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시골 관광호텔 종업원 최길용씨 이야기


# 미화반장 최길용씨의 한때




지난 해 12월 중순경 길을 떠났던 칠십이세의 최길용씨가 3월 말에 돌아왔다. 꽃은 막 피어나고 새들은 짝짓기로 부산한 계절 4월이 지나고 5월도 막바지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자 그는 다시 떠날 생각을 한다. 이번에는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서 한 달 반을 보내다 오지?

사월 오월 두 달여 동안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나면 유월 한 달은 거의 개점휴업 상태가 된다. 날씨가 무더워지기 시작하면 손님이 다시 들기 시작해서 여름방학 즈음쯤 반짝이특수를 누리다가 밤바람이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다시 뜸해지고, 가을이 깊어지면 단풍처럼 알록달록 화려한 세월을 두어 달쯤 누리다가 12월이면 또 사람의 그림자를 구경하기 어려워지는 게 시골 관광지의 관광호텔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궁벽한 산골 마을이 관광지로 지정되었던, 관광호텔이 처음 지어졌던 이십여 년 전에는 사계절 내내 방이 없어서 밀려드는 손님을 돌려보내야 했다. 지하의 나이트클럽은 5인조 밴드가 상주하며 아, 여기가 바로 관광지로구나 하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었고, 일층의 커피숍은 호텔 커피는 그 맛이 어떤가 궁금해 하는 ‘촌놈’들만으로도 자리가 늘 모자랐다.

찾아오는 손님을 돌려보내야 하는 호텔 사장님은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 세월을 사오 년 남짓 보낸 뒤에 드디어 증축을 결심했다. 객실도 대폭 늘리고, 나이트클럽도 확장하고, 커피숍도 경양식을 겸하게 했고, 한식당도 새로 오픈했다. 이렇게 해서 호텔은 종사원만도 삼십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때를 맞추기라도 한 듯 주 오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손님도 계속 증가했다. 호텔 사장님의 전략은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뭐냐. 전혀 뜻밖의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관광객의 취향이 국내여행에서 해외여행으로 바뀐 것인지,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이 오히려 값싸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하여튼 관광객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펜션문화가 확산되면서 여기저기 도처에 펜션이 들어서면서 호텔 손님을 중간에서 가로채가기도 했다.

종사원이 삼십여 명을 넘나들던 호텔은 이제 십여 명으로 줄었고, 그나마도 월급제가 아닌 일용직으로 봉급체계를 확 바꿔버렸고, 그것조차도 지배인과 영업부장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고용계약서조차 필요 없는 임시직으로 전환해 버렸다. 최길용씨도 당연히 일당제 임시직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 애완견 출신의 늙은 개


#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개 한마리 잡기가 이리도 어려울줄이야...


호텔 식구들에게 최길용씨는 반장님으로 통한다. 청소반장 아니 미화반장이다. 말이 좋아서 반장이지 구성원은 달랑 최길용씨 한 사람뿐이다. 혼자서도 잘하기 때문에 굳이 여러 사람으로 조직을 구성할 필요가 없었기도 하지만, 비수기와 성수기의 상황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시골 관광호텔의 특성상 쓰레기가 많을 때는 엄청나고 없을 때는 거의 없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도처에서 쓰레기가 휘날릴 때 미화반장 최길용씨의 존재감은 빛난다. 걸음걸이는 느려도 행동은 만화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빠르고 민첩하고 신출귀몰해 보인다. 방금 전에 일층 로비에서 진공청소기를 돌리고 있었던 사람이 어느새 옥상 청소를 마치고 삼층 대연회장 앞에서 좌우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식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행동이 느려지는 반면 눈치는 빨라진다. 이 눈치 빠름은 때로 다른 사람의 등을 쳐서 먹고사는 재주를 부리며 경찰과의 질긴 인연을 이어가기도 하지만, 경찰과는 도무지 연을 맺어본 적이 없는 최길용씨의 눈치 빠름은 떠날 때와 들어올 때를 시계의 초침처럼 제깍제깍 알아맞히는 방식으로 드러나곤 한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가 입을 열기 전에 내가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다면 서로가 편하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치사하게 늙다가 더럽게 죽지는 말자”고. 그래서 그는 호텔 주변에 쓰레기가 줄기 시작하면 때가 되었다 하고 떠난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 다시 때가 되었다 하고 돌아온다. 임금이 일당으로 계산되는 까닭에 떠나 있는 동안의 임금은 당연히 바라지도 않는다. 호텔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도 충직하고, 이렇게도 고마운 직원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호텔 사장님은 미화반장 최길용씨가 짐을 챙겨 들고 “사장님 저 한 두어 달 여행 좀 다녀오겠습니다”하면 한 달 임금의 십 퍼센트 정도를 여비로 챙겨주곤 한다.

