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연관성 낮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부터 접근해야”
“정치적 연관성 낮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 등부터 접근해야”
  • 승인 2013.06.18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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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진단> ‘남북당국회담 무산’ 한반도 어디로 가나?

남: “(회담은) 무산된 것!”
북: “추후 회담은 없을 것!”
박근혜 정부의 첫 남북 공식회담이 수포로 돌아갔다. 2년 4개월만의 당국회담이 무산되면서 남북관계가 또다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지난 11일 대표단 파견 보류를 남측에 통보한데 이어 12일에는 판문점 연락관 채널 가동을 중단했다.

회담이 무산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난관에 봉착했다. 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지난 2월 북한의 제3차 핵실험으로 위기를 맞은 이후 두 번째 시련기를 맞은 셈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냉각기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면전환이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향후 이산가족 상봉, 미·중과의 공조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여전히 진정성 없어

지난 12일 열릴 예정이었던 남북당국회담 무산은 수석대표의 ‘급’과 ‘격’을 둘러싸고 남북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비롯됐다. 통일부는 지난 11일 북한이 우리 측 수석대표의 급과 격을 문제 삼으면서 대표단 파견을 보류한다고 일방 통보해와 회담을 열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대표단 명단 교환에서 우리 측은 김남식 통일부차관을 수석대표로, 북측은 강지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국장을 수석대표로 내세웠다.

우리 정부는 북측에 우리의 통일부장관에 맞는 인사를 수석대표로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북측은 강 서기국 국장을 내세웠고 정부는 우리 측의 요구에 맞는 인물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조평통의 위상과 역할, 서기국장의 권한과 책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일부 장관의 상대로 볼 수는 없다”며 “조평통에는 위원장이 공석으로 돼있고 그 하위 직급인 서기국장을 남북관계를 총괄하는 같은 직책으로 주장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통일부장관이 아닌 차관을 명단에 올린 이유에 대해 “장관급 회담을 제의하면서 통일부 장관의 대화 상대가 통일전선부장이라고 강조했지만 북측은 통전부장이 단장으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고 모든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통일부 차관이 우리 측 수석대표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우리 측이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교체한 것과 관련 “남북당국회담에 대한 우롱이고 실무접촉 합의에 대한 왜곡으로써 엄중한 도발로 간주한다”며 대표단 파견을 보류했다. 이 때문에 12~13일 서울에서 열리기로 예정됐던 남북당국회담은 사실상 완전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이번 회담이 불발되기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 국민적 지지는 물론 정치권과 언론에서도 매우 우호적이었다. 끝이 안보일 것 같았던 한반도 안보위기 속에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호평이 쏟아졌다. 이런 가운데 대표의 격을 문제 삼아 회담이 결렬되자 “격에 얽매인 나머지 남북대화 재개라는 대의를 저버렸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남북 간 권력구조와 조직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사실상 양측의 급을 완전히 맞추는 것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 견해다. 따라서 남북 어느 한쪽에 책임을 지우는 상황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우리 정부의 경우 수석대표라는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 우선 회담을 성사시켜 실질적인 결과를 이끌어냈어야 했다는 분석이다. 북한 역시 진정성이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한과 교수는 “한편의 코미디다. 바깥에서 보면 상황이 참 우습게 돌아가는 것인 양 비춰질 수 있다. 사실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나 국민들이 ‘격’ 논란에 당혹스러웠을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남북 양측이 아직까지 진정성 있는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 사태”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남북대화라는 유화적 제스처를 보였던 것뿐이고, 우리 측은 향후 중국과의 대화를 의식한 계산법이 있을 것”이라며 “양쪽 모두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남북이 서로 진정성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당장 회담 재개는 어렵다”며 “서로 휴지기를 갖고 양측이 요구했던 부분에 대해 조율하고 입장을 정리하며 차분하게 관계를 재정립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남북 대화가 전제돼야 가능하다”며 “대화를 위해서는 양측 모두 신중하고 유연하게 사안에 접근하는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등 현안 해결 시급

