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과 흙냄새, 비단길과 황토, 아하∼그 기분 참 묘하도다!
가야금과 흙냄새, 비단길과 황토, 아하∼그 기분 참 묘하도다!
  • 승인 2013.04.19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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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흙으로 방바닥 미장을 하다!


# 액셀 파이프 위에 부어놓은 흙무더기들


난방비를 줄인다고 기름보일러 대신 연탄보일러를 설치했더니 뭐냐 이거, 삼 년도 안 돼서 삭아 버렸다. 철판이 부식되는가 싶더니 그대로 폭삭 주저앉아 버렸다. 이게 뭐냐. 명색이 철판인데 이래도 되는 거냐? 보일러 판매점에 가서 물었더니 연탄가스란 게 원래 그렇단다.

“아, 그것이 보통 독한 것이간디.”

그러면서 새로 나온 보일러가 있다고 그것을 권한다. 스테인리스란다. 예전 것은 일반 철 파이프에 일반 철판이라서 수명이 짧았다고, 스테인리스 파이프에 스테인리스 철판은 삼 년 이상 오 년까지도 가능하단다. 오 년 수명을 보증하는 게 아니라 가능하다는 말이 얄궂어서 아니 그게 뭔 소리여? 하고 물었더니 사용자가 관리를 철저하게 잘 하면 수명이 오 년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연장될 수도 있다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나는 게을러서 틀렸군. 내 입에서 절로 그 소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예전과 똑같은 것을 구입하기는 싫었다. 내가 아무리 게으르다고 해도 운수가 좋으면 오 년을 쓸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싶었을 것이다. 가격은 예전 것에 비해 세 배나 비쌌다. 하긴 반짝반짝 빛나는 스테인리스 제품인데 어련하겠는가.

돌아오면서 언뜻 계산을 해보니 뭔가 또 한 번 얄궂다는 생각이 든다. 비싼 기름이 아닌 값싼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 해서 얼마나 절약이 되었지? 답이 잘 안 나온다. 아니 헷갈린다. 기름보일러는 철판이 삭아서 못 쓰지는 않는다. 고장이 난다 해도 일부 부속을 교체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연탄보일러는 일부 부속 교체라는 용어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게다가 연탄불이 꺼지기 전에 갈아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이게 참 보통이 아니다.


# 절반도 못하고 하루를 보냈다.



구질구질하게 연탄 따위에 목매지 말고 그냥 확 기름으로 바꿔버려? 그런 어떤 결기 같은 것이 순간적으로 발동하기도 했지만, 기름보일러 자체의 가격을 생각하고는 이내 풀이 죽어버렸다. 가난한 살림은 이래서 그 비용이 곱으로 들어간다. 빌어먹을, 어쩔 것이냐.

다음 날부터 냇가로 나가서 모래를 퍼오기 시작했다. 방구석이 좁아터져서 답답하다고 확장한 까닭에 액셀 파이프를 새로 깔고 미장도 새로 해야 했다. 모래는 콘크리트 제품 판매하는 곳에서 구입할 수 있기만 차떼기로만 판다. 손수레로 세 번 실어 나를 분량만 있으면 되는데 한 차를 사서 어디에 쟁여놓을 것인가 말이다.

시냇가에 나가면 모래는 어디에나 있었다. 비만 내리면 어딘가에서 쓸려 내려와 형성되는 게 모래톱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뭔가 집안일을 할 때 우마차를 동원해서 모래를 퍼 나르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 하천정비 사업으로 제방을 거의 수직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사람 한 명이 맨손으로 내려가기조차 힘들다.

사람이 내려갈 수 없다 보니 모래를 퍼가는 사람이 없고, 모래를 퍼가는 사람이 없다 보니 계속 쌓이는 모래 때문에 장마철이면 물이 빠져 나가지를 못해서 논밭을 잠식하기도 한다. 어쨌든 뭐 그랬다. 많지도 않고 딸랑 손수레 세 대 분량의 모래를 퍼오는데 무려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손수레를 끌고 직접 들어갈 수가 없어서, 비닐봉지에 모래를 십여 킬로그램씩 담아서 제방 위로 끌어올리는데 그렇게도 힘이 들 수가 없는 거였다.


# 황토미장 최종마무리


그렇게도 힘이 들 수가 없는 작업을, 땀을 삐질삐질 흘려가면서, 갈빗대가 욱신거릴 정도의 노동을 끝내고 났을 때 갑자기 흙이 눈에 띄었다. 시뻘건 황토가 내 눈을 가득 채우는 순간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아 이런, 이런, 흙으로 바닥 미장을 한다면 더 좋을 텐데,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하고 시멘트만 생각했지? 왜 이렇게도 멍텅구리처럼 힘 들여서 모래를 퍼 온 거지?

그때 흙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아니 그것은 말을 걸었다기보다 불만을 토로했다고 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나를 써봐. 제대로 써봐. 왜 나를 제대로 안 써줘?”

