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이별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인사와 사정, 정책 등 최근 들어 전방위적으로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 혹은 거리두기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반복돼 왔다. 전 정권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을 원동력으로 ‘정권교체’를 이룬 경우 차별화의 명분은 명확하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민하고 있는 박 대통령이 어떻게 이전 정부와 차별화를 분명히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전현직 정권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역사 바로세우기’를 주장하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 ‘쌍끌이 구속’을 단행했다. 참여정부 때는 DJ정권의 핵심 박지원 의원을 구속했고, 대북송금 특검으로 DJ의 최대 치적인 햇볕정책에 흠집을 냈다.

박근혜 정부의 MB정부 흔적 지우기가 시작됐다. 인사와 사정, 정책 등 전 분야를 망라한 모양새다. 미국 부시 전 대통령의 ‘클린턴만 아니면 어떤 것도 된다’`를 빗댄 박 대통령의  ‘ABM(Anything But MB)’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국정조사도 가능

검찰은 최근 경찰로부터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의 수사결과를 송치받음과 동시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이후 첫 승부수다. 그는 이번 사건을 ‘국가정보원 관련 의혹사건 일체’라고 언급해 목표가 MB 최측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정원도 자체적으로 ‘원 전 원장 비리의혹 조사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1급 이상 고위 간부도 물갈이했다. 원세훈으로 상징되는 ‘MB 국정원’과의 완전한 결별을 선언한 셈이다.

사정의 칼날 위에는 ‘MB정부의 대표 국책사업’ 4대강도 있다. 이미 수차례 4대강 사업 검증 의사를 밝혔던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야당 상임위 간사들에게 의혹 조사에 야당 추천 인사를 포함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의혹 조사는 부실공사뿐만 아니라 담합과 입찰비리,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최근 야당에서 4대강 관련 폭로가 잇따르는 것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4대강 사업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는 4대강 2차 턴키공사 밀약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감사원은 지난달 4대강 입찰 담합 조사가 부실하다며 공정위에 대한 감사에 전격 착수했다.

감사원은 이에 대한 감사 결과를 7월 말까지 완료하는 한편, 국토교통부와 문화재청을 대상으로 4대강 공사 구간의 매장문화재 보호, 관리실태에 대한 감사를 다음달 10일까지 추진할 예정이다.

감사원 고위 관계자는 “감사 결과가 이르면 6월쯤 나올 것으로 안다”며 “4대강 사업 시행을 둘러싼 각종 담합 의혹이 낱낱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4대강 사업과 관련한 각종 비리의혹과 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이미 대우건설이 4대강 사업 과정에서 25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내고 막바지 수사를 하고 있으며, 서울중앙지검도 건설회사간의 입찰 담합, 공사비 부풀리기 의혹과 관련한 각종 고발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4대강 사업은 사정당국을 넘어 국회 국정조사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여 정국을 뒤흔들 핫 이슈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재계 일각에서는 이명박정부에서 특혜의혹이 짙었던 제2롯데월드 신축 허가에 대한 사정당국 조사가 시작될 경우 이명박정부와 롯데그룹 간 밀월관계를 집중 파헤치는 ‘롯데게이트’로 비화될 것이라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롯데그룹은 이명박정부에서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허가, 맥주사업 진출, 면세점 AK글로벌 인수, 경인고속도로 연결 민자고속도로 건설 등 굵직한 사업을 따내면서 초고속 성장했다. 박근혜정부 들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롯데그룹에 칼날이 겨눠진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검찰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제2롯데월드에 대한 인허가건 관련 조사에 이미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국세청은 국제거래조사국 소속 요원 30여명을 투입해 그룹 핵심인 ㈜호텔롯데에 대한 고강도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감사원도 지난 10일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배우자와 자녀, 손자 등이 회사를 설립한 뒤 낮은 임대료로 영화관 내 매장을 운영하는 방식으로 현금배당 280억원과 782억여원의 주가상승 이익을 얻었다고 밝혔다.

‘대북 정책’도 온도차

‘MB맨’ 솎아내기도 본격화되고 있다. 금융권 4대천왕 중에서 강만수 한국산업은행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교체됐거나 교체를 앞두고 있다. 이지송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김건호 한국수자원공사 사장 등도 임기를 남기고 사퇴했다. 정치권에선 이런 물갈이가 속도 조절은 있겠지만 올 한 해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박근혜정부와 MB정부 모두 ‘보수’를 표방하고 있지만 대북정책에서도 거리감이 느껴진다. ‘비핵 개방 3000’에 따라 북한의 변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MB정부와 달리 박근혜정부는 위기지수가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대화 제의‘ 카드를 선택했다. 상대적으로 유연한 접근이라는 평가다.

여권 관계자는 “MB정부 초기 박 대통령 홀대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이 작용하지 않겠냐”고분위기를 전했다. 전현직 정권의 ‘이별 전쟁’이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