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 드자르트 지음/ 조현실 옮김/ 황가영 그림/ 문학과 지성사




누구나 한번쯤 현실에서 벗어나 좀 더 나은 다른 삶, 행복한 생활을 꿈꿔 보았을 것이다. 이런 희망은 비단 어른들만의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 특히 걱정거리가 가득하고 현재의 삶이 재미없는 아이라면 그 바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안톤도 매일 자기를 놀려 대는 선생님 때문에 학교가 싫고, 어떻게 하면 지긋지긋한 선생님과 학교를 벗어날 수 있을지 궁리하기 바쁜 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페리바노 선생님 덕분에 안톤은 자기를 놀리던 티에리 선생님 반을 떠나 음악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그곳엔 덩치도 피부색도 제각각인 온갖 아이들이 다양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음악 학교 아이들은 까칠하고, 새롭게 배우는 음악 이론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안톤은 새로운 학교에서의 생활이 즐겁기만 하다.

아무도 안톤에게 말을 걸어 주지 않지만, 같은 반 여자아이인 페를라만은 예외다. 첼로를 전공하는 페를라는 예전부터 안톤을 알고 있었다는 듯 거리낌 없이 다가온다. 언제나 뿌루퉁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통이 나 있는 페를라는 심술궂어 보이기가 이를 데 없다. 그래도 말을 걸어 주는 아이는 페를라가 유일하니, 그 아이와 잘 지내 볼 수밖에 없다. 첼로를 냄비 혹은 프라이팬이라고 부르면서 지겨워하는 것처럼 보여도 페를라의 연주 실력만큼은 수준급이다. 절대로 웃을 것 같지 않던 페를라에게 호기심을 느낀 안톤은 내기를 건다. 페를라가 웃기만 한다면 시키는 건 뭐든 하겠다는 내기를. 그러자 페를라는 기다렸다는 듯 싱긋 웃어 보이며 연습실 피아노 페달에 풀을 발라 놓으라는 이상한 벌칙이 적힌 종이쪽지를 건넨다. 벌칙을 해치우기 위해 갖은 우여곡절을 겪는 안톤은 페를라와 아기자기한 사건들을 만들어 가고, 중세 악기인 세르블라를 배우면서 새로운 학교에 서서히 적응해 나간다.

안토은 음악 선생님을 통해 ‘중세 악기’라는 미지의 세상과 만나게 되고, 뜻밖에도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다. 자신이 별 볼 일 없다고 생각하던 안톤이 자존감을 되찾아 가는 과정과, 새롭게 펼쳐지는 일상의 변화를 작가는 특유의 경쾌한 문장으로 세밀하고 따뜻하게 그리고 있다. 거창한 극적 사건 없이도 소소하고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야기를 탄탄하게 이끌어 가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정리 이주리 기자 juyu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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