그 말이 내 귓전을 오랜 시간 맴돌았다. 그 말을 흙이 내게 했다는 증거나 근거를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나는 다만 그렇게 믿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아주 이상한 사람으로 비쳐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믿음이란 어차피 믿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날마다 흙 속에 살면서도 흙을 몰랐다고나 할까. 그런 어떤 무지와 오해가 내게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라도 말에 ‘건성굴레’라는 말이 있는데 꼭 그짝이었다. 뭔가를 제대로 모르면서 제대로 아는 척, 하나도 모르면서 어지간히 아는 척, 말하자면 선입견에 의해서 제멋대로 해석하고 제멋대로 뭔가를 해버리는 사람의 행동을 가리켜서 아마 ‘건성굴레’라고 하는 것일 게다.


# 볏짚을 섞어 밟아댄 황토


흙이 사람에게 좋다는 이야기를 내가 어디선가 들었던 모양이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들었는가는 나도 모른다. 어쨌든 사람이 흙을 먹으면 좋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앉으나 서나 흙을 가까이 하면 좋다는 뭐 그런 정도였다. 그래서 흙으로 첫 번째 만든 것이 아궁이였다. 보일러 난방을 하면서 부엌에 아궁이를 만든 것은 물론 아니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으로 이사 올 때 가마솥 하나를 얻었다. 과거에 쇠죽을 쒔다고 하는, 이십 리터들이 통으로 물 여섯 통이 들어가는 거대한 가마솥이었다. 이 거대한 가마솥을 밖에 걸어놓고 집안 도처에 있는 허섭스레기들을 태우면 목욕물을 해결하겠다 싶어 아궁이를 만들기로 했다. 이때 생각난 것이 흙이었다.

흙, 흙으로 밖에 아궁이를 만들고 굴뚝도 높이 세우면 그것 참 근사하겠다. 굴뚝으로 연기가 빠져 나가는 그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이런 생각으로 흙을 퍼다가 이겨서 아궁이를 만들었다. 만들어놓고 보니 아닌 게 아니라 보기에 좋았다. 굴뚝으로 빠져 나가는 연기는 그야말로 일품 중에서도 일품이라 할만 했다.

그런데 한 달이 채 안 돼서부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만 내리면 아궁이의 흙이 흘러내렸다. 이 미터 가까이 높이로 쌓아올린 굴뚝에서도 흙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바닥에서는 고인 물에 흙이 젖어서 흐물흐물한 것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야, 이걸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런 하나마나한 고민을 얼마나 했던가. 장마철의 어느 하루 요란한 소리가 들려서 뛰쳐나가 보니 이게 뭐냐. 굴뚝이 왕창 주저앉아 버렸다. 아궁이도 정상은 아니었다.


# 3년도 못쓰는 철제보일러



게으르기로 하자면 누구 못지않게 훌륭한(?) 나는 망가지고 무너진 아궁이와 굴뚝을 그대로 둔 채 대충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내 쪽으로 와서 눈물에 콧물에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었지만 그것을 묵묵히 견뎌내 온 세월이 얼마였던가. 

자, 이제 와서 정리를 해보니 내가 그동안 흙을 완전히 거꾸로 활용하고 있었다. 실내가 아닌 밖에 아궁이를 만들 때는 흙이 아니라 시멘트를 사용하는 것이 좋고, 방바닥 미장을 할 때는 흙이 없으면 모를까 있다면 시멘트보다 흙이 훨씬 좋다는 것을, 오호, 게으른 데다 미련하기까지 한 나는 이제야 그것을 알게 된 거였다.

그렇다면 이참에 아궁이도 한 번 제대로 만들어봐? 그래, 그것이다. 방바닥 미장은 흙으로 하고, 일 주일여에 걸쳐 죽을둥 살둥 땀 흘려 퍼다 놓은 모래는 아궁이를 새로 만드는데 쓰기로 하자.

이렇게 해서 모래는 일단 뒤로 밀어두고 새로이 흙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본 것도 있고, 들은 풍월도 있어서 볏짚도 한 단 마을에서 얻어다가 작두로 설렁설렁 썰어 넣었다. 그것을 장화 신은 발로 밟고, 또 밟고 해서 점도와 밀도를 한껏 높인 다음 방바닥에 한 삽씩 퍼다 놓고 미장을 하는데 어마지두야, 이게 장난이 아니다. 그 찰기가 어찌나 집요한지 흙손이 흙에서 떨어지지를 않는 것이다. 그 바람에 방 한 칸 미장을 하는데 이틀이 걸렸다.


# 5년 쓴다는 스텐보일러



어쨌든 방바닥 미장을 흙으로 마감하고 아궁이를 시멘트로 만들어 내느라 또 사흘이 걸렸다. 온 몸이 녹초가 된다는 말이 그렇게도 실감날 수가 없었다. 아이고 세상 나도 모르겠다, 하고 퍼져 버렸든가 어쨌던가, 어느 순간 뭔가가 콧속을 간질이는 거였다. 부드럽고, 정겹고, 낯설지 않은 냄새가 마치 사람의 손길이 내 몸을 어루만지듯이 내 마음을 다독이고 있는 거였다.

