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철퇴에 재계 ‘덜덜덜’



대기업에 대한 사정당국의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전방위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됐던 상황이지만 이번에는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더욱 거세다. 재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국세청, ‘경제검찰’ 공정거래위원회가 쌍두마차다. 여기에 검찰과 경찰, 감사원 등 총출동했다.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6개월간 5개 기관에서 조사한 기업은 모두 500여개를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내막을 살펴봤다.




롯데그룹은 전임인 이명박 대통령 시절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곳으로 불린다.
박 대통령 취임과 맞물려 롯데는 여러 곳에서 중복 조사를 받았다. 국세청 공정위 경찰 등 세 군데에서 조사 중이다.

국세청은 롯데쇼핑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공정위는 롯데정보통신 코리아세븐 롯데카드 롯데인천개발 롯데홈쇼핑 대홍기획 롯데푸드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 등 9곳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또 경찰은 롯데주류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 사업 등도 조사
    
공정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현재 롯데그룹의 계열사 수는 77개다. 이 가운데 11개 계열사가 사정 당국의 조사 내지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선 CJ그룹 다음 타깃이 롯데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사안들도 만만치 않다. 특히 2009년 공사에 들어간 123층짜리 잠실 제2롯데월드 타워 인허가 의혹 등에 대해 사정기관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전언이다.

삼성그룹도 국세청(르노삼성), 공정위(삼성메디슨 삼성생명 제일기획), 경찰(삼성디스플레이 삼성생명), 검찰(삼성생명), 감사원(삼성물산) 등 사정 당국 다섯 곳의 조사를 모두 받고 있다.

수천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드러난 CJ그룹 역시 국세청(CJ푸드빌,CJ그룹), 공정위(CJ제일제당,CJ오쇼핑), 검찰(CJ그룹) 등으로부터 전 방위 압박을 받고 있다. 2002년 민영화됐지만 공기업 성격이 강한 KT&G는 국세청과 경찰로부터 부동산 사업 등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다.

MB 정권의 ‘판도라 상자’로 불리는 4대강 사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건설사 비리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GS건설은 공정위로부터 4대강 2차 턴키 공사 담합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았고, 검찰로부터는 다른 건설사 30곳과 함께 압수수색을 당했다. 또한 감사원으로부터는 4대강 사업의 주요 계약 집행 실태를 감사받았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이슈로 떠 오른 대기업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 행태도 뭇매를 맞았다. 여기엔 국세청이 나섰다. 국세청은 지난 4월 100대 기업의 오너 등 기업가와 재력가 220여 명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돌입했다.

지난 2월 민영진 KT&G 사장은 3년 연임에 성공했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뒤인 3월6일 국세청은 사업 다각화와 담배 사업 과정에서 탈루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여기에 비자금 조성 의혹까지 불거졌다.

국세청의 핵심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조사 요원 100여 명이 투입됐다. MB맨으로 알려진 민 사장은 MB의 측근들과 친분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CJ그룹도 국세청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지난 4월에는 CJ푸드빌의 해외 거래 내역 등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가 실시됐다.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이후인 6월에는 이재현 회장의 조세 포탈 혐의와 관련해 CJ그룹 본사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벌였다. 이 회장은 결국 탈세 등의 혐의로 7월1일 구속됐다.

남양유업 ‘휘청’

국세청은 지난 5월 한화그룹의 역외 탈세 의혹과 비자금 조성 혐의 등을 캐기 위해 한화생명에 대한 세무조사에도 착수했다. 재계에선 한화생명이 한화그룹의 자금줄로 알려져 있다.

7월엔 국세청 요원들이 사전 예고도 없이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슈퍼 롯데시네마 등 롯데쇼핑 4개 사업본부에 들이닥쳤다. 서울국세청 조사1국과 조사4국 직원 150여 명이 투입됐다. 이보다 앞선 2월에는 롯데그룹 지주사 역할을 하는 롯데호텔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가 이뤄졌다.

국세청은 또 지난 4월 SK네트웍스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2009년 워커힐을 합병하는 과정에서 회계 처리를 정상적으로 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또 2010년 매출이 크게 증가했음에도 영업이익이 줄어든 까닭이 무엇인지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박근혜정부 들어 지난 7월 말까지 210곳을 조사했다. 지난 4월22일 노대래 공정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공정위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공정위의 그물망에 걸린 대기업 가운데에는 롯데그룹 계열사가 가장 많았다.

남양유업은 2월과 6월 두 차례나 공정위 조사를 받았다. 공정위는 지난 2월 남양유업을 비롯해 CJ제일제당 동서식품 오리온 등 10개 식품업체를 통해 대형마트의 불공정 거래가 있었는지를 직권 조사했다.

6월에는 2007년부터 올해 5월까지 1800여 개 대리점에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이나 대리점이 주문하지 않은 제품 구입을 강요한 것에 대해 이른바 ‘밀어내기’ 영업 방식과 관련한 조사를 벌였다. 7월9일 공정위는 남양유업에 시정 명령과 함께 총 12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한편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전 사회적으로 이른바 ‘갑과 을’이 이슈로 떠올랐다.

공정위는 이후 신세계그룹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총수 일가 소유 빵집인 신세계에스브이엔 부당 지원에 관여한 혐의로 허인철 이마트 대표이사와 신세계 임원 두 명을 고발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도 수색

검찰은 ‘대형 사건 수사’와 관련이 깊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 사업 건설 비리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 5월 GS건설 대우건설 등 건설업체와 협력업체 30곳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6월에는 4대강 관련 설계업체 여러 곳이 입찰 담합을 한 정황을 포착하기도 했다.

CJ 비자금 사건과 관련해서는 지난 5월21일 CJ그룹 본사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재현 회장이 해외에서 조성한 자금 중 일부로 보이는 수십억 원을 국내로 들여와 사용한 정황이 검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원전 비리 역시 복마전이다. 검찰은 6월10일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을 압수수색했다. 원전 부품 시험 성적서 위조를 공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 아무개 한국수력원자력 부장의 자택 등에서 발견된 5만원권 6억원의 출처 가운데 한 곳으로 현대중공업이 지목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MB 정권 시절의 대형 사업과 관련해 고강도 감사를 벌이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청와대 시절 공을 들인 ‘한식 세계화 사업’, ‘4대강 사업’ 등이 타깃이다.

감사원은 또 금융권 의혹도 파헤치고 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자신의 측근을 자회사 사장으로 임명하고 방만하게 경영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의 측근인 박동창 전 부사장이 일부 사외이사의 재신임을 저지하려고 왜곡된 정보를 흘렸는지도 감사 대상이다.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사정기관들의 움직임에 기업들이 몸을 움추릴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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