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창세의 고대와 현대의 만남 ‘멕시코’ (9) - 뿌에블라



멕시코’ 하면 먼저 선인장이 떠오른다. 멕시코는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나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체육선생이 전교생에게 포크 댄스(Folk Dance)를 가르친다고 점심시간 전, 운동장에 집결시켜 멕시코 전통음악인 ‘베사메무쵸(besame mucho)’ 음악에 맞춰 남녀 쌍쌍이 춤을 췄던 기억이 난다. 이 음악은 ‘레이 카닙싱어즈(ray caniff singers)’가 편곡했는데 당시 세계적으로 대히트한 경음악이다. 어린나이에 들었지만 학교에서 매일 듣다보니 멕시코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멋진 멜로디가 와 닿았다. 중학교 때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당시 서양화가인 미술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는데, 그분이 갑자기 멕시코로 이민을 가버려 무척 아쉬웠다. 크면 멕시코로 찾아가서 미술선생님을 만나겠다고 결심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멕시코’는 알게 모르게 직간접으로 내 곁에 늘 있어 왔다. 그리고 멕시코는 결혼이라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인연으로 내게 다가왔다. 결혼과 함께 멕시코로 건너가 생활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펼쳐본다.[편집자 주]




# 몇년전 폭발한 휴화산 뽀뽀까떼뻬뜰 정상의 화염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 베라크루스 할라파의 명물인 랑고스떼 가재 요리
 

환상의 맛 멕시코 전통식 가재요리 ‘랑고스떼’ 
 
엄청난 무공해 자연환경을 가진 멕시코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곳에서 온천을 즐길 줄은 꿈에도 모를 일이었다. 꿈인가…하여튼. 이곳 할라빠 온천에서 멕시코인들은 콸콸 뿜어져 올라오는 온천물 속으로 다이빙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러다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아냐?” 그 장면에 무척 놀랬다. 걱정도 잠시, 다이빙한 남자가 다시 물 위로 쑥 올라왔다. 그만큼 온천수가 분출되는 힘이 강해 다이빙을 해도 다시 튕겨져 나오는 것이다. 자연이 연출해내는 다양한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이곳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덥지만 기후가 맑고 조용한데다 사람들은 무척 친절했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아주 순박해 보였다. 꼭 우리나라 70년대 시골에 온 느낌이었다. 온천을 몇 시간 즐기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때마침 저녁시간, 우리는 이곳에 오면 꼭 먹어야 하는 요리를 시켰다. ‘랑고스떼(Langoste)’ 가재요리다!

온천 옆 정글에서부터 연결되는 크고 청정한 하천에서 직접 잡은 싱싱한 가재다. 이것을 큰 철판위에 기름을 뿌리고 멕시칸 양념을 더해 튀기면 그야말로 ‘멕시칸 철판가재요리’가 된다. 약 10만 뻬소(2만5000원)를 주고 주문을 했다. 1시간 후, 커다란 쟁반에 한가득 붉게 튀겨져 나오는 가재가 너무 맛있게 보였다. 둘이서 다 먹지 못할 만큼 양도 엄청났다. 한국 호텔에서 이 정도의 가재요리를 시켰다면 족히 100만원 이상은 줘야할 것이다.



# 멕시코 치즈는 마치 두부처럼 생겼으나 맛이 매우 고소하다.


# 고소한 치즈가루를 넣은 멕시칸 음식

싸고 고소한 치즈 먹으며 ‘뿌에블라’ 2차 여행   

다음날 아침,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베라쿠르즈를 떠나 멕시코시티로 돌아가는 길. 도중에 뿌에블라(Puebla) 주를 거치는데, 이곳은 높은 산이 많고 멕시코에서 가장 높은 휴화산 뽀뽀까떼뻬뜰(일명 뽀뽀. Popocatepetle 5480m)로 유명하다. 멀리서 보면 햇빛을 받아 붉은 색을 띠며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이 신비로운 뽀뽀 화산에 가보기로 했다. 3시간 정도를 더 가야한다. 차를 타고 뿌에블라로 향했다. 길가엔 치즈(Queso)를 파는 장사꾼들이 많다. 이곳에서 많이 키우는 소에서 짠 젖을 발효시킨 것으로 이 지역 특산물이다. 마치 둥근 비지처럼 생겼는데, 손으로 찢으면 익은 닭고기 살처럼 쭉쭉 찢어져 그냥 먹어도 짭짤하니 맛이 좋다. 값도 무척 싸다. 한 덩어리에 1000~2000원 정도다.

그렇게 치즈를 먹으며 달리다 빨간 신호등과 마주쳤다. 양 갈래 길이었다. 잠시 멈췄다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해서 신호를 무시하고 출발했다. 그런데 아뿔싸, 얼마 지나지 않아 교통경찰이  따라와 차를 세우는 게 아닌가.