당국회담 무산 소식이 전해진 지난 11일만 해도 추가 접촉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진 상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2일 “(회담은) 무산된 것”이라고 밝혔고 북한도 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에서 “추후 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국면을 되돌릴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당장은 아니지만 이산가족 상봉, 미·중과의 공조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돌파구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남북관계에서 일단 어느 정도의 냉각기가 이어질 수는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접근도 제한적”이라며 “우리는 그동안 이달 말 열리는 한·중 정상회담에 집중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조 틀을 만들고, 그 틀 속에서 북한과의 대화를 견인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대한 태도 변화 요구도 중요하지만 우리 정부도 수석대표급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된다. 현안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특히 당국 간 회담이 장시간 중단되고 현안에 대한 남북 간 입장차가 큰 만큼 장관급회담 제의 자체가 성급했다. 사전협의, 실무회담부터 차근차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관광 재개 등 현안 해결이 시급하다”며 “장관급 회담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실무자인 과장급이나 국장급 회담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오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북한이 우리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시기에 남북대화를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아직 유화정책을 추구하는 국면이고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에 대해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20~24일 정도 대화제의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그때는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수석대표 회담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김 통전부장과 류 장관의 급이 맞지 않는다고 할 경우를 대비해 류 장관을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방안도 고려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정 위원은 이어 “의제에 대해서는 북한이 요구한 민간교류재개 등을 포함하고, 회담의 개최 장소로는 서울을 제안하되 만약 북한이 원한다면 평양에서 개최하는 것도 검토하겠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냉각기가 길어질 경우 7월부터는 북한이 미국 등과의 대화를 압박하기 위해 한반도에 긴장을 다시 조성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7월 27일은 정전협정 60주년 기념일이며 8월에는 한·미 연합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이 시작되고 9월 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65돌’ 기념행사가 예정돼 있다.

북한은 주요 정치 일정이 있을 때마다 체제결속을 위해 도발을 하거나 긴장 조성 행위를 해 왔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잠시의 냉각기를 갖되 정치적 문제와 연관성이 비교적 낮은 사안부터 접근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른 시일 내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 접촉을 추진하는 등 대화의 불씨를 다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산가족 상봉의 경우 남북당국회담의 의제로 이견 없이 합의됐던 것인 만큼 이를 고리로 남북 관계를 풀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또 “북한이 주장한 것이라고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민간 교류로 신뢰를 쌓아 이를 통해 당국 간 대화의 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등 장기적 관점의 우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냉각국면 길어질수록 모두 손해

당국회담 무산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입김이 세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에 공감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냉각기가 길어지면 북한 역시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외교에 주력할 수 있다”며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고리로 북한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면 우리 정부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양 교수는 “따라서 남북이 대화의 주체인 만큼, 냉각 국면을 오래 끌어가선 안 된다. 길어질수록 미?중의 입지가 강화된다는 측면에서 남북에 득이 될 게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런 맥락에서 박근혜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는 계기를 마련해야한다”며 “이미 북한이 중국과의 접촉 이후 남한과의 대화에 나섰던 만큼,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여전히 김정은 후계세습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선 남한의 지원과 6자 회담을 통한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이 절실한 상황이다. 남한 입장에서도 남북경색이 지속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와 달리 박근혜 정부가 다른 역사적 평가를 받으려면 민간교류협력 보장과 인도적 지원을 통한 신뢰구축 노력을 전개해 본격적인 남북관계 발전으로 나아갈 초석을 닦아야 한다”며 “장관급회담은 물론이고 향후 정상회담을 열어 남북 간 합의 사항의 이행을 포함, 평화공영의 길을 마련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정치권에서도 남북당사자가 관계 개선에 있어 주체가 돼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민주당 변재일 의원은 “남북 당사자 간에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중국의 이해에 따라 남북이 전략적 희생물이 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우리 정부 역시 북한과 대화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이 같이 함께 가야 하는 길을 제시하고 의연하고 차분하게 가겠다. 그 길로 북한이 준비가 되면 들어오면 된다”고 밝혔다.


최규재 기자 visconti00@hanmail.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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