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창세의 고대와 현대의 만남 ‘멕시코’ (7) - Mariachi



멕시코’ 하면 먼저 선인장이 떠오른다. 멕시코는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선생이 전교생에게 포크 댄스(Folk Dance)를 가르친다고 점심시간 전, 운동장에 집결시켜 멕시코 전통음악인 ‘베사메무쵸(besame mucho)’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이 음악은 ‘레이 카닙싱어즈(ray caniff singers)’가 편곡했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경음악이다. 어린나이에 들었지만 학교에서 매일 듣다보니 멕시코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멋진 멜로디가 와 닿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서양화가인 미술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버려 무척 아쉬웠다. 크면 멕시코로 찾아가서 미술선생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멕시코’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내 곁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혼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펼쳐본다.[편집자 주]




# 마리아치의 음악에 맞춰 멕시코 전통 댄스를 추는 모습


지난한 식민지배 ‘삶과 애환’ 노래한 ‘마리아치’ 

멕시코에서 필자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도심지와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에 가면 꼭 ‘마리아치(Mariachi)’가 있다. 마리아치(Mariachi)는 멕시코의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소규모 악단이다. 차로라고 하는 큰 모자를 쓰고 검은 전통복 의상에 큰 기타와 트럼펫,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이들은 멕시코 민중의 삶과 애환을 함께 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멕시코를 대표하는 마리아치는 중대형 규모의 레스토랑이나 큰 거리에서 다양한 음악을 들려주는데 멕시코 특유의 문화를 단번에 느끼게 된다. 공원이나 광장에 가면 수십여 악단을 형성한 마리아치들이 4~8여명을 조직으로 대기한다. 관광객 혹은 연인들이 벤치나 음식점에 앉아 있으면, 마리아치가 다가와 주문을 받는다.

물론 시간단위로 돈을 지불해야한다. 1992년 당시에는 시간당 10~12만 페소(2만5000~3만원)인데 가격흥정을 하면 8~10만 페소에 마리아치가 들려주는 달콤한 사랑의 노래 등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관광객 앞에 둥글게 대열을 서서 한 시간 내내 연주와 노래를 들려주는 멕시코 마리아치는 이제 세계인의 문화코드로 자리를 잡았다.      


# 전통복장 차림과 악기를 든 마리아치는 민중의 애환과 아픔을 함께하는 악사이다.
 

‘인디오ㆍ백인’ 민속음악 본향 ‘과달라하라’

본인이 살던 당시에도 금요일 저녁이 되면 어느 마을에서 들리는 축제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멕시코는 1년에 무려 5000여 개가 열릴 만큼 축제의 나라다. 축제(피에스타)가 일상적으로 몸에 베인 멕시코인들의 기질은 민중의 악사 마리아치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본래 멕시코 서북부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Guadalajara, 멕시코 제2도시)’에서 태동한 마리아치는 유럽에서 유입된 서양악기와 멕시코 인디오 원주민의 민속음악이 융합된 것이 마리아치다. 이후 멕시코 전역으로 퍼져 나가 오늘날에 이른 마리아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장 멕시코적인 ‘문화 아이콘’이다.

멕시코 사람들에게 음악은 곧 생활이다. 전문악사인 마리아치가 아니더라도 멕시코인들은 언제나 민속주 ‘떼낄라(Tequila, 아가베 선인장에서 추출한 증류주)’나 ‘뿔께(Pulque, 마야문명 시대에 마시던 걸쭉한 알로에 전통주로 만든 발효주로 동동주 맛이 남)’를 마시며 삶의 여흥을 즐긴다.

멕시코에서는 백인과 원주민 사이의 혼혈이 많다. 그들의 전통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녹아들고 섞인 독특한 멕시코 문화는 오늘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El Mariachi 영화포스터


# 멕시코 독립전쟁의 영웅 사빠따 일대기를 그린 미국 20세기 폭스사가 제작한 영화로 존 스타인 벡 원작의 _비바! 사파타!(viva zapata)_ 포스터. 감독은 에덴의 동쪽을 제작한 에리아 카잔, 주연은 말론 브란도이다.

가난하지만 음악에 인생 건 진정한 ‘국민뮤지션’

멕시코 특유의 큰 모자를 처음에 보았을 때, 사실 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왜 그런 모양으로 생겼을까… 궁금했다.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은 기후다. 멕시코는 광대한 사막건조지대와  태양이 뜨거워 챙이 넓은 모자가 자연히 만들어지고, 비 올때 앞을 잘 보기 위해 챙의 끝자락을 휘게 만들어 비를 뒤로 흘리게 한 지혜의 산물이다.

