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도대체 책이 뭐냐고?



# 우리마을


한때는 인구 삼백여 명을 헤아렸다지만, 지금은 전부 해서 스무 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우리 마을 한쪽 귀퉁이에서 때 아닌 난리가 벌어졌다. 고추모종 같은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세 명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장면을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진 오늘날의 상황에서 무려 다섯 명이나 모여앉아 떠들어대고 있었다.

다섯 명이면 우리 마을 남자들은 거의 다 모인 셈이었다. 인구가 전부 해서 열세 가구 열아홉 명이라고는 하지만 며느리와 시어머니, 할머니 혼자,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딸과 친정엄마, 등등 그렇게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 마을에서 남자들이 두세 명도 아니고 다섯 명이나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매우 진귀한 풍경이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 지명한 장관 후보자 한 사람이 자진사퇴 형식으로 물러났다는 얘기가 아마 남자들을 한 자리에 묶어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장관 후보자께서 그냥 물러나고 말았다면 조용한 우리 마을에서 그런 식의 논쟁은 아마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보자께서는 조금 과장을 하자면 청사에 길이 남겨질 만한 말씀을 남기셨던 모양이다.

여러 말이 있었지만 우리 마을 남자들의 정서를 자극하고 기억을 확실하게 장악한 말씀은 이런 것이었다. 대학으로 돌아가서 교수‘질’이나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던가. 나는 그 양반의 말씀을 뉴스로도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우리 마을 사람들이 텔레비전 뉴스를 통해서 직접 들었거나 혹은 소문을 통해 들은 바로는 아마도 그랬던가 보다.


# 방죽에서 올챙이를 찾는 아이들


대통령이 장관을 해보라 해서 청문회까지 출석을 했다. 그런데 그동안 살아온 내력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장관직을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장관 안 하고 지금까지 재직해온 학교로 돌아가서 교수 노릇이나 열심히 하겠다. 이런 말과 함께 장관 후보 자격을 사퇴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놓고 벌이는 우리 마을 남자들의 토론이랄까 논쟁이랄까, 하여튼 입담은 대단히 진지하고 또 진지해서 가히 블랙코미디라 할만 했다.

“아니 긍게 머시냐 그, 장관 자격은 없어도 교수 자격은 있다, 이것인디, 잉?”
“장관이 높은 것이여, 교수가 높은 것이여?”
“교수가 장관을 할 수는 있어도 장관이 교수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먼 그런 말도 안 되는, 장관도 교수 할라고 맘만 먹으믄 다 한당게.”

“아따 이 사람들이 시방 먼 소리를 하는겨. 도둑놈이 자기가 도둑놈이란 것도 모르고 살아오다가 인제서야 도둑놈이란 것을 알았으니 죄송스럽다는 뭐 그런 말씀이더만.”
“그걸 말이라고 해쌌는가 이 사람아. 도둑놈이 머시여 도둑놈이. 자네 아들을 가르치는 교수님한테.”
“야튼간에 자기는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디 그런 사람이어서 미안하다, 죄송하다, 그러니 하던 대로 그냥 교수 노릇이나 할랑게 나쁜 일일랑 다 잊어달라, 이런 말씀이었던 것은 확실하게 사실 아닌가?”

“아니 그러믄 대학에서는 도둑놈 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여 도둑놈 안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여, 응? 나는 이것이 젤로다가 헷갈린단 말이시.” 
“아따 이 사람들 참말로 폭폭하구만 잉? 여러 말 할 것도 없어 이 사람들아. 한 마디로 딱 잘라서 말하믄 이런 것이여, 공부 많이 헌 사람들, 책 많이 본 양반들, 그런 사람들은 도둑질을 해도 신사적으로 머시냐 거, 아름답게 한단 말이거든. 그래서 자기가 도둑질을 하고도 자기가 도둑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이여.”


# 할머니 혼자서 고추밭 비닐을 씌우고...



“아니 근디 이 사람은 어째서 자꾸 도둑, 도둑 헌당가. 따지고 보믄 이 세상에 도둑 아닌 사람도 없는 것이여 이 사람아. 말이야 바로 말해서 자네는 도둑질 안 해 봤는가? 하다못해 닭서리라도 안 해 봤어?”
“나는 내가 도둑질 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이 사람아. 지금도 생각하믄 가심이 두근거리고, 그때 그 닭집 주인을 멀리서라도 보믄 고개가 숙여지고, 그런단 말이여. 근디 장관 할라다가 못하고 교수나 계속 하겠다는 그 양반은 자기가 뭔 짓을 했는지도 모른다잖여.”

