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쉬메켈 지음/ 한국 게르만어 학회 김재명 외 5인 옮김/ 푸른역사





선사시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여전히 미미하다. 정규 교과 과정을 통해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에 대해서는 상세히 배우고 있다. 또 이집트인이나 바빌로니아인 그리고 고대 게르만인에 대해서도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중부 유럽인에 대한 시야는 지금으로부터 2천 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서구 역사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아직도 이들 문명 민족들에게만 고정되어 있다.

그리스인들이 서사시를 지어내고 신정을 세우기 전에 또 로마의 군대들이 세계 정복을 위해 진군하기 전에, 유럽과 서부 아시아 지역은 대체 어떤 상황에 있었을까? 당시 그곳은 전 지역이 숲과 늪으로만 이루어져 있었으며, 주민들은 거친 털가죽으로 몸을 감싼 야만인들이었을까? 유럽인의 역사는 정말로 그리스인과 로마인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기원전 800년이나 400년경에야 비로소 시작된 것일까? ≪인도유럽인, 세상을 바꾼 쿠르간 유목민≫은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며 “미지의 어두운 대양”과 같은 인도유럽인의 역사를 조명한다.

이 책의 저자인 라인하르트 쉬메켈은 인종학과 인도게르만학에 정통한 학자다. 여기에 과거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경험이 더해져 저자의 글은 상상력을 동원한 힘 있는 글쓰기에 정교한 해석이 돋보인다. 저자는 이런 솜씨로 정통 역사만을 배운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미지의 어둠 속 대양과 같은 인도유럽인에 대해 희미하나마 새로운 불빛을 비춰주고, 이 인도유럽인에서 기원한 여러 종족들 간의 관계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또 이들이 이뤄낸 주요 핵심 문화들을 짚어내면서 그동안의 역사 서술 과정상에 나타난 일방적 편향성을 수정한다. 그렇다고 선사시대를 다룬 여느 책들처럼 문화사, 예술사, 언어사 전반을 전달한다거나, 또 고고학자들이 선사시대 민족들을 구분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인 도자기의 다양한 형태나 이에 새겨진 문양에 대한 세세한 서술은 없다.

그보다 저자는 여러 종족 간의 관계에 주목한다. 즉 이들이 어디에서 왔으며, 자신의 선주민이나 이웃 종족들과 생리학적, 문화적으로 어떤 관련성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또 이들이 자신들의 후손들에게 어떠한 문화와 업적을 남겨놓았는지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주제는 고고학자와 현대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깊이 관여하기를 상당히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 문제에 대해 오직 추측에만 근거해 답을 주려 하겠는가?

각 장에는 임의로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가 마치 다큐멘터리의 재연 드라마처럼 들어가 있다. 이 이야기들은 당시의 특별한 상황과 상태를 돋보기로 보듯 묘사해 학문적으로 밝혀낸 무미건조한 내용을 딱딱하게 서술해서 생길 수 있는 독자들의 지루함을 해소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물론 이 이야기들은 단순히 소설가적 상상력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정밀한 연구 결과로 밝혀진 역사적 상황을 근거로 실제 일어났을 법한 개연성에 바탕을 두고 높은 상상력을 발휘해 만들어낸 이야기다.

순수 학문 연구자들은 이러한 픽션을 첨가하는 서술 방식을 비학문적 행위로 간주하면서 경멸의 시선을 보낼지 모른다. 그러나 기록된 역사의 이전 시대를 이해하는 데 큰 장애를 주는 두꺼운 벽에 틈새를 만들어내고, 또 그 틈새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는 데에는 많은 주석이 달린 두툼한 학술 논문보다는 이러한 서술 방식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곳저곳에 생긴 여러 작은 틈새들을 좀더 넓혀줄 것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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