여행을 명목으로 호텔을 나선 최길용씨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경상도 마산이 고향이고, 말단 공무원 생활을 했으며, 정년퇴직을 한 뒤로 전라도에 들어왔다는 정도의 인적사항만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하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개인의 과거사를 그 이상 알아서 무엇에 쓸 것인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외로움이었다. 너의 외로움을 내가 알고, 나의 외로움을 네가 알아주면 얼마나 줗겠느냐 하는 차원에서의 외로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인 그 외로움이 최길용씨에게는 좀 더 많이 있었다.


# 사람만 없으면 둘이서 얼마든지 행복하다.



# 눈치가 9단이 되어버린 진도견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관광호텔에 사람은 제법 많지만 최길용씨의 외로움을 같이해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사장님은 사장님이라서 늘 바빴다. 지배인은 지배인이라서 손님이 있거나 없거나 바쁘고, 영업부장은 영업을 하는 특성상 손님이 없을 때 더욱 바빴다. 객실담당 아줌마들은 손님이 있을 때만 출근을 하기 때문에 일단 출근을 했다 하면 무조건 바빠야 했고, 지하의 나이트클럽 사장님은 글쎄 뭐랄까, 손님이 있을 때는 손님이 있어서 바쁘고 손님이 없을 때는 먹고 살기 위해 ‘노가다’를 뛰느라고 또 바빴다.

아아 그랬다. 미화반장 최길용씨의 외로움을 함께해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미화반장 최길용씨는 궁여지책으로 개를 들여왔다. 돈을 주고 사온 것은 아니었다. 관광객 중에 누가 버리고 간 것인지, 잃어버리고 간 것인지 하여튼 굶주림에 피골이 상접한 늙은 애완견 한 마리를 발견하고 데려다가 먹이를 주기 시작했다. 버림받은 개는 최길용씨를 잘 따랐다. 최길용씨는 없는 돈을 투자해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개집을 사다가 앉히고, 창고에 처박힌 의자도 하나 찾아다가 개 집 옆으로 근사하게 배치해 주었다.

그런데 이 개도 외로움이 많은 것 같았다. 최길용씨가 청소를 위해 호텔 내부로 들어가면 번개처럼 빠른 걸음으로 따라왔다. 하지만 호텔 내부에 개를 들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강제로 떼어놓고 들어가면 늙은 개는 최길용씨가 나타날 때까지 우우, 하고 우짖는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최길용씨는 이 개의 친구를 구해 주기로 했다. 친구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진도견 잡종으로 추정되는 강아지 한 마리를 담배 한 보루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구해다가 친구를 맺어주었다.

며칠 뒤에 문제가 발견되었다. 애완견 출신의 늙은 개는 자신의 밥을 챙겨주는 사람이 “여기 있어”하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의 돌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그 주변에서만 놀았다. 진도견 잡종으로 추정되는 강아지는 그와 달리 멋대로 아무 데나 뛰어다니며 민폐를 끼치기 일쑤였다. 최길용씨는 하는 수 없이 개 줄을 사다가 목줄을 해서 강아지를 묶어놓기로 했다. 그게 지난 해 늦가을 즈음의 일이었다.


# 도망다니기도 지친다 지쳐...


# 이걸로 개를 포획한다고...

찬바람이 불고, 호텔에 사람 발길이 뜸해지면서 쓰레기 생산량도 급격히 줄어드는 계절이 왔을 때 최길용씨의 심사는 복잡했지만 다른 방도를 찾지는 못했다. 개 두 마리 때문에 하는 일도 없이 호텔 밥을 축낼 수는 없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는 심정으로 주방장에게 개 두 마리의 생계를 부탁했다. 주방장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최길용씨와 개 두 마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 삼월 말쯤에 최길용씨는 돌아왔다.

개들은 잘 있었을까? 돌아온 최길용씨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개 집 앞이었다. 개들은 안녕하지 못했다. 애완견 출신의 늙은 개는 예전과 똑같이 의자에 누워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진도견 잡종으로 추정되는 강아지는 이제 강아지가 아니었다. 강아지 시절에 묶어놓은 목줄을 매단 채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었다. 최길용씨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주방장은 최길용씨의 부탁대로 먹을 것을 착실하게 공급해 주었다. 강아지가 잘  자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먹을 것을 들고 나가면 후딱 부어주고 이내 돌아서곤 했던 모양이었다. 그 바람에 강아지가 자라면서 목을 묶은 목줄이 살을 파고든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고통을 참지 못한 강아지가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개 줄을 중간에서 끊고 멋대로 여기저기 아무 데나 뛰어다닌다는 것도 한참 뒤에야 알았다.