# 박봉에 시달리는 멕시칸 경찰은 부패가 심해 일명 코요아칸 이라 부르는데 이는 늑대라는 ~


# 멀리서 보이는 뽀뽀산의 만년성이 시원하게 보인다.

숨어 단속하는 교통경찰에 “길 안내해라”

베라크루즈 교통경찰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몰래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운전자들이 신호위반을 하면 나타나 딱지를 떼는 것이었다. 좀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할 말은 없었다. 위반은 했으니까…. 면허증을 보여줬다. 벌금을 부과하려 하자 옆에 있던 아내가 “왜 당신들은 떳떳하게 나와서 교통 활동을 안 하느냐? 숨어서 일하는 게 당신들 본래 업무냐?”고 따졌다. 교통경찰은 “아무튼 위반을 했으니 법대로 하겠다”고 했다. 그 말하는 태도에서 떡값 정도를 뜯어내려는 의도가 읽혔다. 적당히 돈을 쥐어주면 넘어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아내는 막무가내로 경찰에게 따지고 들었다. “우리는 머나먼 멕시코시티에서 이곳까지 여행을 왔다가 뿌에블라로 넘어가는 중이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길도 모르고 당신들에게 길 안내를 부탁할 테니 안내를 해라.”

아내로부터 의외의 역습을 당한 경찰은 당황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이유는 멕시코는 본래 모계사회라는 것. 대부분 남자들은 강하게 나오는 여자에게는 두 손을 들고 마는 경우가 많다. 버스를 타든 기차를 타든 여자와 아이가 우선이다. 그야말로 레이디 퍼스트인 것이다. 

마침내 경찰이 꼬리를 내렸다. “미안하다, 그냥가라”고 하는 것이었다. 와우~우리가 경찰을 이기다니. 마누라의 기지에 위기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한바탕 신나게 웃으며 도로 위를 힘차게 달렸다.  



# 뿌에블라의 특미인 음식점의 토끼구이(Carne Conejo)


# 토끼를 양념에 튀김구이를 한 모습

고대 아즈테카 문명과 전설 간직한 ‘뽀뽀’산

드디어 뿌에블라 주 국경을 지났다. 이곳은 지난해 장인가족과 함께 왔던 곳이다. 드디어 휴화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년 전 잠자던 이 화산이 폭발해 전 세계 긴급뉴스로 보도되어 유명해진 뽀뽀까떼뻬뜰. 경치가 빼어났다. 정상은 만년설로 눈이 쌓인 채였다.

지금은 입산금지이지만, 당시에는 자동차로 정상부근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올라갈수록 드넓고 큰 전나무와 산 밑의 푸르른 숲이 참 아름다웠다. 마치 외국 달력에 나오는 풍광 그 자체였다. 이곳은 기후가 항상 늦가을 같아서 동식물 등 생태계유지에도 좋다.

점심시간이었다. 토끼(Conejo)고기를 먹으러 갔다. 갑자기 ‘웬 토끼’ 냐고 하실 것이다. 고도가 높아 산소농도가 부족한 이곳에선 헤모글로빈이 많은 토끼고기를 먹는 게 오랜 풍습이었다. 그래서인지 항공기에서 일하는 파일럿이나 승무원들이 토끼고기를 자주 먹는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있다.


# 뽀뽀까떼뻬뜰(Popocatepetl)의 야경이 밤하늘 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곳은 높은 산들이 많고 역사가 깊은 지역이다. 해발 5280미터의 이스따시우아뜰(Iztaccihuatle)과 빠소 데 꼬르떼스(3200m)가 자리하고 있다. 빠소 데 꼬르떼스는 ‘꼬르떼스의 길’이란 뜻으로, 500년 전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꼬르떼스(Hernan Cortes)가 베라크르주 부근에 도착, 300km가 넘는 길을 강행군으로 걸어 뿌에블라와 춀룰라에 와서 뽀뽀 화산에 올라 처음으로 고대 아스떼끄의 수도였던 떼노치띠뜰란(지금의 멕시코씨티)을 내려다본 곳으로 유명하다.

차로 춀룰라를 지나 마지막 산악마을인 살리찐뜰라(Xalitzintla)를 넘어 험한 비포장 산길을 3시간 정도 오르면, 비로소 빠소 데 꼬르떼스에 도착한다. 왼쪽으로 장엄한 뽀뽀화산이, 오른쪽으론 이스따시우아뜰의 아름다움이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500년 전 스페인의 ‘꼬르떼스’는 남미 정복을 꿈꾸며 새로운 세계를 향해 자신들이 타고 항해했던 범선까지 불태워 버리고, 진군에 진군을 계속한 그는 “자! 이 산만 넘어가면, 여자와 황금이 가득하다. 전진!”이라 했다고 전한다. 한국에서 먼 이곳에 온다면 꼭 이 장엄한 광경을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한창세 님은 언론인입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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