은 지방과 달리 사방을 살피는 정도로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한 사람 한 사람 그 뱃속을 들어가서 며칠씩 잠복을 해야지만 그 도둑의 생각을 알아낼 수 있었다. 때문에 한 방울의 물방울인 나는 나무들 속으로 들어가서 사방을 살피는 게 아니라 수돗물이 되어야 했다. 물도 우리나라 물은 안 쓰는 고위직이 있는 까닭에 가끔은 프랑스에서 수입한 생수 속으로 들어가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 웅대한 채석가을 카메라에 담고서~


편의상 고역이라고 표현은 했지만 그것은 사실 매우 재미있는 일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독한 암세포가 인간이라는 말도 있듯이, 제아무리 잘난 폼을 잡고 기염을 토해봐야 뱃속에 오물만 잔뜩 채워가지고 다니는 인간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자기 자신만은 해맑게 청량하게 고운 이슬 같은 사람이라는 착각에 빠져서 방실방실 웃어대며 사기를 칠 수도 있는 것인지, 그것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희한해서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는 재미가 있던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한 사람도 무사하지 못했다. 내가 보내는 음파 신호에 따라 움직이는 나의 부하 도적들에 의해 척척척 잘도 날아갔다. 그렇다고 그것이 무슨 몇날며칠 혹은 몇 달씩 걸리는 일도 아니었다. 길면 두세 시간이요 짧으면 한 시간 이내에 일은 끝났다. 일이 끝난 뒤에는 살짝 피로감이 몰려왔다. 많이 피로한 것은 아니었다. 선 채로 그냥 삼사 분쯤 눈을 감고 있으면 싹 풀리는 정도의 피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눈을 뜨면, 세상이 그렇게도 달라 보일 수 없었다. 하늘을 나는 갈매기조차도 어제의 갈매기가 아니었다. 채석강을 구경한다고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나 걸음걸이, 목소리도 예사롭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 목소리 하나하나가 모두 희망을, 사랑을, 겸손을 말하고 있는 듯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또 한 번 그런 여행이 필요했다. 그런 여행이 필요한 계절에 들어와 있었다. 그렇게 길을 나섰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제법 거칠었다. 날씨 탓인지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채석강 바로 앞에서 도시락을 까먹는 빨간 옷차림의 상춘객들이 이채로웠다. 그네들의 웃는 소리를 귓전으로 흘려들으며 채석강을 무연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에 그 자리를 떴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나는 아마 적어도 삼천 명 정도의 비리 공직자를 처단했을 터이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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