이게 뭐냐? 뭐지? 생각을, 의문부호를 남발하면서도 나는 계속 누워 있었다. 몸이 피곤해서가 아니라, 그 냄새 자체가 나를 그렇게 누워있고 싶게 만들고 있었다. 가끔 코를 킁킁거리면서, 속절없이 입맛을 다시기도 하면서, 무엇인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마음으로 한참을 누워 있다가 결국은 벌떡 일어나서 냄새의 정체를 찾아보기로 했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찾아본다는 것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알고 있는 것을 감각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일 뿐이었다. 흙에서 나고 자란 내가 어찌 흙이 뿜어내는 그 독특한 냄새를 모르겠는가 말이다.

그랬다. 흙이 마르면서 뿜어내는 그 향기가 나를 매혹시키고 있었다. 한여름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질 때의 흙냄새와는 완전히 다른 냄새, 향기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이 향기의 근원은 대체 무엇인가. 향기를 음미하면서 살포시 잠들고 싶은, 잠들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어나고 싶은 이것은 대체 무엇인가.  아, 이제야 알겠다. 흙이 왜 사람에게 좋다고 하는지를.

그것은 뭐랄까. 오래 그리던 고향에 돌아와서 맞이하는 첫밤처럼 안온하게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하는 향기였다. 이런 향기 속에서 그냥 누워만 있는 무례를 내가 범할 것인가? 아니다. 그러면 안 된다. 그리하여 나는, 황병기 선생의 가야금 작품 중에 <비단길> 시디 하나를 컴퓨터에 넣고 귀를 기울여 보기로 했다.

가야금과 흙냄새. 비단길과 황토. 아하, 그 기분 참 묘하도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침향을 음미할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침향(沈香)이 무엇이더라? 나는 그 향을 맡아본 적이 없다. 그런 것이 있다는 얘기만 들었다. 오래 전에도 들었고, 최근에도 들었다.


# 시멘트 아궁이


서울에서 한 친구가 왔을 때,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로만 시간을 보낼 수 없어서 고창의 가볼 만한 곳을 생각하다가 미당 시문학관을 찾기로 했다. 그 친구의 전공이 소설이기는 하지만 소설 이전에 시를 공부했기 때문이었다.

미당 문학관 옆에 미당의 아우 우하 서정태 선생이 홀로 기거하고 계셨다. 전북일보 사장을 끝으로 오랜 언론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지도 이십여 년이던가, 아마 그 언저리쯤 되었을 것이다. 금년에 구십하나. 구십 나이에 시집 하나를 냈는데 엄청 잘 팔린다는 얘기를 출판사에서 방금 전해 왔다고, 그런 말을 하면서 껄껄껄 웃는데 그 웃음소리가 연치 구십 노인의 것인가 싶을 정도로 장쾌했다. 그 뒤로 무엇인가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문득 화제가 침향으로 옮겨갔다.

“과거에 미당은 말이여. 침향을 일러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상들이 후손들의 우아한 생활을 고려해서 나무를 갯벌 속에 묻어두었다는 거여. 그것을 오백여 년쯤 지난 뒤에 후손들이 캐내서 그 향취를 즐기게 되었다는 거여. 그런데 내 생각은 달라. 완전히 달라. 어부들이 말이여. 드넓은 바다에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그것을 예방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세워놓은 말목이 있단 말이거든. 이게 참나무여. 이 참나무 말목이 태풍이라든가 이런저런 이유로 쓰러진단 말이거든. 쓰러진 이것이 어디로 가느냐, 갯벌 속으로 깊이 묻히는 거여. 묻힌 채로 수백 년을 있다가 외부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밖으로 나오는 거여. 이게 침향이여. 이것을 말려서 태우면 향기가 아주 좋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느냐의 문제는 각자의 상상에 맡겨야겠지만, 어쨌든 침향은 그런 것이여. 내가 어떤 기자 앞에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아, 이 사람이 중장비를 동원해서 침향을 캐러 다니겠다고, 이런 넋빠진 소리를 하더라고. 침향은 우연이여 우연. 우연히 발견해야만 진짜 심도 깊은 향취를 내는 것이라고.”

“아, 우연, 어렵네요. 어려우면서도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도 있네요.”
“인생이란 것이 결국은 그런 것 아닌가?”

그날의 대화가 내 머릿속을 휘저어대고 있었다. 우연, 그래, 우연이었다. 나는 우연히 흙을 발견했다. 흙이 뿜어내는 그 독특한 향기를, 내 몸의 저 깊은 곳까지를 들여다보게 하는 그 깊은 향취를 나는 우연히 발견했다. 누구로부터 흙의 향기에 대해서 들었다면, 혹은 어떤 책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다면, 그때의 그것은 나를 그리 크게 감동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리를 하자면, 나는 이제 흙을 어지간히 알았다고 말해도 좋은 상태에 도달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지식이라고 말할 만하지 않을까? 누군가가 이미 정리한 것을 암기해서 아는 체하는 죽은 지식이 아니라 펄쩍펄쩍 뛰는 살아 있는 지식 말이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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