목줄이 살을 파고들었는데도 개는 이제 고통마저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쇠줄을 땅에 질질 끌고 다니며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이 없으면 애완견 출신의 늙은 개를 찾아와서 함께 놀며 밥을 먹었다. 사람이 나타나면 즉시 자리를 떠났다. 때문에 최길용씨는 개를 안아보기는커녕 만져볼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실상은 별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목줄이 개의 목살을 파고든다는 것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그 모양이 아주 혐오스럽다는 것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광지에 관광 성수기가 도래했다는 점이었다. 여기저기 아무 데나 뛰어다니는 아주 혐오스럽게 생긴 개를 관광객이 예쁘게 봐줄 수 있겠는가. 아닐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길용씨와 호텔 종사원들이 모두 나서서 개를 잡아 목줄을 풀고 목욕도 좀 시킨 뒤에 보다 큰 목줄을 달아서 묶어놓고자 했지만 도무지 개는 사람의 손을 허용하지 않았다.

부드럽게 여린 목소리로 개의 이름을 친절하게 불러대며, 고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음식을 그릇에 담아서 들고 흔들어대다가 개 집 앞에 가만히 내려놓고 물러서기를 몇 번이나 했지만 개는 속아주지 않았다. 목줄을 끊고 혼자서 멋대로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눈치코치가 이미 구단을 넘어서 도사의 경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어떤 때는 일 미터 전방까지도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만 손을 내밀면 미꾸리처럼 쏙 빠져서 저만치 가버리기 일쑤였다.

이걸 어떻게 하지? 큰일났다. 최길용씨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아니 그것은 고민이라기보다 생각이라고 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래, 생각이었다. 목줄을 매달고 뛰어다니는 개는 결국 그놈의 목줄 때문에 목이 졸려 죽고 말 것이다. 사람이 그것을 풀어주고자 하지만 개는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 목줄은 누가 달았는가. 누구에게 묻고 말 것도 없이 최길용씨 자신이었다. 외로움을 함께 하고자 들여온 개를 고통스럽게 하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야만 하는 운명을 만들어놓은 사람이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닌 최길용씨 자신인 것이었다.


# 금방 잡힐 것 같지만...


# 뒤에서 몰고 앞에서 지키고


그렇다고 마냥 그런 식의 감상에나 빠져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관리사무소에서 개를 문제 삼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최길용씨 자신이 아니라 호텔 사장님이 보게 될 것이었다. 그것은 안 될 일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궁리 저런 궁리 끝에 119에 전화를 걸기로 했다.

“거시기 뭐냐 그, 우리 개가 줄을 끊고 돌아댕김서 말이지라, 관광객들을 기분 나쁘게 하고 있어서 말이지라우.”
전라도 생활 십여 년에 경상도 사람 최길용씨의 전라도 사투리는 수준급에 달해 있었다. 119 안내원은 그 사투리를 올곧게 다 해석했다. 그리하여 삐뽀, 삐뽀, 소리와 함께 선도차가 들어서고, 이런저런 장비를 적재한 붉은 소방차가 호텔 근처로 들어와서 자리를 잡았다.

자, 이제 일은 간단히 끝날 수 있을까? 줄을 끊고 나가서 자유를 만끽하는, 죽음도 불사한다는 투로 목줄을 질질 끌고 다니며 사람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중인 개를 드디어 포획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람이면 사람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한 시간이 흐르고, 두 시간이 흐르고, 휴식시간까지 가져가며 세 시간이 넘게 쫓고 쫓기는 작전을 벌였지만 개는 잡히지 않았다. 잡히기는커녕 사람을 데리고 장난을 한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맹렬하게 달려서 동쪽의 숲으로 모습을 감춰버리는가 하면, 서쪽의 숲에서 고개를 내밀고 애완견 출신의 늙은 개를 향해 컹컹 짖어대는 익살까지 부려대고 있었다.

“안 되겠는데요. 사살하는 수밖에 없겠어요.”
한숨을 깊이 내쉬던 119 대원은 그렇게 최종 결론을 내렸다. 아무도 그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한 사람 최길용씨만이 “아니 저, 저, 뭣이여? 사살, 사살? 죽여야 한다 이 말 아니여, 시방?”하고 중얼거리며 정신이 홀랑 빠져버린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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