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찌를 듯 솟구친 저 빌딩숲 바로 뒤 숨겨진 그들만의 삶이 있다!
하늘 찌를 듯 솟구친 저 빌딩숲 바로 뒤 숨겨진 그들만의 삶이 있다!
  • 승인 2013.04.3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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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쪽방촌을 아십니까-1> ‘끈끈한 정’으로 희망 말하는 주민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경제대국이다. 빌딩숲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 도심 속 번화가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지난 60년간 급속하게 성장했고, 국민들의 삶의 질 역시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점을 부정하는 이는 없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과 무한경쟁 구도 속에서 낙오된 이들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동자동, 영등포, 청량리, 동대문 등 서울 도심 곳곳에는 최하층에 해당하는 도시 빈민의 삶이 상존한다. 빌딩숲 사이에 가려진 쪽방촌이 여전히 군데군데 숨어 있다. 이중 ‘동대문 쪽방촌’은 쪽방촌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하면서도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는 곳이다. 대형 쇼핑몰이 몰려있는 동대문 한복판에 자리해있지만 인근에 사는 주민들조차 그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다. <위클리서울>은 ‘숨겨진’ 동대문 쪽방촌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담아보기로 했다. 그 첫번째로 쪽방촌의 풍경과 주민들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았다.
       




유명 정치인들 다녀가도 변화 없어

서울 종로구 창신동 430~464번지에 걸쳐 있는 동대문 쪽방촌. 동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청계천이 흐르고, 왼쪽으론 종로와 청량리를 잇는 대로가 이어진다. 청계천변엔 신발을 파는 도매상들이 줄을 지어 들어서있고,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이 있는 대로변으론 잡화점과 문구도매점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쪽방촌은 바로 이 가운데에 감춰지듯 자리하고 있다.

사람 한명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구불구불 돌아 들어가면 대형쇼핑몰이 숲을 이루고 있는 주변과는 전혀 다른 낯선 풍경과 마주친다. 1평 남짓한 방 400여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쪽방촌이다. 동자동, 영등포, 청량리 등 대부분의 쪽방촌은 사창가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본격 형성돼 왔다. 동대문 쪽방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70년대부터 쪽방이 들어서기 시작했지만 쪽방촌이라기보단 사창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실제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성매매가 극성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이곳 사창가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90년대 중반 무렵 빈부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도시 빈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동대문 쪽방촌’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물론 사창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지금에 와선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다.       





쪽방촌을 공동체적 삶의 현장으로 구현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지난해엔 서울시청 직원들과 홍익대 학생들이 낡은 건물 담벼락마다 벽화를 그렸다. 이들은 쪽방촌 주민들과 공동작업 끝에 좁고 걷기조차 힘들었던 거리를 ‘걷고 싶은 거리’로 탈바꿈시켰다. 각종 민화와 만화 캐릭터 그리고 이태백의 시가 골목골목마다 펼쳐진다.     

주민 이모(59. 여) 씨는 “동네가 번듯해져서 마음에 든다. 예전엔 골목이 우중충해서 보기 싫었는데 지금은 오고 갈 때 마음이 한결 가볍다”며 “학생들에게 작업 장비 후원하고 간식 갖다 주며 공동 작업한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벽화 작업만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찜통 속에서 여름을 견뎌내야 하고,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나야 한다. 때마다 각종 후원과 유명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지지만 실제로 변한 건 전혀 없다는 게 주민들의 얘기다.





이 씨는 “문재인 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도 다녀갔다. 선거 때나 무슨 이슈만 있으면 유명 정치인들이 이곳을 찾는다”면서도 “변한 건 없다. 이런 쪽방촌을 위해 복지정책을 실행하겠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정책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정책인 것 같다. 대통령이 수없이 바뀌었지만 정작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5년 전부터 이곳에 거주했다는 일용직 노동자인 박모(48. 남) 씨는 “그나마 다른 쪽방촌보다 월세가 저렴해 여기 살고 있다. 동자동이나 영등포는 여기에 비해 비싸다. 여긴 월 10만원 짜리 방도 있다. 하지만 건물이나 방의 상태가 좋지 않다. 정말 없는 사람들만 거주하는 곳이다”고 말했다.

박 씨는 “월세 수준과 방 수준이 비례하지 않겠느냐. 썩은 냄새가 진동해 맨 정신으로는 도저히 잠들기 힘들다”며 “일이 힘들어 곯아떨어지거나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동대문 쪽방촌은 서울의 쪽방촌 가운데서도 첫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환경이 열악하다. 건물이 오래되고 다닥다닥 붙어있어 불이라도 나면 전부 타죽는다.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살아가는 곳”이라고 했다.




생필품은 길거리에서 해결

‘최악의 쪽방촌’이라는 멍에를 지고 있지만 주민들은 이마저도 없으면 당장 길바닥에 주저앉아야 할 처지다. 폐지 줍는 독거노인부터 일용직 노동자, 약간의 목돈이 생겨 쪽방을 장만할 수 있게 된 노숙인까지, 다양한 도시 빈민들이 이곳 쪽방촌의 일원이다.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고 있는 김모(71. 여) 씨. 수급비의 대부분은 월세와 약값으로 나간다. 이런 상황에서 20만원이 넘어가는 월세 방은 언감생심. 그는 15만원 짜리 쪽방에 살면서 폐지를 모아 생활비에 보탠다. 김 씨는 “10년간 폐지를 주웠다. 폐지를 모아 팔면 그나마 굶주림에서는 벗어날 수 있다. 생필품 살 돈이 없으니, 눈에 띄는 물건이라도 있으면 가져와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방문 앞에 놓인 신발이나 의자, 욕실에 놓인 세숫대야도 모두 폐지를 모으는 과정에서 얻은 것들이다.

