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지연의 좌충우돌 인도 유랑기-40화: 여행기를 마치며 2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다. 애정 혹은 진저리. 애정은, 드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수많은 문화유산, 그 속에서 맥을 잇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의다. 반면 가난, 더러움, 무질서와 끊임없는 골탕, 치근거림은 인도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유다. 필자는 두 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인도에 두 번이나 가면서 때마다 다시는 안 오겠다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도 순간순간 용솟음치는 감동과 환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도는 그래서 애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멀리 떠나 있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때 그 시절의 인도 유랑기를 펼쳐본다.


# 사진 찍는 것을 무척 좋아하던 함피의 아이들

‘분명히 달랐다. 그러나 같았다.’ 처음 인도에 다녀오고 난 뒤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렸었다. ‘인도앓이’. 고향을 떠나 이역만리 타향살이를 하며 겪는 향수병 같은 느낌이었다. ‘고작 얼마나 있었다고….’ 내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그러나 의아함이 무색할 만큼 마음은 꽤 오랫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혹자들의 말처럼 한 번 걸리면 낫기도 힘들다는 ‘인도결핍증’에 감염되었던 탓이었다. 종로 밤거리를 걷고 있으면 마치 델리의 코노트플레이스를 배회하는 느낌이었고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면 마치 야간기차를 타고 바라나시를 향하는 기분이었다.  

인도에 머무는 동안에는 스스로에게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졌었다. ‘과연 인도를 기억할 수 있을까?’, ‘그리워지기는 할까?’. 생각의 끝에서는 언제나, ‘그럴 리가…’라는 메아리만 허공을 가로질렀다.

기억하고 그리워하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당했었다. 어느 나쁜 놈이 약 탄 밥을 먹여 죽을 뻔했다. 훗날 일부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당시는 사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온갖 나쁜 일을 겪기도 했다. 느끼한 인도 남자들의 추태와 노골적인 느끼함에 경기 했던 적도 적잖았다. 돌이켜 보면 무수히 많은 일들 때문에 순간순간 괴로웠고 아팠다. 

그러나 여행을 마감하며 집으로 가기 위한 준비에 나설 때, 비로소 깨달았다. 진심을 다해 행복했음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느낌은 배가 되었다. 인도가 정말이지 몹시도 간절했던 것이다.


# 화려한 색상의 사리(전통의상)를 걸치고 강에서 빨레를 하는 아낙네들

부정이 긍정으로 뒤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유구하고 고매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가슴에 아로 새겨진 것도 이유였지만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나는 내가 아니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가족, 친구, 일, 물건 등 소중한 것들에 대한 염려와 걱정을 잠시라도 떼어 놓을 수 있었다. 아무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온전히 ‘나’라는 주체 하나만을 생각할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이었다. 즐거운 걱정거리라면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오늘은 어디 가서 놀지?”라는 가장 원초적인 고민 정도였다. 속박된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유일한 시간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다른 의미로 보면 인도에서의 시간은 어찌 보면 그간 살아온 삶의 압축판이기도 했다. 사랑, 다툼, 시기, 질투, 미움, 배신, 감동, 고마움, 사기, 공포, 혼돈, 혼란, 아픔 그리고 행복과 이별까지. 살면서 경험하는 무수히 많은 감정의 변화들을 여행을 하는 짧은 기간에 모두 느낄 수가 있었다.

물론 ‘오직 인도’였기 때문에 자유로웠다거나 ‘오직 인도’였기 때문에 모든 감정의 변화를 느꼈던 것은 아니다.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어쩌면 내가 머무는 모든 곳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그것을 돕는 것은 같이 가는 사람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 덕분이다. 함께 간 나의 벗이 그러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또한 그러했다.

그렇게 ‘인도 그리움’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던 나는 재취업 등 먹고 사는 일에 매진하기 위해 인도를 잠시 떠나보내기로 했다. 가슴 속 가장 아름다운 곳에 모셔 놓고 가끔씩 추억을 들춰보자 다짐하면서 말이다. ‘다시 만나자, 인도여!!’
그로부터 9년 뒤, 마음속에 아름답게 묻어뒀던 추억의 인도 땅을 다시 밟았다.

인도 첫 방문의 시작이 두려움과 설렘이었다면, 재방문의 시작은 반가움과 낯익음이었다.  인도는 여행자에게 여전히 매력적인 나라였다.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떡 벌어지는 문화유산이 지천이요, 이질적인 문화에서 자란 여행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동질감을 쌓아가는 재미가 상당했다.


