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수난시대’



재계에 때 이른 ‘동장군’이 몰아치고 있다. 재벌 총수들의 수난 시대가 연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법원은 지난 달 말 ‘회삿돈 수백억 원 횡령’ 혐의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동생 최재원 부회장에 대해 항소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했다. 형제가 동시에 구속되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법원의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와 ‘재벌도 법대로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재벌 총수들의 수난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재계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 효성 그룹 조석래 회장 일가가 회사 임원들 명의로 수십억원의 차명대출을 받아 금융감독 당국에 적발됐다.


SK 뿐만이 아니다.
현재 수천억원대의 배임과 횡령, 탈세 혐의로 실형을 받았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다시 재판을 앞두고 있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태광그룹 전 회장은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나란히 수술을 이유로 구속집행 정지됐으며,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혐의로 기소된 구자원 LIG그룹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일각에선 법의 심판대에 설 재벌 총수들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국세청 등 ‘전방위 조사’

지난 5월부터 효성그룹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국세청은 조석래 회장을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며, 이달 들어 포스코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진행중이다. 이로 인해 정준양 회장에 대한 거취 문제까지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불법, 탈법 행위에 대해 어느 때보다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과거와 달리 재벌 총수들이 직격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10여개 대기업 총수들이 고초를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에는 보기 힘들던 현직 재벌총수의 실형 선고와 법정구속은 이제는 흔치 않은 법정 풍경이 됐을 정도다. 국회 출석에 응하지 않은 총수들까지 줄줄이 법정에 불려 나와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지난 4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정당한 이유없이 국회 국정감사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아 벌금 1500만원을 선고받았다.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도 지난 5월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

대기업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세청은 최근 3년 만에 포스코에 대한 세무조사를 전격 시행했다.

국세청은 이에 앞서 CJ그룹 계열사인 CJ E&M과 효성, 롯데쇼핑을 조사중이다. 현대자동차와 대우건설 등 주요 기업뿐 아니라 국민은행과 인천공항공사 등 금융권과 공기업에도 예외가 없다. 특히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은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할 처지에 놓였다.

효성 ‘1000억원대’ 차명재산

한겨레에 따르면 조석래 회장 일가는 계열 금융사인 효성캐피탈에서 회사 임원들 명의로 수십억원의 차명대출을 받은 게 금융감독 당국에 적발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의 이름으로 본인 모르게 50억원대의 대출을 일으키고, 조 변호사의 도장을 멋대로 만들어 불법대출 등과 관련된 이사회 의사록에 날인한 혐의도 드러났다. 효성 총수 일가가 계열 금융사를 사실상 자신의 금고처럼 사용했다는 얘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효성 총수 일가가 ㈜효성의 고동윤(54) 상무와 최현태(59) 상무를 포함한 회사 임원 여럿의 이름으로 지난해 말 현재 40여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금감원은 이런 사실을 지난 4월 총수 일가 등 특수관계인 대출의 적정성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적발했다. 두 사람은 조 회장 일가의 재산관리인들로 알려져 있다. 앞서 국세청은 효성 세무조사에서 총수 일가의 차명주식 등 1000억원대의 차명재산을 적발한 바 있다.

또 효성캐피탈은 조 회장의 차남인 조현문 변호사 명의로 지난해 11월까지 50억원을 대출해줬는데, 정작 본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효성캐피탈이 조 변호사의 도장을 불법 날인한 이사회 의결서는 2005년 이후 올해 2월까지 8년간 167건에 달한다.

효성캐피탈이 매년 총수 일가와 계열사, 임원 등 특수관계인들에게 해준 대출은 300억원대에 이른다.

금감원은 곧 총수 일가와 임원 등 특수관계인 대출에 대한 이사회 결의, 금감원 보고 등 관련법이 정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혐의로 효성캐피탈을 제재하고, 횡령?비자금 조성 등 불법이 드러나면 검찰에 고발할 방침이다.

“생활비 통장까지 꺼냈지만…”

부실경영의 책임을 지고 회사에서 떠나야 하는 오너들도 나오고 있다. STX그룹 강덕수 회장과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은 경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이미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도 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면서 최악의 경우에는 법정관리를 맞을 수 있다.

최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직접 해명하고 나섰다. 또 경영권을 포기했다고 하면서도 채무 상환을 위한 역할은 계속 맡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현 회장은 “자금유치 협상과 자산 매각이 모두 무산돼 추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긴급히 법원에 모든 결정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동양시멘트와 네트웍스는 채권단 자율협약이 유력했지만 지난 1일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아울러 현 회장은 “저희 가족 역시 마지막 남은 생활비통장까지 꺼내 CP를 사 모았지만 결국 오늘의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며 “너무나 긴박한 순간이었기에 아무런 대비가 없었음에 지금의 상황에 또 한 번 너무나 아쉬움이 남고 죄송할 따름”이라고 비통한 심정을 나타냈다.

재벌을 향한 정부의 칼끝은 더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국가경제에 기여한 점을 이유로 다소 관대한 처분을 기대할 수 있었던 관례가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방치됐던 고름이 일거에 터져 나오면서 추락의 길을 걷고 있는 그룹들이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범석 기자 kimb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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