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창세의 고대와 현대의 만남 ‘멕시코’ (8) - 베라크루즈



멕시코’ 하면 먼저 선인장이 떠오른다. 멕시코는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선생이 전교생에게 포크 댄스(Folk Dance)를 가르친다고 점심시간 전, 운동장에 집결시켜 멕시코 전통음악인 ‘베사메무쵸(besame mucho)’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이 음악은 ‘레이 카닙싱어즈(ray caniff singers)’가 편곡했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경음악이다. 어린나이에 들었지만 학교에서 매일 듣다보니 멕시코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멋진 멜로디가 와 닿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서양화가인 미술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버려 무척 아쉬웠다. 크면 멕시코로 찾아가서 미술선생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멕시코’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내 곁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혼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펼쳐본다.[편집자 주]




# 동부 최대 무역항이자 군항기지인 베라크루즈 항
 

# 17세기 당시 카리해 연안에 자주 출몰하던 관광용 해적선 모형


인천과 유사 ‘전쟁ㆍ무역’ 두 얼굴의 국제항 

1993년 필자가 본 ‘베라크루즈(Veracruz)’는 멕시코 동부 끝에 대서양과 맞닿은 항구도시다. ‘십자가를 바라보라’란 뜻을 지닌 이 도시는 우리나라 인천항과 유사한 유서 깊은 군항(軍港)이기도 하다. 18세기 중엽 미국과의 2차 전쟁 당시, 미 해군이 이곳을 상륙해 멕시코 시티 대통령 궁까지 점령당해 오늘날 미국의 캘리포니아아주와 텍사스, 아리조나, 뉴멕시코주를 내주는 조건으로 항복한 뼈아픈 역사를 간직한 멕시코의 ‘베라크루즈’는 인천과도 흡사하다.

인천이 고향인 내게 베라크루즈는 웬지 정감이 간다. 아내와 함께 금요일 오후에 니싼 ‘히까리(HIKARI)’를 몰았다. ‘빛‘의 뜻인 히까리(ヒカリ)는 유럽형 디자인에 수동식이지만 루프도 달려 있어 장거리에 적합한 차여서 자주 애용하던 애마였다. 그런데 가끔 엔진이 쿨럭쿨럭하는 현상이 있다. 원인을 모르고 정비소를 가도 밝혀내지 못한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40km 이상 밟으면 이상이 있어 불안하다.

“일제차도 고장이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차가 오히려 더 좋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당시 한국 차는 단 한대도 구경을 못했다. 자동차수출을 유럽과 미국시장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남미대륙은 땅이 커서 차 없이는 도저히 생활이 어려운 환경이어서 그야말로 황금시장인 이 지역에 눈을 돌리지 않는지 당시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 대서양을 끼고 번영을 구가하던 베라크르즈 전


# 베라크르즈 전통 행사인 카니발 축제 퍼레이드 

18세기 미 해군에 전멸당한 ‘피의 역사’ 간직 

여하튼 아내와 함께 동부 베라크루즈항으로 차를 몰았다. 시속 100~140km로 약 6시간을 가야하는 이곳은 멕시코 동부지역 최대 무역항이며 군함과 해군기지가 있는 군항이기도 하다. 오후 늦게 항구에 도착한 우리는 모텔을 잡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드넓은 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내와 대서양 연안 해안가를 걸으며 사진도 찍고 시원한 바다 바람을 한껏 만끽했다. 오랜만에 느끼는 바다 내음과 탁 트인 공간, 밀려오는 하얀 파도에 마음을 실어본다. 인천이 고향인 내게 바다는 마치 마음속의 영원한 친구 같은 존재다. 예로부터 미국, 쿠바와 가까운데다 과거에는 독하디 독한 럼(Rum)주를 마시며 바다를 누비던 해적들의 본거지로 명성을 날리던 항구다.

베라크루즈항 한쪽에는 당시 쿠바와 카리브해 일대를 휘저었던 해적선을 재현해 놓아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돛대와 깃발이 누렇게 변한 목선의 모습이 영화에 나오던 그 해적선과 똑같아 보였다.

