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 백숙할까?” “응? 그래, 좋아…좋아요!!”
“우리 오늘 백숙할까?” “응? 그래, 좋아…좋아요!!”
  • 승인 2013.09.1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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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마술처럼 그녀가 내게로 왔다 (4)


# 개구리 목욕하는 장면을 기록한다고~

“우리 오늘 백숙 할까?”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응? 그래. 좋아요, 좋아.”

백숙에 관한 한 그녀는 사양하는 법이 없다.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백숙은 목욕의 다른 이름이다. 목욕 중에서도 아주 뜨거운 열탕과 아주 차가운 냉탕을 오가는 제법 고급스런 목욕이다. 그러니까 백숙은 은어, 혹은 비유, 상징, 뭐 그런 것들쯤 되는 셈이다. 물론 그녀와 나, 우리들끼리만 통한다. 다른 사람이 그 말을 들으면 이게 뭔 소리? 할 거다. 백숙을 먹는다는 것도 아니고 한다니 이게 참, 어리둥절하기도 할 것이다.

은어나 비유, 상징, 그리고 속담이 탄생해서 정착하기까지에는 장대한 세월이 걸쳐있기 마련이다. 그녀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된 세월이야 뭐 일 년도 채 안 된 시점이기는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는 벌써 목욕은 백숙이요 백숙은 목욕이라는 은어 혹은 상징 하나를 만들어서 잘 쓰고 있으니 대단하다고나 할까? 지금은 비록 우리 둘 사이에서만 통하지만, 먼 훗날 이것이 범지구적으로 유통되지 않는다고 누가 단언할 것인가 말이다.

그녀가 서울에서 고창까지 그 먼 길을 오던 날, 승용차가 있어서 차를 몰고 오는 것도 아니고 전철과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을 때 내가 신경을 쓴 것은 물이었다. 물. 목욕물. 그냥 간단하게 샤워를 하는 물이 아니라 향기가 있는 물, 향기는 어느 것이 좋을까. 쑥향도 있고 민트도 있었다. 민트도 종류가 여럿이어서 애플이 있고 오데코롱도 있고 벤자민도 있다. 이 중에 어떤 것으로 그녀를 편안하게, 아주 편안하게 푹 쉴 수 있게끔 선물을 할까, 응?


# 절구통 속에서 목욕중인 개구리

선물, 그래, 선물이었다. 그날의 목욕은 어디까지나 선물이었다. 내가 그녀와 함께 목욕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주인의 입장에서 내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선물, 그러니까 그녀 혼자서, 문이 굳게 닫힌 욕탕 안에서 꿈결처럼 떠도는 수증기를 벗 삼아 오직 혼자만의 안온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선물 말이다.

우리 집에서 이 향기목욕 선물은 역사가 제법 길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냉탕 온탕 왔다 갔다 하는 방식의 목욕을 즐기는 데다 욕조에 온 몸을 푹 담그고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서울에 살면서도 그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날마다 목욕탕을 갈 형편은 아무래도 아니어서 불만이 많았다. 서울 살림 그만두고 시골 살림을 시작하면 최우선적으로 목욕시설부터 갖춰야겠다는 맹세까지 할 정도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골에 집을 한 채 장만하고 꿈에도 그리던 목욕시스템(?)을 갖추기까지에 이르렀다.

쑥향은 목욕탕을 만드는 초기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바싹 마른 쑥을 펄펄 끓는 물에 넣었을 때 자동적으로 풍겨나는 그 환장할 것 같은 향기를 나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민트 계열은 전혀 몰랐다. 우연히 시장에서 작은 포트 하나에 천원씩 팔고 있는 애플민트와 바나나민트 그리고 오데코롱을 사온 것을 계기로 민트의 향기를 알았을 뿐이었다. 그것을 말렸다가 끓는 물에 넣었더니 그 향기 또한 시쳇말로 죽여주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혼자만 쓸 것인가 아니면 개방을 할 것인가? 고민을 뭐 그리 깊게까지 한 것은 아니고, 살짝 해보다가 그냥 개방하자,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면 누구에게? 아무에게나 무조건? 아니,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자면 나는 아마 목욕탕 운영자가 되고 말 것이었다. 내가 시골살림을 살자고 한 것은 생을 조용히 들여다보며 음미하자는 것이었지 무슨 사업을 벌이자는 것은 아니었다.


# 에플민트꽃

시골 살림이라는 것은 때로 수도원 생활과도 같다. 도시의 공기와 시골의 공기가 뭐 그리 크게 다를까마는, 공기 속을 떠도는 이른바 영기라고 하는 것은 도시에서보다는 아무래도 시골에서 깊고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귓속을 파고드는 소리라고는 귀뚜라미와 여치들뿐인 한밤에 문득 일어나서 앉아 있노라면 양어깨에 홀연 날개 같은 것이라도 돋아난 착각이 들기도 하는 것, 전기는 잠시 밀어두고 촛불 하나 켜놓고 앉아 있으면 내가 바야흐로 신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는 것. 이런 맛은 물론 아무나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알았다 하면 번잡한 도시생활에 관심을 둘 이유는 거의 없어져 버린다.