심모(82. 여) 씨는 세를 놓고 사는 건물주다. 하지만 정작 속사정은 세입자보다 더 열악하다. 다 쓰러져 가는 그의 건물에 세 들어 사려는 이들도 많지 않다. 건물주다 보니 수급대상자에도 포함되지 않아 파탄 직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몇 안 되는 세입자 중에선 월세를 미루고 미루다 줄행랑을 치는 이들도 있다.








“1~2개월가량은 방세를 내다가 돈이 없어 방세를 미루는 이들이 있다. 새로 들어올 사람이 없다보니 쫓아낼 수도 없다. 그러다가 도망가고 마는 것이다.”

그는 “도망가도 그냥 도망가는 게 아니다. 집어갈 수 있는 물건들은 다 집어간다”며 “신고해도 잡는 건 불가능하다. 나이가 들고 거동이 불편해서 잡으러 갈 수도 없는 실정이다”고 했다.

10년 전부터 지병을 앓고 있는 심 씨의 한 달 약값은 40여만원. 하지만 월세를 다 받는다 해도 채 50만원이 안 된다. 전기세, 수도세 등 건물 유지비를 제외하면 약을 사는 것도 불가능하다. 심 씨는 “걸음도 불편해 월세 받는 일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폐지 줍는 이웃들이 부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고령층이 많은 이곳 주민들에게 의료비는 큰 부담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된 손자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심 씨는 “돈이 없어 손자는 대학 같은 곳은 꿈도 못 꿨다.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해선 취직도 안 되지 않느냐”며 “손자가 군대를 가면 앞으로 몇 년간 혼자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갈지 깜깜하다”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남편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들을 혼자 부양하는 유모(65. 여) 씨 역시 기초생활 수급대상자가 아니다. 심 씨는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사고까지 당해 결국 이곳으로 왔다”며 “식당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입에 풀칠한다. 월세 내면 사실 남는 돈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한편 300명이 넘는 쪽방촌 주민 중 수급자는 100명이 조금 넘는 30%대에 불과하다. 김나나 동대문 쪽방센터 소장은 “예전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쪽방촌 주민에게 가장 낮은 보험료만 내도록 배려해 줬지만 담당자가 계속 바뀌면서 그 혜택마저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 



    
마을공동체로서의 가능성

어렵고 힘든 상황이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다. 가난해도 주변의 이웃들과 소통하며 살 수 있다는 현실에 희망을 거는 주민들이 많다. 오모(63. 여) 씨는 “가난하지만 그나마 서로 의지하는 공동체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버티고 살아간다”며 “그래서 우리 동네에선 ‘고독사’ 같은 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오 씨는 “주민들 중 누가 아프면 서로서로 119에 신고해준다. 입원 보증도 서준다”며 “비록 가진 건 없지만 이웃 간의 정은 남아있다”고 말했다.

폐지수집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오 씨는 주변에서 폐지도 못 줍고 다닐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연로한 이웃들에게 ‘될 만한’ 물건들을 제공하기도 한다. 오 씨는 “그날그날 주워 물건이 된다 싶은 것들은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이웃들에게 나눠준다”며 “저 역시 쌀이 떨어지거나 그날 먹을 반찬이 없으면 주변에 도움을 청한다. 서로서로 도우며 사는 관계여서 외로워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쪽방촌이라고 해서 ‘못 배우고 가진 것 없는’ 이들만 생활하는 곳은 아니다. 평생을 성실히 살아왔고 젊은 시절 엘리트코스를 걸었던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쪽방촌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주민 이모(70. 남) 씨는 60년대에 한양공대 토목학과를 졸업하고 벽산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굴지의 건설회사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일했다.

이 씨는 “한양공대 출신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토목 전공이어서 말 그대로 ‘노가다’만 뛰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해외출장이 잦았던 그는 퇴직하기 전까지 주로 아랍권에서 파견근무를 했다.



이 씨는 “돈은 많이 벌었지만 제가 장남이었고 밑으로 여동생만 4명이 있었다. 그놈들 뒷바라지 하느라 큰돈을 모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해외출장 중 한국에 있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다. 이 씨는 10년 전 이곳 쪽방촌으로 거처를 옮겼고, 출가한 아들은 부산에서 살고 있다. 고향이 경주인 이 씨는 “경주에 아직도 집이 있지만, 아무도 살지 않아 명절 이외엔 내려가지 않는다”며 “친구들도 모두 서울에 살고 있어 이곳 생활이 편하다. 특히 쪽방 주변엔 지하철 1, 2, 4, 5호선이 엮여 있어 이동하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현재 특별한 직업이 없다. 쪽방촌 주민들과 어울려 바둑이나 고스톱 등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는 “기회가 되면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영어와 아랍어, 수학 등도 가르치고 싶다. 말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느냐”며 “아직까진 그런 프로그램이 없지만 공동체 사업이 시작되면 재능기부 등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여전히 희망을 얘기한다. 동대문 쪽방촌이 ‘최악의 쪽방촌’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마을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해선 각계의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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