“허허 이 사람 참말로 사람 잡을 사람이시, 그 양반이 은제 자기가 한 짓을 모른다고 했던가?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잖여 이 사람아.”
“야 이 사람아, 말은 바로 해야지, 그것이 먼 사과당가? 글고, 사과를 헌다면 그것은 또 뭔 소용이 있당가. 감옥을 가는 것도 아니고, 교수 노릇을 못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대로 옛날처럼 살아갈 것인디 말이여, 잉? 옛날처럼 계속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다 이것이여 잉? 이것이 뭔 말인지 아는가? 그 양반이 학생들한테 도둑 안 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 아니믄 도둑질을 아름답게 잘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이것이여 내 말은.”

“긍게 자네는 그래서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은 못 믿는다, 이것이제?”
“그렇제, 그렇제, 그것이제. 바로 그것이여.”
“글믄 자네는 계속 그렇게 불신이나 하소. 불신지옥이라는 말도 못 들어봤는가 이 사람아.”
“하아이고, 지랄허고 자빠졌네.”


# 아저씨도 혼자서 고추모종 준비를 한다.


같은 이야기가 되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도무지 논쟁이랄 것도 없는 논쟁은 끝날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농사일이란 것이 모두가 각자 개인사업인 까닭에 한 자리에 모이기는 어려워도 일단 모였다 하면 헤어지기 아쉬워서 무엇이든 핑계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심리도 사실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그렇다 해도 그날의 주제는 가벼움과 무거움, 혹은 이유 있는 불신과 무조건적인 믿음이 팽팽하게 맞서는 까닭에 누구도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아무 데서나 쉽게 들을 수 있는 테마는 아니었다. 바쁠 때는 정신없이 바쁘고 한가할 때는 한없이 널널해지는 농어촌이 아니고서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산다는 것의 의미를 원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농촌 사람들의 이런 무식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보석 같은 것이어서, 우직하게 소박한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사람의 귀에는 쏙쏙 잘 들어오지만 듣기 싫어하는 사람의 귀에는 절대로 들리지 않는 마술 같은 매력이 깃들어 있기도 했다.

책이나 혹은 지식과 관련된 농촌에서의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도시생활 정리하고 농촌으로 내려온 뒤로 책이 뭐냐고 묻는 사람을 아마도 스무 명쯤은 만났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내 이야기를 듣고 내 집으로 나를 찾아온 사람이거나 혹은 전도를 나온 종교인들이 시비조로, 혹은 안타까워서 충고를 하고 싶다는 투로 던진 질문이긴 했지만, 출근과 퇴근이 뻐꾸기시계처럼 거의 매일 일정하게 반복되는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질문이었다.

책이 뭐냐고? 처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는 참 많이 당혹스러웠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책이 뭐냐고 묻는 사람이 다 있었다니.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단 말인가.


# 논두렁 잡초를 태우는 연기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일종의 힐문이었다. 비난이기도 하고, 비웃음이기도 했다. 요컨대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 자신은 책에 대한 답을 이미 갖고 있었다. 책이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하는 답을 그가 이미 갖고 있었기에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답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질문이라도 사람에 따라서, 주된 관심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가 스스로 내린 답은 천차만별이고 천양지차이가 있었다. 가령 종교에 흠뻑 취한 사람들은 종교서적 이외의 모든 책들을 경쟁상대거나 심한 경우 적으로 보고 있었다. 오직 한 분의 절대적 존재인 신에게 모든 것을 의탁해야 마땅한 인간이 이런저런 온갖 잡동사니 사상을 접하면서 신을 몰라보거나 의심하게 된다는, 그러므로 책이나 지식은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이론을 상당수 전도사들이 확립해놓고 틈만 나면 그것을 설파하려 하고 있었다.

“아, 책을 쌓아놓고 읽으면서 사는 것도 재미가 좀 있기는 하겠네요, 잉? 하지만 그뿐이지 않나요? 천국도 없고, 불변의 절대적인 존재를 만나볼 수도 없고, 그러니 결국 말초적이고 순간적인 즐거움에 불과하지 않나요?”