이런 얘기를 어디선가 하고 났을 때 몇몇 도시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이 돌아간 서너 달 뒤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방문했고, 또, 또, 하는 식으로 잊을 만하면 한 명 혹은 두세 명씩의 손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그것 참 이상한 일이었다. 손님이 돌아간 뒤에는 내가 마치 뭔가 중대한 일을 생략했거나 애써 모른 체 외면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뒷맛이 영 개운치가 못하던 것이었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사실 거의 아무것도 없었다. 돈으로 세상을 살지 않겠다는 각오씩이나 하고 시골 살림을 살다 보니 도시 사람들의 정서에 어울림직한 어떤 무엇을 사다가 대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풀밭 위주인 밥상이나 차려주고 잘 먹었지? 만족해?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를 비난하거나 때려죽인다고 나서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나도 명색이 사람인데 찾아온 손님을 그렇게 보내놓고 마음이 편할 수야 없는 일이었다.

아 그래, 목욕탕을 개방하자. 어느 날 불현듯 그런 생각을 해놓고 혼자서 박수를 쳤던가, 뭐 그랬을 것이다. 목욕탕을 개방한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람에게 목욕탕을 써도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돈을 가능한 한 안 벌고 안 쓰자는 맹세씩이나 하고 있는 내가 보일러를 돌려서 온수를 마련할 것인가? 아니었다. 바깥의 커다란 가마솥에 물을 가득 채워서 두 시간 이상 불을 지피고, 끓인 물을 다시 통에 담아서 목욕탕으로 옮기는 지난한 노동이 필요한 일이었다. 쑥이든 민트든 미리서 많이 말려놓는 사전 준비가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 게다가 시골이라 해서 땔감이 아무 곳에나 마구 널려 있는 게 아니고 보면 수시로 나무꾼 노릇을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 아주 망가지기 전의 아궁이

한 마디로 말해서 나를 찾아온 손님에게 향수목욕을 선물하는 것은 상당한 정도의 노동과 마음의 진정성이 필요한 일이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무게나 부피로 그 가치를 계량할 수 있을까? 세상 어디에서도 받을 수 없는 그런 선물을 개발해놓고 나는 바야흐로 신이 났다. 여자든 남자든 성별을 불문하고 나를 찾아오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내가 향수목욕을 개발했는데 해보실랍니까?” 소리가 절로 나오던 것이다.

찾아온 손님이 여자 혼자인 경우 당황하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방식으로 거절을 해서 나 자신도 그만 당황하고 민망해서 어쩔 줄 몰라 하게 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봐서 목욕 선물을 거절하기보다는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았고, 그만큼 내 안에서 자라는 뿌듯한 기쁨의 크기는 커져만 갔다. 심지어는 인생의 무슨 커다란 비밀이라도 발견한 듯이 “야아 이게, 이게 인생이란 것이 이런 즐거움이 있었던 것이로구나”하고 혼자서 정신없이 중얼거려 보기조차 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의 시간을 그리 썩 많이 갖지는 못했다. 4년, 아니 5년쯤이나 됐을라나? 중증치매 선고를 받은 어머니와 함께 하는 날들이 계속되면서부터는 이상하게도, 신기하게도 손님의 발길이 뜸해지더니 종당에는 거의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보니 목욕탕을 개방할 일도, 가을이면 쑥을 뜯어다가 말리는 일도 그 빈도수가 현저히 줄었다. 어머니와 나 그렇게 둘이서만 가끔 한 번씩 하는 목욕에 뭐 그리 많은 재료를 준비해둘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멀리서 나를 찾아온 손님은 그녀가 5년여 만에 처음이었던 셈이다. 5년여 만에 처음 손님을 맞이하는 내 마음은 당연하게도 설레고 바빠졌다. 게다가 이 사람이 이게 보통 손님인가. 만난 적은 딱 한 차례뿐이었다지만 명색이 ‘딸랑구’와 ‘아방’의 관계를 유지해 왔던 그런 손님인 것이다. 무슨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겠다는 생각이야 당연하게도 없었지만, 기분 좋은, 아주 기분 좋은 향수목욕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 집의 자가용목욕시스템

때는 바야흐로 1월 초순, 눈은 내리다가 말았다지만 바람은 차고 얼음은 꽁꽁 얼어 있어서 밖으로만 나가면 어깨가 절로 움츠러드는 그런 날에 그녀가 오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뭐냐. 바깥의 물 끓이는 아궁이가 망가져 있었다. 망가진 지도 벌써 2년이나 흘렀건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매사에 흥미를 잃고 시큰둥해져버린 나는 여태껏 그것을 고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이걸 어쩐다? 이제야 아궁이를 고친다고 나설 수도 없는 일이고, 궁리 끝에 일명 돼지꼬리 하나를 철물점에서 구입하기로 했다. 돼지꼬리는 공사장에서 날씨가 추울 때 커다란 드럼통에 넣어서 물을 덥히는 전열기구였다. 그 생긴 모습이 돼지 꼬리를 닮았다 해서 돼지꼬리라고 불렀다. 그것으로 목욕물을 끓이자면 아마 두세 시간 정도는 걸릴 것이었다.

