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진단> 퇴직한 일꾼들의 일상 22회 - 헌책방 주인이 꿈인 남민성 씨



사오정(45세 정년퇴직), 삼팔선(38세가 퇴직선) 등 직장인들의 아슬아슬한 퇴직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가 이제는 일상어로 자리하고 있다. 정부는 때마다 ‘일자리 창출안’을 내세웠지만, 비정규직 양산만 촉진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실업자들의 패배감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상황이 이러니 40~50대 퇴직자들에게 재취업이란 언감생심일 따름이다. 한국전쟁을 전후해 태어난 세대들(베이비부머 포함) 역시 후배 세대들 못지않게 방황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년 코스’를 정상적으로 밟았지만 고령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이들 역시 후배 세대들과 경쟁하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모두 퇴직 이후 특별한 기술이 없어 편의점이나 호프집 등 알바 자리를 전전하면서 재취업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아직은 일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스스로 위안하지만 우리사회는 여전히 이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위클리서울>은 퇴직 후 또 다른 기회를 엿보며 고민하고 있는 퇴직자들을 매주 찾아가고 있다. 이번 호에는 15년간 금융권에서 일하다 퇴직한 남민성(가명. 42) 씨를 만나보았다.



실적하락이 주원인

남민성 씨는 은행 계열 캐피탈 회사에서 15년간 근무했다. 그가 퇴직한 건 불과 몇 개월 전. 당시엔 아내와 다투는 일이 빈번했다. 그만두지 말라는 아내의 부탁 아닌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못 견디겠더라고요. 처음엔 아직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아이들 때문에 꾹 참고 다녀야지 생각했는데, 과로나 스트레스로 병원신세 질 것 같더라고요. 여태까지 버틴 것도 용합니다.”

그가 15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건 실적하락 때문.

“실적은 나날이 줄어들고, 자연히 월급도 줄었죠. 한번은 어떤 남자가 1000만원을 대출해갔는데, 갚지를 않았어요. 하긴 요즘 신용도 떨어져도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잖아요. 신용회복기금 가서 파산신고 하면 더 낮은 이자로 갚을 수 있으니까요. 국가에서 어떻게든 돈을 잘 빌려주니까, 일부러 신용도를 떨어뜨리는 사람들도 있더라고요.”

얼마 안 되는 인센티브에, 대출상환을 포기하는 손님들이 동시에 밀려 퇴직하기 전엔 한 달에 150만원도 채 벌지 못 벌었다. 고객이 상담을 통해 대출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몇 달 안 가 다른 금융업체나 이자가 더 저렴한 은행권으로 환승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돈을 안 갚아도 문제지만 이자 장사해 먹고 사는 회사 입장에서 돈을 빌리자마자 갚아버리면, 결과적으로 실적 쌓아야 하는 제 입장에선 뒤통수를 맞는 거나 마찬가지죠. 최고의 고객은 몇 천 만원씩 빌려간 뒤 몇 년간 꾸준히 갚아나가는 이들입니다(웃음).”



그는 은행이나 카드회사 그리고 사금융권 등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다 똑같은 놈들입니다. 국가에서 정한 기준이나 법칙과 무관하게 자기들 이익에 따라 돈 장난을 치죠. 은행도 서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돈 빌려주는 것 탐탁지 않게 여겨요. 햇살론? 빌릴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사람도 환경이나 조건 봐서 부결시켜버려요. 물론 수입이 중요하지만, 수입과 무관하게 차별하는 경우가 많죠. 부동산을 보는가 하면 직업의 수준을 따지기도 해요. 모든 금융업체가 그래요. 교수, 변호사, 방송3사 기자 등은 직업군에서 가장 상위에 속하죠. 이 사람들에겐 돈도 잘 빌려줘요. 반면 일용직노동자 등에겐 조건이 되더라도 빌려주지 않죠. 정작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그들인데 말이죠.”

남 씨는 금융권 비리에 대해선 보이지만 않을 뿐이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보통 은행이나 캐피탈 쪽에 근무한다고 하면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아요. 일부분 맞는 말입니다. 비리가 많기 때문이죠. 실적도 조작할 수 있고요. 현대사회는 돈이 곧 권력이잖아요. 노무현 대통령도 이제 권력은 자본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적 있잖아요. 그러니 금융권 직원들이 어깨 펴고 다닙니다. 청탁이 잠재해 있거든요. 돈 많은 이들과 어울리게 마련이죠.”