이런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화음의 이벤트를 연일 펼치는 마리아치들의 세레나데를 통해 춤과 노래로 열정과 낭만 인생을 즐긴다. 마리아치의 악기는 다양하다. 때때로 하프와 만돌린, 더블베이스, 클라리넷 등이 포함된 대규모로 변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는 트럼펫, 바이올린이 멜로디를 이끌고 기타가 리듬을 담당한다. 마리아치가 한 곡을 연주하고 받는 돈이 의외로 적다는 사실에 놀란다. 왜냐하면 그 돈을 인원수대로 나눠가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부분 열악하게 생활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전통 음악에 모든 인생을 건다.

필자도 음악을 신청해 들어본 적이 있다. 이들은 연주에 감탄하며 함께해주는 관광객이나 민중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가난을 무릅쓰고 인생을 노래하는 진정한 국민의 뮤지션이다. 그런 노력이 이제 멕시코 향토 음악에서 세계인의 음악으로 부상했다. 


# 관광객들을 상대로 음악을 연주하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들려주는 마리아치


# 마리아치의 챠로 모자와 트럼펫, 기타

‘유럽ㆍ미국ㆍ아프리카’ 이방문화 접목된 ‘라틴’

이들이 사용하는 악기는 유럽풍의 바이올린과 하프 및 기타를 변용한 것이다. 기타를 닮은 비우엘라와 트럼펫은 미국 뉴올리언즈의 ‘딕시(Dixie)’ 문화를 수용한 악기다. 시대흐름과 변화를 따라 멕시코에서 독창적인 악기로 거듭나고 있다.

멕시코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다민족 국가이다.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로 부르듯이, 멕시코는 한마디로 ‘메스띠조(Meztiza)’ 문화라 할 수 있다. 메스띠조는 흑인과 백인, 인디오의 혈통이 융합된 라틴 특유의 새로운 형태의 인종을 말한다. 다른 나라의 이방문화를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접합시켜 표출시키는 멕시코의 메스티조 문화. 아프리카 리듬에 유럽, 미국 음악이 혼합된 뭔가 끄집어내기 어려운 원초적이며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간의 본연적인 특징을 잘 나타낸 음악이 바로 마리아치다.

초기의 마리아치 음악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특색인데 여기에 종교적인 색채와 여성적인 분위기가 강했다. 마리아치가 본격적으로 멕시코 민중들의 대표적 음악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세기 멕시코와 스페인과의 독립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때 멕시코 혁명군의 군악대에 마리아치가 도입되면서 군인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힘차고 활기찬 군대행진곡이 힘을 발휘했다.


# 밝은 햇빛 비추는 날 결혼식에서 신혼부부를 위해 축하 연주를 하는 마리아치

독립전쟁 당시 민중 결집시킨 ‘마리아치’

멕시코는 식민지를 무려 400년간 스페인으로부터 통치를 받았다. 해양제국 스페인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복합적인 인종과 문화가 난립되고 문화와 역사의 정통성이 희박했던 상황에서 마리아치 음악은 멕시코인의 민족정신을 일깨운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면서 멕시코가 스페인군대를 물리치는 독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마리아치는 과달라하라만의 전통음악이나 관광 상품으로 머무르지 않았다. 최초의 마리아치 음악인이었던 ‘실베스트로 바르가스’는 악단 ‘마리아치 바르가스’를 창단해 마리아치의 열풍을 멕시코 전역으로 확산시켰다. 또 전설적인 작곡가 ‘멘데소사’는 세계인의 가슴속에 마리아치의 명곡들을 남겼다. 이제 마리아치는 과거의 유산이 아닌 동시대의 음악으로 사랑받고 있다.

과달라하라에는 두 가지 유형의 마리아치가 있다. ‘마리아치’와 ‘뜨라께파께’가 그것이다. 마리아치 음악이 토속적이고 인간적인 색채가 강하다면 ‘뜨라께파께’의 음악은 미국풍이 강한 현대적 느낌이 난다. 또 연주할 때 입는 의상이나 무대 세팅도 약간씩 다르다. 하지만 멕시코인들의 삶과 애환을 함께 해온 마리아치 음악은 그들의 본질이자 전통과 문화, 영혼을 반영하는 유산으로 남아 있다.


<한창세 님은 언론인입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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