발걸음을 옮기는데 동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18세기 중엽 미국과 전쟁을 벌이던 멕시코 해군사관생도들이 미 해군의 기습을 당한 곳이다. 미국이 바다를 건너 인천상륙작전을 하듯 멕시코의 허리를 공격해 진로가 뚫려버린 뼈아픈 역사가 있다.

젊고 어린 해군사관생도들이 미군을 막아내려 결사적으로 싸웠지만, 수적으로 열세다 보니 전멸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관생도들의 무용담을 기리기 위해 기념동상이 세워져있다.    


# 호화유람선과 밤의 베라크루즈 항의 야경


# 베라크르즈에서 번성하던 엘타힌 피라미드 유적지


# 엘 타힌 문명의 피리미드

미네랄ㆍ유황 온천, 축복받은 천국의 땅 

베라크루즈 주는 고대 엘 타힌(El Tajin) 문명이 꽃을 피웠던 곳이기도 하다. 그 한쪽에 있는 천연온천 지역인 할라빠(Jalapa)는 장인장모와 처남, 동서와 함께 신년맞이 온천여행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한번은 처남과 함께 8기통 밴인 낫지(Dodge)를 타고 간 적이 있었다. 베라쿠르즈 주는 한반도보다 크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어 멕시코에서 가장 많은 농산물이 생산되고 다양한 문화와 세계적인 동식물 생태계가 유지되는 특별한 곳이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처남이 이곳저곳을 보여 주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망고와 면화, 뚜나(Tuna, 키위와 비슷한 선인장의 열매로 알로에 성분이 많음) 밭이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2시간을 달렸는데도 끝없이 드넓게 퍼져 자라는 농산물들. 이곳이 부럽기만 했다.  

오후 늦게 도착한 할라빠는 정글지대 안에 위치한 천연의 작은 마을이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자연 속에 가끔씩 보이는 예쁜 주택들이 정감을 느끼게 하는 그런 곳이다. 가는 곳마다 이름 모를 열대 꽃들이 반겨준다. 대서양이 인접해있어서인지 정글기후와 겹쳐 다소 습한데다 우리나라의 여름날처럼 후덥지근하기까지 했다.

중소도시인 할라빠를 처음 가본 나는 천혜의 자연원시 그대로를 간직한 정글과 폭포, 계곡, 동식물 생태계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곳에서 20분 정도 정글지대로 들어가면 커다란 계곡이 나온다. 그 옆으론 엄청난 규모의 온천이 김을 내뿜으며 온천수를 콸콸 뿜어내는데 마치 가마솥에서 펄펄 끓는 물을 연상케 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온천이 계속 나올 수 있지? 그것도 1년 내내라니. 정말 여기는 축복받은 곳이구나!”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런 곳이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정글온천지대. 생각만 해도 즐겁다. 입구에 다다르면 200m 전방에서부터 역한 유황냄새와 계란 썩는 듯한 냄새가 공기를 타고 코를 찌른다.


# 거리의 마리아치 악사들


# 밤거리 악사들

한인들도 모르는 베일 ‘천혜의 명소’ 

그 냄새는 바로 지하 마그마와 지하로 흘러들어간 계곡의 물이 각종 미네랄과 유황이 섞인 채 다시 분출되는 천연온천에서 나는 것이다. 둘레가 10m쯤 되는 둥근 원형의 온천 온도는 약 45도 정도. 약간 뜨거운 정도지만 유황성분과 미네랄이 풍부해 10분 정도 몸을 담그면 피부가 매끈해진다. 또 여자들이 몸이 냉하고 피곤하고 찌뿌둥할 때 들어가서 몸을 담그면 피로회복에 그만이다. 이에 비하면 한국의 온천은 맹물이나 마찬가지다. 그 당시 온천은 미개발 상태였다. 입구부터 자연 그대로의 야자수가 숲을 이루고 수백, 수천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며 각종 새들이 지져대고 맑고 푸른 하늘과 흰구름은 온천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멕시코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할라빠는 정말 멋진 곳이다.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 어느 미국인이 이곳을 레저타운으로 개발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는지 궁금하다.

<한창세 님은 언론인입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