남 씨는 비리로 얼룩진 동료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것도 모험심과 담력이 요구되는 행위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인생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사는 거죠. 나중에 감사라도 해서 걸리면 그날로 모가지 날아가고 실형을 살 수도 있어요. 교도소에 흉악범들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일전에 횡령죄로 한 팀 전체가 구치소에 들어간 일도 있어요. 팀장이 자기가 총대를 멘다며 걱정하는 후배들을 다독거렸는데, 다행히 결국 벌금형으로 끝났죠. 이 바닥에서 일단 사기꾼으로 소문나면 어디 가서 취직도 못해요. 돈 만지는 직업인데 사기 혐의라니…”   

돈 냄새 아닌 책 냄새 맡고 싶어

퇴직 이후 한 동안은 서울에서 한량처럼 지낸 남 씨. 한동안 도서관과 극장, 술집을 전전 했다. 이제 홀로 일하는 아내의 벌이로 네 식구가 도저히 버틸 수 없다고 판단한 그. 선배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일하기로 결심했다. 경기도 과천에 있는 유원지 인근 식당인데 주말이면 손님이 밀린다고 한다.

“주중엔 이틀을 쉬죠. 물론 주중에도 손님이 좀 있지만 선배 혼자서 할 수 있죠. 주말엔 정말 바글바글합니다. 주말 손님들은 제가 사장인줄 알아요.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서빙부터 그릇 닦는 것까지 말이죠. 몸이 좀 힘들어 그렇지 스트레스는 덜 받아요. 하루 일당 8만원 씩 쳐서 한 달에 160만원 정도 받기로 했습니다. 오고가는 게 좀 불편해서 그렇지 공기가 좋으니까 건강도 같이 좋아지는 거 같아요. 하다못해 서울 올라와 창문 열면 숨이 턱턱 막힙니다.”

남 씨가 가장 우려하는 건 아내의 퇴직이다. 남 씨가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퇴직할 당시 아내 역시 최후통첩으로 자신도 퇴직하겠다고 했단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저 보면 한숨만 쉬죠. 이제 자기까지 회사 그만두면 가정 꾸려나가기가 어렵다는 걸 잘 알거든요. 아내는 영문학을 전공했고 무역회사를 다녀요. 대학원까지 나왔어요. 한때는 저보다 돈을 못벌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저보다 수입이 많고 일정하죠. 저도 이제 아내에게 의지해야 합니다. 저는 제 용돈이나 벌고 아이들 군것질 하라고 용돈 주는 게 전부죠. 남은 돈은 차곡차곡 모아서 나중에 사업자금으로 활용하려고요.”



남 씨의 목표는 헌책방을 차리는 것이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한 때는 문학청년의 꿈도 키웠다.

“제가 한 때는 자본에 포섭돼서, 어떻게 눈이 돌아 금융권에 몸담았지만, 이제는 목욕재계 하고 좋은 것만 보고 살려고 합니다. 아직 어린 자녀들에게는 아버지로서 학교 공부보다는 인문학이나 현장실습 위주로 가르치고 싶네요. 물론 아내의 반대가 심하겠지만…. 애들만큼은 마음대로 살 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일지도 모르죠(웃음). 저야 그동안 회사 다닌 15년 세월 제외하곤 제가 살고 싶은 대로 살아왔으니 큰 미련 없어요. 회사 때려치운 것도 제 멋대로 관둔 것이니까, 누구 탓할 일도 없죠.”

헌책방 사업도 사양길에 접어든 게 아니냐는 질문에 남 씨는 “유지만 할 수 있는 자리면 된다”며 넉살 좋게 웃었다.

“아내야 아마 헌책방 연다 그러면 ‘멘붕’ 상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저는 헌책방과 어린이공부방을 만들겁니다. 그리고 밀어붙일 겁니다. 책 팔아서 얼마나 남겠어요. 그것도 헌책인데. 용돈 벌며 유지되는 사업이면 됩니다. 그래서 되도록 새로 단장하기 보단 몇몇 곳 물색해서 좀 오랜 기간 유지하며 장사해왔던 곳을 물려받고 싶어요.”

한때는 돈 냄새가 좋았지만, 이제는 책 냄새 그윽한 헌책방에서 제 2의 인생을 가꾸고 싶다는 남 씨. 그는 어느 유명한 경구를 읊조리며 자신 앞에 펼쳐놓았던 책을 덮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공민재 기자 selfconsol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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