자, 이제 그녀가 왔다. 오랜만에 여자 손님이 내 집으로 들어왔다. 그래, 그녀는 이제 다만 손님일 뿐이었다. 더 이상 나의 ‘딸랑구’가 아니었다. 약속다방에서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무슨 폭발이 일어났던 것인지, 무슨 분화가 발생했던 것인지 나는 그녀를 지칭하는 호칭 ‘딸랑구’ 소리를 못 내고 있었다. 그녀 또한 ‘아방’ 소리를 못 내고 있었다. 그랬다. 뭔가 새로운 것이 그녀와 나 사이에 끼어들어 있었다. 쓸데없이 자꾸 어색하고, 긴장감이 흘렀다.

그렇다고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인 향수목욕까지 잊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돼지꼬리를 목욕탕에 넣어두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일단 국화차를 끓였다. 국화차는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어서 할 이야기가 많았다. 향수목욕과 관련해서도 미리 해둬야 할 이야기가 엄청 많았다. 그녀는 얌전하게, 우아한 숙녀티를 잔뜩 내는 자세로 앉아서 음, 음, 아, 그렇구나, 등등 추임새를 끊임없이 넣어가며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 성능이 아주좋은 돼지꼬리

그렇게 시간이, 두세 시간이 마치 삼십초밖에 안 되는 것처럼 금방 흘러가버렸다. 물이 끓고 있었고, 애플민트 특유의 알싸름한 향기가 온 집안을 떠돌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목욕탕으로 안내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둥의 어쩌면 쓸데없는 친절인지도 모를 팁을 준 다음 문을 닫고 부엌으로 돌아와서 오징어볶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난 봄 대밭에서 꺾어다가 삶아서 얼린 죽순을 꺼내다가 녹이고, 양파를 벗기고, 마늘도 까고, 얼려둔 청양고추도 잘게 썰고, 그 모든 재료들을 물오징어와 함께 섞어서 고추장으로 버무린 다음 프라이팬에 옴싹 부어놓고 지글지글 소리가 날 때까지 볶았다.

그렇게 저녁 준비를 모두 끝내고 난 뒤에서야 나는 문득 ‘어, 이상하다?’하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시간을 가늠해보니 벌써 한 시간을 넘어 한 시간 삼십여 분이나 흘러 있었다. 그런데도 목욕탕에서는 그동안 아무 소리가 없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예전에 왔던 다른 손님들은 아하, 아하, 감탄사를 토해내기도 하고, 나를 불러서 문을 사이에 둔 채로 무엇이 어떻다는 등의 말을 걸기도 하고, 질문도 하고 등등 자기 자신의 기분 좋음을 끊임없이 내게 증명해주고 있었지만 이 친구는 도대체가 한 시간이 넘도록 말 한 마디가 없는 것이었다.

이거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그렇다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확인해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문을 두드려서 아무 일 없느냐고 물어보자니 그 또한 숙녀가 목욕하는 와중에 남자가 함부로 낼 수 있는 기척은 아닌 것 같아서 망설여졌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가끔, 아주 가끔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나기는 했다. 치명적인 어떤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는 증거인 셈이었다. 그렇게 다시 삼십여 분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문이 열리고, 그녀가 밖으로 나왔다.


# 머리를 말리는 그녀~

그런데 이게 뭐냐. 옷을 입고 있는데도 그녀의 몸이 이상했다. 너무나 이상했다. 방정맞은 표현을 하자면 물에 푹 삶은 고구마 같았다. 그렇게 삶은 고구마 같은 피부를 한 채로 그녀는 몇 걸음을 걷는가 싶더니 아,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다가 그만 픽 쓰러져 버렸다. 쓰러진 채로 한 마디 중얼거렸다.
“제가요. 백숙이 돼버린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어서 얼른 목욕탕 속에 손을 넣고 물의 온도를 가늠해 보았다. 두 시간여가 흘렀는데도 욕탕의 물이 아직 손을 대번에 푹 넣지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마 손이 차가운 상태에서 물의 온도를 조절했던 것 같았다. 차가운 손으로 온도를 맞추다 보니 80도쯤 되는 물을 60도쯤으로 착각했던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고 그렇게 자기 몸을 익혀서 나오는 사람도 세상에 있는 것인가?

나중에 물어보니 향수목욕은 원래 그렇게 몸이 익을 정도로 뜨거운 물에서 해야만 하는 걸로 알았다나 어쨌다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물이 너무 뜨거워서, 그래서 주인 모르게 한다고 가만히 소리 안 나게 찬물을 한 바가지나 섞었다고, 그녀는 그런 자백(?)까지 하고 있었다. 뭐냐 이거, 무슨 이런 사람이 다 있냐? 어쨌든 그날 이후 백숙은 목욕을 말하는 우리의 은어가 되었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한 편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전북 고창으로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김수복의 시골 살림 이야기’란 제목으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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