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국가 방사능 누출사고 매뉴얼’의 위기경보 즉각 발령해야”
“‘인접국가 방사능 누출사고 매뉴얼’의 위기경보 즉각 발령해야”
  • 승인 2013.08.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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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원전 ‘고농도 방사능 오염수’ 유출 파문 확산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방사성 물질의 유출이 확인되면서 갈수록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원전 방사능 오염수 처리의 ‘최후 보루’인 저장 탱크에 근본적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안전 점검을 담당하고 있는 도쿄전력은 여론의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일본 내부에서는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이 같은 사안을 다루다 환경부 산하 원자력규제위원회로 넘어가면서 국제 문제로 격상된 상황이며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오염수,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가

지난 22일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었을 가능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있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지난 19일 원전을 가동하기 위한 물을 저장하는 탱크에서 오염수 300t이 유출됐음을 확인했다면서 원전의 근본적인 안전성 문제를 부각시켰다. 이후 다른 저장 탱크를 일제 점검한 결과 2곳의 저장 탱크 주변의 방사선 수치가 높게 측정됐다.

도쿄전력은 “탱크 속 오염수 수위는 큰 변화가 없지만 주변 방사선 수치가 높은 점으로 볼 때 과거에 오염수가 누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도쿄전력은 “저장 탱크 밖으로 유출된 300t의 오염수 중 대부분은 땅 속으로 스며들었지만 탱크 부근 배수구에서 시간당 6밀리시버트(mSv)의 높은 방사선이 측정됐다”며 사실상 오염수의 바다 유출 가능성을 인정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 원전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인이 받던 연평균 방사선량이 3mSv였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도쿄전력이 저장 탱크 부근 배수구의 오염수 유출 가능성을 인정하며 ‘외부 바다’라는 모호한 표현을 썼지만 일본 교도통신을 비롯해 AFP 등 외신은 이를 ‘태평양’으로 적시했다. 원전 배수구는 바다와 직접 연결돼 있으며 탱크에서 바다까지 거리는 약 500m다. 오염수 유출 상황과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자와 젠고 도쿄전력 부사장은 기자회견에서 “오염수 유출을 막기 위해 관리방안을 바꾸고 국내외에서 전문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원자력규제위원회는 정례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매우 심각하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정한 국제원자력사고등급(INES)을 1등급(이례적 사건)에서 3등급(중대한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규제위는 “바다로 직결되는 배수구 위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주변 상황 총점검을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후쿠시마 제1원전 앞 바닷물 방사능 수치가 1주일 새 최대 18배 높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요미우리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도쿄전력이 19일 원전에서 500m가량 떨어진 항만에서 채취한 바닷물에서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 농도가 L당 68베크렐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정부 허용한도를 넘어선 것은 아니지만 1주일 새 8~18배 높아진 것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생선 오염도, 예측 불가능

현재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지하 오염수 300t과 관련 지하수를 미리 퍼올리거나 원전 주변 땅을 얼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아무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조차 아무런 대책이 없고, 전망도 할 수 없는 심각한 ‘핵 위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아무리 대책이 없다지만 땅을 얼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땅을 얼려 50년 내지 수십만 년 동안 지하수를 차단한다는 것인데, 이건 말이 안 된다. 태평양 연안으로 버리기 위한 전 단계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저히 우리가 접근해선 안 되는 물 300t이 나왔다. 그것도 2년 6개월간 나왔는데 이마저도 정확한 수치라고 할 수 없다”며 “수치는 도쿄전력과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이지, 1000t 이상 유출됐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탱크에서 흘러나온 게 있고, 탱크와 상관없이 바닷가로 흘러간 게 있다. 이것은 일본정부와 도쿄전력도 제대로 조사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탱크에 인간이 접근하기는 힘들어 로봇을 활용하지만, 로봇 역시 정확한 수치를 낼 수 없는 기술적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제가 늘 주장해온 얘기지만 애초 사고 3개월내 콘크리트로 현장을 덮어야 했다”며 “하지만 일본은 수습 시기를 놓쳤고 현 상황은 이미 예고된 재앙이었다. 결국 수습불가능한 상황이 2년 넘게 지속돼 왔다. 감추다 감추다 안 되니까 이제 국제사회에 대놓고 같이 책임지자는 식으로 나온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중,일 3국이 지난해 핵정상회담 당시 투명한 정보교환을 약속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확한 수치를 공개하고 교환해야 한다”며 “특히 생선의 오염도는 예측불가능하다. 사태가 벌어진지 2년이 넘었기에 먹이사슬 메커니즘에 비춰보면 일본산과 태평양산 모두가 위험하다. 표본조사가 아닌 전수조사를 해서 방사선 물질 제한치를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 수입돼 유통되는 일본산 수산물과 관련된 국민들의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정부가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해 유통하는 업체가 어딘지 알리지 않으니까, 국민들이 원산지 표시 자체를 못 믿고 그만큼 국내 수산업 종사자들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정부나 도쿄 전력은 방사능 오염과 관련해 정확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거짓말을 일삼아 왔다”며 “일본 엄마들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시민 측정소를 만들고 스스로 시장을 만들어 먹거리를 사며 오염된 곳에는 아이들을 보내지 않는다”고 했다. 양 처장은 “일본 사람들조차 일본 정부를 믿지 못하는데 우리 정부가 일본정부의 발표만을 믿고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국민의 건강을 위해 적절한 조치가 아니다”며 “수산물 수입 중단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사고가 터진 일본과 우리의 기준치가 같은 것이 문제”라며 “검역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우리가 일본산 수산물에 안이하게 대응하는 사이 중국의 경우는 강력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국은 일본 10개 현의 모든 식품.농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취했다”며 “사태의 심각성이 지적되고 있는데도 우리는 장관급 회의가 아닌 차관급 회의로 진행하고 있다. 장관급 이상 회의로 진행해야 수입 수산물에 대한 국민 불안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괴담 치부 말고 대책 내놓아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괴담 치부 발언 등이 시민 불안과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연 관계부처 긴급 대책회의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근거없는 괴담이 나오고 있으므로, 관련 부처들은 방사능 관리 현황과 검사결과를 2주마다 발표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달라”고 말한 바 있다. 정 총리는 지난 2일에도 “악의적인 괴담을 처벌해야 한다”고 밝혀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을 산 바 있다.

이와 관련 양이원영 처장은 “정부가 방사능을 하나의 자연재해로 보고 대응 체계를 만들기보다 괴담을 단속하고 처벌하라며 불안해하는 국민을 협박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탈핵?반핵 운동을 주도해온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장하나 의원은 정홍원 국무총리 항의방문 의사를 밝히는 등 정부의 사과와 국민안전조치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장 의원은 “나중에 안전한 것으로 밝혀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그 전까지는 최대한 조심하는 게 좋다”며 “‘인접국가 방사능 누출사고 매뉴얼’의 관심(BLUE)이나 주의(YELLOW) 수준의 위기경보를 즉각 발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매뉴얼의 위기경보를 상향조정할 경우 정부가 국민에게 의무적으로 정보를 알릴 뿐만 아니라 국민적 위기의식과 관심도 역시 이전과 차이를 보인다는 것. 장 의원은 “현재 국민이 언론과 외신, 특히 도쿄전력의 발표에 의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지난 2년간 방사능 유출을 은폐한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말을 믿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방사능 유출사건에서 국제사회의 공동 대응을 이끌어 내는 것은 인접국가의 적극적인 대응이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대만보다도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오진석 기자 ojs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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