나를 전도하러 온 종교인들은 대개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전투적인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 목소리는 부드럽고 눈초리는 예리하면서도 안타깝다는, 불쌍한 너를 내가 어찌 구원하면 좋겠느냐는 투의 호소가 담겨 있었다. 그에 비하면 스스로를 무식한 농투사니로 규정하고 있는 농부들의 비난이랄까 비웃음은 그 말투가 대단히 전투적이면서도 내용은 사뭇 감동적인 면이 있었다.   


# 책 읽는 사람


“이날 이때까정 책 한 권 안 떠들어봤어도 나는 굶어죽을 꺽정을 해본 적이 읎네.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아져본 적도 읎네. 그러니께 나는 말이시. 그런 책 같은 것 떠들어볼 시간 있으믄 마누라 등이라도 긁어주겄네. 책이야 그까짓 거 백 번을 봐도 그냥그냥인 것 아니여? 그란디 책 읽을 시간에 마누라 등을 긁어주믄 뭔 일이 생기는 줄 아는가? 모르제?”

이런 이상한(?) 질문을 내게 던진 사람이 누구였더라? 그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은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난다. 술을 무척 즐기는 사람이었다. 비가 오면 비가 온다고, 날씨가 흐리면 날씨가 흐리다고, 이런저런 온갖 이유를 내세워서 툭하면 나를 찾아왔다. 서울에서 고창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그 무렵의 나는 그 사람 때문에 아주 골머리를 앓아야 했었다. 도무지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어느 하루 냉정한 표정으로 그의 술동무 되기를 거절했다. 나는 책을 봐야 한다, 그러니 이제 술은 그만 마시겠다, 했더니 그가 버럭 화를 내며 그런 연설을 늘어놓던 거였다.

하긴 그의 말이 옳을지도 모른다. 책이란 어차피 관념이다. 관념놀이에 빠지기보다는 부부간에 등 긁어주기 놀이를 한다면 세상은 좀 더 많이 부드러워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실용이 대세인 사회에서, 책만큼 반실용적인 물건(?)도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드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것은 인생이라는 도정에서 많은 지침이 된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 도움이 구체적으로 얼마큼인지 계량이 안 되고 수치화된 사례도 없다.

그나저나 그때의 그는 정말로 책 읽을 시간을 빼서 마누라 등을 긁어주었을까? 그야 내가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책으로 인해서 내가 받은 엉뚱한 질문은 많기도 하다. 돈만 생기면 책방으로 달려가서 책을 사는 버릇 때문에 받는 수난이었다. 수난, 그래, 그것은 분명 수난이었다. 왜냐하면 그 질문의 성격이나 방향이 무엇이 되었건 나는 그런 질문 앞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 책이란 대체 무엇일까...


심지어 어떤 사람은 “이 많은 책을 다 읽었냐”고, “그 내용을 다 기억하고 있냐”는 식의 기상천외한 질문을 해서 나를 아예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어놓고 있기도 했다. 물론 그때의 그 질문도 온전한 질문은 아니었다. 너 이거 다 안 봤지? 괜히 그냥 다 본 척만 하는 거지? 하는 식의 노골적인 비난이 그 눈가에 이미 서려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약과라 할만 했다.

농민운동을 매우 열성적으로 하는 사람들이거나, 사회현상을 매우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만났을 경우 나는 처음부터 아예 침묵을 해야만 한다. 내 입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이야기가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책깨나 읽은 데서 오는 관념으로만 여겨지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은 일단 한 자락 깔고 보기 때문에 도무지 말과 말이 잘 섞이지를 못하는 것이다.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을 못 믿겠다는, 믿을 수 없다는, 지식에 대한 불신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연원을 깊이 따져 올라가 보기로 하자면 아마도 인간이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고대사회의 풍속도를 뒤적거려야 할 것이다.

한 방울의 맑은 이슬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취했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듯이, 한 권의 책이, 한 장의 지식이 지혜로 승화되어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할 수도 있지만 사기술로 둔갑해서 여러 사람을 우울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쯤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은 지식이란 곧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지혜와 관련이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고, 이 믿음이 깨지면 ‘배운 놈 못 믿을 놈’이라고 흥분하곤 한다.

말 잘 듣고 순종적인 사람을 가리켜 착한사람 혹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우리의 이상한 언어풍습이 낳은 씁쓸한 풍속도라고나 할까.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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