# 석상을 촬영하려는데 한 아이가 느닷없이 카메라 렌즈 안으로 들어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 아그라 어느 구멍가게에서 물을 사는데 한 아저씨가 갑자기 자신의 아기를 친구 조양의 팔에 안겼다. 사진을 찍으라는 것이었다. 느닷없는 상황에 당황스러웠으나 이내 귀여운 아기의 모습에 홀딱 반해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러나 누차 밝혔듯, 인도는 여행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극복해야할 피로감이 엄청난 동네이기도 하다. 심각한 매연과 소음, 무질서와 대외국인 사기, 그리고 입에 전혀 맞지 않는 음식들. 더 큰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 피로를 극대화 시키는 ‘더위’였다. 여행 출발 전 5~6월의 인도 날씨가 영상 50도를 육박할 만큼 메가톤급 더위를 자랑한다는 것을 전해 듣기는 했지만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전혀!! 엄청난 불볕더위 속에서 유체이탈과 ‘멘탈붕괴’를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더위 앞에서 처절하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로 인해 여행은 항시 산으로 가는 느낌이었으며 결국에는 여행의 목적을 상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똑같은 장소를 거닐면서도 마주하는 것에 대한 감동과 환희는 첫 번째 여행 때와는 정말이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익숙함에서 오는 식상함이라기보다는 더위에서 비롯된 이상 현상으로 감각기관이 말라버린 이유였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을 마주하며 순간순간 밀려오는 감동에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들 장소를 돌아서면 어느새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만 굴뚝같았다.

계속되는 오랜 친구와의 갈등도 여행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었다. 조금 더 젊었던 첫 번째 여행에서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것들까지 사사건건 눈엣가시가 됐다. 스타일이 다른 것에 대한 인정 보다는 하나부터 열까지 맞지 않는다며 투덜대기 바빴다. 하루가 지날수록 불만을 쓸데없이 뇌까리며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어 갔던 것이다. 과연 다툼의 근원은 무엇일까. ‘9년의 세월만큼 머리가 더 굵어졌기 때문인가.’ 솔직히, 아는 것이 더 많아지는 바람에 재는 것이 더 늘어났고 그만큼 싫어하는 것도 다양해져 인간관계의 충돌이 빈번해짐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많아지는 나이의 숫자만큼 채워야할 인덕과 포용력이 자꾸만 방향을 반대로 틀어 버리고 있음을 말이다.

결국 여행 마지막 날, 친구와 “두 번 다시 같이 장기간 여행은 하지 말자”고 합의를 했다. 25년이 넘는 우정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씁쓸한 순간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인도에 대한 느낌은 분명히 달랐다. 앞서 밝힌 것처럼 다시 찾은 식상함의 문제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것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였다. 같은 것에 대한 느낌과 기억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을 대하는 내 마음이 그때그때 다르기 때문이다.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에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이다.




# 엘로라 석굴군은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세 가지 종교 사원 34개로 이루어져 있다. 망치와 끌로 깎아 만든 정교하고 셈세한 조각상이 매우 아름답다.

인도의 느낌은 제각각이었지만 더러는 같은 점도 있었다.

일단 두 차례 마주한 인도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이라는 점이다. 도로 위에 구분 없이 뒤 엉켜 있는 사람과 동물, 자동차. 그 무질서와 혼돈의 변주 속에서 피어난 엄청난 소음과 더러움이 그랬다.

또 변함없는 환경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많은 교훈을 얻어갈 수 있었으며 잘못된 생각들을 고쳐먹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행복을 가늠하는 ‘절대적 가치’란 삶의 본질적 물음에 당면하고는 그동안 얼마나 부질없이 물욕에 집착했었나 곱씹었다. 무소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집착을 조금만 내려놓으면 버린 것의 곱절만큼 평온과 평화를 끌어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런 생각은 삶과 죽음의 공존이라는 묘한 환경을 접하며 더욱 배가 됐다. 처음으로 집착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반복했던 것이다.

또 지독한 더위를 온 몸으로 체험한 뒤에는 결국, 언젠가 지나가고 마는 것들에 대한 인내심이 마음속에 조금씩 움트기도 했다.

전체적으로는 엄청나게 고되고 괴로운 여행이었으나 그 순간순간에는 나름 배움의 철학이 있는 여행이었던 셈이다. 무엇보다 내 삶의 영역 밖에서 만난 인도에서 가장 나이지 않으면서 또 가장 나일 수 있었다는 이유로 두 여행 모두 값지고 아름답다.

ohora88@naver.com<문지연 님은 언론인이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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